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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권(65호-68호)
2018.12.19 19:01

68호/신작시/황규관/어린 은행나무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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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시


황규관


어린 은행나무 외 1편
-권정생 선생 살던 집 마당에서


조각배 같은 집 뒤편에는 말라붙은 물길이 있습니다 범람하는 물을 막자고 흙벽에 양철을 둘렀지만 폭우가 쏟아지면 선생의 몸을 닮은 조각배는 수만 마리의 물살이 될 것만 같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멀리 떨어진 채 개울도 차마 건너지 못한 곳집처럼 때로는 새벽하늘을 먼저 깨우는 교회 종소리처럼 혼자 서 있습니다 좁은 방에는 아이들이 삐뚤빼뚤 써놓고 간 편지를 사진 속에서 말없이 읽고 계십니다 하느님은 하늘에 있지 않고 장롱으로 썼다는 고무 다라이 위에 있다는 듯 빗물 한 대접이 『에티카』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흰 왜가리 한 마리가 점점 단단해지는 벼들의 고독 위를 저만치 날아 논 귀퉁이에 다시 앉습니다 가신 지 아홉 해가 지났지만 선생의 슬픔은 아직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한 듯했습니다 평생을 아팠으니 죽어서도 이곳의 삶에 부대끼고 계시겠지요 차라리 대홍수가 난다면 방주로 쓰일 낡고 작은집은 그래서 아직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당가 은행나무 아래서는 여기저기 어린 은행나무들이 자라고 있더군요 (희망이라니요 그저 생동입니다) 맑은 하늘이 보이지 않는 그늘 속에서도 어린 은행나무들은 두어 장의 잎을 매단 채 다음 잎을 피우느라 열중입니다

강아지똥 위에서 뒹구는 
개구쟁이들처럼 말입니다



죽음의 공간


죽음은 언제나 바깥에 있다
그것을 안에 들여놓고 싶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한 심사이기에
나는 오늘 가야 할 조문을 내일로 미뤘다
(내일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내일을 모른다는 일은
언제나 배회의 구조를 진화시킨다)
시대가 죽인 그 많은 죽음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해야 하는 일은
방향을 못 찾은 벌레의 더듬이질 같아서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총파업도 가십이고
무엇보다 죽음은 나에게 당도하지 않았다
너무도 많은 죽음들이 겹겹이지만
죽음을 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내일 다른 약속이 생길 것 같다
아직 죽음과 손을 맞잡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남아서일까 그러나 죽음이
필요한 건 살아 있는 우리들이다
아니다, 내일은 꼭 조문을 가자
내 생활에 죽음을 들여놓기 위해서
생활을 죽음과 수정시키기 위해서

죽음은 언제나 안쪽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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