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문학상
제12회 리토피아문학상 수상자 유시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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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유시연 작가
수상작품집―유시연 기행에세이 『이태리에서 수도원을 순례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서'
수녀원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한다. 지나간 인생이 한순간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이십대는 예민하고 고민이 많은 나이였다. 이십대 중반에 다른 삶을 꿈꾸었다. 삶에의 환상성과 현실과의 괴리감에서 오는 부조화는 심신을 허약하게 만들기도 하고 병약한 섬세함과 예민성은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로버트 푸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 키에르케고르의 ‘단독자’,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서’에 심취하고 매몰되기도 하며 청춘을 낭비하기도 한다.
원장 수녀의 허락으로 점심 저녁을 수녀님들과 같이 한다. 식사가 끝나고 원장수녀의 요청으로 방명록 노트를 작성한다. 예전 한솥밥을 먹던 신분으로 몇 줄 글을 쓰고 끝 부분에 다음과 같이 넣으라고 이냐케 수녀님이 옆에서 거든다.
노老수녀가 부엌을 마무리하는 가운데 옆에서 기다리는 이냐케 수녀와 막달라마리아 수녀, 아오가 신경이 쓰여 숨도 쉬지 않고 한 장을 채운다. 하느님, 찬미 영광 받으소서.
오래 전 하느님의 신부新婦로 살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FMM으로서 프란치스칸의 정신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저에게 다른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청원기간이 끝나고, 저는 제 뜻이라 생각한 그 길을 갔습니다. 긴 시간 돌고 돌아 이제 로마 관구 창립자 어머니의 영혼이 숨쉬는 수녀회에 왔습니다.
아침에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는데 짧은 순간 제 인생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세속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제 인생의 허리를 지나는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이십 대는 예민하고 저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에 몰입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더욱 단단하고 성숙한 인격체로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이끌어주셨구나, 하는 것을요.
로마 FMM 수녀회에서 33년 전의 이냐케 수녀님을 만나 얼마나 기쁜지요. 친정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고 푸근합니다. 수녀님들은 수녀님들대로, 저는 또 현실 속에서 각자 다른 길을 걸었지만 결국 하느님의 자녀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X Pre-novice FMM 1983 부산 Lea Yu
다음날 아침, 수녀들이 교황님을 알현하러 단체로 외출하고남아 있던 이냐케 수녀님과 작별을 한다. 힘차게 포옹하며 아쉬운 이별을 고한다. 일생동안 여기를 기억하세요. 일생동안 여기를 기억할 거예요. 이냐케 수녀가 말하고 내가 대답한다.
현관문 앞에서 그녀는 오래오래 미소를 띄며 배웅을 한다. 그녀는 말했다. 로마에 오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레아 이름을 찾으면 여기에 있어요. 내 이름이 수녀원 명부에 있다는 이냐케 수녀의 말에 가슴이 뭉클 미어진다.
‘잃어버린 길을 되찾아서’ 로마에 온 후 나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생각한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두 길을 다 가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오랫동안 서서 한 쪽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곳으로 바라다 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쪽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우거지고 발자취도 적어 누군가 더 걸어가야 할 길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갈래 길에는 똑 같이 밟은 흔적이 없는 낙엽이 쌓여 있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하지만 길은 길로 이어지는 것이기에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먼 훗날에 나는 어디엔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했노라고
그래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푸르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읊조리며 잃어버린 내 청춘의 한 모퉁이에 기대어 서 본다. 꿈이었을까.
심사평
문학의 ’가치와 필요‘에 대한 근본적 성찰의 울림
매체media의 변화는 단순히 수단(혹은 통로)의 변경에서 끝나지 않는다. 아니, 않았다. 수많은 미디어와 미래학자들이 조만간 ’매체의 특성‘이 그 안에 담긴 내용의 모든 특별함을 초월할 것이라고 장담했을 때도, 사실 문학은 유서 깊은 제도와 든든한 지지층(소위, 식자층識者層이라 일컬어진 교양인)을 바탕으로 그 예견과 변화를 무시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깊은 이면에는 문학은 인간의 가장 소중한, 아니 ‘인간성’의 중요한 특질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주지하는 바처럼 미디어는 수단이라는 표면을 금방 벗어 던지고 사유와 존재의 방식으로까지 변형되었다. 즉, 활자는 아무리 시각적 이미지, 주로 활자와 사진을 사용하더라도 시청각의 동시성을 구현하는 영상 매체와 경쟁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정말 매체의 변화라는 좁은 의미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상 매체의 노출 빈도가 활자로 형성된 작품의 성취도를 결정하는 사태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사족이 길었지만, 그래도 문학은 그것이 성립되었던 기원과 근본으로서의 자기 조건을 잃지 않았고, 또 그것을 잊지 않으려는 작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늘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 단순히 매체 변화에 의지해 고루한 내용을 재생해 비슷한 것의 다른 편집을 통해 시청각을 기만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똑같아 보이는 활자에 생기生氣를 부여하는 개성적인 방식으로 매 순간 새롭게 살아나는 작품들이 여전히 산출되고 있다.
유시언 작가는 2003년 《동서문학》을 통해 소설가로 등단한 이후, 개성적인 단편과 여러 편의 장편을 발표하면서 이미 자신의 문체와 시각을 널리 인정받은 작가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리토피아문학상’은 원래 장르의 구분 없이 우리 문학의 지평을 확대하거나 깊이를 심화하거나, 또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하는 도전적인 자세에도 흔쾌히 문을 열어왔다. 이번에 선정한 『이태리에서 수도원을 순례하다』는 유시언 작가의 기행에세이로 ‘에세이’라는 장르에 처음 수여되는 경우라 할 수 있다. 시인은 기행이라는 전제에 충실하게 기억에 담아두고 싶은 장면들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다시 사진과 글의 위상을 놓고 다툴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작가가 강조하는 것은 ‘기행’이 정보의 획득이나, 또는 그 사실의 확인이 아니라는 젓이다. TV 채널 수십 개에서 하루에도 수백 개 이상의 여행이나 탐방, 방문기가 넘쳐난다. 그러나 이 정보의 홍수 속에 정말 있어야 할 인간의 정서적 호응이 관례나 의식적으로 변해 버린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반해 작가는 많은 정보가 아니라 생과 삶의 현존재로서 자기와 거기 먼 이국의 땅, 아니 영혼의 지향점 같은 곳의 존재들과의 상호 교감을 예민한 더듬이로 탐색하는 조용하고 신중한 작업을 보여준다.
이번 ‘리토피아문학상’은 문학의 ‘가치와 필요’가 초연결의 시대라는, 아니 메타버스라는 전자적 시청각적 가상현실의 세계에서도 사람의 육체로 쓰는 글이 어떤 위상을 확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의 작은 대답이나, 혹은 더 큰 질문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장종권(글), 남태식, 김영덕
수상소감
영광스러운 상을 받아 기쁩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리토피아를 위해 긴 시간 헌신해온 장종권 대표님과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좋은 작품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정말 좋은 작가들이 참여하여 수준 높은 작품들이 거쳐간 지면입니다. 문학잡지가 자생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이토록 계간지로서 튼실한 나무로 성장한 리토피아와 함께 할 수 있어서 좋고 큰 그늘과 숲을 이루는 예술잡지가 되리라 믿습니다./유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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