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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박영녀/홍천읍 가나요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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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박영녀/홍천읍 가나요 외 1편
홍천읍 가나요 외 1편
박영녀
양짓말 정거장에 서있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반대편 차가 세 대 지나갔다
송곳 바람처럼 꽁무니를 보인
트럭, 잡지 않는다
화로구이집 주차장의 차들도 하나둘 떠난다
낯선 곳, 혼자 남겨진다는 것
겉옷의 지퍼를 코밑까지 올려본다
맛있게 먹었던 말
옷깃에 진득하게 붙어있다
하늘은 잿빛 눈이라도 내릴 듯하고
무채색으로 길은 점점 좁아지고 멀어져 간다
정거장 귀퉁이 허공에 매달려 있는 거미
팔다리를 내리고 흔들거린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나도 흔들린다
흔들리는 것이 거미와 나뿐일까
약속되지 않은 기다림은
멀리 굴뚝 연기처럼 머리칼을 풀어헤치고
하얗게 사라진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 잦아지며
이명처럼 파란 버스가 온다
문이 열린다
홍천읍 가나요
버스는 기다리면 언젠가 오기 마련이다
그런 날 하나
후코오카에 줄 서서 먹는다는 우동집
꽉 찬 즐거움이 배고프다
사선으로 자른 오뎅 두 개 나오고
허연 주먹밥에 반달 단무지 달랑
두 쪽에 노란 웃음 집어삼킨다
함지박만 한 그릇에 오뎅과 양배추
사각거리는 숙주가 일품인 우동을 먹는다
한 젓가락 들어 올리면
하얀 김 얼굴 가득 나를 삼켜도
후우, 불면
헛헛한 허기가 밀려오는 그런,
단무지 추가요
가격도 추가요
말이 짧은 건지, 정이 짧은 건지
단무지 두 쪽 유료가 되던 날
추억은 무료
내 살던 곳
항아리에서 묵은지 꺼내던 어머니
삼월의 붉은 꽃물 냄새
무지하게 그리운
*박영녀 2015년 《시에》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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