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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신현림/데이트 폭력의 골짜기를 따라 외1편


데이트 폭력의 골짜리를 따라 외1편


신현림



헤어져요 헤어져
살기도 힘들지만, 이별도 힘들군요
이쯤에서 멈춰요 멈춰
여자가 죽기 전에 멈춰요

 
남자는 껍질을 단단히 굽고
평생 남 탓하며 사는 광기를 못다스려
경계성 인격장애의 능선은 무너지고
아무도 돕기 힘든
데이트 폭력의 골짜기에서
여자들은 소리도 못지르고
여기저기 절망 수갑들만 쏟아지네


사랑은 자기사랑 너머 비단길을 만드는데
사랑이라 착각하는 비틀린 사랑은 지뢰밭을 키우네


전화선을 타고 흐르는 욕설이 뜨겁고
피투성이 비둘기가 푸른 하늘을 나는 동안
남 탓만 하는 남자의 분노가
여자 꿈 지평선을 빨간 피냄새로 물들이네
인연사막에 비는 내리지 않고
스위치를 켜도 선풍기는 돌아가지 않고
수도꼭지를 틀어도 물은 나오지 않고


여자를 죽인 뉴스를 보고 듣기만 해도
달은 달로 떨어져
유리조각으로 떨어져
깊게 깊게 찢어가네요
살해,
살해,
살에 박혀서





너와 나의 저울추



부자는 더 큰 부자가 되고,
남자와 여자의 거리가 좁히지 않고
가난은 대물림 되고 벼랑이 달려오는 시간에


여자는 벼랑인 줄 모르고 걸레질을 하고
남자는 벼랑을 모른 채 티브만 본다
여자는 걸레질을 하면서 여성성을 잃어간다
여성성을 잃어도 더 이상 남자만 바라봐서는 안된다


여자는 사과박스 속 사과알이 아니다
여자를 더는 박스 속에 가둘 수는 없다
펄럭이는 신문지 같은 하늘에서
사과는 쏟아지고 사과가 날은다
오래 잃어버린 꿈 같이 날은다


혼자만 가질수록 외롭고, 나눌수록 몸은 따스하다
눈물이 사과인지, 사과가 눈물인지 모를 때
하늘이 바다인지, 바다가  하늘인지 모를 때
여자가 남자이고, 남자가 여자임을


전 생애가 이백년, 이천년,
그 너머까지 사는 힘이 되 보려고
뛰고 뛴다


포기할 수 없이 단단한 꿈 위로
여자남자의 저울추가 똑같은 시간에
나무가 춤추고 사과알이  날아오른다





*신현림 1990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반지하 앨리스』 외. 에세이집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신현림의 미술관에서 읽은 시』. 근간 『신현림의 매혹적인 시와 사진 이야기』. 힐링에세이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 『서른, 나에게로 돌아간다』, 『다시 사랑하고 싶은 날』등, 세계시 모음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 시가 나를 안아준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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