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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제6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시와사람|김은아·수상작


김은아


생이 서러운 그에게 외 1편

-천경자



오늘도 꽃은 아프다
온몸 구석구석 꿈틀거리는 뜨거운 색채
바람과 이별 사이에서
그 뜨거운 색채는 당신을 더 뜨겁게 달궈 주었다
 
긴 담배를 물고 먼 곳을 응시하는
두 눈에 서린 감출 수 없는 비애
소리 없는 나비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시린 인생의 의미를
별이 되어서도 고단한 그에게
몸 안의 허공을 뒤적여 본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얼어 있는 잔설 긁어모아
 
이제 그만
세상을 태우고 있는 불을 끄고
길었던 안타까움의 시간을 딛고
시야를 뒤덮고 있는 안개 걷어서
머리에 이고 있는 화관처럼
나풀나풀 날고 있는 나비처럼
불꽃처럼 살다간 생이 서러운 그에게
이제는 풀빛 물든 세상에서
편히 쉬라 하고 싶다.





처서



바람 끝이 달라지는 계절
서늘한 공기가 데굴데굴 굴러간다
낮에는 뭉게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밤이 되면 갑자기 고요가 무너진다
창문 밖에서 귀뚜라미 울음소리 처연하다
가을의 깊이를 알리며 밤새 귀뚤귀뚤
고단한 한 생의 등줄기를
싸늘하게 끌고 가는 저 울음 뒤에
지나가버린 바람처럼
울컥울컥 쏟아지는 마음 한 자락
누구를 울리는 애간장 녹이는 소리인가
 
애지중지했던 물건들도
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알처럼
살다보면 스스로 내려놓아야 할 때 있듯이
사람이 빈 틈 없이 산다는 게 얼마나 팽팽한 삶인지
작은 시련에도 넘어지고
마음의 상처를 입으며 쉽게 찢겨진다
저 귀뚜라미는 밤새 누굴 찾아 우는가
바람과 함께 계절도 지나가고 있다.





■신작시


가을이라는 낱말 속에는



창공에 가을이라는
말 하나를 걸쳐 놓는다
무수한 글자들이 쏟아진다
고추잠자리 단풍잎 구절초 귀뚜라미 바람 햇볕
찢겨진 허망의 낱말도 굴러다닌다
상처투성이의 시간이 혼자 중얼거린다
오래전 까맣게 지워버린
죽은 언어들을 태우고
함부로 쓰인 글자들을
바람이 달려와 날려 버린다
어떤 것을 가져와야 하나
가뭄에 소낙비 내리듯
황홀한 속도로 달려와
향기에 취해 비틀거리는데
휘청대며
가을이 떨구고 간 마지막 말 속에는
쓸쓸함과 적막감과 고독함이
시라는 언어 속에 묻어
저장이 된다.





■선정평


은유 상징을 통한 깊은 통찰



「처서무렵」에서 처서는 절기의 하나이지만 김은아 시인에게는 그저 오고 가는 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다. 일생에 단 한 번 맞는 생의 절기이다. 계절의 변화로써 처서는 “바람의 향기 달라지는 때”이고 “서늘한 공기가 스며”오는 때이지만 ‘낮’으로 은유화된 ‘청춘’시절엔 고요하다가 ‘밤’으로 은유화된 청춘이 지나간 이 시간엔 “생의 깊이로 고요가 무너진다”고 한다. 여기에서 ‘고요’란 ‘생의 깊이’가 아닐까. 그러니까 이즈음 화자는 생에 대한 깨달음을 느끼는 때인 것이다. 그러므로 일년 중 봄 여름이 지나 가을에 이르러 “밤을 새는 밤벌레는 나의 초상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고단한 생의등줄기를/싸늘하게 끌고 가는 울음 뒤에” “스쳐지나간 바람”으로 상징된 정서적 사건은 화자를 “울컥 울컥 설움이 쏟아져 간장이 녹는다”.
생의 처서무렵이 된 화자는 “나보다 소중했던 것들도/손가락 사이로 빠지는 모래알처럼/내려놓”기도 한다. 의미있던 것도 어느 땐가는 부질없어 보여 내려놓는 것은 생에 대한 깊은 깨달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밤도 밤을 잊은 저 밤벌레는/누구인가” 화자 자신인 것이다. 인생 처서 무렵을 지나는 시인의 요즘 심경을 노래한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시인은 “나는 어디쯤 지나가고 있는가”라고 묻고 있다.
「생이 서러운 그대에게」는 천경자 화백을 위한 헌사이다.
“꽃은 아프다”라는 말에서 우리는 천경자의 그림 속 꽃과 꽃으로서의 천경자 화백의 파란만장한 삶이 오버랩된다. “구석구석 꿈틀거리는 뜨거운 색채” 또한 천경자 화백의 그림세계와 그의 생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은 앞에서 보았듯이 한이 서린 천경자 화백의 그림 세계와 스스로의 생이 겹쳐지는 지점을 그리고 있다. 이 작품의 모든 시적 표현들이 그림과 인간 천경자의 삶이 중의적으로 겹쳐지고 있다.
“시린 인생의 의미를/별이 되어서도 고단한 그에게/몸 안의 허공을 뒤적여 본다”에서 보듯이 화가로서 성공했지만, 그의 생은 여전히 ‘고단한 생’이었음을 말한다. 시인은 이러한 천경자 화백의 삶에 대해 “이제 그만/세상을 태우고 있는 불을 끄고” “편히 쉬라 하고 싶다.”며 지친 그의 영혼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낸다.
두 작품에서 보았듯이 김은아 시인의 시는 은유, 또는 상징을 통해 깊은 통찰을 하고 있으며, 생에 관한 다양한 비의를 함축하는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고 있는 장점을 보이며, 요즘 시가 감정이 헤프고 생의 기표만을 보고 있는데 비해 김은아 시인의 언어는 생의 깊이를 통해 인간의 존재방식을 모색하고 있다./강경호(글)





■수상소감


꿈속에서도 시를 읽으며 살아



수많은 글자들과 한바탕 씨름을 하며 꿈속에서도 시를 읽고, 시를 쓰는 그런 나로 살아왔다. 나에게 시란? 죽는 날까지 함께 가야 할 내 인생의 영원한 동반자이다. 뭐든 읽어야 직성이 풀리고, 써야만 답답한 가슴이 뚫린다. 시를 쓰고, 시를 퇴고하는 이 행복함이 한 계단 더 높은 계단을 향해 올라가야 하기에 충만함으로 가득 찬 시를 쓰고 또 쓴다. 만약 시를 쓰지 않고 살았다면 어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시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작품상 수상 연락을 받고, 더위에 눈이 소복하게 내린 것마냥 나는 가슴이 떨리고 벅찼다. 아직도 많이 덜 여문 곡식 같은데, 부족한 저에게 과분한 상을 주심에 감사하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채찍이라 생각하고,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김은아





*김은아 2010년 <무등일보>신춘문예 시 당선. 2011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시집 『흔들리는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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