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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프를 하다


 

스피커에 거주하는 악기 연주자가

어김없이 피아노를 치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의 몸은 자석에 이끌리듯

교실 중턱, 한 책상과 의자에 둘러싸여

연필을 비스듬히 잡은 채 대기를 한다

 

시계 장침이 몇 초마다 무겁게 진동하고

마스크를 쓴 아이들의 눈에선

지렁이 같은 필체들로 여러 장을 채운

시험지들을, 잡아먹을 사냥감같이 쳐다본다

 

또 한 번 터진 현란한 연주 음악

손만 움직이는 교실 안에서

우리들의 눈은 고작 몇 장짜리

시험지 위로 결말을 알 수 없는

눈싸움 승부를 먼저 신청한다

 

각 문제마다 그림자처럼 뒤따라오는 보기와 번호들 위로

비행기 여러 대가 지나간다

밑줄 긋기에서 속도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출발하다 오작동 나기를 반복해

조금씩 유출된 기름처럼 검정색 잉크가 솔솔 뿌려진

OMR 카드 위로 미처 채우지 못한 칸을 항해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착지점을 향하는 시도를 한다

마이너스 점수가 커지는 순간이다

 

냇물 흐르듯이 그대로 빨려 들어간 답안지

결국 정오표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의 점수는 이미 번지점프를 한 뒤였다




버스 터미널의 하루


 

혼합된 색깔의 지폐를 매표소로 갖다 주면서

쥐구멍만한 칸막이 틈에 행선지를 뱉어낸다

가야할 길을 넙죽 받은 터미널 직원은

이른 새벽 피어오르는 졸음을 억누른 채

지진이 일어나는 눈동자를 속눈썹으로 조여 맨다

휴식을 용납 못하는 다음 손님의 주문을 들으면서

 

짜지 않은 걸레로 물을 흥건히 쏟아 내린 바닥처럼

전광판 안, 커다란 빨간색 숫자들이

재빨리 탑승 시간으로 흘러내리길 바랐다

미처 물이 증발하지 못한 바닥 위로

강제적으로 스케이트 타기에 체험한 손님들이

하나같이 출발하는 시간에 서두르는 풍경은

수면에 취한 머릿속에 파랑을 가져다주는

소소한 재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24인승과 32인승, 특정 도착지를 가리키는 버스만이

처음 마주 하는 사람들과의 대면이 낯설지 않다

 

뚜껑을 열면 탈취제처럼 냄새만 먹고 살아온 듯

반쯤 감긴 커튼 사이로 한껏 드러누운

버스 안 소형 에어컨, 모진 바람을 생성한다

모두들 뇌 속에서 지진을 체험하는 동안

 

남들과 똑같이 단잠에 빠지는 수단을 택한다

그래서 문득 호의를 느끼기도 한다,

같은 곳으로 몸을 싣는 이 버스 안의 사람들을

 

아무도 보지 않는 텔레비전 속 드라마는

잠이 오지 않는가 보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또 다른 사람들이

판치는 버스 터미널에 다다르자

도착 안내를 가르쳐주는 텔레비전 속 버스 안내양

모닝콜만큼 이보다 더 좋은 알람은 없다

 

천국과 지옥을 오가듯이

또 다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버스 터미널 안,

여전히 많은 세상을 돌아다니는 손님들이 있다

 



 

발걸음


 

앉는 자세로 길거리를 활보하는 남자

보행자 신호처럼 횡단보도를 서서 건너는 꿈을

반찬용으로 밥과 같이 곁들어서 먹는다

폭식을 해도 포만감이 들지 않았던 위 속엔

앞으로 휠체어에서 벗어날 자신을 담고 있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물이 금방 불은 채 추락하는 폭포처럼

몸을 지탱하던 뿌리 같은 주행의자에 벗어나면

남자는 곧장 딱딱한 바닥 위로 물 흐르듯이 떨어진다

- 더 이상 낙하하는 기질을 기르고 싶지 않아

언제부터 입을 뗐는지 알 수 없을 혼잣말들이

집 안 곳곳에 개다 만 빨래처럼 널러져 있다

 

의자 바퀴가 발이 되어주는 남자의 몸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행인들의 풍경을 어렴풋이 쳐다보며

- 나는 왜 평범하게 걸어 다닐 수 없을까

두 다리를 고스란히 보호한 채

두 팔로 바퀴를 휘저어 몸을 휘청 이는 자신을

남자는 두 바퀴가 곧 발이란 현실을 받들지 못한다

 

타인의 손길로 몸을 싣고 다니는 유모차에서

두 다리를 붙들고 일어서서, 오뚝이처럼

주저 없이 내려앉는 몸을 부여잡아

거리 속엔 남자의 멍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다

 

그러니까 남자의 발걸음은

휠체어 바퀴로 움직이는 두 발이 아니라,

제 다리로 움직이는 두 발로

사람들을 따라 평범해지려는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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