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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 당선작]


김민율


1978년 강원 강릉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학원 강사




2015 한경 청년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자 김민율 씨(37·본명 김정순)의 고향은 강원 강릉시 사천면이다. 강릉 하면 떠오르는 바다 대신 산이 더 가까운 마을이다. 14녀 중 둘째인 김씨는 넉넉지 않은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입학을 2년 미뤘다. 언니와 함께 서울에서 살던 김씨에겐 문예지를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던 중 김씨가 문학을 좋아한다는 것을 안 친구가 문예창작과에서 공부할 것을 권했다. 그는 잠시 잊고 있던 꿈을 되살려 1999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입학 실기시험의 주제는 우물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별다른 놀잇거리가 없던 그에게 마을 우물은 특별한 공간이었다. 우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두레박으로 퍼내는 것이 그만의 놀이였기에 쉽게 글을 쓸 수 있었다.

대학 시절 그는 내성적이고 조용했다. 친구들과 대학 생활의 낭만을 만끽하는 대신 문학의 바다에 깊게 빠져들었다. 빨리 신춘문예에 당선돼 시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시를 많이 읽고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졸업 후 학원에서 독서와 논술을 가르치던 그는 20대 중반 무렵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요양을 하게 됐고 시는 잠시 그의 곁을 떠났다.

건강을 회복해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는 2010년 다시 펜을 들었다. 나만을 위한 시를 쓰지 말고 시로 세상과 소통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내 시를 발표하고 누군가 내 시를 읽어주는 삶을 산다면 좋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시를 썼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10~11월 다섯 편의 시를 토해내듯 썼다. 조심스런 성격이라 다른 신춘문예엔 투고하지 않고 한경 청년신춘문예를 선택했다. 그는 좋은 작품이라면 심사위원들께서 뽑아주실 것이란 생각에 투고했다고 말했다.

당선작 비커의 샤머니즘은 과학 실험기구인 비커와 이제는 자취를 감춰가는 우물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대학 입시 때 그를 문학청년의 길로 이끈 우물이 신춘문예 당선작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을 준 셈이다. 심사위원(김기택, 권혁웅, 이원 시인)들은 당선작 비커의 샤머니즘은 우물과 비커의 이종교배 상상력이 신선한 작품이라며 이 점이 새로운 서정성을 확보했다고 평했다.

중학교 과학 수업 때 증발 실험을 하잖아요. 비커에 물이 끓는 순간 보글보글 올라오는 기포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았어요. 비커는 과학적인 사물인데 어린 시절 놀이터였던 우물의 기억과 겹쳤습니다. 그 이미지가 화학 반응을 일으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학원 강사로 일하는 그는 오후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을 가르친다. 작가라면 불면의 밤을 보내며 글을 쓸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김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시를 쓰는 소박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는 다행히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적성에 맞다앞으로도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시를 쓸 것이라고 했다. 또래보다 등단이 다소 늦긴 했지만 그는 여유롭다. 등단을 준비하던 시간만큼 많은 경험을 쌓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온 시간만큼 내면에 축적한 이미지를 꺼내기 때문에 그것이 시인으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식물은 생장점이 썩지 않는 한 크고 깊고 넓게 자랄 수 있잖아요. 저도 생장점이 썩지 않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시를 세상에 내보낼 때마다 주름이 늘겠지만, 그 주름은 제 몸의 아름다운 나이테가 되겠지요.”




당선작

비커의 샤머니즘




굴러다니는 돌 하나 주워 주머니에 넣고 숭배한다

소원을 돌에게 말하고 우물에 던진다

대낮의 우물은 하늘을 번제하는 제단

저녁의 우물은 마력이 기거하는 당집

아이를 바쳤다는 소문에 이끼가 끼어 있다

물의 나이테를 열고 바깥을 엿듣는 누가 있다

두레박을 내려 몇 번이나 얼굴을 퍼올려도

제단에 바쳐진 아이가 사라지지 않는다

비커는 어린 시절의 설화

눈금에 다다를 수 없는 기억이 웅크리고 있다

수년 동안 던진 크고 작은 돌들이

내 뒤통수와 등짝을 닮은 기억을 보글거리며……

눈금 바깥을 초월하고 있다

물이 기포로 기포가 증기로 변하는 것은

아이의 주먹을 펼치는 주술일까

모든 손마디를 다 펼치면 아무것이란 게 우글거리는

이미 기억을 개종한 내가

한 손에 다른 비커를 움켜쥐고 있다





당선 통보를 받고가장 좋은 때, 가장 좋은 선물 받았다



시를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열 손가락으로 나를 세기에 충분했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농부인 아버지는 십장생 그림을 잘 그리셨다. 그림 귀퉁이에 적어 넣은 글귀의 출처를 알게 된 것은 내 가슴이 한 귀퉁이였음을 눈치챌 무렵이었다.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와 노천명의 시 사슴의 구절은 꿈을 동경하듯 목을 젖혀야 읽을 수 있는 높이에 걸려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고개를 젖혀놓는 목침에 올라서서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시구와 눈을 맞추곤 했다. 이것이 나와 시의 첫 만남이었던 것 같다.

시와 오랫동안 헤어져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무렵, 주머니 속에서 웅크린 손을 꺼냈다. 잡을 수 없는 것까지 잡으려고 굵게 자라 있는 손가락이 보였다. 이 무렵 스승 오규원 선생님을 뵈었다. 내 글을 읽으시고 고개를 젖혀 내 눈을 보시며 말씀해 주셨다. “세계를 보는 눈이 있다는 한마디가 나로 하여금 나를 믿게 했고 비로소 웅크린 손이 아닌 주먹을 쥘 수 있는 손으로 시인의 첫걸음을 가다듬을 수 있게 했다.

홀로 걷는 밤길에 불 밝혀 주신 차주일 선생님, 늘 기도해 주시는 김효현 목사님, 무엇보다도 애태움이란 기도를 오랫동안 놓지 않으신 부모님, 첫걸음을 옮겨 심을 영토를 내어주신 심사위원 김기택, 이원, 권혁웅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얻게 된 것 같다. 첫걸음을 잘 기르겠다는 약속을 하며 고개를 젖혀 먼 곳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심사평 우물과 비커 새로운 상상력으로 접목한 이종교배



시 부문 심사를 맡은 김기택(왼쪽부터), 이원, 권혁웅 시인.

한국경제신문만의 특징인 청년 신춘문예라는 타이틀답게 푸르고 뜨거운 청년정신이 깃든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투고작들을 읽으면서 낯설고 도전적인 작품이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청년의 언어에서 보고 싶은 것은 두려움이라는 불가능을 열정이라는 가능으로 바꾸는 마술이기 때문이다. 응모자들은 이 점을 한번 뒤척여보면 좋겠다.

김솔, 김민율, 배지영, 장우석의 작품을 두고 논의했고 최종적으로는 김민율과 배지영으로 좁혀 여러 논의를 거듭했다. 김솔의 바오밥 씨 이야기4편은 일상을 유머러스한 서사 구조로 만들어내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언어의 탄력이 약하다. 시적 긴장을 확보할 수 있는 언어를 고민해 본다면 좋겠다.

장우석의 이태리타월4편은 삶과 현실의 비루함을 과장 없이 풀어내는 면이 돋보였다. 심각한 진술을 언어유희를 통해 극복하는 감각도 있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약해졌다. 후반의 폭발력을 보강하면 좋겠다.

배지영의 크림5편은 상상력이 신선했다. 때로는 과감하고 때로는 간결한 언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개인적 진술에 그치는 아포리즘이 걸렸다. 솔직한 언어와 솔직한 시적 언어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면 보다 좋은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김민율의 비커의 샤머니즘4편은 응모작 전반이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고, 집중하고 있는 세계가 보였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성실한 습작 기간을 거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당선작인 비커의 샤머니즘은 구조가 튼실한 작품이다. 우물과 비커의 이종교배 상상력이 신선했다. 이 점이 새로운 서정성을 확보하게 했다. 우물-비커, -눈금, 기억-개종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정확한 전개가 내용의 설득력을 갖게 했다. 절제된 감정의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보다 자유로운 시적 탐험을 시도해 보아도 좋겠다. 시인으로서 첫 호명을 축하한다.

김기택·권혁웅·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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