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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적 정서에 에너지 넘치는 감성, 류종호 시인

 

앵두꽃

 

 

내 가난한 시골집

굴뚝 그늘에 숨어

밤이면 울어쌓던

순이야

 

봉창문에 기대어

몸살 앓던 네가

서울 어디께로

시집간 지 스무 해

 

달빛 푸른 이 밤

속절 많은 사연으로

꽃피고 있다.

-류종호 시집 <감꽃편지>에서

 

 

류종호

부여 출생. <인천문단>, <문학세계>로 등단. 시집 <감꽃편지>, <더 큰 사랑의 몸 섞임으로> 외. 수필집 <등나무집 우체통>. 장편소설 <안개 속으로 걸어가다>. 인천동부경찰서 근무.

 

앵두꽃의 꽃말은 수줍음이다. 봄에 꽃이 피어 한여름에 빨갛게 열매로 익는다. 앵두 같은 입술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예쁘기 그지없는 사춘기나 그 이전쯤 소녀의 앙증맞은 입술일 것이다. 앵두꽃, 하면 먼저 수줍어 얼굴을 못 드는 어린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내의 사춘기 시절 정서에 가장 영향을 주는 존재는 첫째는 누이겠지만, 그다음이 누이의 친구들이고 같은 마을의 또래 소녀들이다. 아무리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생각이 가고, 눈이 가고, 발길이 가게 되는 존재들이다. 저마다 가슴에 비어있는 구멍이 있어서, 그것을 채우는 것으로 밤을 보내고, 낮을 보내고, 끝내는 사춘기 시절 전부를 모조리 소모시켜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돌아볼수록 아름답다. 세월이 갈수록 그립다. 시간의 무게가 더해갈수록 가끔씩 떠오르는 잊혀진 소녀들에 대한 그리움은 커지게 된다.

 

시인은 앵두꽃을 바라보며 이십여 년 전의 한 소녀를 떠올리고 있다. ‘내 집’이라는 말로 미루어 같은 집에 살았던 소녀인 것으로 보인다. 한 동네에만 살아도 서로간 모르는 일이 없던 시절이니 소녀가 가슴을 태운 사연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시인의 가슴을 가장 많이 태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토속적인 정서에 에너지 넘치는 감성, 자유로운 필치로 당당하게 자신의 세계를 열어가는 시인의 오래된 작품이다./장종권(시인, 리토피아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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