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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문학상

제15회 리토피아문학상 수상자 정치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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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토피아
댓글 0건 조회 82회 작성일 25-12-25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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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리토피아문학상

수상자 정치산 시인


수상작품 「새한서점」 외



새한서점*



극과 극이 만나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나 방금 극을 만났어요. 반짝 불이 들어왔어요.* 


그녀의 댓글에 그가 꽂힌다. 신문이 던져지고, 그녀의 시간이 거꾸로 돌아간다. 책과 책장이 돌고 거짓말들이 쫓아온다. 두 개의 시계가 반대 방향으로 돌고 오후 4시 그와 그녀가 만나는 순간이다.

번쩍! 극과 극이 헤어진다. 화들짝 놀란 그녀의 시간은 흘러가고, 그의 시간은 되돌아가는 순간이다. 그녀와 그가 시간의 파도에 부딪힌다. 태양과 달이 교차한다. 

그가 안드로메다 행성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번쩍! 불이 들어오고 그가 뽑힌다. 복제된 메텔*이 그의 손을 이끈다. 그녀의 손에 이끌린 그가 작아진다. 내일로 기차를 타고 안드로메다 행성으로 출발하려는 순간,

번쩍! 불이 꺼지고 책장과 책장 사이 그가 졸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는 찰나 창틈으로 뜨거운 태양이 비춘다. 순간 구석에 있던 책들이 숨을 쉰다.


* 새한서점 : 인터넷 중고서점.

* 카카오 스토리에 올린 새한서점 사진에 김보숙 시인이 단 댓글.

* 메텔 : 만화 『은하철도 999』에 나오는 여주인공.




말의 거미줄



문장을 늘이며 거미줄을 치는 건 고래가 걸려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툭 걸치기에는 무거운 고래들이 가볍게 날아오르기를 기다린다.

문장을 늘이며 거미줄을 치는 건 툭 내뱉는 말이 무거워서이다.

문장을 늘이며 거미줄에 걸쳐 놓는 건 말을 빙빙 돌리기 위해서이다.

어지럽게 빙빙 돌려 엮은 말을 거미줄 위에 올려놓고 혹하길 바란다.

말의 파도가 몰아쳐서 문장이 출렁이면 도망가는 말꽃을 잡는다.

툭 걸쳐 놓기엔 말이 너무 무거워 문장을 길게 늘여 거미줄을 친다.




속삭이는 돌

―들꽃요양원·34



그와 그녀는 두 개의 입술을 가지고 있네.

그들은 하늘과 땅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돌을 날리네.

그들은 바다와 행성이 서로 통하기를 바라지.

그는 땅에 입술을 두고 그녀는 하늘에 입술을 두네.

속삭이는 돌이 빛나기 시작하면 그와 그녀의 대화가

하늘과 땅에서 바다와 행성에서 통화를 시도하지.

주변의 귀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대화는 왼쪽으로 기우네. 

그대에게 전하는 비밀의 메시지, 늘어난 귀들이 가로막네.

그와 그녀의 입술이 가까워지고 속삭이는 돌이 다시 빛나기 시작하네.

그들이 속살거리는 비밀의 말들이 우르르 날아가 늘어난 귀들을 후리고 가지.

바다가 행성과의 통화를 시도하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비밀들이 그와 그녀의 동굴 속으로 우르르 쏟아지네.

그들은 세 개의 구멍과 세 개의 굴을 가지고 있지.

속삭이는 돌들이 두 개의 구멍 속으로 숨어버리네.

비밀스런 입술이, 숨어 있는 돌들을 더듬거리네.




쉿!



하늘의 문은 시인의 놀이터요, 지상의 문은 인간의 놀이터라고 큰소리쳤다.


자다가 봉창 두드리며 돌다리 두드리던 시가 손가락이 부러져 돌아왔다.


맨날 남의 다리만 긁던 시가 거북이걸음으로 오다가 호랑이 걸음으로 왔다.


천둥 치고 억수장마 쏟아지는데 시를 훔쳐 용솟음쳐 오르는 이무기가 있다.




천안천화千眼千話



그의 손에서 천 개의 꽃이 피어납니다.

그의 어깨에서 천 개의 말이 피어납니다.

잘라도 다시 돋아나는 꽃들이 피어납니다.

잘라도 다시 돋는 말들이 날개로 핍니다.

날개로 핀 말들이 천 개의 문을 만듭니다.

시간을 멈춘 벽에 문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문밖에서 다시 시간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의 어깨는 말들이 드나드는 문.

닫아도, 닫아도 자꾸만 열리는 그의 어깨에서

말문이 열립니다. 말문이 트입니다.

그대가 돋아납니다. 그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실연實演은 길었고 나는 짧았다




불어온 건 바람인데 감겨온 건 너다. 뒤척인 건 바단데 내가 흔들린다.

하늘이 뒤척일 때에 바람이 일고 바다가 뒤척일 때마다 내가 흔들린다.

세 줄짜리 시를 길게 읽고 있는, 와불상 앞에서 긴긴 시를 잠깐 읽는다.

낙가산 보문사에서 그림자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오던 해가 나를 읽는다.




선정평

터는 말, 터뜨리는 말, 터지는 말



“시는 뜻을 표현한 것이니 마음속에 있으면 뜻(志)이 되고 말을 하면 시가 된다詩者, 志之所之也, 在心爲志, 發言爲詩.”(「모시서毛詩序」 중에서, 『시경詩經』, 정상홍 옮김, 을유문화사, 2014, 32쪽) 2025년 열다섯 번째로 시상하는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시인으로 정치산 시인을 선정하였다. 


정치산 시인은 2011년 등단하여 그동안 『바람 난 치악산』과 『그의 말을 훔치다』라는 두 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첫 시집에 이어 두 번째 시집을 거쳐 최근까지 시인이 일관되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말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시가 되는 말이다. 


첫 시집에 수록된 연작시 「들꽃요양원」에서의 말은 터는 말이다. “빛나기 시작”하는 “속삭이는 돌”, “우르르 날아가 늘어난 귀들을 후리고 가”는 “속살거리는 비밀의 말들”, “그대에게 전하는 비밀의 메시지”는 70-80여 년을 살아오면서 숨겨두었던 한이고 고통이면서, 내비칠 수 없었던 꿈이다. 


이 말들은 입말로만 아니라 몸의 말로도 전해진다. 한도 끝도 없이 털어내는 말들은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감당이 어려운 터에 시인은 이 말들을 끝까지 참고 들으면서 묵묵히 받아낸다. 


연작시 「낙서」로 이어지는 두 번째 시집에서의 말은 터뜨리는 말이다. “휘어진 시간과 꽃들의 울음을 잡아내는 것도” “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꽃피는 것 잡아내는 것도” “은하수를 걷어내고 하늘의 소리를 잡는 것도 시인이”(「낙서ㆍ1」 부분)라서 이 말들을 농담과 진담을 구분할 수 없는 가십의 형식을 빌려 드러낸다. 


하지만 어떤 형식을 빌리든 시인이 전하는 방식은 시여서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심지어 표제시가 된 연작시 「그의 말을 훔치다」에서는 훔쳐서 내어놓기까지 하는데, “손”과 “어깨”에서 피어나는 이 “천 개의 꽃”과 “천 개의 말”은 “잘라도 다시 돋아나” “피어나”는 “꽃들”이고 “날개로 피”는 “말들이”다. “문장을 늘이며 거미줄을 치는 건 고래가 걸려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최근의 시들에서도 시인의 말에 대한 관심은 꾸준하게 이어져 오고 있는데 최근의 시에서 보이는 말은 자연스레 터지는 말이다. 그의 말도, 너의 말도 아닌 나의 말이다. 시인이 그와 너를 거쳐서 드디어 나에게까지 이르렀다는 고백이다. 그나 너라는 밖에서 나라는 안으로 향하는 시선이다. 


이 시선은 가만히 들여다보는 내 안의 말로 “하늘의 문은 시인의 놀이터요, 지상의 문은 인간의 놀이터라고 큰소리”치다가 “손가락이 부러져 돌아”온 “자다가 봉창 두드리며 돌다리 두드리던” “맨날 남의 다리만 긁던 시”다. 그동안 시작詩作의 지지부진으로 깊고 길었던 시인의 고민을 본다. 하지만 이제 시인은 기지개를 켠 듯하다. 마냥 “흔들린”다고까지 한 고백의 뒤편에 “시가 거북이걸음으로 오다가 호랑이 걸음으로 왔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시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고 하지만 말머리에서 인용한 「모시서毛詩序」에서의 시 풀이는 이렇게 이어진다. “감정이 마음속에서 움직여 말로 나타나고, 말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탄식하고, 탄식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노래하고, 노래로 부족하면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춤을 추고 발로 뛰는 것이다 情動於中而形於言, 言之不足, 故嗟歎之, 嗟歎之不足, 故永歌之, 永歌之不足, 不知手之舞之足之蹈之也.” 시를 지칭하든 아니든 아마도 시인의 시를 향한 마음은 이러할 것이다. 


정치산 시인의 리토피아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이제 다시 “호랑이”처럼 왔다는 시심을 꽉 잡아서 “천둥 치고 억수장마 쏟아지는데 시를 훔쳐 용솟음쳐 오르는 이무기”처럼 “용솟음쳐 오르”기를 기원한다./남태식(글), 장종권, 손현숙




수상소감

다시 빛나는 날개를 펼쳐 보리라



오랫동안 시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와 주저앉을 때마다 시가 힘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조금씩 시를 멀리하고 갱년기 우울증과 불면증에 잠식당하며 시가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농사를 시작하면서 몸 쓰는 일이 많아지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어서 불면증도 줄고 갱년기 증상도 완화되었다. 다시 시를 쓰겠다는 마음은 있지만,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렇게 시에서 점점 멀어지는 시기에 ‘리토피아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이제 다시 맘 잡고 예전의 열정으로 시를 열심히 쓰라는 격려로 이 상을 주시는 것 같다. 이런저런 변화 없이 그저 흘러가던 일상에 반짝 반딧불이를 만났다.


작은 불빛으로 어둠을 밝히며 다시 빛나는 날개를 펼쳐 보리라 다짐해 본다. 기나긴 갱년기 우울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내게 다시 날아오를 힘을 주신 리토피아 장종권 주간님을 비롯한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정치산




작품론

4원소의 상상력으로 실존적 불안을 노래하는 시인


정치산의 시들은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묻는다. 탈레스라는 철학자는 ‘물’에 주목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중요시했다. 이 두 요소는 지구상의 생명들이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다. 여기에 또다른 요소 ‘흙’과 ‘공기’를 추가하여 4요소로 정립한 철학자가 엠페도클레스이다. 불교에서도 물, 불, 바람(공기), 흙을 4대 요소로 보고 있다. 이런 관점을 견지한 철학자들은 우리의 불안과 스트레스의 원인을 4원소의 부족으로 파악한다. 이 4원소가 우리와 건전한 소통을 하며 하나로 어우러져 있을 때, 우리가 실존의 불안에서 벗어나 완전한 행복의 경지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산의 시적 상상력은 이 4원소와의 온전한 화합을 통해 실존의 불안을 극복하려는 고행苦行의 여정을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그의 시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바람(공기)’의 상상력이다. ‘바람’은 화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이면서, 화자의 삶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것은 ‘바람’이 시적 주체들의 삶을 소통과 완전으로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발생하고 있다. 다음 시를 보자.


불어온 건 바람인데 감겨온 건 너다. 뒤척인 건 바단데 내가 흔들린다. 하늘이 뒤척일 때에 바람이 일고 바다가 뒤척일 때마다 내가 흔들린다. 세 줄짜리 시를 길게 읽고 있는, 와불상 앞에서 긴긴 시를 잠깐 읽는다. 낙가산 보문사에서 그림자를 끌고 터벅터벅 걸어오던 해가 나를 읽는다.

―「실연實演은 길었고 나는 짧았다」 전문


이 시에는 ‘바람’, ‘바다(물)’, ‘해(불)’의 3요소가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가 ‘흙’으로 빚어졌다는 신화들을 수용한다면, ‘흙’의 요소도 이미 융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그 자체가 ‘흙’의 한 요소로 빚어져 있으며, 결국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의 주체인 ‘나’와 ‘너’는 ‘흙, 물, 불, 공기’의 4요소로 둘러싸인 존재이며, 그 실존은 4요소의 영향권 안에서 흔들린다. 그런데 이 시에서 ‘바람’은 ‘불안’을 야기시키는 존재이다. 그것은 ‘나’와 ‘너’의 소통을 불안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세 줄짜리 시를 길게’ 읽고, ‘와불상 앞에서 긴긴 시를’ 읽는 행위는 그 소통의 통로를 찾으려는 노력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기서 ‘시’는 ‘삶’의 또다른 이름이며 ‘실존’의 현현顯現인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 시의 궁극적인 핵심 이미지는 ‘시’이다. 그의 시는 시에 대한 시, 즉 메타포엠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시’의 이미지에 대해 천착하고 있다. 가령, ‘자다가 봉창 두드리며 돌다리 두드리던 시가 손가락이 부러져 돌아왔다(「쉿」 중에서)’거나, ‘문장을 늘이며 거미줄을 치는 건 고래가 걸려들길 바라는 마음에서다(「말의 거미줄」 중에서)’ 등에서도 ‘시’를 만들고 시를 살아내기 위한 고민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시를 사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시인에게 있어서 시는 그의 실존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 대한 고민은 실존에 대한 고민이고,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몸부림이며, 그것을 위해 4원소의 조화와 융합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상상력의 모습이 잘 드러나고 있는 시가 「속삭이는 돌」이다. ‘그들은 하늘과 땅이 서로 대화할 수 있는 돌을 날리네’, ‘그들은 바다와 행성이 서로 통하기를 바라지’, ‘바다가 행성과의 통화를 시도하네’, ‘하늘엔 온통 그들의 메시지가 가득하지만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네./바다와 행성은 아직도 불통이네.’ 같은 문장은 그러한 시인의 고민과 고행의 흔적이다. 이렇게 ‘시 쓰기’에 대한 천착과 고민을 통해 인간의 실존과 소통에 대한 차원으로까지 상상력의 확산을 이뤄가는 힘은 정치산 시인의 개성이고 힘이다./강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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