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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권(69호-72호)
2019.06.26 10:47

71호/신작시/윤여진/탈피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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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윤여진/탈피 외1편


탈피 외1편


윤여진



 어쩌다 물에 비친 눈동자를 세어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내 눈을 힘껏 찔러보고 싶어 들여다볼수록 탁한 눈동자, 이럴 땐 손가락이 없어 곤욕이야 무수히 떨어지는 눈동자를 얌전히 구경만 해야 한다니

머무르고 지나친 곳마다 엇나가는 발, 지금 나는 마음껏 미끄러질 수 있다 오늘은 잎에 쌓인 거미줄을 지나왔고, 화장실에 숨은 집거미를 생각하다 길게 뻗는 몸을 살피며 창가 위로 올랐다 그래서 거미는 어디로 갔을까? 불을 끄고 누우면 그새 자란 거미가, 기척 하나 없이 알을 낳고 있을 텐데


 몸을 말리려 공원을 찾았다 저녁 무렵이었다 어두워지는 자세를 따라 하다 사진을 찍었다 여러 번 셔터를 눌렀는데 내 머리는 왜 이렇게 무겁게 부푸는지, 곧 거미는 무해한 얼굴로 기어오르겠지,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할수록 입에선 비늘이 세어 나왔다 착실히 껍질은 돋아나고


 피 한 방울도 없이 내가 자란다 웃음과 울음을 반반 섞은 표정으로 찰칵,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나를 찍으며
자 이제 나를 만져봐, 손안에 내가 말했고 나는 필요 없어진 나를 또 한 번 버리는 데 성공했다고, 축 처진 허물에 대고 가쁘게 말했다 숨이 찼다





탯줄



양손 가득 달을 쥐고
공중으로 뛰어오를 때마다
밤은 손바닥 안에서 핑그르르 돈다
미얀, 그리고 곧 네가 있는
산 아래로 떨어지지


깨진 조각은 왼쪽 무릎에 박히고
넌 날카롭게 눈을 벌리지만
울음은 더 배고파질 뿐이니까,
다시 쓰레기로 뒤덮인 산을 오른다


돈이 되는 철사나 플라스틱이 없는 날엔
너는 땅에 딛고 있는 모든 것들이
아슬하게 기울고 있다고,
어설픈 영어로 중얼거린다
이상해, 고개가 자꾸 꺾이고 있다고


등 뒤로 비스듬히 쏟아지는 비
어린 새엄마는 끔찍이 아끼던 새를
쿵, 쿵 벽에 던지고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이 뒤엉켜 구른다


미얀, 넌 까치발을 들고 서서
쓰레기장에서 주운 곰 인형을
빗물에 걸고 있다
선명한 비와 간간이 들리는 새의 비명
빨랫줄에 걸어놓은 장화가 흔들리고
너는 손가락을 까닥이며
느릿하게 빗줄기를 센다


팔과 다리가 자랄수록
어둠은 빨리 찾아온다지
별과 별 사이에 목을 걸어
팽팽한 달이 뜨도록
내 동생 미얀
우리 마저 이 밤을 완성하자





*윤여진 2018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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