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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걸이 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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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현미
댓글 0건 조회 2,293회 작성일 10-09-19 14:01

본문

목: 벽결이 TV


심야에 나를 낚아채 온몸을 테이프와 비닐로 묶고 박스에 구겨 넣는다.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태워진 나는 두려움으로 바깥동정에 귀를 세운다.
어디로 가는지 쭉 뻗은 길을 달리나 싶더니 이내 유턴 깜박이 소리가
띡,띡,띡 띡  고조된 심장의 울림이 되어 가슴이 쿵쾅 쿵쾅 방망이질 한다.
차의 덜컹거림이 멎자, 두 사람이 양쪽에서 나를 들고 낑낑대며 옮긴다.
신발의 턱. 턱 소리로 보아 둘이 게걸음으로 보조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짐작이 되며 지금은 나를 바닥에 내려놓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듯하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어느 집의 벨을 누르자 아주머니가
“누구세요, 누구시죠?” 경계의 목소리를 문밖에 있는 우릴 향해 흘려보낸다.
일당들은 나를 꺼내 테이프를 뜯고 비닐을 제쳐 숨을 쉴 수 있도록 해준다.
잠시, 아주머니와 속닥거리더니 은행 강도처럼 벽을 드릴로 뚫기 시작한다.
뚫린 구멍마다 대못을 치더니 급기야는 나를 벽에 매다는 것이 아닌가?
골고다 언덕에 끌려가 병사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형상처럼.
그날이후로 나는 자리에 앉을 수도, 내려올 수도 없는 가여운신세가 되었다.
그 집 아주머니는 툭하면 내 앞에 앉아 눈물, 콧물바람을 하기 일쑤이고 ,
그 집 아저씨는 나만 보면 종 주먹을 들이대거나 소리를 쳐 주눅이 들었다.
그 집 아들 녀석,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나만 보면 가수가 되겠다고 왝-왝
돼지 멱따는 랩을 해대고, 꼴에 아이돌 가수를 꿈꾸며 춤연습이 한창이다.  
아주머니는 이중인격자, 나를 보며 울 땐 언제고 아들이 공부 안하는 것이
내 탓이라며 갔다 버린다고 위협하고, 갖은 욕을 하며 히스테리를 부린다.
내가 없으면 심심할거면서. 나는 동네북이고, 신데렐라이고, 구박덩어리이다.
모두가 잠든 새벽녘, 나는 반복하여 탈출루트를 점검하며 시간을 체크한다.
탈출 날짜는 모두가 영화를 보다가 켜둔 채 잠든 밤, 나는 최대한 큰소리로
떠들며 태연을 가장하고 그들의 꿈속으로 찾아가 자장가를 들려 줄 것이다.
‘잘 자라, 나의 주인 들,잘 자아거어라.’ 나는 ‘쇼생크의 탈출’ 이 방영될 때
심호흡을 크게 세 번하며 숨을 고른 뒤 눈을 질끈 감고 벽에서 뛰어내린다.
떨어지는 소리를 최대한 작게 하기위해 볼륨을 높이고 쿵 소리가 영화효과
소리에 묻히게 박자를 잘 맞춰 뛰어내릴 것, 시간은 5초 이내로 끝낼 것.
주인들이 깨어났는지 확인한 후, 현관까지는 일곱 발자국, 예정시간은 30초.
현관문을 열고나가 엘리베이터까지는 네 발자국,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기다리는 시간 1분 20초.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지만 거꾸로 100을 세며
여유 있게 기다릴 것.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1층 입구에 도착한다.
잽싸게 내려 입구의 유리문을 밀치고 나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 갈 것.
스릴과 쾌감을 느끼며 미비한 것이 없나, 잘못된 부분이 없나 , 다시 한 번
점검할 즈음, 아주머니의 육중한 몸이 좌우로 미동을 하더니  최고조로
켜둔 볼륨이 귀에 스며들었는지 가볍게 실눈을 뜨고 풀린 동공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마침내 나를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나 엄지를 치켜들고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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