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권(65호-68호)

제4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시와사람|류재만·수상작

by 백탄 posted Feb 18, 2019 Views 43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4회 전국계간지 우수작품상 시와사람|류재만·수상작

울릉도 새악시 외 1편



울릉도 동백꽃이 곱게 나 피면 섬 처녀 빨간 순정 안으로 타네 묵호로 떠난 임이 돌아올까 봐 뱃고동 울 때마다 가슴 설레는 포구에 피는 사랑 울릉도 사랑-월견초 


묵호로 시집 와
울릉도 새악시에서 울릉댁을 거쳐
울릉할멈이 된 지금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간절함에 진절머리 날 때는
성인봉이 보이는 초록봉을 오르며
2절까지 줄기차게 부르고 부르는 노래랍니다


눈심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수평선 거기까지일 테고
너머 아래로 수백 리
성인봉도 안타까워
정수리에 신기루를 피워 올려
몸피를 불렸거나 키웠으면 몰라
다들 보일 리 없다고 할 때마다
보인다고 했답니다
 
날 좋은 날은 조금 보태서
성인봉에 부딪치는 파도의 일렁임까지
보았다 단호하니
보고 싶어서겠지
초록봉 키가 얼만지 아나
올라섰으니 키를 한 뼘은 늘였겠구나
성인봉 정수리에 수천 년 묵은 향나무도 있다고는 하더라
가보지 않은 서울을 잘도 아는구나
몰라 울릉도가 날 좋은 날은
헤엄을 쳐 수평선 가까이까지 왔다가 가곤 하는가 보다
그래 울릉도가 바람에 지칠 때면 밀려 왔다가 가곤 해
향나무를 오려 제를 올리면 귀신이 정말 온다더라 
귀신을 봤나 보네
그래 요즘은 오락가락해
점점 아득해지고
아득해서 아찔아찔 놓아버릴 것 같기도 하답니다






독도 수비대원



울릉도가 택호인 집이 두 집 있었다
한 집은 아주머니만 울릉도가 고향이었고
또 한 집은 부부 모두 울릉도였다
큰 딸도 거기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머리를 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결혼을 해서 묵호로 왔고
상기는 나와 같이 쌈질하고 놀았으니
묵호에 태를 버린 것 같기도 하다


등말랑이라고도 하고 벼룩이콧등이라고
아랫동네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처럼
살만한 동네가 아니었는데
상기 아버지 이형우 독도의용수비대원은 울릉도 얘기는 잘 하지 않았다
한동안 먼 바다로 나가는 오징어 남발이도
선장이 이물을 울릉도 쪽으로 돌리기만 해도
뱃전에 서서 뛰어내려 버리겠다고 했단다
울릉도 북쪽 대화퇴어장을 포기하는 것은
목구멍에 거미줄을 치겠다는 것이다
바닷물이 뜨뜻해지면 오징어가 남쪽으로 내려올 거야
울진 강구 죽변 포항 울산 아니 부산까지 남발이 갈 거야
물 배웅을 나온 아내에게
혼자 내팽개쳐진 어판장에 쭈그리고 앉아
고함고함 질렀단다


비늘 없는 오징어낚시였기는 하나
꿰이면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진데
움켜쥐었다가 폈다 하며
손금에 배긴 때 속에 살아있는
갈매기 알이나마 동지들과 나눠 먹던 기억 말고는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으려는 뜻인데다
표시 나게 다친 데도 많고
표시 나지 않게 골병든 데도 많아 
거기에서의 악다구니가 저랬을 거야
상기 엄마는 뭍으로 데리고 나왔잖아 스스로 다독이며
절대로 말꼬리를 잡지 않았단다


하늘에서 신문을 보고 알았다며
상기 엄마 꿈속으로 왔단다
‘마지막 독도의용수비대원 이형우 사망’
시장도 문상을 왔다며
동네 사람들도 몰랐다며 미안해 하더라며
용이 등말랑 하수구에서 살았다며
아주 잠깐 관심을 보여 주더라며
상기 아버지
독도의용수비대원 33명 중에 이형우도 있습니다
아이들한테 고만 미안해해도 될 것 같소



류재만 1997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 『어달리 바다』, 『해비늘 벗기기』. 소설집 『칙간귀신 시집보내기』.





신작

파도가 바람피우는 울릉도



다른 데는 모르고
바람이 파도를 끼고 돌면서도
자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니
바닷날을 나무라라며
지 마음대로 바람피우는 데가 울릉도야


마음대로의 속엔 휘둘리는 대상이 있고
바람도 혼자 피우는 게 아닌데다가
한 바퀴 족히 백 리는 넘는데
하룻밤에도 열 바퀴
속속들이 생채기를 내고마니
재미 속에는 괴롭힘이 포함되어 있어 뼈저리지


사방이 가로 막혔다거나 열려있다는 말은
바람에게 물어보았는지 되물어 보아야 해
울릉도 바람이 파도를 끼고 하는 짓은
지랄도 이런 지랄이 어디 있냐싶으니까


동쪽에서 슬금슬금 오는 거야 저동으로 배를 옮겼더니
순식간에 독도를 돌아오는 거야
학포 태하로 겨우겨우 피신했지
한 숨을 쉬나 했더니
대마도 사이를 어떻게 삐져나왔는지
거품을 물고 한 번 해보자는 거야
현포에서 다시 추산 천부로 배 밑창이 헤지도록 달아났지
이런 대화퇴엔 휘둘리는 게 없다며 심심해하는 동무까지 불러 오는 거야
남양항에서 쥐 죽은 듯 있더라니
지치기는커녕 비껴 치는 재주를 이물 위에 얹고
건재를 과시하는 거지
다행히 비껴가는 사동항이 있어서 말이지
지치고 지쳐
백리 길을 도느니
여린 곁 동무 죽도나 맴맴 돌려 했다니까




선정평

류재만 시인은 강원도 동해에서 활동하는 시인답게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해양시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 바다와 바다를 생의 현장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의 지난한 일상을 시화하고 있다.
「울릉도 새악시」에서는 묵호로 시집와 울릉할멈이 되도록 수평선 너머 먼 바다의 보이지 않는 성인봉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이토록 고향을 그리워하는 울릉할멈의 눈에는 “울릉도가 날 좋은 날은/헤엄을 쳐 수평선 가까이까지 왔다가 가”는 것 조차 본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서사의 힘으로 시의 리듬과 흐름을 이끌어가는 특징을 보여주는데 앞에서 밝혔듯이 바닷가 사람들의 한과 그리움을 읽어내는데 능숙한 류재만 시인의 시는 삶과 존재에 대해 서늘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시의 특징은 「울릉도 새악시」에서 뿐만 아니라 「독도 수비대원」에서도 이야기의 힘을 통해 바닷가 사람들의 질박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류재만 시인의 시세계는 오늘날 형식의 새로움만을 좇아가는 시인들의 득세하는 시단에 전통서정을 지켜가며 삶의 방식과 존재에 관한 깊은 사색을 이끌어 내고 있는 까닭에 매우 소중하다 하겠다./시와사람 편집위원회




수상소감

나이가 도와준 듯하다. 살아오는 내내 제 때 제대로 무슨 일이고 해본 적이 별로 없다. 모자라는 때문이란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디 여분의 끝자락이라도 없는지 찾아다녔다. 부끄럼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으려 했으나 도대체 아무 것도 아니라면 가릴 것도 없는데  가리려 했다고 자위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늦었으니 욕심내지 말고 그냥 가보는 거지 뭐. 비틀거리면서도 긁적이기를 멈추지는 않았지만 돌아보니 손닿지 않은 등때기는 그냥 둬 버리고 쉽고 닿는 데만 도탑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인지 한 줄도 그렇지 않은 게 없다 여겨진다. 장배기가 훤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사진을 찍지 않은 것이 좀 위로가 되기 하지만 부끄럼을 또 장배기에 얹어놓은 것이다.머리 위에 거울을 얹고 부끄럼을 직시하려 한다. 다른 분이 계셔야할 자리이기에 앉지 말고 서 있자고 다짐한다.
부끄럼에 지친 걸음으로라도 광주로 가보려 한다./류재만


Articles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