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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책·크리틱/송민우/열심히는 살고 싶었어요


열심히는 살고 싶었어요
-박상수, 『오늘 같이 있어』(문학동네, 2018)


송민우



1.
이제 대학이 아니라 회사다. 근작 『숙녀의 기분』(문학동네, 2013)에서 시적 주체들인 여성들의 ‘기분’은 대부분 대학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성인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의 삶은 특히 불리한데, 경제 계급으로 인한 불평등은 물론이고 성 계급으로 인한 불평등을 온몸으로 겪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박상수 시인은 희극적 어조를 동원해 벗어나기 어려운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이 여성들의 삶을 그려낸다. 또한 ‘연애 게임’에 열중하는 청춘을 다소 전형적으로 재현함으로써 이들을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스움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이들에게는 경제적 안정에 대한 욕망과 다수에게 관심 받고 싶다는 욕망이 공존한다. 한국사회의 속물성을 기반으로 재현됐으리라 짐작되는 이 풍경에 대한 독자들의 적지 않은 공감도 있었다. 이른바 ‘청담동 며느리’로 상징되는 계급을 획득하기 위해선 경제적 부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시인의 이러한 시선이 여성에 대한 일방적인 속물적 재현이라는 비판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 여전히 이등시민 취급을 받고 있는 오늘날 한국 여성의 현실을 생각한다면 더욱 간과되어서는 안 될 문제다. 이는 최근 문학장에서 논쟁 중인 ‘재현’에 대한 문제와 연결된다. 하지만 이 문제는 간단히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주어진 지면 내에서 짧게 언급하고자 한다. 초점을 재현 그 자체가 아니라 ‘재현의 의도’에 맞춰야 하지 않을까. 즉, ‘재현된 것’을 놓고 재현을 해야 한다 혹은 하지 않아야 한다와 같은 양자택일의 상황을 만들 것이 아니라 한 명의 시인이 왜 그것을 재현하려고 했는지를 논의하는 편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2.
대학을 졸업한 뒤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여성들의 삶은 어떻게 됐을까. 『오늘 같이 있어』(문학동네, 2018)에 실린 시편들을 살펴보면 이 여성들의 위치와 관계성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먼저, 「명함 없는 애」의 시적 주체 ‘나’가 동기간의 술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살펴보자. 박상수 시인은 ‘나’를 통해 경제적으로나 나이에서나 비슷할 동기들 사이에도 위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근데, 너, 그애들 올 때마다 수저 세팅해주더라” 이 사실을 지적한 것은 ‘언니’다. 같은 기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언니는 ‘나’에게 고마운 사람이다. “치킨”과 “족발” 같은 ‘소울 푸드’를 섭취하는 것은 이제 삶의 위안마저 되지 못한다. 그런 현실 속에서 언니는 ‘나’에게 “오만 원짜리 두 장”을 쥐어주며 택시비를 베푸는 존재다. 언니로 상징되는 존재는 이 시집에서 종종 등장한다. 시편들마다 명칭만 달라질 뿐, 이 상징은 함께 견디는 존재로 등장해 그 효과를 발휘한다. 이 시적 주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 더 많으므로 “혼자 국수를 삶아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요즘 어때? 같이 밥 먹을까?”(「모노드라마」) 같은 목소리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회사에는 그러한 온정의 목소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온 부장 놈은 노래방 중독자, 원래 있던 과장 놈은 등산 중독자”여서 휴식을 취할 수 없는 ‘나’는 그나마 기댈 수 있으리라 믿었던 ‘선배’마저 믿지 못하게 된다. “노래방보다는 등산 중독자가 그래도 훨씬 휴머니스트”라는 선배의 말은 ‘나’에게 무의미하다. ‘나’는 회사 내에서 “조직도 모르고 상하도 모르는 이기적인 애”로 낙인이 찍혀있고, 그런 ‘나’를 두고 선배는 “요즘 애들/정말 힘들다”(「이기주의자」)는 말을 한 뒤 퇴장한다. 그뿐인가. “부장 아저씨”와 휴일에 노래방에서 블루스 춤을 춰야하는 ‘나’는 “이것도 다 시험이야”(「휴일 연장 근무」)라는 부장의 말을 견뎌야만 한다.
『숙녀의 기분』은 물론 이번 시집 속 시적 주체들을 지배하는 정서는 ‘체념’이다. 분노는 대부분 발화되지 않고 속으로 감춰진다. 명백한 거절의사가 표현될 때가 있지만 그것은 무시된다. 분명 ‘나’는 “집에 가고 싶”다고 정확히 말한다. “커피 두 번 사주었다고 내가 당신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대응한다. 그러나 후자는 혼잣말이므로 의미심장하다. 회사에서 “막내”인 ‘나’는 회사 상사인 남성에 의해 성적 폭력을 경험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이 범죄라는 것을 모르는 이 남성은 ‘나’에게 급기야 해서는 안 될 최악의 말을 하기에 이른다. “니가 나를, 남자로 만들어”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오래도록 여성에게 강요되어온 수동성(예를 들면, ‘여자는 조신해야한다’는 발언은 한국사회에서 얼마나 통용되어왔던가. 의심 없이 사용해온 이러한 말은 이렇듯 성 역할을 고정시킨다.)으로 인해 ‘나’는 공격적으로 발화하거나 행동하지 못한다. 엄마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꽃가마”를 탈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정작 ‘나’는 “세상엔 그런 건 없겠지”라는 체념을 학습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이 남성이 바라는 것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사랑이 아니라 ‘섹스’다. 이 남성은 오직 섹스‘만’을 바란다. “그럼 대리님은 날 얼만큼 사랑하는데요?”라는 ‘나’의 질문에 이 남성이 “뭐라도/생각해야 할 것이 있는 것처럼”(「오작동」) 모든 말과 행동을 정지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데 정곡을 찔렸다고 해서 변화하게 될까. 남성은 여전히 여성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회식 자리의 불편한 분위기를 피해 밖에서 담배를 피우는 ‘나’의 뒤로 사회성이 과한 후배 남성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사장, 순수한 데가 있어요 그쵸? 여자들은 저런 남자 좋아하지 않나” 이 말에 황당함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해서 ‘나’는 “넌 저게 사람으로 보이니?”라고 응수한다. 그런데 후배는 “그냥 피식 웃”은 뒤 ‘나’를 “걱정”한다. 담배를 피우는 ‘나’를 두고 “여자 혼자 피우는 거 보기 안 좋”으니 다음엔 자신과 함께 자리를 빠져나오자는 후배의 말은 물론 여성에 대한 이상한 편견이 작용한 것인데, 무엇보다 어딘가 모르게 저 말은 섬뜩한 데가 있다. 사장과 신입이라는 직급상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남성’이라는 젠더의 일치로 후배는 사장과 자연스럽게 남성 공동체를 형성한다. 반면, ‘나’는 후배보다 직급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젠더의 차이로 인해 후배의 웃음을 간과할 수 없다. 스치듯 “이 웃음의 의미를 네가 모르지는 않겠지”(「이해심」)라고 한 ‘나’의 말은 그래서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


3.
그렇다면 이러한 불평등한 현실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집 속 주체들 역시 현실을 바꾸지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로 표상된다. 개인 혹은 최소한의 연대만으론 변화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기저에 있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충분히 비극적이다. 언술의 차원에선 희극적일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표면적 특징일 뿐이다. 그 이면의 비극적 인식이 터무니없는 것이 아니어서 우리는 오래도록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용하고 편안한 관계란 가능한 것일까. 무기력한 상태에서 벗어나 변화를 도모하는 것 또한 가능한 것일까. 함께 삼겹살을 구워 먹고 따뜻한 머핀을 나눠먹는 관계가 시집 속에선 하나의 이상理想으로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일시적으로 형성되었다가 사라지는 관계가 대부분이다.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사람을 이 허무주의의 시대의 상징적 신으로 두는 것은 현명한 것일까. 물론 알 수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의 내용은 이 상징적 신, 그 힘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하루가 지나갔다는 것”(「극야極夜」)은 그야말로 ‘기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대야 할 것이 있다면 비관이 아닌 희망의 논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송민우 201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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