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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토피아문학상

제4회 리토피아문학상 수상자 하두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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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탄
댓글 0건 조회 2,357회 작성일 14-08-11 20:04

본문

 

 

리토피아문학상 수상자

하두자 시인

1998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 물수제비 뜨는 호수, 물의 집에 들다, 불안에게 들키다.

 

수상소감

내 서툰 길에 늘 보일 듯 말듯하던 이정표, 시

 

여전히 허둥거리며 고치다가 부수고 하는 리모델링하는 시간, 좀처럼 발전이 없는 미숙한 모습에 절망하고 빈곤한 재주를 탓하며 그냥 변방에서 놀기로 했던 날들, 다만, 창밖을 보며 땅속으로 파고드는 빗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눈 맞추거나, 원색의 색실로 침대시트며 커텐을 만들거나, 곡예 하듯 스며드는 체리나무 바닥 붉은 후추알이 굴러다니는 어수선한 주방에서 나와 내가 타협하는 법을 익히며 놀던 겨울날, 날아 온 한 소식…….

 

망설이고 주저하는 나에게, 의지가 약해 날마다 포기하고 주저앉을 적마다 더 마음 무겁게 낯설고 험한 길을 가르쳐 준, 몇 번의 계절을 함께 보낸 슬픔과 기쁨 분노까지 꼬박꼬박 전해주던 나의 동료이자 스승이었던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언제나 미궁이었고 언제나 막막했던 내 서툰 길에 늘 보일 듯 말듯하던 이정표, 처음 시를 만났을 때의 흥분과 긴장, 불면과 고통, 사랑과 슬픔들이 생생하게 생각난다. 늘 버거웠던 감정의 작용과 반작용으로 쉽게 도달 할 수 없었던 언어의 길, 나는 아직도 너무 많이 허기지다. 책상 위에서 태어난 말들이 모처럼 텅 빈 내 가슴을 감싸 안아줄 것 같은 날이다.

격려하는 뜻으로 주신 상, 두렵지만 조심스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습니다.

수상자 하두자

 

 

 

심사평

 

 

하두자 시인은 통속에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고독한 언어로 자신을 탐구해가는 시인이며, 복잡한 현실보다 더 복잡한 내면의 세계에서 그만의 논리를 만들어가는 시인이며, 자유로운 언어와 그 조합을 통해 새로운 시의 미래를 열어가는 시인이며, 세태에 흔들리지 않고 시의 위의를 지향해가는 준엄하면서도 따뜻한 시인입니다. 리토피아 창간 시부터 리토피아를 지켜온 리토피아의 가족이기도 하다.

제1회 수상자 김승기 시인, 제2회 수상자 남태식 시인, 제3회 수상자 김영식 작가에 이어 제4회 리토피아문학상 수상자로 하두자 시인을 선정했다. 지난 해 1년 동안 발표한 작품 중 수상작품 「떠도는 섬에 관한 변명」 외 9편은 그 작품성에 있어서도 녹녹치 않은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아무쪼록 하두자 시인의 시세계가 더욱 폭넓은 시각과 필법으로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강우식, 고명철, 장종권(글)

 

 

 

 

떠도는 섬에 관한 변명

 

 

반쯤은 열어 놓은 바다가 있지

서로의 등을 어루만지는

두 개의 섬

 

낯선 곳에서부터

먼 바다로부터

물길 가득한 경계를 지우고 왔지

 

살아서 마주치는

붉은 혹은 푸른 그리움을

내려놓지 못하고 떠돌다 잃어버린

저녁나절

 

마음의 뿌리는 늘 젖은 채로

길을 내고 있었지

우린 푸른 혹은 붉은 섬을 사랑했지만

사실 우리들의 아름다운 끝은 거기쯤,

 

누가 절벽 꼭대기에서 이름을 부르나요?

앞 다투어 자리를 바꾸던 어둠의 지느러미에

슬쩍 마음 뺏긴 땅에 발붙이지 못하고

 

나도 누군가의 섬이 되어

넘치는 거품들만 머물 수 있는,

한 방울 거품이라도 품을 수 있을까

불안한 가장자리 끝, 닳을 수 있을까

 

파도만 줍는다

 

 

 

 

가만가만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려

 

 

눈은 내려

가만가만 내려

따뜻한 식탁이, 잦은 폭설에 갇힌

 

펄펄 끓는 물에 하얀 국수를 삶아 건져 올려

차가운 물에 헹궈 소반에 올려 놓고

 

저 먼 길, 길을 내어 타박타박

떠나고 싶었어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었어

 

잘 우려낸 달큰한 멸치장국에

양념장을 곁들여 내는

잔치, 잔치 국수가 무럭무럭 수증기를 떠 올릴 때

 

풀풀 날아다니는 흰나비 떼

눈은 거침없이 내리고

저리도 서러운 몸짓으로 부딪치는데

 

노오란 지단과 하얀 지단 채 썰어 올려놓고

더운 국물 국자로 퍼서 한 사발 말아 올리면

거짓말처럼 어우러지는 배고프고 추운 것들의 아우성

 

하늘은 잿빛으로 기울어 어둑한 오후를 넘어가고

창문으로 몰리는 흐릿흐릿한 눈발

낭자하게 차오르는 하얀 피가 눈을 찔러

 

눈발에 묻혀가는 저 발자국 따라

기울어 가는, 목이 멘 마음

날개를 버리고 날아가고 싶었다고 그러나

 

쉿, 말하자 마 그리고 묻거들랑

잘못 들었다고 가볍게 휘파람을 불어줘

 

 

 

 

꼭, 꼭, 숨바꼭질

 

 

이제 우리 그만해, 사라지는 속도를 배웅하며, 골목 끝 너의 머리카락이 보여도, 너의 옷솔기가 보여도, 뒤돌아서 못 본 척 할 거야, 이제 그만 놓아줘, 숨은 그림 찾기, 나에 대한 기억이 어두워지면 그만 돌아가, 외면하는 방법은 이미 터득했잖아, 모서리가 세 개인 뾰족한 삼각형처럼, 널 찔러대는 기억이 지워지면 좋겠네, 방명록에서 헐렁거리는 구두 한 짝 버려도 좋아, 실핏줄은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쓰다듬던 손은 가시 덩굴손이 되어 담벼락을 휘감아 올라가고, 아, 난 소리도 잃고, 어둠을 뱉어내고, 넌 빨판처럼 날 불러대고, 나를 삼키고 떠나버린 눈먼 고양이, 목덜미를 눌러대는 갸릉대는 웃음소리, 골목들이 수군거리고 길을 비키네, 사라지고 싶던 날의 연속이었어, 눈치 채고 있었지? 그래 때론 살고 싶었어, 서둘러 빠져 나온 새벽안개 얼굴같이, 조금씩 지워지고 싶었어, 안개는 도대체 몇 개의 서랍을 감추고 있는 걸까, 얼룩과 추억에 대해 안개는 오리발을 내밀지, 너도 제발 어디든지 사라져 버려, 어제는 지겨웠고 오늘은 씁쓸했어, 함께한 날들이 하루보다 짧았다고 해야겠어, 까만 안경을 쓴 채 나는 붉은 달력 속으로 꼭꼭 숨고 말거야.

 

 

 

 

벚꽃 또는 분분한 오해에 관하여

 

 

벚꽃들이 봄날을 걷고 있다 

지천의 꽃잎들을 후후 불며

 

촘촘한 그늘 아래 슬쩍,

입술을 포개기 전 당신의 메일이 도착했다 

 

나도 벚나무에 스며들듯

그림자는 그림자 속으로 기울어지는 오후

그 너머의 풍경이 궁금해진다

 

속살들이 부풀어 오를 때

당신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방이 있었다고

말했던 게 당신이었나요

 

주머니에서 손을 빼지 않는 채

안녕,

나는 벚꽃 그늘 밖으로 자꾸 미끌어지고

 

한때

레몬처럼 새콤했지만,

호의적이지 못했던 저녁,

 

벚꽃 지천으로 흩날리고 

스르르 흘러가는 몸과 마음을

당신의 그늘 속으로 슬쩍 밀어 넣어 볼까요

가지 사이로 지느러미 환한 햇살같이,

 

저물녘

마음 허물지는 것인지, 후후 벚꽃이 흩날리는 것인지

우리 모두 안녕,

 

 

 

 

수족관, 어류도감

 

 

거대한 혁명 군단처럼 밀고 들어와 정박한

방이 있다

 

서로의 입술을 나누며 인사하던 아침에

해변을 따라 신발을 한 짝씩 들고 떠돌던 밤에

 

바닥이 흥건했다 수조에서 퇴출되어버린 황량한 아가리를 벌리고

 

심연에 내려놓은 닻을 걷어 올리면

고요한 수면

겹겹의 파도의 옷을 입고

 

헤엄을 쳤다 물컹한 슬픔을 태우고

해일이 덮치는 순간, 반질거리는 햇살을 받아먹으며

 

나는 부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물결 위로 드러난 당신의 어깨 너머

휘어진 노을에 갇힌 푸른 방에서

 

유리벽 위에 도감을 펼치자 문을 닫고 사라지는 검은 물고기 떼

툭툭 불거지는 흉터자국

 

쉴 새 없이 뱉은 말로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내 몸을 질러나간 그 세찬 물결에

 

당신을 항해 펼쳐진 아가미는 어느 항만을 통과하는 것일까

 

 

 

 

엿보다

 

 

저장 파일을 열어 그림자를 엿본다

창에 비쳐본다 이제부터 거울을 난간에 걸어 둘 것이다

너의 흔적들과 함께

거울 속에 너무 오래 머물 생각은 없다

 

달빛이 쏟아지기 전

나를 따라오던 그림자들이 구겨지기 전

뜨겁게 구워진 해를 삼킬 수만 있다면

 

스며드는 또 하나의 하루

낮과 밤의 얇은 틈 사이로 둥글어지기를 바라면서

그 먼 하루를 물어뜯기기 전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내 몸 어디엔가 쌓이는

복잡한 행간들

오른손으로 왼손을 비벼본다

 

그림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누구를 위한 볼록거울이었을까

 

거울 속에서 끌려오다 흩어지는 뜬소문에

그림자는 더 무거워지고

그림자는 더 깊어가고

 

내가 도달할 수 없는 곳을 몰래

바람이자 꽃이자 자동차처럼

저장파일 속으로 또 다른 당신과 나를

깊숙이 집어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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