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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권(53호-56호)
2015.07.09 16:04

56호/미니서사/김혜정/철저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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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서사
김혜정

철저한 사람


  여자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한껏 고양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것이 남자를 오래도록 만나온 방식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고 싶을 때만 일방적으로 전화를 했다. 평소에는 흔한 문자 메시지 같은 것도 보내지 않았다. 어쩌다 여자가 전화를 걸어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그런다는 걸 여자는 알았다. 남자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그런 점을 인정했다. 남자에게는 아내가 있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에도 여자는 그 말이 진심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남자가 여자를 간절히 원할 때는 남자가 다른 여자와 헤어졌을 때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자는 누군가를 완전히 사랑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완벽한 이해는 불가능한 거라고. 그리고 남자가 영원히 자신을 떠날 수 없을 거라고 믿었다. 
  모텔에서 나왔을 때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남자가 택시를 타고 사라진 후에도 여자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어졌다. 여자는 비를 흠뻑 맞았다. 그 길로 곧장 집에 들어가지 않고 이따금 가는 펍에 들렀다. 
  꽁지머리를 한 남자가 잡지를 보다 말고 손님을 맞았다. 늘 잠을 자서 이름이 ‘또자’라는 강아지가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자고 있었다. 어김없이 귀에 익숙한 올드팝이나 재즈가 흘러나왔다. 비오는 날 혼자 술을 마시기 좋은 장소로는 그만한 데가 없었다. 물론 남자와도 몇 번 들른 적이 있었다.
  취기가 오르면서 여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위로받고 싶었다. 여자는 남자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았다. 그녀와는 남자를 알기 전부터 알고 지냈다. 그녀는 자다가 일어났는지 부스스한 목소리였다. 웬일이세요? 아, 근처에 왔다가 생각나서요. 그녀가 여자에게 괜찮으면 집으로 오라고 했다. 남편은 다른 여자를 만나고 와서 잠들었다고. 여자는 그저 목소리를 듣고 싶었을 뿐이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여자는 깨달았다.  
                     
                                  
*김혜정 : 여수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 199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비디오가게 남자」당선. 소설집 『복어가 배를 부풀리는 까닭은』『바람의 집』『수상한 이웃』장편소설『달의 문(門)』『독립명랑소녀』‘제15회 서라벌문학상 신인상’ ‘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청소년 저작상’ ‘송순문학상’ ‘2013 아르코창작지원금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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