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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호/제6회 전국계간지작품상  시와정신|이명식·수상작


이명식


다시 산행 외 1편



오늘따라 머리 복잡하여 집을 나섰다
이런 날은 길에 널린 돌멩이도
무거운 마음 참지 못하고
제 성깔로 덜그럭거린다
이른 아침 산으로 가는 길,
이름 모를 들꽃들 자잘하게 피어있다
싱그러운 웃음 웃는 나무들
산의 풀과 나무들 길에 늘어서
나를 자꾸 깊숙한 산중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리움 감아올리는 푸나무들은
일제히 제 몸의 물관을 열고
앞 다투어 푸른 물 길어 올렸다
맑은 계곡물도 졸졸
나의 몸과 마음 씻어 내렸다
산새도 다가와 푸른 운율 더하고
나무 사이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나는 한동안 은빛 춤 속에 빠져들었다
이런 날 산은 점점 높아지고
나도 모르게 산과 하나 되었다
집을 나설 때 묵직했던 마음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산처럼 맑고 푸르렀다





호박잎 쌈



호박잎 좋아하는 누나가 생각나서
양지쪽 구덩이에 소똥 거름 가득 넣고
두 포기 호박 모종을
정성스레 심었지
 
누나 몫 한 포기와 나의 몫 한 포기
햇볕과 바람 따라 한 몸인 듯 서로 엉켜
긴 가뭄 다 이겨내며
알콩달콩 자랐지
 
돌담을 안고 도는 푸르른 장마철
넌출은 무성하여 생각도 살찐 꿈을
집안의 내력이랄까
눈시울이 붉어라
 
돌아오는 일요일 호박잎 따가지고
누나를 찾아갈까 목의 때를 벗겨볼까
입맛도 그리움 듬뿍
누나 얼굴 피겠네





■신작시


해루질



물이 빠져나가니 씁쓸하다 속을 다 보여주고 나니 그래 후련하더냐, 더러 갈증을 부르는데 옆으로 걷는 바닷게와 갯지렁이 낚시밑밥 맛본 망둥이가 급한 몸짓이다


바닷가에 가면 사막을 거니는 오래된 쌍봉낙타처럼 움푹 등 파인 갯바위 볼 수 있다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건너온 쌍봉낙타 등에 끈끈한 해초들이 자라고, 소라 고동 같은 것들이 딱딱한 갑옷을 걸치고 힘주어 발 딛고 있다 하루에 두 번 자맥질로 촉촉한 피부도 가꾸고 번듯이 모래톱에 드러누워 몸을 말리기도 한다


강태공은 튼튼한 쌍봉낙타 등에 올라 짠물에 낚시 드리우고 철썩철썩 바다의 노래 낚아 올린다 갈매기는 물결에 맞춰 고전무용을 펼친다 나는 꺼억 한숨 게워놓는다 이윽고 해조음이 내 시름을 끌어안는다


물 빠진 갯바위 그저 지나치는 낯선 발소리에 밤이 젖는다 그래도 횃불 하나 밝혀 드니 이제 좀 섭섭한 맘 가시더냐 까만 밤 뭔가 눈에 들더냐 마음껏 짠내 훔치는 날이다





■선정평


진정한 삶의 숨결과 진솔함이 묻어나



‘제6회 전국계간문예지작품상’ 수상작으로는 이명식의 시 「다시 산행」과 「호박잎 쌈」 등 2편을 선정하였다. 이명식은 2007년에 《시와정신》 신인상에 시로 등단한 이후에 시집으로는 『옥천장날』 『개밥바라기』, 동시집 『쇠똥냄새』, 시조집으로 『풀꽃』, 『아버지의 그늘』 등을 펴내면서 누구보다도 왕성한 활동으로 문학적 열정을 보여주었다.
수상작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작품은 일편 평이한듯하지만, 그 안에는 잔잔하게 다가오는 진정한 삶의 숨결과 진솔함이 스미어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은 거듭 읽을수록 울림이 쌓이고 깊이가 열리면서 독자들을 큰 감동으로 안내한다. 시는 진실한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명식의 시는 바로 그러한 것을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식의 시는 언어와 기법의 측면에서도 크게 재주를 부리지 않으며 묵직한 울림을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점은 그의 시가 무엇보다도 시정신의 깊이를 추구함으로써 가능했다는 점이다. 우리시대의 시가 언어의 미학을 넘어서 새로운 시정신의 깊이를 추구해가야 한다면, 이명식의 시는 그러한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심사위원 : 김완하, 송기한(글)





■수상소감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둘 내려놓으며



저는 시가 뭔지도 모르면서 자꾸만 써 내려갔습니다. 한 줄 한 줄 말이 늘어나면서 겨우 시의 몰골을 하게 되었고 나 혼자만 시라고 우겼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걱정하던 주변 사람들이 훈수를 들기 시작했고 그 힘으로 시집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 흔적을 파헤쳐보니 어설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에 이 일을 접을까 몇 번 생각했었습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시의 언저리를 서성거렸습니다.
욕심 부리지 않고 나의 것을 하나둘 내려놓으며 다시 한 살을 사는 마음으로 어정어정 걸었습니다. 시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를 읽고 마음을 글로 표현해나가는 일을 삶의 동반자로 여기며 차근차근 발을 떼어놓으니 그렇게 마음 편할 수가 없습니다. 주변에서는 더러 그런 골치 아픈 일을 왜 하느냐고 물어오기도 했으나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시치료 이론에 공감하게 되고 종교처럼 믿기도 하였습니다. 하루에 시 한 편이라도 읽지 않으면 배겨날 수 없는 노릇이 되었습니다. 지나온 날이 길지만, 앞으로도 서두름 없이 주변을 돌아보며 모나지 않게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35년 넘게 몸담았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뜻하지 않게 악화된 지병으로 어쩔 수 없이 여러 일을 접게 되었고, 의기소침해 있던 차에 상을 받게 되어 힘이 불끈 솟습니다.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도 시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서 일까요? 미흡한 저의 글을 어여삐 보아주신 《시와정신》과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진정 시인으로 나아가는데 한층 힘을 쏟겠습니다./이명식





*이명식 《시와정신》, 《시조문학》, 《아동문예》, 《한맥문학》 신인상 수상. 시집 『옥천장날』, 『개밥바라기』. 동시집 『쇠똥냄새』. 시조집 『풀꽃』, 『아버지의 그늘』, 『내가 딛고 가는 길』. 산림문화작품공모전 최우수상 외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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