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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권복현(성주여고)

꽃이 핀다는 것은 


우연히 식물 하나를 키우기 시작했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도 되지 않은 작은 새싹이 어떤 꽃을 피우지는 알 수 없었다. 손바닥만 한 화분에 흙을 담고 새싹을 심고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물도 주고 창가에 놓아 주었다. 제 손으로 직접 키운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척이나 뿌듯해진 나는 매일을 식물이 더 잘 자라도록 모든 정성을 쏟아 부었다. 새싹은 내 정성을 알아주기라도 한 듯이 손가락 한 마디만 했던 새싹이 줄기를 키워내 새끼손가락만큼이나 훌쩍 자랐다. 학교를 가는 날 이외에는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던 나는 화분에 자라는 새싹과 함께 밖으로 나와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시원한 물을 마시며 몸을 스치는 바람을 맞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싹은 점점 자라 작은 꽃망울을 피워냈다. 작은 꽃망울은 곧 아름다움을 내뿜는 꽃을 피워 냈다. 꽃은 봄이 왔다는 듯 인사를 해주었다. 살랑 이는 바람결에 온 잎을 내 던져 나를 만나게 되어 기쁘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꽃이 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자란 꽃을 보면서 문뜩 나는 생각에 빠졌다. 단순히 생각해서 그냥 봄이 오는 신호일까. 마냥 춥기만 했던 몇 달의 겨울 동안, 부드러운 흙의 보살핌으로 쌀쌀한 바람을 견디어 내고, 눈이 가득 쌓인 그 위로 간간히 비추어지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 모든 차가운 눈빛들이 녹아 어느새 푸르스름한 새싹들이 기웃거리며 몸을 일으킬 때, 그 아름답고 따스한 봄날과 함께 드디어 기다린 그 날이 왔다는 듯. 반기며 온몸으로 인사하는 그 꽃. 그것을 이렇게 단지 봄을 알리는 그 신호. 사랑을 받고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 모습으로 피어있는 꽃. 그 꽃이 핀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그 꽃이 내게 피어보인다면, 무슨 의미일까. 내 어두웠던 겨울을 지나 봄이 온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일까. 내게도 그런 의미일까. 혼자만의 외로움 속에 갇혔던 내게 물어봤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지친 몸을 잔뜩 웅크려 어둠 속이 좋아 겨울 속을 해매이고 살았는지 모른다. 가끔씩 창문을 열면 보이는 새하얀 절경이 눈이 부실 정도로 내게 빛을 내뿜지만, 다시 창문의 커튼을 확 성질이 난다는 듯 쳐보이고는 다시 어둠 속에서 무언가 중얼거린 것이 삶의 일부분이었다. 그러던 내가 한 송이의 꽃을 피워냈다. 꽃에 대해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과 정성을 베풀었고, 흙 속에 파묻혀 작기만 해보였던 새싹이 마침내 꽃망울을 피워내고 아름다움을 내뿜는 꽃을 만들어냈다. 그래. 나는 내가 피워낸 꽃처럼 끝에는 아주 눈부시게 피어날 수 있다. 
 
나는 꽃을 향해 중얼거렸다. 주문을 걸 듯 나는 외롭지 않아. 이깟 어둠 속을 한없이 걷고 또 걷는 다고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결코. 소리치고 또 소리쳐 외쳤다. 나는 외롭지 않아. 주먹을 있는 힘껏 세게 쥐어 손목이 덜덜하고 떨려온다. 좌절하고 싶지 않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가로 막고 있다 해도 나는 결코 그 속에서 절망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단지 추운 겨울 속을 이겨내기 위해 어둡고 거칠 거리지만, 그 속에 따스함을 잔뜩 가진 흙 속에서 나를 찾는 따사로운 햇살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마침내 꽃을 피워 낼 수 있다고. 수없이 생각했다. 나는 아주 작은 씨앗이고, 그래서 모든 것을 견디기에 힘들 뿐이라고.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아직 이르다고. 언젠가는 이 꽃처럼 세상의 따스한 바람결에 내 온 몸을 흔들리며 반길 수 있을 것이다. 햇살이 좋아 밖으로 나가 새하얀 꽃잎처럼 눈부신 미소를 지으며 초록빛 물결의 숲을 뛰어다닐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피어난 희망적인 미래의 상상이 꽃이 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라는 나의 물음에 대해 대답해 주었다. 꽃이 핀다는 건 말이다. 아마도 어둡기만 했던 누군가에게 눈부신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내게 피어난 꽃처럼, 나 역시 언젠가 눈부시게 아름답게 피어날 날이 다가오겠지. 



남겨진 발자국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쯤, 집 앞 흙길은 새 하얀 시멘트로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다. 그 길을 뭣도 모르고 뛰어다니다가 채 마르지 않은 시멘트에 발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 조그마한 발이 가는 길을 따라 발자국을 남겨 길을 알려주는 표시처럼 남고 말았다. 그리고 나를 뒤따라온 할아버지의 발자국도 함께 남았다. 길에 발자국이 생긴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다는 듯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발자국을 가리키면서 해맑게 웃어버렸다. 

“할아버지! 여기 봐! 내 발자국 생겼다!”

발자국을 보면서 나는 매일 같이 자랑을 했으며, 할아버지의 커다란 발자국에 내 조그만 발을 대보면서 남은 공간에 또 다른 발도 넣어보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고, 비오는 날에 푹 파여진 발자국 모양에 물이 고이자 거기에서 첨벙이면서 뛰어다니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다 발자국을 가리키면서 할아버지만큼 클 테야, 라고 다짐을 하기도 했다. 나의 다짐처럼 나는 매일 매일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게 된 발자국과 함께 쑥쑥 커나가고 있었다. 언제 할아버지 발자국만큼 커버릴 지 상상도 못했던 내 발이 남겨진 발자국을 점점 채워가고, 내 발자국은 점점 내 발 밑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나는 그만큼 커버렸다는 사실에 행복했고 할아버지만큼 큰 사람이 되었다는 자부심으로 늘 즐거웠다. 

내 발이 자란 만큼 시간이 훌쩍 흐른 우리 동네에는 고속도로가 생겨나고, 공장이 들어서고, 쓰레기장이 들어서면서 마을 사람들이 점점 이사를 가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우리 집 역시 이사를 가야하는 지경까지 왔다. 하는 수 없이 이사를 가게 되고, 할아버지의 발자국을 끝까지 채우지 못한 채 이사를 가고 말았다. 이사를 간 후에도 나와 할아버지는 종종 옛날 집을 찾아가 그곳의 추억을 더듬었다. 걷는 길에 늘 우리는 발자국이 아직도 남아있을지, 집은 여전히 그대로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한 모든 것들이 그대로 있기를 원했다. 하지만 늘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변하지 않은 채로 있지는 않았다. 영원할 것 만 같았던 할아버지와 나 사이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무뎌지고 멀어지고 말았다. 사춘기라는 핑계로 친구들과 더 놀고 싶어 집을 자주 비우고,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도 않았다. 그 시간의 끝에는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시작의 선에 서게 되었고, 할아버지는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끝내 지켜보지 못한 채 인생의 끝자락에 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말았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나는 소중했던 시간들에 대해 점점 잊혀갔다. 바쁜 시간들 속에서 할아버지와 발자국은 어린 시절의 한 부분으로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명절이 되어 온 가족이 다 같이 성묘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을 때, 우연히 길에 남겨진 발자국 두 개를 보았다. 흙이 쌓이고 풀이 간간히 자란 그 길 위에 변하지 않은 발자국이 보이자 나는 다시 끔 추억이 떠올랐다. 진흙 같았던 따뜻한 시멘트에 발이 빠져 길에 발자국이 나버렸던 기억, 할아버지의 발자국을 보면서 나도 저만큼 크겠다고 장담했던 기억, 발자국에 발을 넣고 뛰어다니던 내 어린 기억. 그 모든 것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에 지나쳐갔다. 커버린 나는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할아버지의 발자국에 발을 대어 보았다. 예전에는 거인의 발처럼 크게만 느껴졌던 발자국이 어느새 내 발에 쏙 맞는 발자국이 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의 작은 발자국은 커버린 나의 발을 앞질러서 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내가 커가는 것을 보기 위해 늘 뒤에서 앞질러 가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디로 넘어질까 안절부절 하면서 내가 언제 어른이 될지 기대하면서 말이다. 
 
수백 번을 걸었을 그 길에 남겨진 발자국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잡혔다. 나는 소중했던 사람과의 잊지 못할 기억들을 바쁘다는 핑계들로 잊어버리고 무관심해버렸는데, 남겨진 추억들은 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다시 생각하고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갈 수 있는 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기다림 속의 할아버지는 늘 뒤에서 내가 혹여나 다치지는 않을지, 아프지는 않을지, 힘들지는 않을지 걱정을 하면서 돌아올 길을 만들고 계셨다. 그것을 너무나도 뒤늦게 깨달았다. 모든 건 시간이 지나면 잊어지고 변할 것이라는 나만의 생각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도 잊어지지 않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할아버지와 내가 남긴 발자국이 여전히 우리의 추억을 담고서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찾아줄 나를 기다리고 있듯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주는 사랑이라든지, 함께한 추억들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든지. 그 소중한 무언가는 변하지 않고 있다. 변하지 않은 할아버지의 큰 발자국은 여전히 앞질러 가는 발자국을 바라보면서 늘 곁을 지켜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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