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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아라세계/신연수/인천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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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호/아라세계/신연수/인천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 (1)
신연수
인천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들 (1)
인천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은 많다. 특히 현재 인천의 일부로 편입된 강화의 경우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으로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 200년 가까이 번성했으며, 또 조선시대에도 병자호란 때도 난을 피해 강화로 옮겨간 많은 사람들이 순절한 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에 많은 문인들이 강화와 관련된 많은 시를 남겼다. 그리고 1883년 개항이후 신문화, 신문물들이 인천으로 유입되면서 인천은 개항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또 놀이문화가 발전되지 않았던 일제강점기 인천 월미도는 유원지로 이름을 날려 경성 등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는데 그렇게 인천을 다녀간 문인들의 작품 속에 인천이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 중 널리 알려진 사람이 김소월과 김동환을 비롯한 정지용, 김기림, 박팔양, 박인환 등의 시인과 염상섭, 이태준, 이상, 채만식, 강경애 등 소설가들이었다.
인천을 소재로 한 작품 중 대표적인 것이 1927년 4월 인천에서 나온 문예지 『습작시대習作時代』 창간호에 실린 박팔양의 시 「인천항仁川港」이다. 박팔양은 경기도 수원 출신의 월북시인으로, 1946년 월북 전 『여수시초』와 『만주시인집』이라는 2권의 시집을 남겼다. 하지만 이 두 시집 어디에도 「인천항」이라는 시는 보이지 않는다.
조선의 서편 항구 제물포의 부두
세관의 기旗는 바다바람에 퍼덕거린다.
잿빛 하늘, 푸른 물결, 조수의 내음새
오오 잊을 수 없는 이 항구의 정경이여
상해로 가는 배가 떠난다.
저음의 기적, 그 여운을 길게 남기고
유랑과 추방과 망명의
많은 목숨을 싣고 떠나는 배다
어제는 Hongkong 오늘은 Chemulpo 또 내일은 Yokohama로
세계를 유랑하는 『코스모포리탄』
모자 삐딱하게 쓰고 이 부두에 나릴제
축항 『카페』로 부터는
술 취한 불란서 수병의 노래
오! 말세이유! 말쎄이유!』
멀리 두고 와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노래를 부른다.
부두에 산같이 쌓인 짐을
이리저리 옮기는 노동자들
당신네들 고향이 어데시요?
『우리는 경상도』 『우리는 산동성』
대답은 그것뿐으로 족하다는 말이다.
월미도와 영종도 그 사이로
물결을 헤치며 나가는 배의
높디높은 『마스트』 위로 부는 바람
공동환共同丸의 깃발이 저렇게 퍼덕거린다.
오오 제물포! 제물포!
잊을 수 없는 이 항구의 정경이여.
―「인천항仁川港」
『습작시대』 창간호에는 박팔양의 「인천항」이라는 시와 함께 김동환의 시 2편이 실려 있다. 「월미도 해녀요月尾島 海女謠」와 「그 애 못 본 날은」이라는 제목의 시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월미도 해녀들에 대한 시로, 1920년대까지는 월미도에서도 해녀가 활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라 하겠다.
놀 저물 때마다 멀어 지네 내 집은
한 달에 보름은 바다에 사는 몸이라
엄마야 아빠가 그리워지네.
진주야 산호를 한 바구니 캐서
이고서 올 날은 언제이든가
고운 천 세발에 나룻배 끌을 날 언제든가
보면 볼수록 멀어 지네 내 집은
엄마야 아빠야 큰 애기라 부르지 마소
목이 메어 배따라기조차 안 나오우
그 애 못 본 날은
홍합 따러 올 때는 제비나름 해 왔더니
갈 때는 소도 못 믿어 가겠네.
그 애 못 본 날은 오리가 십리
올 때 안은 바구미는 향불 핀 향로 같더니
갈 때엔 바다 속 차돌바위인 것 같네.
그 애 못 본 날은 치마무게로 한 짐 거리.
초저녁이라 산길패 왔더니
섬이 안 보이네, 월미도가 없어졌네.
하늘 치어다봐도 눈물에 달조차 안 뵈네.
―「월미도 해녀요月尾島 海女謠」
이 시를 쓴 김동환은 함경북도 경성 출신으로, 1925년 3월 최초의 장편 서사시인 「국경國境의 밤」을 비롯하여 「북청 물장수」, 「웃은 죄」 등으로 잘 알려진 시인이다. 그러나 인천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그가 어떻게 ‘월미도 해녀’에 대한 시를 쓴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월미도 해녀요」는 현재 인천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시의 하나가 되었으며, 그동안 주목을 받지 못한 「그 애 못 본 날은」도 「월미도 해녀요」 못지않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이보다 앞서 「진달래꽃」을 발표한 민족시인 김소월도 인천에 관한 시를 남겼다. 1922년 2월 『개벽』 제20호에 발표한 「밤」이 그 것으로 처음 발표할 때는 「제물포에서 밤」이었으나 그 후 시집에 실리면서 ‘제물포에서’라는 말을 빼고 단순하게 「밤」이라고 고친 것이다.
홀로 잠들기가 참말 외로워요
맘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
이리도 무던히
아주 얼굴조차 잊힐듯해요
벌써 해가 지고 어두운데요.
이곳은 인천의 제물포, 이름난 곳.
부슬부슬 오는 비에 밤이 더디고
바닷바람이 춥기만 합니다.
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
다만 고요히 누워 들으면
하이얗게 밀려드는 봄 밀물이
눈앞을 가로막고 흐느낄 뿐이어요.
―「밤」
비 내리는 밤, 제물포에서 떠나고 없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애뜻함을 잘 나타낸 작품이다. 「진달래꽃」 등 대표적인 시에서 잘 보여주고 있는 사랑과 이별, 그리움, 사무침 등이 잘 표현된 것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대표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대표하는 근대 시인의 한 명인 정지용이 1926년 6월 『학조學潮』 창간호에 처음 발표한 9편의 시 중에도 인천의 이국적인 정경을 그린 작품이 있다. 「슬픈 인상화」라는 시로, 당시 외국으로 떠나고 맞는 사람들로 정신없이 붐비는 축항의 모습을 정지용 특유의 감각적인 언어로 잘 표현한 작품이다. 정지용은 이 작품 외에도 「뻣나무 열매」 등 몇 편이 더 있는데 이 작품은 비교적 빠른 시기인 1920년대 인천을 그린 작품이다.
수박냄새 품어 오는
첫여름의 저녁 때…
먼 해안 쪽
길옆 나무에 늘어선
전등. 전등.
헤엄쳐 나온 듯이 깜박거리고 빛나노나.
침울하게 울려오는
축항築港의 기적 소리… 기적소리…
이국정조異國情調로 퍼덕이는
세관의 깃발. 깃발.
시멘트 깐 인도人道 측으로 사폿사폿 옮기는
하이얀 양장의 점경!
그는 흘러가는 실심失心한 풍경이어니…
부질없이 오랑쥬(오랜지) 껍질 씹는 시름…
아아, 에시리愛施利 · 황黃!
그대는 상해上海로 가는구료…
―「슬픈 인상화印象畵」
정지용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김기림 역시 인천과 관련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그 중 1934년 10월 『중앙中央』에 발표한 「해변시집」은 모두 8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시인데, 나중에 시집 『태양의 풍속』에 실릴 때는 「길에서- 제물포풍경」라는 제목으로 바꿔지기도 했다.
1. 기차汽車
모닥불의 붉음을
죽음보다도 더 사랑하는 금金벌레처럼
기차는
노을이 타는 서쪽 하늘 밑으로 빨려 갑니다.
2. 정거장停車場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성냥개비나
사공沙工의 『팍켓트』에 잇는 까닭에
바다의 비린내를 다물었습니다.
3. 조수潮水
오후 두시
먼 바다의 잔디밭에서
바람은 갑자기 잠을 깨어서는
휘파람을 불며 불며
검은 조수의 떼를 몰아가지고 항구로 돌아옵니다.
4. 고독孤獨
푸른 모래밭에 자빠져서
나는 불개와 같이 완전히 외롭다
이마를 어루만지는 찬 달빛의 은혜조차
오히려 성가시다.
5. 에트랑제(異邦人)
낯익은 강아지와 같이
발등을 핥는 바닷바람의 혓바닥이
말할 수 없이 새롭건만
나는 이 항구에 한 벗도 한 친척도 불룩한 지갑도 호적도 없는
거북이와 같이 징글한 한 『에트랑제』
6. 밤 항구港口
부끄럼 많은 보석장사 아가씨
어둠 속에 숨어서야
『루비』 『사파이어』 『에머랄드』의
그의 보석 바구니를 살그머니 뒤집니다.
7. 파선破船
달이 있고 항구에 불빛이 멀고
축항築港허리에 물결소리 점잖건만
나는 도무지 시인의 흉내를 낼 수도 없고
『빠이론』과 같이 지낼 수도 없고
갈가마귀와 같이 슬퍼질 수는 더욱 없어
상傷한 바위틈에 파선破船과 같이 참담慘憺하다
차라리 노점에서 임금林檎을 사서
와락와락 껍질을 벗긴다.
8. 대합실
인천역仁川驛 대합실의 졸리운 『벤취』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손님은 저마다
해오라비와 같이 깨끗하오.
거리에 돌아가서 또다시 인간人間의 때가 묻을 때까지
너는 물고기처럼 순결純潔하게 이 밤을 자거라
―『해변시집- 8월 25일 밤 인천 바닷가에서 주은 조개껍질들』
김기림은 모던한 시를 주로 쓴 시인으로,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으로 있으면서 신문에 이상李箱의 시 「오감도」를 연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연작시 역시 조선중앙일보사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실린 것인데 “메이드 인 아메리카”, “포케트”, “에트랑제”, “벤취” 등 당시로서는 생경한 외래어나 “바이런” 같은 외국시인의 이름을 사용한 것 등은 역시 시대를 앞서가는 모던함이 엿보인다.
같은 모더니스트인 박인환도 해방 후인 1947년 4월 『신조선新朝鮮』에 「인천항」이라는 시를 발표한다. 후에 신시론 앤솔러지로 발간된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도 실린 이 시는 해방공간 인천의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영국 식민지 홍콩과 닮은 인천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잡지에서 본 향항야경香港夜景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중일전쟁때 상해부두를 슬퍼했다.
서울에서 삼십 킬로를 떨어진 땅에 모든 해안선과 공통된 인천항이 있다.
가난한 조선의 인상을 여실히 말하는 인천항구에는 상관商館도 없고 영사관도 없다.
따뜻한 황해의 바람이 생활의 도움이 되고저 냅킨 같은 만내灣內로 피어 들었다.
해외에서 동포들이 고국을 찾아들 때 그들이 처음 상륙한 곳이 인천항이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은주銀酒와 아편阿片과 호콩이 밀선密船에 실려 오고 태평양을 건너 무역풍을 탄 칠면조가 인천항으로 나침羅針을 돌린다.
서울에서 모여든 모리배謀利輩는 중국서 온 헐벗은 동포의 보따리 같이 화폐의 큰 뭉치를 등지고 부두를 방황했다.
웬 사람이 이같이 많이 걸어 다니는 것이냐, 선부船夫들인가 아니 담배를 살라고 군복과 담요나 또는 캔디를 살라고- 그렇지만 식료품만은 칠면조와 함께 배급을 한다.
밤이 가까울수록 성조기가 펄럭이는 숙사宿舍와 주둔소駐屯所의 네온사인은 붉고 짠그의 불빛은 푸르며 마치 유니온짝크가 날리는 식민지 향항香港의 야경을 닮아간다 조선의 해항海港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간다.
―「인천항」
그 밖에도 1919년 함흥에서 태어나 해방 후 나병 치료차 월남해 인천에 정착, 죽을 때까지 살았지만 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한동안은 철저하게 소외됐던 한하운도 인천에 관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그는 평생 문둥이로서의 서러움과 소외된 자의 외로움, 그리고 인간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며 시를 통해 이를 표현했는데, 그가 남긴 인천의 시는 어느 누구보다 인천에 대한 사랑과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 반갑기만 하다.
님 오시면 피어라 진달래꽃
한식에 소복素服이 통곡할 때에
부평富平 성계원成磎園에 진달래 피면
이 세상 울고 온 문둥이는 목쉬어
다시는 뵈올 수 없는 것은
다신 뵈올 수 없는 것은
님 오시면 피어라 진달래꽃
―「여가驪歌」
작약꽃 한 송이 없는 작약도에
소녀들이 작약꽃처럼 피어
갈매기 소리 없는 서해에
소녀들은 바다의 갈매기
소녀들의 바다는
진종일 해조음만 가득 찬 소라의 귀
소녀들은 흰 에이프런
귀여운 신부
밥 짓기가 서투른 채
바다의 부엌은 온통 노랫소리
해미海味가 흥겨우며
귀여운 신부와
한 백년 이렁저렁 소꼽 소리
어느 새
섬과
바다와
소녀들은 노을 활활 타는 화산불
인천은 밤에 잠들고
소녀들의 눈은 어둠에 반짝이는 별. 별빛.
배는 해각海角에 다가서는데
소녀들의 노래는 「Aloha Oe」
선희랑 민자랑 해무海霧 속에 사라져
언제나 언제까지나 「Aloha Oe」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안녕
「Aloha Oe」 또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작약도芍藥島- 인천여고 문에반과」
부평의 청년들이여
이제 아세아의 잠에서 깨어나
70년대의 찬란한 햇빛에 얼굴을 들어라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고장을
누가 부평이라 했는가
얼마나 얼마나 기름진 땅인가
… 중략 …
새 부평을 창조하여
뭉쳐 뭉쳐서
부평의 청년들이여
이제 어두운 이씨조선의 잠에서 깨어
70년대의 새 시대를 창조하는
이 나라에 빛나는 부평의 청년들이여
―「부평지역청년단체연합회에 부친다」
끝으로 인천의 토박이 시인인 최병구의 「인천항 2」를 살펴본다. 최병구 시인은 1950년대 초 인천에서 나온 『초원草原』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 1981년 사망할 때까지 시집 『원죄근처原罪近處』 한권을 냈을 뿐이며, 사후 후배들에 의해 유고시집 『버리고 간 노래』가 발간됐다. 이 시 「인천항」은 1967년12월 『경기예총』 6집에 실린 것으로, 1960년대 불경기일 때 과거 번성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가슴속까지 차가워지는 현실의 안타까운 심정을 그린 작품이다.
내 마음 얼어 있듯이
내 고장 항구港口는 불경기不景氣
허리 동긴 삼팔선상三八線上의 포구浦口들과
황해黃海 건너 상해上海에서 오는 검은 배들도
오지 못하는지 삼십여년三十餘年.
왜倭가 판가름하기 이전
내 고장 인천에는 미국美國과 그때 노국露國 영국英國 청국淸國 불국佛國의 영사관領事館이 월미도月尾島와
해안포대海岸砲臺에 감시하監視下에 있고
독일獨逸의 대상大商과 미국美國의 거상巨商들이
배다리 포구浦口까지 물건物件을 흥정하러
괭이부리에서 어정거리고,
언제나 흥성興盛거린 황금시대
터진개 선술집과 용동권번龍洞券番이
사랑방舍廊房이었다는 고로古老의 말씀들,
지금은 내외항內外港에 군단軍團의 휘황한 불빛
게다짝과 마늘냄새의 청관淸館과 본정통本町通도
이제는 우리의 고층건물高層建物들이 자리한다.
그런데 내 가슴은 매웁게 얼어서
봄, 여름 가을이 가도 그 사계四季에 절기節氣마다 더욱 차거워만 가느냐.
―「인천항 2」
인천을 노래한 시는 근대 이전 조선시대나 고려시대에도 많았다. 그 중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작품 하나씩을 들어 본다. 먼저 고려시대 최고의 시인이라 할 수 있는 이규보(1168~1241)가 1219년 계양부사로 있을 때 지은 「계양망해지桂陽望海志」와 조선시대 인천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와 보고 들은 인천의 여러 가지 모습을 그린 이규상(李奎象, 1727~1799)의 「인주요仁州謠」와 「속인주요續仁州謠」 등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규보의 시는 계양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며 지은 것으로 인천과 관련된 문학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이며, 이규상의 시는 당시 인천사람들의 모습이며 풍습 등을 노래한 것으로 모두 18편으로 되어 있다.
큰 배가 파도 가운데 떠 있는 것이 마치 오리가 헤엄치는 것과 같고,
작은 배는 사람이 물에 들어가서 머리를 조금 드러낸 것과 같으며,
돛대가 가는 것이 사람이 우뚝 솟은 모자를 쓰고 가는 것과 같고,
뭇 산과 여러 섬은 묘연하게 마주 대하여, 우뚝한 것, 벗어진 것,
추켜든 것, 엎드린 것, 등척이 나온 것, 상투처럼 솟은 것,
구멍처럼 가운데가 뚫린 것, 일산처럼 머리가 둥근 것 등등이 있다
―「계양망해지」
1. 仁州風俗似窮鄕 不識靑雲有玉堂 女戴草囊男氈笠 日生忙出蛤魚場
2. 端陽過後一旬垂 政是鰣魚上浦時 馬賈船商來又去 繁華粧點碧波涯
3. 編箔排椽截海橫 重重圈作內中城 潮來潮去湏臾後 螺蟹魚蝦戢戢盈
4. 拿得鯔魚一尺全 瞥然翻手索頭縣 忙從別浦潛身出 或恐看於箭主前
5. 童蛤淺埋大蛤湥 絡蹄巢穴沓灘尋 浦娘競把尖鉤鐵 細掘融泥似捻針
6. 蜂窠燕疊闢鹽廚 鹽釜鹽成白雪鋪 寄水生涯君莫笑 五行民食一般需
7. 四月風和平海波 漕船千百一時過 大砲聲放紅旗颭 津吏迎舠似擲梭
8. 孫石墳前潮打垠 精靈竟作海中仙 船人到此齋虔告 不盡風波禍福人
9. 龍流島上産龍駒 蒼白毛中聳骨癯 牧子來尋空見跡 雲騰電掣海山紆
―「인주요」
1. 節近端陽彭蟹生 繩囊俄頃拾來盈 老婆戴人都門內 穿盡坊坊唱買聲
2. 凌虛臺下白沙長 點著紅芳摠海棠 夏有防風莖葉秀 縈紆螺甲浪淘傍
3. 蛤中往往得珍珠 瑞暈祥光妙相俱 赤豆伴來還貯穀 傍生他粒等生雛
4. 大洋西出沓無邊 直與靑齋一路連 古昔唐家蘇摠管 驅來此海寫兵船
5. 漁戶鹽村好鬼神 蒸豚飯稻祭新春 暗窺魍魎燐多少 坐占經營判富貧
6. 殘祠掩映鶴山巓 靈妾神官繡幔聯 沼海漁人祈厚福 春來先薦尺魚全
7. 海俗秋來競賽神 繁鮮懸布拜巫人 不知乃祖荒原臥 香火簫條度幾春
8. 花郞靘服抱嵇琴 巫女雲鬟亞晝簪 堂上歌酬堂下樂 暗中相授是何心
―「속 인주요」
*신연수 시인. 근대서지학회 회원. 법률신문사 이사 겸 총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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