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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김밝은/감쪽같은, 어리연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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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김밝은/감쪽같은, 어리연 외 1편
감쪽같은, 어리연 외 1편
김밝은
그랬다 사랑은,
지치지도 싫증나지도 않는 놀이를 하다가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던 술은 남겨놓고
꿈꾸듯
잠깐 나를 스르르 벗어놓고 떠났다 돌아왔을 뿐인데,
다시 세월을 거꾸로 걸어가는 치매 같아서,
어느 길에선가 부딪쳤을지도 모를 헛것이 자꾸만 나타나서
입술 가까이에서 만발하던 웃음
잡아끌던 손
햇살의 입김 아래 타올랐던 흔적만 우두커니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해 눈썹을 치켜떠도
눈물의 시간이 올 때까지 끝내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없*겠다
나
언제 꽃을 피우기는 했었던가
*칼릴지브란의 ‘이별의 시간이 될 때까지는 사랑의 깊이를 모른다’에서 변용.
시, 2
저녁은 아직 닿지 않은 소식
늘어져버린 상상의 엉덩이를 슬며시
발가락으로 건드려 봐도,
물 위의 달도 깜박 제 얼굴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하짓날
살구나무 눈망울들
온몸 으스러질 운명을 알고 있었다는 듯
바닥을 향해 거침없이 뛰어내리고,
나의 슬픔은
여전히 엉켜버린 문장들 속으로 한걸음 더 빠지는 중이어서
햇살 속에서도 절망이 소문처럼 번져가고,
아직 건드려보지도 못한 그의 겨드랑이에서 튀어나올
명랑한 웃음소리는 조금 더 아득해져 간다
*김밝은 2013년 《미네르바》로 등단. 시집 『술의 미학』.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미네르바 편집위원, 월간문학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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