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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나루/어름사니*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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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11회 작성일 19-07-0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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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나루/어름사니* 외 1편


어름사니* 외 1편


나루



북극곰은 깃털의 무게로 산다
바다는 넓지만 발을 올려놓은 곳은
신의 냉정한 한 뼘 손바닥뿐
바다는 무뚝뚝한 저 얼음 조각 지켜줄까
온기 따위는 기억조차 없는데
기울어진 지구의 각도가 흔들렸음인지
만년설 위로 햇살이 흘러내리고
쇄빙선의 망치질로 빙하는 부서지고 있다


그녀는 바람의 첩으로 산다
허공은 끝없지만
발을 올릴 수 있는 곳은 밧줄 한 가닥
몸속에 바람의 씨앗을 넣지 않으면
신명은 졸고 재담은 흩어진다
그날,
줄을 타던 아비가 밧줄 대신 허공을 타고 하늘로 올랐다
나뭇가지 끄트머리라도 잡았더라면
구경꾼들의 환호가 두렵지는 않았으리


아무도 가르쳐 준 적 없이 홀로 커 버린 통증
서로 만난 적 없는 저 흰 몸뚱이들
부빙浮氷 위에 선 칼날에 마음 베이고
짜릿짜릿 온몸에 털 세우면
훨훨 바람이 되어 푸름으로 간다


   *남사당패에서 줄타기 하는 줄꾼. 얼음산을 타기처럼 어렵다는 뜻.





그 주목나무에는 초록꼬리여우가 산다



가장 먼 이별이 주목나무에게 배달되었다
까마귀의 울음조차 새겨지지 못한 채
나무의 일가로 전입해온 재 한 줌
사내는 아직도 어둡고 찬 기억의 옷을 입고
애인의 흐느낌에 기대어 온기를 느껴 보고 싶었지만
어림도 없다, 나무는
바람의 입을 빌려 꿀꺽, 삼켜버렸다


이름표 하나 걸어두고 소란이 떠나가면
주목나무는 그때부터 초록꼬리여우가 된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나무를 죽은 자의 집이라고 믿었다
초록꼬리여우는 애인보다 다정해서
바람을 불러다가 사내의 마지막 유지를 들어주었다
사내의 영혼이 서서히 뿌리에 스며들 때면
이파리를 팔랑이고 그림자를 만들어 함께 누웠다
온 산이 뜨겁게 신열을 앓는 가을이 와도
초록나무는 사내의 전생을 가만히 품어주었다


기억이 제거된 골짜기마다
정적만 허공을 넓혀가고 있다
눈물 머물다 간 자리마다 초록꼬리가 하나씩 늘어나고
다시 또 이별이 배달되었던 날이 돌아오면
주목나무는 그간의 안부 대신 빨간 열매를 피워낼 것이다





*나루 2015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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