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문학상
제9회 리토피아문학상 수상자 허문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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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리토피아문학상/허문태
<심사평>
성찰의 ‘형질’과 시의 ‘가치’를 되묻는 힘
시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유의미하지 않다. 물음의 방향이 없고 시를 자연발생적인 ‘무엇’으로 가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질문을 좀 엄정하게 할 필요가 있다. 시인에게 있어 ‘시’란 무엇인가가 가장 일의적이고 빠른 대답을 요청할 수 있는 방식이다. 하지만 거의 언제나, 누구에게서나 기대한 만큼의 명확한 대답을 듣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공공연하게 ‘명예, 지위, 권력’ 같은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라고 답하면 그것을 반어적으로 해석하려는 기제가 작동하고, ‘자유, 평등, 정의’ 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라고 하면 자꾸 언표의 이면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인에게 ‘시’는 간절한 ‘그 무엇’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할 때마다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시의 정체성은 안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매 작품에서 새롭게 형성해가는 미완의 ‘형질’이라는 사실 뿐이다.
허문태 시인은 성찰의 ‘형질’을 모양은 모양대로, 속성은 속성대로 결 그대로 살려내면서 시적 형상화를 통해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오롯한 힘을 가졌다. 앞의 사족이 길었지만, 일반적으로 깨달음은 그 무엇이든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수행’을 통해 다시 깨닫고, 깨달아야 한다고 한다. 시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단 한 편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작품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색과 향이 짙어간다면, 이는 시인의 시작 과정이 수행의 그것과 닮았다고 보아도 크게 비약은 아닐 것이다. 열편의 작품에서 발견하게 되는 저력은 단 한 편으로 무릎을 쳤을 때와 또 다르다. 어떤 질문의 연쇄가 뒤 따르기 때문이다. 그 처음이자 마지막은 결국 시적 자세로 연결되는데, 시인은 「오후 여섯시 무렵」이라는 한 작품을 통해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해질 무렵 바라보는 ‘비탈에 선 상수리나무’는 시적으로 그리 낯선 대상은 아니다. “똑 같아 보이지만 다 다른 이파들”도 이렇다 할 발견은 못 된다. 그러나 시인은 오래 가만히 보는 자세를 통해 “멧새 한 마리 상수리나무 부드러운 가지에 포르르 날아들어 몇 번 깃털을 가다듬더니 이파리가 된다/누룩뱀 한 마리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기웃기웃 기어오르더니 그 옆에서 이파리가” 되는 경이를 발견한다. 천적관계인 ‘멧새/누룩뱀’이 그저 하나의 이파리가 되는 것이다. 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마주치면 거수경례하는 아파트 후문 경비 아저씨/납품한 물건 값 한 푼 주지 않고 부도낸 성남물산 정 사장/노점상 강 씨. 친목회 박 총무. 전동 휠체어 타는 동민 아버지. 슈퍼 하는 최 씨. 생선집 오 사장. 희망수선집 과수댁”을 독립된 한 연에서 수식 없이 나열해 불러낸다. 이쯤에서 시인은 ‘오후 여섯시 무렵’이면 바람결에 반짝이는 ‘상수리나무 이파리’처럼 자연도 인간도 다 반짝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실 그 ‘반짝임’이란 이파리가 바람을 따라 등을 보일 때 잠깐 어두워지면서 결국은 다수에 의한 명암의 교차일 뿐이다. 즉 모든 사물과 현상은 다 명암이 있고, 그것이 교차가 곧 자연이고 세계고 인생일 것이라는 인식이 순리적으로 드러난다. 이를 통해 시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한다.
허문태 시인은 곧바로 표면화 되는 언설을 통해 자기가 무엇을 발견하고 깨달았는지를 표명하기보다는 여러 시적 장치들을 통해 언어의 구축물로 형상화함으로써 시의 ‘가치’가 현실에서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다. 그것은 시는 언제나 시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세월호를 소재로 한 「벚꽃」, 노동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초록」, 비난만 난무하는 편 가르기를 다룬 「적이다」, 문명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폭염」 등의 작품이 이를 반증한다. 시인은 자기성찰을 ‘생각하다가/생각하는데’(「돌탑에서 걸어 나온 능소화」)나 ‘~읽는다’(「호박 덩굴손, 익히다」) 또는 ‘들판의 문제다’(「저수지가 보이는 식당에서 잠시」)처럼 사유 밖으로 객관화하려는 지향을 보여준다. 이는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하나는 시에서 자아의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여백을 충분하게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지나친 감정이입을 차단해서 독자들의 개입을 손쉽게 한다는 것이다. 둘 다 시가 폐쇄되는 것이 아니라 열린 상태가 된다는 점에서 뛰어나고 바람직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요즘 다시, 시대정신에 대한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이 경향에 대해 이견을 제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오늘, 이 사회, 시대의 정신이 ‘분노’인가는 꼭 따져 물어야 할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시인에게 ‘시’란 무엇인가. 비록 생략하고는 있지만 매 순간 이 질문을 되던지면서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 나가는 시인들이 무수하다. 그 걸음을 통해 시는 ‘가치’를 인정받고, 새로운 ‘정의(定義)’로 지평을 확장할 수 있다. 허문태 시인은 시작을 통해 이를 진실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그의 발견이 자꾸 편향하는 우리 시단에 어떤 ‘반짝임’이 되길 기대한다.
<수상소감>
내 시는 내 생에 버팀목이다. 생이 비틀거리고 쓰러지려 할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나를 세워 주었다.
약간의 신체장애로 인해 스스로 친구들과 멀어져 외톨이가 되었을 때 골방에서 책을 읽고 끄적끄적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을 못가고 방황일 때는 분노도 되지 못하는 젊음을 아낌없이 낭비하며 시의 성을 두드렸다. 결혼을 하고 장사를 시작 했지만 가정의 안정보다는 멀어져 가는 꿈을, 잡히지도 않는 그 꿈을 포기하지 못해 현실도피의 자리에서 시로 나를 위장했다. 현실과 도피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타락 할 때도 늘 시가 있는 곳에서 다시 힘을 되찾았다.
나를 찾아 헤맨 시간이 많았다. 나는 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했다. 늘 있어야 할 자리에 없으므로 자주 나는 나를 찾아 떠났다. 나만 나를 찾은 것이 아니다. 나와 관계 된 사람들도 나를 찾아 많이 헤맸다.
아프다. 강을 봐도 아프고, 나무를 봐도 아프고, 꽃을 봐도 아프다. 잠든 아내를 보고 있으면 많이 아프다.
있는 그대로 보는 방법을 왜 몰랐을까?
밤이 오면 별이 보이고 아침이 오면 길이 보이는데, 별을 보기위해 밤을 찾아다니고 길을 보기위해 아침을 찾아 다녔을까?
내 시는 아름답지 않다. 내 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도 못한다. 어쩌면 내 시는 시를 쓰는 사람들을 욕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을 모시지도 못했으니 거칠고 두서없다. 볼품없고 비루하기 짝이 없다.
내 시는 다만 나를 확인하며 뚝뚝 떨어뜨린 피의 흔적이다.
그 흔적을 인정해 준 리토피아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수상작품>
돌탑에서 걸어 나온 능소화
7월 한낮 마이산 돌탑을 보고 있다
돌이었다가, 산이었다가, 강이었다가, 바람이었다가,
거기까지는 캄캄하다
무너지지 않는 돌탑은 무너지기 전에 보고 있는 것이고
이 돌 저 돌에 끼어 옴짝달싹 못하고 평생 사는 것이고
윗돌에 짓눌려 고개 한 번 들어보지 못하는 서러운 것이고
저렇게 버티다 무너지면
이끼 낀 돌멩이 하나 이리저리 굴러다니다 묻혀버리는 것이고
확! 허물어버리고 뛰쳐나가
공깃돌도 되었다가, 누름돌도 되었다가, 수석도 되었다가
분노를 움켜쥔 투석도 되었다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다가
암돌 수돌 생긴 대로 껴안고 사는 것이
떠받들고 떠받들리면서 사는 것이
간절히 염원 하나 간직하고
돌을 쌓아 탑을 세우고 그 탑이 또 하나의 돌이 되어 또 다른 탑을 세우고 또 다시 그 탑이 돌이 되어 또 다른 탑을 세우고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망게나무 덤불 속에서 푸드득 직박구리 날아오르고
구름 몇 조각 숫마이봉 너머로 흘러간다
옴짝달싹 못하던 돌탑이 제 그림자만큼 걸어나와 다시 탑을 쌓는다
햇빛 쏟아지는 암마이봉 절벽에 능소화 층층이 환하다
초록
작업복이다
기회라는 것이
반성이나 성찰을 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구동성으로 외친 초록
기회가 지천이다
수십억이 수십억의 생각으로
작업복을 입는다
어제 입었던 작업복을 다시 입는가 하면
깨끗한 작업복으로 매일 갈아입기도 하고
난생처음 작업복을 받아들기도 하고
중요한 것은 작업복을 입으면 자꾸만 꿈을 꾸게 되는데
왜 푸른 꿈만 꾸게 되는지
초록은 초록으로 시작해서 초록으로 끝나지 않으므로
아직 바닷빛이나 하늘빛은 아니다
마음껏 다시 한 번 해보라 한다
몸에 딱 맞는 작업복이 좋다
가끔 일손을 놓고 바다나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오래 된 습관이다
호박덩굴손, 익히다
움켜잡아도 잡히지 않는다
얽히고설킨 골목을 빠져나왔을 때 환하게 마중 나온 햇살이 잡히지 않는다
절벽 담장을 추락 없이 올랐을 때 어깨를 도닥였던 바람이 잡히지 않는다
담장 위에 호박덩굴손
움켜잡고 오르는 것만 익히고 익혔는데
뙤약볕은 한사코 등을 때린다
따개비 검은 등에 출렁이는 바다를 볼까, 호박 덩굴손이
가문비나무나 자작나무의 겨울을 꿈꿀까, 호박덩굴손이
호박덩굴손은 호박덩굴손의 방식으로
잡히지 않는 허공을 익히고 또 익힐 뿐이다
단단한 것이 말랑말랑할 때까지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할 수 없을 때까지
나비 한 마리 나풀나풀 담장을 넘어 날아갈 때까지
천 근 호박이 노랗고 둥그렇게 익는다
담장 위로 둥근 달이 둥실 떠오른다
달이 담장을, 마을을, 들판을 읽는다
거미밥이 되다
거미의 숨소리가 황망하다
바람과 햇살 날벌레들의 습성을 정밀하게 계산하고도 아침이면 내가 지나가는 것은 계산하지 못했다
머리에 걸린 거미줄이 또 찢겨졌다
미물의 안목이라니
나를 제 먹잇감으로 생각하다니
거미집을 피해 거미줄을 보존한 날이었다
황망한 거미의 숨소리 대신 허공에 마침표 하나 선명하다
여름날 북극성 같다
수많은 별들의 둥근 궤적을 거느린
허공 속에 마침표가 있듯이
먹이 속에도 물음표와 쉼표와 느낌표와 마침표가 있다
밥은 둥근 식탁에 둥글게 둘러앉아 먹어야 한다
거미는 내가 지나가는 것을 정확히 계산하고 거미줄을 쳤구나
떠돌이 날벌레 한 마리 거미줄에 걸렸다
체액을 모두 빨리고 빈껍데기로 바람에 나부낀 날
거미줄에 햇살이 반짝인다.
비의 속도
그때 비의 속도는 초속 1955km였다
알 수 없는 높이에서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지상에 떨어질 때 속도만 움켜줬다 속도에 갇히는 순간 모든 기억은 하얗게 사라졌다
담쟁이처럼 달라붙던 순애 앞에서 회색벽도 되어주지 못한
화살 맞은 다리로 절룩거리며 저자거리를 헤매던
해당화만 보면 일상의 초점이 풀리던
역마살과 방랑기를 평생 구분 못했던 무지몽매가
꿈처럼 사라졌다
속도가 베푼 세상이다
가시 돋친 푸른 가지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것도
땅바닥을 기던 애벌레가 나비 되어 어머니의 하늘을 나는 것도
별빛 머금은 비의 속도에 갇힌 세상이다
투명하게 지상에 안착했다
한 무리의 별들이 투두둑 지상으로 넘어오는 밤
산과들 염원의 강가에 꽃들이 반짝반짝 피어난다
벚꽃
아이들이 웃고 있어 철부지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목젖이 보이도록 웃고 있어 눈이 부셔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면 앞 다투어 매점으로 뛰어가는 소리 같은, 수학선생님이 미적분을 풀어내듯 잠시 첫사랑을 풀어놓을 때 초롱초롱 눈빛 같은, 반 대항 농구시합에서 역전 골을 넣었을 때 환호성 같은
걱정 하나 웃음 하나 걱정 둘 웃음 둘 걱정 셋 웃음 셋… 세어보라 하는 거 같아 끝까지 셀 수 있어 물어보는 거 같아
사랑하다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사랑을 하고 깔깔깔 웃다 죽은 사람은 죽어도 깔깔깔 웃고 수학여행 가다 죽은 아이들은 죽어도 수학여행을 가는 중이지
철부지는 철부지들이지 해마다 깔깔깔 수학여행을 가고 있지
저수지가 보이는 식당에서 잠시
잠시라는 것도 보인다는 것도 들판의 문제다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헤어졌는지
문득 들판의 문제다
어느 봄날 민들레꽃을 한없이 보고 있었던 것은
노랑나비가 앉아 있는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냇물의 소리는 부딪치는 소리라서
나보다 맑다고 생각했다
다 들판의 문제다 지금은
겨울 들판에서 저수지가 보였을 때 기러기는 저공비행을 한다
저수지가 보이는 식당에서
서너 명씩 너덧 명씩 식탁에 둘러앉았다
일인용 식탁은 없고 사인용 식탁에 혼자 식사하는 경우는 있다
잠시 뭔가가 보일 때 얼른 봐두자
꽃이 피는 곳은 어디고 나무는 어디로 걸어가는지
나는 아직 늙어서
손에 굳은살이 두툼한 사람들과 식사를 한다
괘종시계 초침소리가 잠시 멈춘다
적이다
좌 자 있으면 좌빨 적이다. 좌측통행하는 놈들 적이다 좌판 펼쳐 놓고 장사한 놈들 적이다. 좌약 넣은 놈들 적이다 신호등 따라 좌회전 한 놈들 적이다 전철에서 좌측에 앉은 놈들 적이다 군대에서 포경수술 잘못해 오줌발 좌측으로 튕긴다는 그 시인 적이다.
우 자 있으면 우꼴통 적이다. 우병오 적이다 우레탄 장사 하는 놈들 적이다. 우리라고 하는 놈들 적이다 우등상 받은 놈들 적이다 중국식당에서 우동 먹은 놈들 적이다 물론 전철에서 우측에 앉은 놈들 적이다 우시장에서 우거지 국밥장사 했다는 우식이 엄마 적이다
나는 엄밀히 말해서 나름 낭만적이다
폭염
등골이 오싹하다
온 산하 초목이 벌벌 떤다
매미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시장에서 폐지 줍던 최씨 병원으로 실려갔다
푸성귀 진열하고 파 다듬고 열무 다듬던 노점 할머니들은 전멸이다
말라붙은 강은 유적이 될 것이다
물고기들은 화석으로 발견될 것이다
빈 호수에서 달의 흔적을 뒤적이는 슬픈 사내도 사라질 것이다
포도나무는 다시 그림자 없이 경전에서 읽힐 것이다
빙하의 눈물 뚝뚝 떨어질 때마다
해안 절벽을 부서져라 때리는 파도에서 종소리가 들린다
폭염 너머 폭염
폭염에서 섬뜩한 냉기가 흐른다
간담이 서늘하다
오후 여섯 시 무렵
비탈에 선 상수리나무가 곧은 자세로 슬쩍 등을 보인다
저녁 강의 물결처럼 이파리가 반짝인다
똑같아 보이지만 다 다른 이파리들
걸음을 멈추고 반짝이는 이파리를 보고 있다
햇살이 산 너머 능선을 기웃거릴 때
멧새 한 마리 상수리나무 부드러운 가지에 포르르 날아들어 몇 번 깃털을 가다듬더니 이파리가 된다
누룩뱀 한 마리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기웃기웃 기어오르더니 그 옆에서 이파리가 된다
들바람은 들에서 불고, 산바람은 산에서 불고
바람은 불어온 곳이 있어, 바람은 불어 갈 곳이 있다
마주치면 거수경례하는 아파트 후문 경비 아저씨
납품한 물건 값 한 푼 주지 않고 부도낸 성남물산 정 사장
노점상 강 씨. 친목회 박 총무. 전동 휠체어 타는 동민 아버지. 슈퍼 하는 최 씨. 생선집 오 사장. 희망수선집 과수댁
오후 여섯 시 무렵 상수리나무 이파리가 바람결에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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