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_btn
회원가입 하시면 가족이 됩니다 로그인 회원가입 닫기
제18권(69호-72호)
2019.06.26 10:00

71호/신작시/전주호/포클레인 외1편

조회 수 46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71호/신작시/전주호/포클레인 외1편


포클레인 외1편


전주호



말술도, 투전도 한 방에 끊었다는
남자.


빚보증으로 전답과 선산까지 탕진한
남자의 아버지는
책보 대신
일곱살 아들에게 지게를 선물했지.


꽁꽁 얼어붙은 농한기에도
쉬는 법이 없었다.
빈손으로 나가
달구지에 일감 그득 싣고 왔다.


고뿔도 비집고 들어설 수 없던 남자.
저녁상을 물린 한가한 날이면
미지근한 물에 두 발을 불려
두툼한 굳은살 칼로 잘라냈다.


두 장의 뒤꿈치가 떨어져 나올 때마다
기울어진 삶이 위태로워보였지만,
단 한 순간도
아버지란 이름을 내려놓은 적 없다.


잰 걸음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8남매의 길이 되어준
황소 같은 남자


서울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보았다.
공사를 중단한 채
비탈길에 서 있는 남자


어느 날 우뚝 서 버린
포클레인,
난, 그 남자를 본 적이 있다.





매듭 묶는 여자



꽃봉오리도 다 펴보지 못한 20대에,
아이 둘을 두고 남자는 딴 살림을 차렸다.
한 번 날아간 새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동네 사람들 입방아를 찧어대도
여자는,
두 자식을 품고 집을 지켰다.


-3000개의 실을 묶어야 겨우 20000원이지만
 놀면 뭐 하나유?
 자동차 부품에 들어가는 거라는디
 저야 어디다 써먹는지 통 알 수 없쥬
 요즘 이런 일감이라도 있는 게 어디래유?
 아즘니랑 함께 묶으니께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고….


70을 갓 넘긴 여자가
94세 노모 곁에 앉아 지난날을 이야기한다.
남의 이야기를 하듯 무심하게 웃다가
이따금 긴 한숨을 들이킨다.


노모는 안쓰런 표정을 애써 지우며
여자의 일감을 덜어내 함께 실을 묶는다.
그 정도는 별 일 아니라는 듯
갈색 실 두 가닥을 묶어 크게 흔들며
매듭 짓는 방법을 내게 설명하신다.
눈자위가 촉촉해진
여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여자는 젊어서 맺지 못한 인연을 묶고 있다.
3000개의 실을 묶어야 20000원
아이 둘을 낳고 떠난 남자를 잊지 못한
여자,
안산 상록아파트에 살고 있다.
잇지 못한 사랑을 묶어내고 있다.





*전주호 1999년 《심상》으로 등단. 2002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슬픔과 눈 맞추다』 대전일보문학상 수상.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77호부터는 전자책으로 만들어 올립니다. 백탄 2004.04.05 78100
3541 제19권(73호-76호) 74호/신작시/조성국/무 넣고 고등어찌개를 맛있게 끓이는 방법 외 1편 부관리자 2020.01.06 224
3540 제19권(73호-76호) 74호/신작시/허형만/은총 외 1편 부관리자 2020.01.06 196
3539 제19권(73호-76호) 74호/소시집/박태건/물어봐줘서 외 4편 부관리자 2020.01.06 215
3538 제19권(73호-76호) 74호/소시집/강우식/야간비행·3 외 4편 부관리자 2020.01.06 220
3537 제19권(73호-76호) 74호/집중조명/최은묵/작품론/불안한 떨림을 넘어 새로운 발아까지─박현주의 시세계 부관리자 2020.01.06 230
3536 제19권(73호-76호) 74호/집중조명/박현주/신작시/우리라고 말해서 외 4편 부관리자 2020.01.06 245
3535 제19권(73호-76호) 74호/집중조명/설하한/작품론/죽음으로 생명을―『아흔아홉 개의 빛을 가진』을 중심으로 부관리자 2020.01.06 242
3534 제19권(73호-76호) 74호/집중조명/이병일/신작시/홍어의 시 외 4편 부관리자 2020.01.06 253
3533 제19권(73호-76호) 74호/특집/인천과 근대문학 100년/류수연/소설, 그리고 인천의 얼굴 부관리자 2020.01.06 221
3532 제19권(73호-76호) 74호/특집/인천과 근대문학 100년/신연수/인천 근대문학 100년─시詩 부관리자 2020.01.06 300
3531 제19권(73호-76호) 74호/권두칼럼/장종권/시대의 아픔을 생명의 노래로 부관리자 2020.01.05 206
3530 제19권(73호-76호) 73호/고전읽기/권순긍/“한 푼어치도 안 되는, 이 한심한 양반들아!”, 『양반전』 부관리자 2019.07.14 1245
3529 제19권(73호-76호) 73호/책·크리틱/안성덕/이야기의 힘 부관리자 2019.07.14 1047
3528 제19권(73호-76호) 73호/책·크리틱/김유석/안과 밖의 경계, 사립문을 나서는 시인에게 부침 부관리자 2019.07.14 1362
3527 제19권(73호-76호) 73호/책·크리틱/송민우/열심히는 살고 싶었어요 부관리자 2019.07.14 1242
3526 제19권(73호-76호) 73호/책·크리틱/백인덕/위엄과 잔인 사이, 시의 전율 부관리자 2019.07.14 709
3525 제19권(73호-76호) 73호/신작단편/엄광용/나무와 결혼한 남자 부관리자 2019.07.14 703
3524 제19권(73호-76호) 73호/장편연재5/김현숙/흐린 강 저편5/지평선 부관리자 2019.07.14 889
3523 제19권(73호-76호) 73호/미니서사/김혜정/녹나무 부관리자 2019.07.02 752
3522 제19권(73호-76호) 73호/미니서사/박금산/매일 매일 '퍽 큐!' 하기 부관리자 2019.07.02 931
Board Pagination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 185 Next
/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