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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부 차하
김명미(부평여고)
기계인간


한 사람이 누울 만한 침대와 침대 위 천장에 걸려있는 TV, 그리고 자그마한 냉장고뿐인 병실에 한 남자가 누워있다. 남자는 막 수술을 끝내고 돌아왔기 때문인지 하얀 환자복 여기저기에 갈색의 요오드 용액을 묻히고 있었고,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상태였다. 투명한 튜브를 통해 남자의 팔에 연결된 수액이 작은 비닐 안에서 똑똑, 규칙적으로 떨어진다. 적막만이 감도는 병실에는 그저 남자의 숨소리만 울린다. 그 때였다. 남자가 불현듯 눈을 떴다. 목 아래가 저릿한 감각이 들었고, 손 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그는 순간 두려운 마음에, 눈을 굴려 사람을 찾았다. 곧, 의사가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서현민씨?”
“아, 예.”
남자, 현민은 놀라 대답했다. 의사가 차트를 들고 가까이 다가온다.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신가요?”
“예에….”
“전신마취를 하셔서 당분간은 조금 어지러우실 겁니다. 앞으로 12시간은 움직이시면 안 되고요, 웬만하면 깨어 계시는 게 마취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예.”
의사는 머뭇거리더니, 이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그리고… 하반신이… 사고의 충격으로 마비되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그런…!”
현민은 경악했다. 하지만 곧 오늘이 만우절이라는 것을 간신히 생각해냈다. 그래, 장난일지도 모른다. 심한 장난을 얼마든지 쳐도 용서해주는 날이 아닌가. 그는 웃는다기보다는 얼굴 근육을 움직였다고 하는 것에 가까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에이, 농담이죠? 오늘 만우절인 거 다 압니다. 용서해드릴 테니까 얼른 농담이라고 하세요.”
의사는 고개를 숙였다. 얼굴만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그는 곁눈질로 그 모습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만우절인 거 다 안다니까요? 농담이죠? 좀 심했지만 장난이라고 하면 정말 용서해드릴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현민은 의사가 자신의 뜻대로 말하지 않자, 기어이 화를 냈다.
“장난이라고 말하라고! 그게 그렇게 어려워?! 장난이라고 해!”
의사는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현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것을 현실에 대한 수긍으로 받아들인 의사는 또 한 번 죄송하단 말을 하고 병실을 나갔다. 현민은 여전히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때문에 다리를 움직여보려 애썼지만 마취 탓인지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현민아!”
그의 어머니, 강옥이다. 그녀는 현민의 모습을 보곤,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흐윽… 혀, 현민아… 이게 무슨, 일이야… 흐으, 흐으으…….”
그녀가 비척비척 힘없이 다가와 그를 꼭 껴안자, 현민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눈물을 참으려 애썼으나 기어이 터져 나온 눈물을 흘리며 현민은 그에게 하소연했다.
“어머니, 전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제 다리가 마비됐대요……. 이게 뭡니까, 어머니… 전 어떡합니까, 예?”
“아니야, 나을 수 있어. 요즘은 어떤 세상인데. 이 에미가 꼭 낫게 해 주마.”
그녀는 그에게 호언장담을 했으나 얼마 후, 마취가 어느 정도 풀리고 현민이 자신의 다리를 움직이려고 애썼을 때 그녀의 말은 그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았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힘을 썼지만 현민의 다리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리의 느낌은 이렇게나 생생한데 정작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제 혼자 걸을 수도 없고 차를 운전할 수도 없다. 휠체어를 끌고 다니는 추한 모습을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도 없으니 직장도 그만두고 집에 있어야 하리라. 그리고 그는 모두에게서 잊혀서 숨어 지내게 될 테다. 지금까지 이 꼴을 보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도 살아왔나. 한 없이 허무하다. 그의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공허만이 가득 찬다. 자조적인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이럴 거면 그렇게 열심히 발버둥 쳐가며 살지 말 것을, 이럴 거면 그냥 태어나지 말았을 것을…. 그는 입원기간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았고, 그의 어머니는 그런 그의 수발을 들며 애써 그를 위로했다. 그럼에도 현민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그것은 퇴원 날에도 마찬가지였다. 퇴원 날, 현민은 강옥이 미는 휠체어에 타고 집으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이토록 무서운 줄은, 그리고 집에 가는 길이 이토록 멀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모두가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고 그런 느낌이 들 때마다 그는 한 없이 비참해지며 자신을 보는 모든 사람의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집에 도착한 현민은 강옥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에서 내렸다. 한동안 집을 비워둔 탓인지 바닥엔 먼지가 두껍게 쌓여있었고, 그 바닥을 팔만으로 기어가자 현민의 상체가 먼지 범벅이 되는 것은 물론이요, 일어나는 먼지에 그의 약한 기관지가 기침을 토해낸다.
“현민아!”
그는 강옥의 부름을 무시하고 있는 힘껏 팔을 뻗어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뒤이어 강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민아! 현민아! 이것 좀 열어 보렴!”
들어오면서 손잡이의 잠금 쇠를 누른 터라, 강옥은 그의 방문을 열 수가 없었다. 강옥은 오래 문을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강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았다. 그럼 오늘은 쉬렴. 내일 다시 오마.”
현관문이 다시 열렸다 닫히고, 그 혼자 남은 집 안에 적막만이 감돈다. 그는 무심코 방 안에 있는 TV를 켰다. 웃고 있는 연예인이 보인다. 그는 그들의 웃는 얼굴이 꼴 보기 싫어 이리 저리 채널을 돌려댔다. 그 때, 무엇인가 현민의 시선을 끌었다. 광고였다.
“불의의 사고로 몸의 일부를 잃으셨나요? 저희의 실험에 참여하십시오! 저희는 당신에게 새 삶을 드리겠습니다!”
현민은 황급히 TV앞으로 다가갔다. 그 와중에 방바닥에 끌리는 다리는 안중에도 없었다. TV는 그 문구를 끝으로 다음 광고를 내보냈으나 현민의 머릿속에선 아까의 그 광고만이 반복재생 되었다. TV에서 다른 광고가 계속 나오고 마침내 그 광고가 또 나왔을 때에야 현민은 정신을 차렸다.
‘사람을 위한 사업, 대한 사업.’
문구에 정신이 팔렸던 아까완 달리, 화면 구석에서 빛나는 글자를 본 현민은 또다시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다리를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된다면 한 번 실컷 뛰어봐야지. 기분이 째질 거야.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자. 상쾌하겠지? 그러고 나면 다시 일을 시작하자. 난 회사에서도 꽤 일을 잘 하는 편이었으니까, 다시 연락하면 받아줄 거야. 그래, 월급을 받으면 전처럼 흥청망청 쓰지 말고 부모님께 빨간 내복이라도 사드리자. 와, 그러고 보니 나, 그동안 부모님께 뭐 해드린 것도 없었잖아? 나 진짜 불효자였구나. 빨간 내복이 뭐야, 여행이라도 보내드려야지. 적금이라도 깨서 말이야. 이런 게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행복이었구나!
또, 또 뭘 할 수 있을까? 그래! 자선단체, 특히 나처럼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된 사람들을 도와주는 기구에 돈을 기부하자. 와, 진짜 끝내주는 생각이다.
현민은 당장 나갈 채비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씨발!”
현민은 주먹으로 다리를 쳤다.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다리는 그의 주먹질로 인해 힘없이 흔들렸다. 마침내 제 다리를 때리는 행위를 멈춘 현민은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쓰러지듯 누웠다. 숨을 고른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주위의 가구를 붙잡고 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옷장이 이렇게 높았나….”
한참 손을 뻗어도 닿지 않자 현민은 위에서 긴 물건을 찾으려고 했다. 파리채, 자, 등긁개…. 닿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테이프를 찾아낸 현민은 그 물건들을 연결했다. 손끝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옷장에서 한 벌의 옷을 꺼낸 그는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벗었다. 씻는 것은 포기했다.
윗옷을 벗고 입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바지였다. 흐물거리는 다리는 말을 듣질 않아서, 현민은 손으로 다리를 접고 몸을 이리저리 뒤척여가며 간신히 바지를 벗었다. 바지를 벗는 게 이리도 힘든 일일 줄이야. 그는 심호흡을 하고 두 손으로 오른쪽 허벅지를 들어 올렸다. 왼손으로 들어 올린 허벅지를 받히고, 오른손으로는 새 바지를 집어 발을 끼워 넣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로 해서 발을 넣고, 바리의 허리부분을 잡아 위로 끌어 당겼다. 땀 때문에 바지는 잘 올라가지 않았다. 용을 쓰던 그는 바지를 간신히 엉덩이 밑에 걸치는 것에 성공했다. 다시 심호흡. 현민은 조금 긴 심호흡-실은 헐떡거림-을 마치고 다시 바지허리를 잡았다. 하지만 엉덩이가 들어 올려지질 않으니 허리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리가. 현민 몸을 뒤집어 머리로 상체를 들어 올리고 바지를 끌어올리려고 했다. 허리부터는 몸이 가라앉았으나 적어도 바지가 엉덩이와 허벅지 사이에 걸리진 않아서 팔 힘으로 바지를 올릴 수 있었다. 남자는 한참을 누워서 숨을 골랐다. 반바지여서 다행이었다. 그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현민이 옷을 갈아입은 노력이 무색하게도, 그의 몸은 온통 땀에 젖고 말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민의 옷은 말라갔고, 마침내 기운을 차린 그는 가구들을 잡고 몸을 옮겨 마침내 현관에 도착했다.
현관에는 그의 어머니가 두고 간 것이 분명한 휠체어가 놓여 있었다. 기어오르려다 바퀴가 움직이는 바람에 미끄러진 그는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고 바퀴를 고정시키는 레버를 올린 뒤 다시 기어올랐다. 물론 쉽진 않았다. 앞으로 기어오르려고 애를 썼지만 도저히 불가능했다. 아무리 등받이를 붙잡고 용을 써도 결국엔 다리 때문에 미끄러졌다. 미끄러지길 수 번, 현민은 차라리 등을 대고 올라가기로 했다.
한 팔로는 몸을 들어 올리고 남은 한 팔로는 휠체어를 잡았다. ㄱ자로 굽힌 팔을 휠체어에 얹고 다른 한 팔로는 몸을 띄우니 그나마 머리와 등의 일부가 휠체어의 앉는 자리에 닿았다. 현민은 끙끙거리며 등을 대고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간신히 휠체어에 몸을 싣는 것을 성공한 현민은 뿌듯함을 느꼈으나 곧 그는 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라고 뿌듯함을 느끼는 건가. 당연한 일일 뿐인데.
팔이 저렸다. 계속 팔을 이용해 이동하고 휠체어에 오를 때도 팔만 사용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현민은 또다시 쉴 수밖에 없었다. 너무 힘들었다.
현민은 마침내 휠체어 바퀴를 돌려 현관을 나섰다. 휠체어가 너무 커서 현관을 통과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딱 맞았다. 휠체어가 조금만 더 컸더라도 나가지 못했을 것을 확인한 현민은 안도했다. 어머니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어서 가야만 했다. 그래서 이 빌어먹을 다리를 고쳐야만 한다. 현민은 서둘러 휠체어의 바퀴를 돌렸다.
난생 처음 현민은 장애인 콜택시를 탔다. 가끔 지나다니는 것만 봐 왔었는데 직접 타보니 느낌이 이상했다. 차창 밖으로 풍경이 스쳐지나가는 동안, 현민의 뇌리에서도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사실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다리, 다리, 그리고 다리.
마침내 택시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대한의료과학산업본부라는, 어쩐지 거창한 명칭을 가진 건물은 현민을 주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민은 콜택시 기사에게 대금을 지불하고 휠체어 바퀴를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프론트에서 한 여자가 그를 맞았다. 안내인인가보다, 하고 생각한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 광고를 보고 왔습니다만….”
“아, 의료기기 체험 대상자 분이신가요? 이쪽으로 와주세요.”
현민은 휠체어 바퀴를 밀며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건물 안 깊은 곳의 문을 열고 들어간 여자는 현민에게 한 서류를 내밀었다.
“신체 포기 각서…?”
“네. 동물실험으론 검증되었지만 아직 임상실험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아서요. 사실 위험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그래서 위험을 각오하셔야….”
현민은 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름을 쓰고 사인을 마쳤다. 다리가 불구가 되어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나았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수술 준비에 들어갈 수 있도록 위에 연락하겠습니다.”
여자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곧 그들이 있는 방으로 남자 두 명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서현민씨의 수술과 회복 동안 옆에서 도와드릴 겁니다. 불편한 것이 있으시다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렇다면 우선 다른 방으로 옮겨서 환복 하도록 하겠습니다.”
남자는 현민을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옷을 갈아입혔다. 환자복 같은 느낌의 옷이었는데, 안엔 속옷조차 입지 못하게 해서 뭔가 휑한 느낌이 들었다. 그 이후로 여러 검사들을 마치고 병실 같은 곳에 들어오게 되었다.
“이제 대기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다른 방에 가있을 테니 여기서 시간을 보내십시오. TV나 컴퓨터를 사용하셔도 됩니다. 대기 순위가 앞 번호이기 때문에 수술은 내일 하게 될 예정입니다. 물도 음식도 드시면 안 됩니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두 남자는 방을 나갔다. 현민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TV를 켜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렸다. 연예인들의 웃는 모습이 나왔다. 예능이었다. 현민은 그들을 따라 웃었다. 그들끼리 화면에서 재잘거리고 게임하고 웃는 모습이 왜 그렇게 웃긴지. 그러다 현민은 피곤해졌다. 그럴 만도 했다. 항상 강옥이 수발을 들어주었었는데 오늘은 현민 혼자서 옷도 갈아입고 휠체어를 밀었으며 콜택시를 불러 탔으니까. 뻐근한 팔을 쭉 펴며 현민은 누워서 눈을 감았다.
감각 없는 다리는 이질적이었지만, 현민은 애써 무시했다. 피곤한 몸은 이질적인 감각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수면을 요구했으므로 현민은 이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옆에선 어제 보았던 남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이제 수술실로 들어가셔야 합니다. 마음의 준비는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됐습니다. 얼른 가죠.”
남자는 현민을 휠체어에 태우고 밀었다. 커다란 문이 나타났다. 휠체어를 밀지 않던 남자가 그것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 냉기. 그것이 현민의 얇은 환자복 속으로 스며들었다. 소름이 돋았다. 현민은 슬슬 긴장하기 시작했다.
‘수술이 잘못되진 않겠지?’
설마. 제 운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요즘 기술이 얼마나 좋은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수술대에 눕자, 누군가 현민의 몸을 오른쪽으로 눕도록 돌렸다.
“마취 시작하겠습니다. 조금 따갑습니다.”
무언가가 현민의 등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주삿바늘인 것 같았다. 꾸덕꾸덕한 무언가가 밀려들어오는 느낌에 몸서리 쳤지만 의사의 움직이지 말란 말에 꼼짝 없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주무시겠습니까?”
현민은 차라리 자는 게 낫겠다 싶었다. 보지도 못하는데 이상한 소리를 듣고 있으면 미쳐버릴지도 몰랐으니까.
“숨을 깊게 마시세요.”
그러면서 누군가가 투명한 플라스틱 마스크를 현민의 입과 코에 씌웠다. 언제 잠들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세요. 끝났습니다.”
현민은 부스스 감았던 눈을 떴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
‘뭐야, 끝난 거야? 별 거 아니네.’
“병실로 옮기겠습니다.”
하반신은 움직일 수 없었다. 당연하지만.
“수술은 어떻게…”
“성공적입니다. 기계가 잘 안착했습니다.”
기계? 기계를 심었나? 현민은 불안했지만 성공적이란 말에 한시름 놓았다.
“회복은 약 네 달 가까이 걸립니다. 모든 것을 동원해서 서현민님의 회복을 도울 것이며, 차후 완전한 회복, 즉 완벽하게 걷고 뛸 수 있게 된다면 대한의료과학산업본부는 서현민님의 치료기록을 데이터로 삼아 더 나은 발전 방법을 모색할 것입니다. 임상 실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현민은 가만히 누워있었다. 때때로 TV를 보고 가끔 검사를 받고,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씻는 것을 제외하면 무료한 시간이었다. 마침내 네 달이 지났다. 마지막 검사를 마친 의료원들은 현민이 완벽하게 회복되었다고 말했다. 이젠 걸을 시간이었다. 현민은 다시 걷겠다는 열망 하나로 그 모든 물리치료를 해냈다.
다시 걷고 뛸 수 있게 됐다! 현민이 그렇게 원하던 일-뛰기, 산책하기, 운동, 일, 빨간 내복, 여행, 기부 등-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현민은 그 일들을 하지 않았다.
“유치하게. 언제든 할 수 있잖아. 나중에 하면 되지. 못할 건 또 뭔데.”
하지만 현민은 다시 일이 하고 싶었다. 대한의료과학산업본부에서 임상실험 데이터를 제공한 대가로 보수를 꾸준히 지급한다고 했지만, 현민에겐 일이 필요했다. 현민은 예전에 일했던 직장으로 향했다.
“저….”
“현민 씨?”
누군가가 그를 알아봤다! 현민은 고개를 돌려 그가 누군지 확인했다. 그는 현민을 아껴주었던 상사였다.
“다리… 괜찮아진 거야?”
“예. 이제 다시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사는 곤란한 표정이었다. 현민은 원하던 대답-다시 여기서 일해 달라는-이 나오질 않자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게… 현민 씨 자린 이미 채워져서. 게다가 회산 누군갈 더 받아들일 여유가 없거든.”
뭣이! 이럴 순 없었다! 제가 이 회사를 위해 얼마나 뼈 빠지게 일했는데!
“아니, 그래도 그 동안 제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미안해. 하지만 현민 씨는 기관지염이 있잖아. 이 좁아터지고 환기도 안 되는 곳에서 기침 소릴 계속 듣기는 너무 괴롭다고.”
여기가 이런 곳이었나, 고작 기침 소리가 듣기 괴롭다고 사람을 내치는! 현민은 다 필요 없다고, 이런 후진 곳에서 일 따위를 해줄까 보냐고 내뱉으며 홱 뒤돌았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기계 다리가 휘청거렸으나 넘어지진 않아 망신당하는 일은 면했다.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데 그래요?”
“아, 전에 일하던 사람.”
“왜 나갔대요?”
“다리 다쳐서. 근데 잘 나갔어. 워낙 성질이 더러워서. 봐봐, 아까도 말하는 본새가 아주….”
현민은 당장이라도 뒤돌아서 전 상사의 멱살을 잡고 싶었지만 그것은 힘들었다. 조금밖에 안 걸었는데도 이 망할 기계다리는 휘청거리며 제가 한계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기관지도 기계로 고칠 수 있습니까?”
대의본-대한의료과학산업본부-의 의료원들은 된다고 했다. 임상실험 데이터를 제공한 은인이라면서. 그리고 기관지를 고치는 데이터를 제공하면 약간의 비용과 서류의 사인만으로 교체해준다고 했다. 현민은 고민 끝에 수락했다. 한 번쯤은 괜찮지 않겠나, 저를 그렇게 무시한 이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기 위해서라면. 그는 또 다시 수술대에 누웠다. 약간 긴장되었지만 마취를 하고 깨어나니 수술이 끝나 있었다. 현민은 참 간단하다고 생각했다. 회복되는데 세 달이 걸렸지만 몸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지겹지 않았다.
문득 친구들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었다. 오랜만에 만나 회포나 풀까. 현민은 주소록의 적당한 친구 몇몇에게 전화했다. 일이 바쁜 몇몇을 제외하고 그들은 한 술집에서 모였다.
“오늘 한 번 죽도록 마셔보자!”
현민은 호탕하게 외쳤지만 한 친구가 면박을 주었다.
“니가 마시긴 뭘 마셔. 냄새만 맡아도 취하면서. 지랄은. 넌 주스나 마셔라.”
친구들은 푸하하하, 하고 커다랗게 웃었다. 사실이 그랬다. 현민은 소주 한 잔만 마셔도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잠이 드는 사람이었다.
“뭐, 쨔샤? 내가 이거 먹고 취해? 웃기네, 이것들. 봐라 봐.”
현민은 소주 한 잔을 원샷했다. 필름은 끊겼다. 거의 새벽에 깨어보니 다른 친구들은 없었고 현민은 처음 온 술집 문 밖에 쪼그리고 앉아 자고 있었다. 가끔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현민을 힐끔거렸다. 현민은 여전히 띵한 머리로 저도 모를 소리를 지껄였다.
“개애-새끼들. 늬들 이제 죽었어. 내가 말야, 어? 위장을, 어? 기계로 바꾸기만 하면, 늬들은 껌이라 이 말이야. 씨빠 새끼들.”
먹은 것을 다 토해낸 현민은 아까보단 멀쩡한 상태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의본으로 가야지. 그리고 위장을 바꿔서 술을 진탕 퍼마셔 줄 테다. 놀라겠지.
대의본의 의료원들은 된다고 했다. 위장을 바꾸는 데이터와 약간의 비용이면 교체해준다고 했다. 친구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기 위해서라면 이정도 쯤이야. 현민은 수술대에 누웠다. 마취를 하고 깨어났다. 수술은 끝나 있었다. 회복하는 데는 두 달이 걸린다고 했다.
“아, 한 가지 주의하셔야 합니다. 서현민님은 음식 섭취는 가능하지만 소화는 불가능합니다. 현대의 의학기술로는 인간의 위장을 재현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무언가 음식을 먹고 나시면 자, 이렇게 배를 여시고….”
현민은 깜짝 놀라 연구원에게서 물러났다. 말 그대로, 배가 열렸던 것이다. 겉은 맨 살이었지만 배꼽에 손을 넣고 당기면 열렸다. 그 안은 쇠로 되어 있었고 텅 비어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아프십니까?”
“아, 아니지만….”
“어쨌든, 배를 여시면 음식물이 차 있을 겁니다. 그걸 모두 꺼내시고 한 번 닦아주시면 됩니다. 곰팡이가 슬지 않도록 깔끔하게 닦으셔야 합니다.”
현민은 다시 친구들과 만났다. 그들은 현민이 저번에 술 한 잔에 뻑 간 것을 두고 놀렸지만, 그가 한 잔, 두 잔, 한 병, 두 병, 한 박스를 비워가자 놀란 얼굴을 했다. 아니, 한 박스 즈음엔 놀란 사람도 남지 않았다. 모두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있었으니까. 현민은 화장실로 갔다. 배꼽에 손가락을 넣고 당기자 안에서 찰랑찰랑 액체가 흔들렸다. 그것을 변기에 쏟아낸 현민은 멀쩡한 얼굴로 친구들에게 돌아갔다.
어느 새 깬 친구들은 현민의 주량을 두고 놀랍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현민이 으쓱해하던 순간이었다. 술에 거나하게 취한 한 남자가 시비를 걸었다. 현민은 그것을 무시하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그와 맞섰다. 하지만 그 남자의 덩치는 현민보다 머리 하나쯤 더 컸다. 현민은 그에게 얻어터진 채로 쓰러지고 말았다.
현민은 이를 갈았다. 그는 곧장 술집을 나와 대의본으로 향했다.
“피부요.”
대의본은 된다고 했다. 피부를 바꾸는 데이터를 주면 바꿔주겠다고 했다. 그 개새끼를 시원하게 팰 수 있다면 그쯤이야. 현민은 수술대에 누웠다. 마취를 하고 일어나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회복하는 데는 한 달이 걸렸다.
피부는 강철이 되었지만 겉으로 티가 나진 않았다. 현민은 만족스러웠다. 술집에서 싸움을 걸어오면 그냥 서 있으면 되었다. 다리는 전의 그의 것보다 튼튼해져서 누군가가 아무리 세게 때려도 버틸 수 있었다. 현민을 때리는 이는 백이면 백 주먹을 쥐고 바닥을 뒹굴었다.
어느 날은 친구들끼리 축구 내기를 했다. 지는 팀이 술을 사는 내기였다. 현민은 이기리라고-그것도 대부분 저의 도움 덕에-자신했으나 전반 20분도 채 뛰지 못한 채 헉헉대었다. 밍기적거리며 뛰었기에 오히려 팀에 방해가 되었고 현민은 친구들의 야유를 한 몸에 받았다.
“애새끼들, 좀 못할 수도 있지!”
현민은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곧 대의본으로 향했다.
“폐, 심장.”
대의본은 된다고 했다. 폐와 심장을 바꾸는 데이터를 주면 바꿔주겠다고 했다. 아무리 뛰어도 지치지 않을 수 있다면 그쯤이야. 현민은 수술대에 누웠다. 자고 일어나니 수술은 끝나 있었다. 회복하는 데는 이 주가 걸렸다.
현민은 축구내기에서 혼자 펄펄 날아다녔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반대편 골대에 있나 싶으면 또 다른 반대편 골대에 가 있기 일쑤였고, 상대팀 수비들은 그를 마크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럼에도 현민은 그 모든 마크를 뚫고 골을 넣었다.
축구내기에서 이겼으므로 현민은 친구들의 환호를 독차지하며 공짜 술을 마시고 술집에서 나왔다. 기분 좋게 취해 서로 이야기하며 걷는데 현민의 친구가 현민에게 무언가를 물었다. 현민은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는,
“푸핫, 그것도 모르냐 멍청아!”
하고 그를 비웃었다. 다른 친구들도 취기에 따라 웃었다. 현민은 대의본으로 갔다.
“뇌.”
된다고 했다. 데이터를 주면 되었다. 수술대에 누웠다. 잤다. 깼다. 수술은 끝났다. 회복은 필요 없었다.
현민은 이제 완전한 기계였다.
현민은 시간이 지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머니는 진작 돌아가셨고 친구들은 늙어갔다. 시간은 또 지나갔다. 친구들은 죽었고 현민은 또 다른 친구를 사귀었다. 또 다른 친구들은 늙어갔다. 시간이 지나갔다. 또 다른 친구들은 죽었고 현민은 또 다른 또 다른 친구를 사귀었다. 시간이 흘렀다. 또 다른 또 다른 친구는 늙어갔다. 시간은 흘렀다. 또 다른 또 다른 친구는 죽었고 현민은 또 다른 또 다른 또 다른 친구를….
반복된 삶.
현민은 죽고 싶었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피부가 단단해서 죽지 않았고 물속에 머릴 담가도 폐는 물속에서 공기를 뽑아냈다. 현민은 마침내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머리를 부수는 것. 공장에 몰래 들어간 현민은 프레스를 찍어내는 기계에 머리를 맡겼다. 순식간에 바수어진 머리는 몸과 분리되어 프레스기를 멈추게 했다.
현민은 눈을 깜빡였다. 그의 앞에는 대의본의 의료원이 서 있었다.
“공장의 프레스기에 머리를 집어넣으셨더군요. 괜찮으십니까?”
어떻게?
“제공된 데이터로 당신을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이터, 데이터, 데이터. 현민을 이루는 모든 데이터.
“죽고 싶어.”
“안 됩니다. 당신은 저희의 임상 실험이 성공했다는 훌륭한 데이터니까요.”




산문부 차하
배송문(수피아여고)
고민카페


-1-
1인 카페
 -고민을 들어드립니다.
예약제 운영
시간 상담 010.8822.4858

-2-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한 1인 카페를 개업한 지 벌써 3년이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대화가 끝나면 곧장 한강으로 가서 떨어져 버리겠다는 사람도 있었고, 키우던 강아지가 죽어버렸다, 한마디 해 놓고는 남은 상담 시간 내내 울다가만 간 여자도 있었다. 
나는 전문 상담가가 아니다. 손님과의 상담이 시작될 때 나는 항상 한 장의 종이를 건넨다. 
저는 당신에게 해결책을 줄 수 없습니다. 당신이 죽겠다고 했을 때 저는 말릴 수도 없습니다. 당신이 제 앞에서 울 때, 어쩌면 저는 그 눈물에 공감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사연 끝에 한마디 코멘트도 달아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제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묵혀 두었던 말들을 들어주는 것, 그리고 잊어버려 주는 것, 당신이 주문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같이 있어주는 것. 그것 밖에 없습니다.
전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당신 가슴에 묵혀진 응어리를 녹여낼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습니다. 여기 내려놓는다면 들어주겠습니다. 말하기 전보다 가벼워질 거라고, 저는 장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왔다. 

-3-
그 저번에, 토요일 날에 예약했던 사람인데. 고민을 들어주신다고 해서요. 맞나요? 네. 아. 저는 민트초코 프라프치노로 주문할게요. 제가 쓴 커피를 못 마셔서요. 
아, 감사합니다. 커피. 맛있네요. 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편하게 얘기. 네. 노력해 볼게요. 
그러니까 일주일 전의 일이었어요. 지난 주 내내, 유난히 추웠잖아요. 겨울의 그 하늘엔 밀가루 같은 눈송이들이 바람을 타고 오르내리며 가볍게 휘날렸었죠. 벚꽃이 휘날리는 것처럼 그들은 반짝였어요. 메스컴에서는 46년 만의 혹한이 찾아왔다고 떠들어대고, 사람들은 바람이 살을 에다 못해 뼈마디 깊은 곳에 박혀오는 것 같다 불평했어요. 저는 지난 주 내내 겨울의 눈보라가 견딜만 하다고 느껴졌던 것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날씨 속에서 저는 10년 전 집나갔던 엄마를 찾았고, 또 그 엄마를 묻었어요. 눈보라 속을 걸어가며 저는 휘청거리곤 했어요. 눈보라 때문이 아니었어요. 눈보라가 견딜만 하다고 느껴졌던 것은 정말 그 해가 처음이었어요.
인생을 책에 비유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 때 저는 제가 그려나가야 할 책, 그 가장 첫 페이지를 장식했을 말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15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갔어요. 그 때까지 모두 기러기 아빠인 줄로만 일고 있었던 옆집 노총각과 함께였어요.
그 남자는 옆집 이층에 세 들어 살고 있던 남자였어요. 웃기게도 그는 단 한 차례도 본인의 입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 적이 없었어요. 항상 덥수룩한 수염을 트레이드마크처럼 달고 있던 남자였지요. 그는 가끔 러닝셔츠 차림으로 옥상에 올라 담배를 피곤했어요. 그가 먼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을 때 그의 한숨이 구름이 되어 날아가는 듯한 환상이 보이곤 했어요. 그를 기러기 아빠라, 맨 처음 명명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한 번도 입 밖에 꺼내본 적 없었지만 저는 왠지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같아요. 간혹 김치 같은 것들을 새로 담갔을 때, 또는 새 반찬을 만들었을 때면 엄마는 나를 시켜 그에게 반찬들을 전달하곤 했지요.
타지에 있을 가족들 혼자 부양하느라 얼마나 힘들겠니?
반찬 뒤 부록처럼 딸려 오던 엄마의 그 측은한 음성이 HD카메라로 녹화된 영상처럼 생생해요. 그들이 사라진 후 집주인의 연락을 받고 놀라서 달려왔던 그 총각의 어머니, 골목 한 구석에 오래 방치해 두어 표면이 거칠어져버린 상자 같은 사람. 그 메마른 입 껍질에서 그의 나이, 그가 미혼이었다는 사실이 처음 흘러 나왔어요. 
일곱 살이나 어린놈이랑!
인류 최초의 비밀인 양 귓바퀴에 내려앉은 말들이 레버를 당겨 아빠를 미치게 만들었어요.  
일곱 살이나 어린놈이랑 엄마가.
내 레버는 잠시 동요했지만 당겨지지는 않았어요. 열두 살이나 어린 엄마와 결혼한 아빠였어요. 그럼에도 아빠는 술만 마시면 엄마를 때렸어요. 한마디의 말도 없이 주먹을 내지르던 그 시간의 공기는 항상 섬찟함을 동반했어요. 그 주먹이 저를 향했던 적은 그 전은 물론 그 후에도 단 한 차례도 없었지만 그 곳에 존재할 때면 저는 언제나 이미 맞은 것만 같았어요.
그냥 이혼하라고 말했어요. 
엄마는,
아빠는 불쌍한 사람이야, 라고 말했었어요. 할아버지가 그렇게 할머니를 때렸다고 그랬어요. 도박으로 그나마 없던 논, 밭 다 팔아먹고도 할머니가 품 팔아서 푼돈이나마 얻어오면 그 돈을 다 뺐어들고 술판으로 나들이 가시곤 했어요. 그 통에 아빠랑 큰아빠는 중학교도 못 갔어요. 
국민학교 겨우 졸업하고 새벽 차 타고 상경했대요. 신발공장, 가방공장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세 동생을 고등학교까지 다 보냈어요. 그래서 엄마는 아빠를 불쌍한 사람이라 명명했어요. 엄마는 그런 불쌍한 아빠를 더 불쌍하게 만들 수 없다고 말했어요. 저는 엄마가 불쌍한 아빠를 더 불쌍하게 만든 나쁜 여자가 되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때 이미 엄마에겐 견딜 구멍이 있었을 거야,
저는 안도했어요. 안도감 끝으로 서운함이 손과 발이 작은 사생아처럼 딸려왔어요. 저는 신경 쓰지 않는 척 했어요.
미쳐버린 아빠는 그날 밤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운전대를 잡았어요. 도로는 휘청휘청거리며 아빠를 슬슬 위협했을 거예요. 그 위협을 놀림이라 받아들인 아빠는 약이 올라 빨개진 얼굴로 거칠게 운전대를 잡았을 거예요. 동그란 운전대가 교수형의 밧줄처럼 보이는 날이 있다고 들었어요.
이 길로 쭉 달려가면 그들이 있을 거야,
길은 고무줄처럼 늘어지고 줄어들며 아빠를 유혹했어요. 휘었다 곧아졌다. 빠른 변혁에 발맞출 수 없었던 그는 끝내 도로를 벗어나요. 도로를 벗어나 검어진 물결에 몸을 던져요. 그의 임종을 저는 보지 못했어요. 그가 남긴 육신의 마지막 손조차 저는 잡아보지 못했어요.
그런 아빠도 아빠냐고 묻는 사람이 있겠지만 제게 아빠는 엄마와 똑같은 아픔이었어요.
치밀하고도 잔인한 여자야.
저는 그 때 엄마를 그렇게 명명했어요.
저는 곧 고모집으로 보내졌어요.
작은 고모는 원래부터 저와 엄마를 싫어하던 사람이었어요.
어린년이 집에 들어와서 오빠 등골이나 빨아먹고 살아,
어느 명절에는 정말 그런 말을 내뱉은 적도 있었어요.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는 작은 오빠 등골 빨아서 그 시절에 여고까지 졸업했던 그녀였어요. 우리 엄마에 대한 그녀의 묘한 열등감은 때론 저를 향했어요.
지현이는 참 예뻐, 채은이랑 성씨가 같은데도 왜 이렇게 다르게 예쁜지 몰라.
저와 동갑인 작은 집 딸과 대놓고 차별을 하기도 했어요. 아무도 보지 않고 있을 때, 밉다고 저를 일부로 꼬집는 일도 다반사였지요.
큰 고모는 세 번의 이혼 끝에 친가와 연을 끊고 서울이라는 큰 사막에 숨어 버린 지 오래였어요. 작은 집은 반 지하 단칸방에 식구 다섯이 살고 있었어요. 할아버지는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할머니도 제가 3살 때 이미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자취를 감춰버린 판국에 외갓집 식구들이 저를 받아줄 리는 만무했어요. 안 그래도 나이 많고 능력 없는 아빠를 싫어하던 외가였어요.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일체의 연락조차 하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그 집에 들어간 것은. 저는 거의 식모처럼 살았어요.
공부를 꽤 잘 했었어요. 그러나 인문계에 진학할 수는 없었어요. 학교가 파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청소와 빨래와 식사준비를 해야 했어요. 고모는 여왕처럼 쇼파에 앉아 하인처럼 저를 부렸어요. 
 
요새 세상에 조카라고 부모 잃은 고아새끼 다 받아주는 거 아니다. 먹여주고 재워주면 심부름이나 잘 해.
아빠 살아생전에는 큰 소리 한 번 못 내고 살았던 고모부는 제가 그 집에 온 첫 날 위압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어요. 호랑이 같이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그냥 덩치 큰 곰인 척 하는 까치발 들은 여우처럼 보였어요. 그렇게 저를 위안하고 살았어요.
제가 다니던 상업고등학교에는 컴퓨터 디자인과, 콜마케팅과와 유통정보과가 있었어요. 저는 콜마케팅과를 졸업했어요. 졸업하고 저는 보험회사에 취직해 텔레마케터가 되었어요. 
꿈을 포기했었던 것은 그 때 부터였어요. 어릴 적부터 책을 좋아했어요. 작가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도서관의 사서나, 국어선생님처럼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꿈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겠어요? 고아에, 고모집에 얹혀살면서 인문계 진학도 포기하고 겨우 실업계 나온 20살짜리 여자애가, 어떻게 꿈에 대한 희망을 붙잡고 있을 수 있었겠어요. 그 때 너무 쉽게 포기했나 봐요. 저는 쉽게 운명에 순응했고, 소극적인 저를 운명은 쉽게 집어 삼킬 수 있었어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그 다음 말이 채 흘러나오기도 전에 대부분의 수화기는 털컥, 창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끊겼어요. 수화기는 항상 벽처럼 느껴졌어요. 가끔 벽은 신세한탄을 늘여놓기도 했어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했을 때, 그 다음 단어를 채 말하기도 전에 
우리 아들놈이 자꾸 날 때려 그래도 어쩌겠어. 불쌍한 내 아들놈. 마흔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갔어. 
말은 말에 꼬리를 물고 한참을 늘어졌어요. 그래도 끊을 수는 없었어요. 삼십분 동안 얼굴도 모르는 할머니의 말을 들어주었던 날이었어요. 밉거나 귀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아 거지같은 전화 또 오네. 귀찮게.. 
뚜뚜뚜뚜...
그런 사람들이 미웠어요. 문을 거칠게 닫는 사람들. 그 일이 있었던 날 이후 제겐 문을 조심히 닫는 버릇이 생겼어요. 소리 나게 쾅, 거칠게 문을 닫는 사람들을 증오하기 시작했어요. 싫은 소리는 그것뿐만이 아니었어요. 매일 반복 되는 부장의 똑같은 잔소리. 
채은씨 실적이 안 느네? 이만큼 근무했으면 이제 프로 아니야? 근데 왜 이래? 대학도 못 나온 걸 채용해 줬으면 열심히 해야지.
하루 종일 나를 괴롭히던 수화기들은, 그 음성들은 막상 제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땐 조용했어요. 독립한 이후 여덟 평짜리 원룸에서 살았어요. 주말 낮이면 사방의 벽이 침입자를 향해 조여 온다는 이집트 파라오의 무덤처럼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그 방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 밤이면 사무치게 넓어 보였어요.
아무도 없는 사막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처음 지구에 상륙한 어린 왕자도 이런 기분을 느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을 하는 밤들의 반복이었어요.
제게 핸드폰이 없는 것처럼 아무도 제게 접속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던 밤이 지나면 다시 아침이 시작되었어요. 사랑합니다, 고객님. 그 지겨운 반복이 다시 또 다시 저를 옥죄여 왔어요.
엄마는 그 반복의 하나인 것처럼 돌아왔어요.
집을 떠났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그녀는 세 번의 노크로 잠시 돌아왔어요. 10년을 긴 세월이라 생각 했었던 날이 있었어요. 그녀의 얼굴을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는 십년 전에 비해 조금 말랐을 뿐 전혀 달라진 게 없었어요. 
나 곧 죽어.
그녀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정말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유방암 말기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그녀의 얼굴은 정말 늙었어요. 백석이 여승에서 ‘녯날 같이 늙었다’고 했었잖아요. 그녀는 정말 10년 사이에 ‘녯날’ 같이 늙어버렸어요. 통통하다는 인상을 가졌던 그녀였어요. 엄마의 가슴에 파묻힌 유방암은 젖이 이미 끊겨버린 샘을 나와 젖물 대신 살을 갉아먹으며 얼굴에 깊게 골을 새겨놓았어요. 엄마를 그렇게 만든 암이 간이나 폐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게 저는 조금 마음에 들었어요. 제 유년이 묻어있을 엄마의 유방이 더 이상 말랑말랑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조금은 마음에 들었어요.
엄마는 항암 치료를 받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너에게 미안했다.
그녀는 말했어요.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고모 집에 있었던 그 시간들의 어느 곳에서도 엄마를 원망해 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나 괜찮다는 그 한마디로 제 일생의 힘듦을 놓아버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물 같은 정적이, 우리를 흘렀어요. 그 때 우리 사이에는 카르마가 비눗방울처럼 떠다니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길었던 밤이 지났어요. 사방을 옥죄여 오는 벽도, 차가운 사막도 없었던 밤이었어요. 울음과 포옹이 있는 재회는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침은 다시 돌아왔어요. 언제나처럼, 저는 출근을 하고 엄마는 돌아갔어요. 그 밤에 묻고 싶었던 말들이 많았어요.
엄마가 나를 버리고 선택했던 그는, 엄마가 이렇게 되도록 무얼 하고 있는지. 어쩌다가 이런 몹쓸 병에 걸리게 되었는지. 
십 년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단 훨씬 더 긴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 동안 물보다 진하다던 피는 묽어지고 탁해졌어요. 자궁에 파묻혀 있었던 10개월의 시간이 무색할 만큼 멀어진 사이에는 따뜻한 양수 대신 차디찬 강물이 채워졌어요. 이승과 저승의 거리처럼 헤아릴 수 없는 그 사이를 깨달았을 때 10년의 시간의 크기를 알 수 있었어요. 엄마의 뺨에 새겨진 주름, 형편없이 말라버린 팔뚝과 배가 아니라. 그 추상적인 공간의 크기를 통해 저는 깨달았어요.
그 밤에 엄마는 구태여 말하지 않았어요. 저와 같은 이유였을 거라, 그렇게 생각했어요.
엄마의 죽음은 그 재회가 있고 이틀 후에 전화선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임종조차 보지 못한 죽음이었지만, 마지막 남긴 육신의 손은 잡아볼 수 있었어요. 엄마의 임종이 몌별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엄마가 떠났던 그 날 밤에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어요. 순리고, 카르마다. 종교가 없는 저는 그렇게 되뇌었어요. 
장례식은 저 혼자 도맡아 진행했어요. 엄마가 남겨둔 통장이 있었어요. 그 남자는 오지 않았어요. 엄마 슬하에 자식은 저 하나뿐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그 십년 사이 그녀가 성이 다른 동생을 품에 안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으니까요. 외가의 식구들은 십년을 통째로 지워버린 것처럼 굴었어요. 저도 십년을 잊은 것처럼 굴었어요.
완벽한 고아가 되었지만 삶에 끼어있는 힘듦은 아직도 남았는지. 부장은 여전히 잔소리를 재방송하고,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는 인사말을 받을 익명의 고객님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는 여전했어요. 제 카르마는 언제쯤 저를 놓아줄 지, 유난히 무서워져요.
서른 둘이에요. 벌써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도. 아직, 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수도 있는 애매한 시간이에요. 누군가는 이미 숙련된 항해사가 되어서 풍랑 없는 바다를 돛을 펴고 날듯이 유영하고 있어요. 찐득한 카르마의 늪에 빠져있는 저는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어요. 카르마, 그 지독한 카르마의 반복을 털어놓고 싶었어요. 

-4-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이야기를 멈췄다. 그녀가 마시고 있던 민트 초코 프라푸치노 또한 이야기가 막을 내림과 함께 바닥을 보였다. 테이블의 어느 구석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눈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눈빛이 아니라 나는 안도했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그녀는 문을 나섰다. 나의 한마디 코멘트도 없이, 그렇게 상담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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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제14권(53호-56호) 56호/특집2/제 5회 리토피아청소년온라인백일장/차하(운문부)/최윤서 '목련' /곽남경 '혼잣말의 진화' 편집부3 2015.07.09 2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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