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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권(73호-76호)
2019.07.02 10:07

73호/미니서사/박금산/매일 매일 '퍽 큐!'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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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미니서사/박금산/매일 매일 '퍽 큐!' 하기


매일 매일 '퍽 큐!' 하기


박금산



  그는 새로운 나라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다. 사람들이 모두 거품 장벽을 가지고 사는 나라였다. 거품은 스치며 부딪치기만 해도 터질 만큼 얇았다. 그는 새 집을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가계약을 맺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앞마당과 뒷마당에 잔디가 깔려 있었다. 그는 감동해서 왜 부동산 중개인이 잔디밭 얘기를 안 했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곧 이해가 되었다. 그 마을은 모두가 마당에 잔디밭을 가지고 있으므로 집에 잔디밭이 있다고 설명한다는 것은 사람을 소개하면서 그 사람한테 얼굴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센스에서 벗어나는 일이었다.
  이사를 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그는 이웃집 남자와 우편함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 이웃집 남자가 말했다.
“반갑습니다. 당신은 정말로 안전하게 운전을 합니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운전하는 것을 언제 보셨습니까?”
이웃집 남자가 말했다.
“늘 봅니다. 언제나 천천히 운전하잖아요. 당신 아내도 운전을 참 안전하게 합니다. 외출을 하더군요.”
  그는 주차장을 바라보았다. 주차장은 비어 있었다. 아내는 차를 타고 나갔다. 이웃집 남자가 첫인사로 운전 얘기를 꺼낼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그 입으로 아내의 운전과 외출이라는 말을 꺼내자 기분이 나빴다. 아내는 전업주부였다. 이웃집 남자는 그가 출근하기를 기다렸다가 퇴근해서 돌아올 때까지 마음 놓고 아내를 관찰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인사고 나발이고 집어치우고 당신은 당신 일이나 보러 꺼지세요.’ 라고 빈정대고 싶었다. 하지만 영어가 짧았고, 짧은 영어 실력 때문에 더더욱 빈정대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으므로 한 마디도 본마음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웃집 남자가 대화를 주도했다.
“저는 연방 정부 이민국에서 경찰로 근무하다가 은퇴했습니다. 이민국에 나갈 때는 일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직장에 나갈 때가 좋았죠. 당신 가족들은 모두 서류가 있죠?”
“무슨 서류 말입니까?”
“이민 서류.”
“당연하죠. 있습니다.”
“안심입니다. 불법이 어디에나 있으니까, 혹시나 하고 물은 겁니다. 앞으로 저와 잘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는 집에 비디오카메라를 많이 설치해 놓았습니다. 사고가 생기면 언제든 얘기하세요. 공짜로 제공하겠습니다.”
  이웃집 남자는 말을 끝낸 후 자기 집 처마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의 눈에 비디오카메라가 들어왔다. 이웃집 남자는 그것을 이용해서 그의 차가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집에 방범용 녹화 장비를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한편으로 안심이 되었다. 그는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것만 빼면 부족할 것이 없는 마을이었다. 그런데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돈이 없이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처럼 위험했다. 가족이 아무도 없고 그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였다. 우편 배달원이 트럭으로 스케이트보드를 밟아서 발판이 박살이 났다. 운전자가 스케이트보드를 못 봐서 생긴 일이었다. 그는 영어가 짧아서 어떻게 사고를 수습하면 좋을지 망설였다. 배달원이 말했다.
“왜 스케이트보드를 길에 내려놨어요?”
그가 말했다.
“왜 이게 길에 내려와 있는지 나도 모릅니다.”
  배달원이 말했다.
“여기는 도로잖아요. 왜 물건을 길에 내놔 가지고 일을 만들어요?”
  배달원의 태도는 그에게 굉장히 신기했다.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해야 할 것 같은데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는 영어가 짧아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대신 전화기를 꺼내어 스케이트보드가 찢어진 부분과 그것을 그렇게 만든 배달 트럭의 번호판이 같은 사진에 담기도록 사진을 찍었다. 법대로 하자는 뜻의 보디랭귀지였다.
  구세군처럼 이웃집 남자가 등장했다. 그는 영어 대변인을 만난 것 같아 반갑게 맞이했다. 그가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내 스케이트보드 좀 보세요.”
그의 말을 듣고 이웃집 남자가 대답하기 전에, 우편 배달원이 이웃집 남자에게 말했다.
“도로에 스케이트보드를 내 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차가 다니는 길인데.”
  우편 배달원은 이 말에 덧붙여 장황하게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이빨 사이로 발음을 뭉개어서 점점 더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는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말을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믿을 것은 이웃집 남자밖에 없었다. 이웃집 남자가 나직한 톤으로 입을 열었다.
“이봐, 여기는 도로야.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운동장이 아니야. 알아? 네 잘못이야. 왜 스케이트보드를 내 놔서 이래?”
그는 황당했다. 가재는 게 편일 게 분명한데 우편 배달원이 가재이고 이웃집 남자가 게였다. 새로 이사를 온 그는 말을 못 알아듣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는 가재도 아니고 게도 아니었다.
  정적이 오고 갔다. 배달원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사고 경위를 이야기한 후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혀를 쩝쩝거렸다. 그는 조사팀원이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했다. 배달원에게는 일당이 통째로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배달원은 배달할 물건이 산더미 같은데 스케이트보드 때문에 잡혀 있으니 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어서 미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웃집 남자가 배달원에게 말했다.
“증인 필요하면 저를 부르세요. 제 이름과 전화번호 적어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배달원은 이웃집 남자로부터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아 적었다.
  이웃집 남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저 게처럼 엉기적거리며 걷는 자식을 몽둥이로 한 대 갈겨버리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했다. 답이 나왔다. ‘총을 맞을 수도 있겠지.’ 그는 총을 연상한 이후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면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집의 아늑함에 빠져서 방심하고 있던 신변의 안전을 생각했다. ‘여기는 총의 나라이다. 총 맞을 짓은 하지 말자.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은 나에게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배달원을 조심해야지. 이 사람은 매일 내 집에 오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이웃집 남자가 게처럼 가재 편이 된 거야. 본능적으로 자기가 붙어야 할 편이 어디인지를 아는 거야. 배달원은 누구보다 주소를 더 잘 외우는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 지금 이 순간 내 이름과 얼굴과 주소를 외우게 됐어. 앞으로 내 주소와 이름을 가지고 인터넷으로 온갖 정보를 검색할 수도 있어. 이성을 잃으면 차를 몰고 와서 창문을 향해 총을 쏠 수도 있어.’ 그는 문득 고향 하늘이 보고 싶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까지는 최대한 안전하게 몸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느 영화에서 보고 외운 문장을 패러디해서 말했다.
“기사님! 불편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이 일은 누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운이 나빴던 일로 보입니다. 스케이트보드는 제가 알아서 고치겠습니다. 없던 일로 하시죠. 앞으로 우편물 잘 부탁드립니다. 남은 하루 행복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영어 공부를 할 때에 외워두었던 문장이라 그런대로 말이 리듬을 타고 나왔다. 그렇지만 여러 부분에서 더듬거렸다. 배달원은 한순간에 안색을 바꾸었다. 그리고 ‘앞으로 잘 지내자.’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는 스케이트보드가 깨졌으니 새것을 사거나 고쳐서 타려면 생돈을 들여야 하지만, ‘나는 돈 따위에 구속받지 않는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었으니 앞으로 우편물을 편하게 받아볼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배달원은 마지막 순간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이후 트럭을 몰고 떠났다. 그는 배달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 뒤로 배달원과 자주 눈인사를 나눴다. 그는 ‘돈’으로 ‘안전’을 ‘구입’했다고 생각했다. 그가 짐작했던 것처럼 배달원은 매일 그의 집으로 와서 우편함에 물건을 넣어주고 떠났다. 배달원이 가재라면 그는 이웃집 남자와 다른 또 하나의 게가 된 것이었다.
  그는 고향의 본사에 보고서를 보내야 하는데 작성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했다. 가족들은 영화를 보러 나갔다. 그는 마당으로 나가 서성거렸다. 잔디를 밟으며 보고서를 구상했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려 할 찰나, 이웃집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야, 너, 내 마당에 발 들여놓지 마!”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웃집 남자가 허리춤에 손을 얹고 짜증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이웃집 남자에게 말했다.
“뭐라고요?”
  이웃집 남자가 말했다.
“내 마당에 발 들여놓지 말라고! 나가라고!”
  그는 황당하고 민망해서 발을 옮겼다. 영어공부를 할 때 그 나라의 대표적인 문화라고 외웠던 ‘Not In My Yard!’의 ‘My Yard’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이웃집 남자는 뼈를 갈아 마시겠다는 것처럼 화가 잔뜩 나서 으르렁거리며 ‘Yard’를 진하게 발음했다. ‘어디가 너의 마당이고, 어디가 나의 마당이니? 울타리도 없는데 네가 어떻게 알아?’ 그는 다시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발밑을 바라보았다.
  잔디의 길이에 차이가 있었다. 이웃집 마당의 잔디는 짧았고 그의 집 마당의 잔디는 길었다. 그 마을에서 살려면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돼 있는 부동산관리협회에서는 잔디의 길이까지 정해서 규정으로 공표했다고 계약을 맺을 때에 들었다. 그래서 남자들은 주말이 되면 벌금을 내지 않으려고 자기 집 잔디를 정성껏 미는 것이었다. 이웃집 남자는 잔디를 깎아서 자기 마당의 경계를 표시했던 것인데 그가 그 선을 밟고 넘어간 것이었다. 이웃집 남자는 비디오카메라로 그의 동태를 살피다가 득달같이 달려 나와 소리를 질렀다.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그를 더러운 벌레처럼 취급한 것이었다. 그는 정원 조경용 가위를 가져와 남자의 주둥이를 뭉개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는 엉겁결에 몸에 밴 영어를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는 현관문을 닫고 들어가 부르르 치를 떨었다. 뒷목이 뻐근해지면서 혈압이 올라갔다. ‘나한테도 총이 있다는 것을 알면 함부로 못 나올 텐데! 나한테 총이 없다는 것을 아니까 저런 식으로 나오는 것이야! 어떻게 되갚아줄까?’
  그는 총을 사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했다. 그 나라에서 외국인이 총을 구입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불법으로 정해져 있다는 말은 그런 행위가 어디에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도 총을 하나 사야겠어.’ 그는 생각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돈만 있다면 총은 부엌칼처럼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총을 샀는데 쏘고 싶어지면 어떡하지?’ 이 생각에 이르러 그는 고개를 저었다. ‘쏘고 싶어지면 쏴버릴 거야. 그러니까 총을 사면 안 돼. 어떻게 복수를 하지? 좋은 방법이 안 떠올라. 제길!’ 그는 한숨을 푹푹 몰아쉬었다.
  가족들이 돌아왔다. 그는 이웃집 남자로부터 당한 수모를 가족들에게 전하지 않았다. 화가 나서 총을 산다고 말한다면 그까짓 일로 총을 사는 게 말이 되냐고 가족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비방할 것이었다. 막내는 집안에 총이 들어오면 그것을 장난감으로 여겨 사람에게 겨누고 쏠만큼 어린 애였다. 그는 잠이 오지 않았다. ‘내 마당에서 꺼져!’라고 외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웅웅거렸다.
  이튿날 아침 그는 출근을 위해 현관을 나섰다. 이웃집 감시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가운뎃손가락으로 총을 쏘며 ‘퍽 큐!’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할 수 없었다. 만약 비디오카메라에 녹화되어 이웃집 남자가 보게 된다면 이웃집 남자는 ‘퍽 큐’하는 손가락을 부러뜨리겠다며 다가와 총으로 위협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승용차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선글래스를 낀 후 차를 회전시키면서 정면을 향해 ‘퍽 큐!’ 했다. ‘세상에! 할 수 있는 복수가 퍽 큐 인사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이토록 소심하다니!’ 그는 자신이 추레해 보여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복수가 아직은 그것밖에 없으니 그것이라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더 미칠 지경이었다.
  그는 매일 매일 ‘퍽 큐!’를 보냈다. 진짜 총이었다면 한 번 쏘고 말았을 텐데 가짜 총이어서 쏘고 또 쏘았다. 반복의 지루함을 피하기위해 그는 여러 변형으로 동작을 바꿔가며 ‘퍽 큐!’를 쏘았다. 안전하게 ‘퍽 큐!’를 쏘았기 때문에 이웃집 남자와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다 이웃집 남자와 만나게 되면 등을 돌리고 걸었다. 가장 큰 복수가 인사를 안 하고 피하는 것이었다.
  한 달쯤 지났을 때였을 것이다. 그는 ‘퍽 큐!’의 효과가 몸에서 자라는 것을 느꼈다. ‘퍽 큐!’를 쏘면 고향이 그립던 마음이 잦아들고, 이웃집 남자에 대한 불쾌감이 날아갈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얻은 스트레스도 연기가 되어 증발하는 것이었다. 어떤 날의 ‘퍽 큐!’는 그로 하여금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성취감으로 인해 흥분되어 가슴이 빵빵하게 부푸는 것을 느끼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아침으로, 저녁으로, 매일 매일 ‘퍽 큐!’를 했다. 신이시여, 총을 맞지 않고 살아가는 나날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나이다. 그는 ‘퍽 큐!’가 고마워서 손가락에 키스를 했다. 





*박금산 소설가. 여수 출생. 《문예중앙》으로 등단. 서울과기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설집 『생일선물』, 『바디페인팅』, 『그녀는 나의 발가락을 보았을까』. 장편소설 『아일랜드 식탁』, 『존재인 척 아닌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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