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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권(53호-56호)
2015.07.06 10:31

53호/권두칼럼/고인환/공감의 언어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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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칼럼
고인환

공감의 언어를 위하여


갑오년의 새해가 밝았다. 희망찬 새해의 각오를 다지며 덕담을 나누기에는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말’들의 웅성거림이 심상치 않다.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철도 및 의료의 민영화 논란, 일방통행식 대북 정책, 역사교과서 논쟁 등 세밑을 어수선하게 했던 이슈들이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탓도 있거니와, ≪현대문학≫을 둘러싼 문단의 시대착오적 해프닝 등 문학을 둘러싼 추문 또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리라. ‘삶의 목적인 삶 자체를 삶의 수단 확보에 낭비’하는 그야말로 상식이 쓰레기통에 던져진 시대다.  
한 평론가가 지적하고 있듯이 ‘지금 여기’에서 ‘참다운 문학’은 ‘우리가 문학이라고 간주하는 것의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구체적 현실과 소통의 길을 내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한국문학이 이 ‘닫힘’을 대가로 ‘미끈한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진단은, ‘현실에 등 돌린 문학’에 독자들이 ‘싸늘한 무관심의 복수’를 가하고 있는 오늘의 문학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일 수 있다. 
주지하듯, 시는 우리 사회의 ‘맨 얼굴’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다. ‘분노에 젖어있는 우리 사회의 서글픈 이면’을 포착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타진하고 있는 시에서부터, 소비사회의 황량함을 재기발랄한 상상력을 통해 주조鑄造하고 있는 작품 그리고 자연으로부터 소외된 현실을 독특한 방식으로 포착하는 서정에 이르기까지 그 변주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문제는 행복한 삶을 위협하는 은폐된 요소들을 탐색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조건들을 끊임없이 환기하는 시적 긴장을 얼마만큼 감당하고 있느냐이다. 
‘시대의 어둠’에 온몸을 던졌던 한 시인이 ‘체제의 경계 밖’으로 난 ‘기나긴 유랑길’을 거슬러 ‘앞선 과거’로 돌아왔다. 사진작가로 우리 앞에 선 시인의 말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한 사회가 무너지기 전에 먼저 말이 무너집니다. ‘나쁜’의 우리말 뿌리는 ‘나뿐’입니다. ‘나쁜 사람’은 ‘나뿐인 사람’이죠. 우리 선조들의 선악의 잣대는 ‘나뿐인 사람’인가, 아니면 좋은 사람, 다시 말해 주는 사람, 나누어 주는 사람인가였습니다. 우린 ‘대박’을 꿈꾸고 말하는 ‘천박한’ 흐름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직 ‘생존’만 남고 ‘삶’ 자체가 사라져 버린 시대입니다. 양극화와 일자리 문제와 복지 등에서 수평적 대립은 우리 사회의 창조적 생명력을 잃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날 ‘생존 단계’에서는 삶의 수단과 도구의 발전이 곧바로 삶의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늘 ‘사회 문제’가 삶의 문제 대부분이었습니다. 사회구조만 바뀌면 그 아래 시들어가던 내 삶과 인간성이 살아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생존 단계를 벗어난 지금은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보다도 ‘삶’ 자체가 문제가 된 시대입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생존’ 담론은 의기양양한 지배이데올로기로 우리를 옭아매고 있다. 단 한 번도 생존의 문제와 정면으로 맞서 본 적 없는 자들이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시대착오적인 삶의 양식을 공공연하게 유포시키고 있다. 시는 이 오염된 ‘말’들의 잔치를 용납할 수 없다. 그들에게서 ‘말’을 되찾아야 한다. 시는 무너지는 ‘말’의 징후를 포착함으로써 삶의 열망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의 부조리를 다스린다. ‘말’을 통해 ‘지금 여기’의 ‘절망’을 삶을 추동하는 생산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의 축제, ≪리토피아≫는 이러한 ‘나뿐’을 넘어 ‘나누어주는’ ‘말’들의 흥겨운 잔치 마당에 독자들을 초대하고 싶다.


*고인환 : 문학평론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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