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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권(69호-72호)
2019.06.26 10:06

71호/신작시/김유자/밤의 육체 외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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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신작시/김유자/밤의 육체 외1편


밤의 육체 외1편


김유자



손을 넣고 휘휘 젓다가
발을 꺼낸다
두 발은 두리번거리다,
발목 위가 사라진 걸 안다
왼발은 숲으로 오른발은 바다로


귀를 꺼낸다 이것도 한 쌍이구나
열려있어서 지킬 것이 없구나
두 귀가 다가가 옆에 서자,
나비가 된다
날갯짓 할 때마다 고요에 파문이 일고


입을 꺼내자 윗입술은 떠오르고
아랫입술은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구름인가 은하수인가 머리를 갸웃거리며
윗입술은 우주를 떠가고
심해에 누워 가만히 지느러미를 흔드는 아랫입술 사이로
유성우가 흘러내린다
고여 있던 말들이 심해어의 눈처럼 흐려진다


무엇을 꺼내도 나로부터 달아나는 밤


빛은 흩어져있는 뼈와 심장과 귀들을 끌어당긴다
잠 깨면 바다와 사막과 행성 냄새가 난다
눈 발 가슴 한 쌍은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손목과 손가락, 종아리와 발목, 입술과 혀는 붙어서
서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  


발바닥에 풀물이 든 채 모래가 묻은 채 걷다가 문득
발 둘은 돌아본다  





정류장 옆 모과나무



모과나무는 연기처럼 자란다
정류장 표지판은 멈추지 못하는 시간처럼
언제나 서 있다
버스가 와서 나는 떠나고


다음 정류장에 표지판은 있고 모과나무는 없다
분홍꽃잎이 떨어지면 문득
나뭇잎에 숨어 푸른 모과는 자라고 문득
노랗게 익기도 전 어느날 밤 모과는
한꺼번에 사라지고 눈이 내린다


눈 덮인 텐트 앞의 모닥불은 타오르고
연기는 자꾸 내가 앉은 곳으로 방향을 틀고
모과를 넣고 레몬을 넣고 계피조각을 넣고
와인을 끓인다
뜨겁게 흘러내리는 밤의 목이 부드러워진다,
녹는다, 모과나무 아래


개미들은 끝없이 나무에 오르고
표지판은 간지럽다
나무가 까맣게 지워진 밤에
희미한 잎들이 돋아 불면에 시달리는 표지판에서 문득
빛이 빗물이 천둥이 흘러내리는 밤에


번개가 나의 얼굴을 하얗게 켜든다
한꺼번에 내가 사라진다






*김유자 200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고백하는 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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