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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듬’과 ‘불꽃’ 사이를 바라 본 한 가지 시선
정재학의 『모음들이 쏟아진다 』와 김현의 『글로리홀 』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시인들은 줄기차게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형식을 빌려 질문을 던진다. 결국 정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에게로 나아가는 노력과 좌절사이를 기록한다. 내면은 시간으로 만들어진 슬픔의 집이다. 무릇 존재하는 것,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인간의 슬픔을 내포한다. 모든 인간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쇠락이 필연적이라면 어떻게 해야 진정한 삶을 구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시적인 것에는 그 분명하지 않은 열쇠가, 열쇠처럼 존재하기도 하는 것이다. 
 수레나 그릇, 집은 텅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수레나 그릇, 집으로서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텅 빔, 즉 ‘무(無)라는 것은 또 하나의 존재 양식이 될 수 있다. 대상을 바라볼 때 이 점을 깨달을 수 있다면 존재의 모습이 분명해 질 것이다. 시인에 따라 시의 언어는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존재들처럼 행동한다. 시적인 언어들은 언제나 '이것, 그리고 이것과 다른 것'을 말하고 동시에 '저것, 그리고 저것 너머의 것'을 말한다. 모든 시적 사유는 고유한 언어 다스리기를 단념하지 않는다. 사유는 부득이 언어들을 사용하면서 끊임없이 언어들을 자신의 국가로 끌어들인다. 언어는 인간이며 그 이상의 어떤 것이다. 모든 언어 현상의 밑바닥에는 어떤 리듬이나 불꽃이 존재한다. 옥타비오 파스가 “시적 작용은 주문, 주술 그리고 다른 마법의 방법들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듯 이상한 주문에 걸려 마법의 세계에 들어 가 보자.  
 
정재학의 『모음들이 쏟아진다』

 정재학의『모음들이 쏟아진다』는 글자로 만든 언어의 음악이다. 세계에 대한 내면적 성찰이 무한으로 증대되어 만들어내는 노여움과 분노, 열정이 현기증이 날 만큼 선명하게 연주된다. 우주라는 리듬이 ‘모임’ , ‘흩어짐’, 그리고 ‘다시 모임’으로 느낀 것은 인간의 직관에서 싹튼 것이다. “불규칙한 월식, / 지옥의 문이라고 해도 이미 늦었다” 정재학,「모노크롬, 레드」를 시작으로 시의 연주가 시작된다. 인간은 극단의 불꽃으로 감정의 극치를 보여주며 낙원에서 빛나는 불꽃이다. 그러나 불꽃은 스스로에게 모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주체는 지나친 결벽증에 의해 삭막한 자신의 시간을 사막으로 만들어 버릴 “지옥의 문”을 연다. 화재는 시인이 앓는 병이다. 불꽃을 짊어진 시인은 운명적으로 자신을 태우기도 한다. “얘야, 꽃을 꺾었구나. 가지고 이리 와보렴. 꽃의 무덤을 만들어줘야지.” 정재학,「죽음은 계속 피어나고」로 연주가 끝난다. 시인은 시집을 통해 삶과 죽음은 하나의 우주 전체가 사색와 더불어 무(無)로 돌아가는 우주적인 리듬이라고 정의한다. 리듬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표현하는 우리 자신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듯하다. 
 정재학에게 시는 현실이라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리듬으로 만든 드라마이다. 이 변화무쌍한 삶의 변주들이 곧 시이고 인생이다. 자신과 타자에게서 끊임없이 어긋나면서 살아가는 존재의 숙명적인 슬픔을 音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주체는 절망과 체념을 극단에 도달한 음악적 리듬으로 내면화 한다. 모든 리듬은 삶의 태도이고, 의미이고 독특한 하나의 이미지로 재탄생된다.

버스 안에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차창 밖의 사람들
유적처럼 정지해 있고
시계의 초침이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버스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안개 가득한 사방에서
갈매기 소리만 들렸다
진(鎭) 너머에는
풍금과 해금이 만든 바다가 있다
바람이 불고 비단현 두 줄이 떨리면
공명상자에서 바다가 쏟아졌다

풍광,
연둣빛 등대
바다의 돌은 달을 종교로 삼는다
독한 안개 속
내 눈동자의 남로(南路)에서
어린 나는 하루 종일
들어오는 모든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묵은 내 눈의 무게를 달래며 포좌에 누웠다
등대 위, 그물로 짜여진 사람이 손을 흔들었다
이봐, 달은 이제 그만 마시게             
충분히 축축해졌으니

포가 쏘아지자
나는 바닷물로 흩어져 바닥 전체에 흐르고 있었다
                                         - 「내 눈은 지독한 안개를 앓고 있다」전문

 버스의 속도를 삶의 속도로 주체의 리듬으로 확장해 나간다. 버스의 안과 밖에는 안개가 잔뜩 끼어 있다. 주체의 눈이 안개를 앓고 있으니 그 눈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는 안개로 둘러싸인 세계이다. 그 세계에는 “풍금과 해금”이 만든 “바다”가 있다. 바람을 빨아들여 만들어낸 “풍금과 해금”엔 일정한 음자리가 없이 다만 줄을 잡는 손의 위치와 줄을 당기는 강약에 따라 자신의 눈으로 들어오는 세계를 맞이하고 있다. “독한 안개 속”인 세상에서 균열적인 세상의 고통을 바라다보는 마음은 착잡하다. 고통의 무게로 무거운 가슴을 먹먹하게 확인한다. 자신 밖의 저 너머로, 거대한 세계로 가는 지독한 몽상을 형상화한다. 자신을 추스르기도 전에 흩어져 “바닥 전체”로 흐르고 있어 안개에 둘러싸인 세계에 선 것처럼 혼란스럽다. 그러나 바다 앞에 선 어린 주체의 마음에는 안개처럼 무언가가 쉴 새 없이 샘솟고 있다. “등대 위”에서 “손을 흔드는”는 가혹한 자각이 존재하므로 주체는 그 순간들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만들고 있다. 각각의 리듬은 세계에 대한 구체적 비전이다. 정재학은 「내 눈은 지독한 안개를 앓고 있다」는 시를 통하여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우리 앞에 나타내준다. 절망을 알고 있는 주체의 진정한 사랑이 피어나 바닥으로 흐르는 시간으로 수렴된다. 
 시집『모음들이 쏟아진다』는 부조리한 현실을 환기하는 환상의 풍경 속에서 길을 잃어버린 인간을 노래한다. 삶의 허기를 담은 말들은 저마다의 풍경을 쏟아내고 있다. 그 풍경들은 죽음과 슬픔과 기억과 추억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실존의 한 복판에서 그 순간을 생성하고 흘러넘치면서 끊임없이 삶을 사랑하고 긍정하고 있다. 

김현의 『글로리홀 』

 인간이 품은 사랑은 어떤 것일까, 어떤 시대에서 인간이 담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안에 사랑을 품은 것이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김현의 『글로리홀 』을 펼친다. 현실 세계의 사물은 모두 대립되는 것을 가지고 생겨난다. 만약 당신이 아름다움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는 동시에 추함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적인 것이 있으면 반드시 비인간적인 것이 있다. 인간적인 것은 비인간적인 것을 창조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 인간적인 것일까? 김현의 『글로리홀 』은 새로운 양상의 性이 만들어 낸 차가운 불꽃이라고 표현해도 좋을까? 매혹의 눈으로 새로운 형식의 사랑을 갈망한다. 불꽃은 내밀하면서도 또한 보편적인 불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이글거리며 살고 있다. 실체의 내부 깊은 곳에서 사랑처럼 자신을 태워 제공한다. 차가운 물체들의 마찰에 의해 한순간 탄생되는 불꽃, 언제나 시인들은 시의 언어를 빌어 그 불꽃에 대해 생각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김현의 마지막 시편은 「지구」이다.「지구」의 주석에는 “행성을 둘러싼 얇고 투명한 자기가 고독에 가까워지면서부터 새까맣게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라는 문장이 있다. 그 구멍의 징표를 통해 어떤 내밀한 꿈이 건너편에 존재할 것을 암시한다. “잿빛 거미줄이 걷히자 트렌실흰나비배추벌레 떼가 몰려와 소등된 행성을 야금야금 갉아 먹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으로 끝이 난다. 
 “트렌실흰나비배추벌레”의 주석에는 이 유충이 시든 행성을 갉아 먹고 입에서 트렌실을 뽑아내 몸을 묶은 뒤 번데기가 된다는 내용이다. 번데기는 변화에 대한 욕망을 암시한다. 그럴 때의 시적 몽상은 진정하고 매력적이고 극적이다. 
 
 밤이 떠돌아 왔습니다. 인간은 헐벗은 몸 어둡고
웅크린 욕조 속으로 들어갑니다. 처음 물이 닿은 인
간의 발가락 끝부터 쑥빛 비늘이 쑥쑥 돋습니다. 인
간은 오랜만에 미끈거리는 감촉에 젖습니다.

 인간은 두 다리보다 지느러미에 맞는 생물이야.

 인간은 되뇝니다. 침대에 걸터앉아서 인간은 목을
늘립니다. 늘어진 목과 머리는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는 밥상을 두리번거리며 불어터진 먼지를 쓸고 욕
실까지 흘러갑니다. 흘러온 얼굴이 인간의 지느러미
를 따라 움직입니다. 인간은 아가미로 숨 쉬고 숨죽
입니다.

 인간의 호흡을 잃었구나, 인간.

 인간의 표정이 백랍처럼 빛납니다. 인간의 목덜미
가 납빛으로 찢어집니다. 점점 희미해지는 어린 인간
이 찢어지는 인간 곁으로 와 앉습니다. 어린 인간은
자라나는 혀를 불규칙적으로 잘라내며 모처럼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발명하려고 합니다.

 인간은 인간의 말을 하지 않아도 돼! 
 
 늘어난 인간은 꿈틀거리고, 사라지는 인간의 혀들
은 더듬거리고, 변신한 인간은 한결 자연스러운 움직
임을 갖고, 멈춰 있습니다. 욕조의 수
면이 밤의 수면까지 밀려갑니다.

 돌아온 밤 고공은 기중기처럼 깊습니다. 인간들은
각자의 생활을 발견합니다. 인간들은 인간적으로 따
로 놉니다. 인간이 곁에 없는 인간의 말은 뜻 없습니
다. 인간들은 조용합니다. 침묵합니다. 그림자 없이
농성을 시작한 한 유령이 집으로 들어와 촛불의 노동
을 밝힙니다. 인간 인간 인간은 마침 표 사라집니다.

                                        -「비인간적인」

 시인은 현실세계에서 한 발 물러서 인간의 심연을 탐색하고 그 안의 풍경들을 보여준다. 고통스러운 삶에 대한 필사적인 탐색을 통해 인간을 창조해나간다. 이 시의 근원에는 인간적인 고통이 존재하고 있다. 김현의 시를 관통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려는 몸부림으로부터 시작되는 듯하다.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되고 싶다는 불구의 구호로 이 시는 메아리 친다. “인간은 두 다리보다 지느러미에 맞는 생물”이다. 물고기가 흐르듯이 세계를 유영하고 있다. “인간의 호흡을 잃었”기 때문에 “아가미로 숨 쉬고 숨 죽이”는 인간의 표정은 마치 사이보그와 같이 “백랍처럼 빛”이 난다. 이렇게 “변신한 것은 한결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갖는다. 고독이나 사회성의 결여로 인해, 인간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이 시를 비롯하여 시집 곳곳에서 드러난다. 고독은 인간의 비극적 결단의 증거이며, 인간을 삼켜버린다. 그리하여 “인간은 조용”하고 “침묵”한다. 그리고 마침내 사라진다. 김현은 「비인간적인」인 시를 통하여 인간적인 인간을 우리 앞에 데려다 놓는다. 
 시집 전체에서 복제인간, 혹은 사이보그의 자리에서 더욱 진지하게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을 펼쳐 놓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되묻는다. 인간인지, 인간이 아닌지……그리하여 인간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하는 빌미를 제공한다. 각자 안에 품은 ‘인간’에 대해 심연의 깊이에서 사유를 끌어낸다. 또 무엇이라 확언할 수 없는 공간을 만들어(글로리홀) 우리에게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고통스러운 존재를 성찰하게 한다. 김현은 존재의 물음에 대한 또 다른 목소리를 발명해 새로운 시의 지형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면 이 시집도 없었을 것이다.


*최서진 : 2004년 심상 등단. 한양대 박사과정 졸업. 현재 『발견』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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