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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제6회 전국계간지작품상  미네르바|황경순·수상작


황경순


벗고 또 벗고 외 1편



심해深海에 사는 키다리게
탈피를 위해 얕은 물로 대이동을 시작한다
헌 껍데기를 버리고 새 껍데기가 나기까지
2주일 동안 사투가 시작된다
눈빛만 살아있고
속살이 드러나 말랑말랑해진 키다리게
거대한 가오리의 뱃속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물고기 떼에게 뜯어 먹히기도 한다
 
일부의 희생으로 한 편에선 짝짓기도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감수해야만 하는 2주일
그 2주일을 버텨야만 몸이 1.5배 죽죽 늘어난다
무거워진 몸이지만 발걸음도 가볍게
다시 심해로 힘차게 돌아간다


100년을 사는 거대한 3.5미터 키다리게
거미처럼 몸통보다 다리가 길어
심해에서 천하무적 종횡무진하는 키다리게
20번이나 헌 옷을 벗고 또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며 나날이 새로워지는 키다리게


비슷하게 100년 가까이 사는데 자라지도 않고
쪼그라드는 인간,
쪼그라들수록
벗고 또 벗고
눈은 빛나야 하는데
나날이 새로워져야 하는데


이제 그들은 흔적도 없다
깊이깊이 숨어버렸다





쉼표와 숨표 사이



노래를 부르다가
앞 보표에선 ‘  ’ 한 박자 쉬고
이 보표에선 ‘,’ 재빨리 숨을 고르라니,
쉼표 없는 보표에서


오선지 밖 숨표를 지키기 위해
아이들은

익살스럽게 숨을 멈춘다.


‘,’ 국어에서는 쉼표, 음악에서는 숨표,
쉼은 무엇이고 숨은 무엇인가?


오선지 안에서는
한 박자 여유롭게 쉬어도 좋지만,
오선지 밖에선
순식간에 모든 것을 끝내야만 한다.
살기 위해 끊임없이 몸부림 쳐야만 하는 비정규직처럼
음표들은 허공을 향해 훨훨 날아가 버리고
여기저기 뺑뺑이 돌며 아르바이트를 해도 빚만 늘어가고,
밤 지새며 기계를 돌려도
밤 지새며 산불을 꺼도
좁은 무허가 건물에서
겨우 입을 내밀고 숨표만 쳐다보며
짧은 숨만 내 쉴 뿐.


노래방과 USB파일에서는
악보도 없지만 쉼표도 숨표도 없다


하나, 둘, 셋!
신바람 맞으려고
오늘도 코인 하나 넣고
세상의 중심에서 노래 부르다
귀에다 이어폰 하나 꽂고
하나, 둘, 셋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고함을 친다


별들이 음표가 되어 돌아온다
쉼표도 숨표도 없이





■신작시


운주사로 공양하러 오세요



진작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요


운주사 원형다층석탑은
먹음직스러워요
천불천탑千佛千塔 먹여 살리기 위해
커다란 빈대떡을 빚어
쌓고 또 쌓았으니까요


하나같이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부처들
똑바로 서지 못하고 비스듬히 선 부처들
눈, 코, 입 삐뚤어진 부처들
몸 한 귀퉁이 떨어져 나간 부처들
제대로 먹고 입지 못해 불쌍한 부처들 먹여 살리기 위해
쌓고 또 쌓았어요


배고픈 사람은 오세요
운주사로 공양하러 오세요
먹성에 따라 원하는 대로 감자떡도 좋고 인절미도 좋고 피자도 좋아요
아무리 먹성이 좋아도 한 조각이면 족해요


몸이나 마음 아픈 사람도 오세요
귀퉁이 떨어진 만큼, 삐뚤어지고 못 생긴 만큼
영혼의 떡이 상처를 어루만져 줄 거예요


진작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요


산골짜기마다 넓적하고
둥글둥글 갈고 닦인 돌들이
진리를 담은
영혼의 먹거리가 널리고 널린 것을





■선정평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노래



인간이란 생명체는 여타의 생명체와는 달라도 참 많이 다르다. 생물학적 견지에서 보면, 영장류의 인간과에 속하는 동물로 진원류眞猿類라는 아목으로 분류되므로 일견 원숭이 부류와 상당히 가까운 생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생 인류는 엄연히 ‘호모 사피엔스’라고 명명하여 원숭이와는 상당한 거리를 둔다. 호모 사피엔스란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식물학자 린네가 처음으로 인간을 부여한 학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간은 음절로 나누어진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다른 동물의 행동은 본능이거나 단순한 환경에 대한 반응으로 규정되지만, 인간은 이성과 의지력, 신념과 종교적 신앙 등을 지니며 거기에다 도구를 가공, 제작하여 자연과 환경에 적응함은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자연과 환경을 적절히 변용하여 삶에 적용시킨다는 점은 너무나 이채로운 특징이다. 인류에게 기꺼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학명을 부여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황경순 시인의 시 「벗고 또 벗고」는 무장공자로 칭해지는 게에 대한 이야기가 바탕을 이루지만, 시적 의미의 중핵은 인간에 대한 성찰에 있다. 게는 탈피를 하는 동물이다. 탈피는 동물이 체표의 가장 바깥층을 벗는 일을 말하는데 어느 정도 생장하면 낡은 표피를 벗는 것으로, 동물들이 자신의 더 나은 성장을 위해 숙명처럼 치러야하는 목숨을 건 통과의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이들과 달리 탈피를 하지 않는다. 탈피를 다른 말로 바꾸면 변태가 된다. 변태는 인간에게 금기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변태적 인간은 사랑 받지 못한다. 사랑 받기는커녕 비난을 받거나 법적 제재까지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경순 시인은 「벗고 또 벗고」에서는 변태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해 심히 슬퍼하고 있다. ‘키다리게’는 인간과 비슷한 100년 가까운 수명을 살면서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목숨을 건 변태를 시도하지만, 인간은(혹은 시인 자신은) 그렇지 못함에 대한 반성이자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키다리게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새로워지지 못하는 안일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노래하기 위한 전주이자 배경이다.
황경순 시인의 시가 지닌 매력과 특징이 바로 이런 점에 있다. 즉, 일체의 감수성을 배제하고 철저히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톤으로 사물을 관조하다가 한순간 그 시적 중심을 인간의 이야기로 바꿔 놓는 것이다.
중국의 전통극 중에, 사천성 일대에서 전해오는 변검이라는 천극이 있다. 변검은 등장인물의 감정변화와 독특한 개성을 찰나에 얼굴 변색을 통해 나타내는 얼굴분장의 마술이 중심인 극이다. 변검이 고도의 숙련된 기술로 배우의 서스펜스를 통해 관중을 극 속으로 몰입시키듯이 황경순 시인은 찰나에 시적 테마의 중심을 ‘키다리게’에서 ‘인간’에게로 이동시키는 변검 마술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테마의 중심이동은 서사적 비유 혹은 서정적 대조를 동시에 유발하면서 긴장감 있게 시적 주제를 강화하는 그녀의 멋진 시적 마법이다./김인육 시인





■수상소감


평생 시를 쓸 수 있어 행복하다



전국계간문예지우수작품상을 주셔서 부끄럽고도 기쁩니다. 선정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시에 관한 열정은 갖고 있지만, 직장 일 등 1인 몇 역에 바쁘다 보니 떠올랐던 시상도 사라지기 일쑤이고, 초안해 놓고 작품으로 다듬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시를 평생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합니다. 2016년 두 번째 시집 『거대한 탁본』을 낸 후 소재를 다양하게 잡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좋은 시를 쓰라는 채찍으로 알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황경순





*황경순 2006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나는 오늘 바닷물이 되었다 』, 『 거대한 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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