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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권(69호-72호)
2019.06.26 11:48

71호/신인상/이성필/화석 외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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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인상/이성필/화석 외4편


화석 외4편


이성필



살아 있었음이 사진처럼
흙에 박힌


아버지는 물고기 새 도마뱀
들꽃처럼 흩날리던 세월


축축한 습지대 저 아프리카의 원시림에서
곰팡이처럼 피어나던 목숨


아름다운 세상 꿈꾸며
피던 꽃 지던 노을 불던 바람


만지면 잘게 부서져 내리는 흙
먼지 나던 골목


어깨 구부리고 낮은 기침하는 아버지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


나는 내 아들의 아버지
빠른 일상 속에 잊혀져갈 기억


누대봉사屢代奉祀의 날에
살아 있었음으로 가끔 읽힐





굿판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시던
착한 아버지가 죽었다


미친년처럼 요령을 흔들며 춤추던
성난 무녀巫女도 죽었다


이제야 세상은 조용해?
조용하지 않고 누가 또 떠든다


지어진 집을 허물고 다시 짓는다
잘나게 제 명패名牌를 걸려나?


아버지의 피를 받은 나
재판再版의 굿판을 보고 있다


떡이나 먹자고
사는 게 떡 같다며





4월 하순



누군가 부려놓은 짐 같은 아침 달 아래
울면서 밤새 코풀어 버린 휴지를
밟지 않으려 기우뚱 첨벙 목련나무 밑을 지난다


핏빛 동백꽃이 종종 모가지 째 뚝, 툭, 지는 것은
동백나무에 어느 처녀가 목매어 자살한 것이라던
그 여자가 생각난다


와그너 피아노 소리에 그럴 듯 뿌려지던 꽃잎들
웨딩홀 바닥에 복잡한 문자를 만들며
종이꽃들 돌아 눕는다





가위



아내와 누워 잠을 자는데
잠 속으로 빠져들면서
잠이란 게 이 편에서 저 편으로 넘어가는 거구나
티브이의 전원을 켰다 껐다 하는 일 같구나 하며
잠 속에도 이상하게
아내와 침대에 누워 자는데
너무 잠이 컴컴하게 깊어 깨어나려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아 버둥거리는데
잠이 몸을 잡아 누르는 일
소리도 막히고
가까스로 손을 뻗어 아내를 건드는데
잠에서 나를 깨워 줘 하는데
좀처럼 잠에서 못나오는 아내
식은땀이 나고 아아야야
내 소리에 간신히
잠에서 나오는 순간
왜 그래? 하는 아내의 목소리


아내와 둘이 누운 침대 그대로 여기인데
다시 잠들기가 두려운 새벽인데
정말 저 편이 있었던 건가
한 편의 잠 생각이 오소소 돋는
잠 속에서 잠을 만났던 일
잠 속으로 들어가는
갔다가 왔던 일
어떤
그때





목소리·3



과일 나물 전 적 포 메 갱, 일 년에 한 번 어머니 상이다.
앞뒷문 다 열자, 굵은 나무 그늘 같은 바람이 분다.
한식날 사초 못한 마음이다, 밥 거르지 않게 하던 사람.
술 따르고 절하고 무릎 꿇고, 세상 끄트머리 신위 쳐다본다,
현비유인경주김씨. 생전에, 넘어진 나를 사람들에게 하시던 말
우리 큰아들 근우아범은, 금방 다시 일어설 거예요
근우 몰래 누구도 모르게 뒷문 밖, 슬쩍 달을 가리는 구름
그 힘으로 여기까지 거침없이 기어왔다.
모습보다 목소리가 영, 못 잊게 남았다.





<심사평>


자의식의 표현과 세계의 개시開示 사이
―이성필 시의 가능성에 부쳐



시, 아니 시작詩作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관점에서 ‘자아/세계’란 대립 형을 논하는 것은 아주 구태의연한 일처럼 취급되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세계와의 불화와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에 현대의 시인은 모두 일종의 ‘단절’을 그 바탕으로 한다는 논리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무의식을 다루는 것이 의식, 특히 자의식에 관해 고민하는 것보다 주류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중요 요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수의 시인들이 ‘도피나 초월’과 같은 수식을 슬그머니 손아귀에 감춘 채 일상과 미시적 세계에 탐닉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 혼란한 상황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현재 우리시의 본모습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시인으로서 시작 상황을 제대로 파악, 대응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워졌다고 해도 지나친 변명은 아닐 것이다.


이성필 시인은 무엇보도 ‘시적 화자’라는 측면에서 굵직한 음성의 ‘남성 화자’자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 새롭지는 않지만 특색 있게 다가왔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시적 화자’란 단순하게는 시에서 말하는 역할(내래이터)에 머물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대상과의 관계, 아니 관계하는 방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서정시의 경우 ‘융화’하려는 특징 때문에 대상과의 공감에 더 적절하게 열려있다는 인식 아래 ‘여성 화자’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 남성 화자의 경우, 세계를 대상화하려는 경향이 지나쳐 선후, 인과, 상하 등 논리 틀에 감성이 경화硬化될 가능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기피된다. 세계를 딱딱하게 펼치면서 ‘융화’보다는 ‘분리’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쉽게 작동하는 것이다.
  
살아 있었음이 사진처럼 흙에 박힌/아버지는 물고기 새 도마뱀 들꽃처럼 흩날리던 세월/축축한 습지대 저 아프리카의 원시림에서/곰팡이처럼 피어나던 목숨/아름다운 세상 꿈꾸며 피던 꽃 지던 노을 불던 바람/만지면 잘게 부서져 내리는 흙먼지 나던 골목/어깨 구부리고 낮은 기침하는 아버지/무심히 흘러가는 강물/나는 내 아들의 아버지/빠른 일상 속에 잊혀져갈 기억/누대봉사屢代奉祀의 날에 살아 있었음으로 가끔 읽힐
―「화석」 전문


시인은 “살아 있었음이 사진처럼 흙에 박힌” ‘화석’을 통해 불연속의 연속이라는 자연의 불가해한 한 특징을 드러낸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화석’은 빠진 문자, 즉 결여가 너무 심해서 비약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독할 수 없는 기록이다. ‘아버지와 나와 (내가 아버지인) 아들’은 얼핏 보면 강한 연속성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세대를 건너가기도 전에 모든 기억과 인상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깨 구부리고 낮은 기침하는 아버지”와 “나는 내 아들의 아버지/빠른 일상 속에 잊혀져갈 기억”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배치된 “무심히 흘러가는 강물”, 즉 건너가는 것이 아니라 가로질러 흐르기만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는 차분한 배치가 잔인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개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성필 시인은 복잡하거나 거대한 서사에 쉽게 얽혀들지 않으면서, 자조적으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시던/착한 아버지가 죽었다”(「굿판」)고 그래서 자신도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을 담담하게 드러내면서 작은 세태(제 문패를 걸기 위해 옛집을 허무는)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것은 산 ‘동백꽃’이 아니라 웨딩홀 바닥에 그럴 듯 뿌려지던 ‘종이꽃’(「4월 하순에」)에 더 감응하는 것으로도 드러난다. 이런 자세는 시인이 ‘남성 화자’를 차용하고 있다는 점과 맞물려 딱딱하고 마른 세계를, 그러나 논리로 대상화하는 편리한 방법이 아니라 시적 감응感應에 따라 펼쳐 보이겠다는 자기 선언으로 읽힌다. 일정 부분 형상화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드물게 자기 목소리를 가진 개성적 시인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장종권, 백인덕(글)



<당선 소감>


먼 길을 돌아왔다. 언제부터 시가 내게 다가왔는지 선명치 않지만 그때부터 아직까지 시를 떠나본 적이 없다. 숙취의 아침에도 텅 빈 거리에서도, 산길 떠나는 정거장 인파 속에서도, 그 산길에서도. 저무는 저녁 창가에서 노을처럼 눈보라치는 백두대간 능선에 서서 그리움을 그리워하면서 다시 불빛 낮은 주점에 앉아 밤비를 부르며 첫 고백처럼 시는 늘 나였다.
오랜 망설임에 용기를 주시고 돌멩이를 수정처럼 보아 주신 리토피아에 감사드린다. 나를 기억하는, 잊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상처와 상실까지도 나였음으로, 내 시였음으로./이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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