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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홍계숙/빛의 나이테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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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홍계숙/빛의 나이테 외 1편
빛의 나이테 외 1편
홍계숙
광장에 꽃씨들이 날아든다
장군의 넓은 어깨와 대왕이 펼친 훈민정음 위로
사뿐 올라앉는 눈빛들
가장 빛나는 업적이 거푸집에 부어지면
동상이 된다
거꾸로 솟는 분수도 힘차게 쏟아지는 폭포수도
물의 동상을 빚는 중이다
강가에 반짝이는 돌멩이는 캄캄한 허공을 비추던
별들의 동상이다
빛나는 얼굴과 자세로 지상에 착지한 빛의 업적들,
푸른 옷 피겨 스케이터가
공항 터미널 광장을 새처럼 날고 있다
동상을 세운다는 건 가장 빛나는 시간 위에
향기로운 방부제를 뿌리는 일이다
이 땅에 내가 동상으로 선다면 어느 시간
어떤 빛으로 빚어질까
아직 가장 빛나는 나는 도착하지 않았다
빛의 업적은 북소리보다 외로운 것, 비바람에
홀로 우뚝 서는 일이다
고목보다 오래 서 있는 그들은 나이테를
몸 밖에 간직한다
꼬막손 꼭 쥐고 서서 올려다보는 맑은 눈빛
조그만 가슴에 동그란 파문이 인다
가짜요리 팩트 체크
백화점 9층 전문식당가 진열장
한정식, 스테이크, 샤브샤브, 해물찜, 퓨전요리
전시된 음식들이 진짜보다 더 진짜 같다
눈으로 맛보며
맛의 비주얼이 이끄는 식당으로 들어선다
푸짐한 골리앗이 핼쑥한 다윗으로 차려져 나오고
부푼 맛의 기대마저 한 입에 무너질 때,
화려한 토핑의 생생한 가짜에게 뒤통수를 맞는다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사회,
미디어 플랫폼에 정식 기사의 얼굴로 나타난
가짜뉴스 팩트 체크가 뉴스 화면을 달군다
가면을 쓴 가짜들은
싱싱한 색감으로 복제에 복제를 거듭하며
널리 퍼져나간다
모양과 빛깔이 똑같아도 먹을 수 없는 거짓,
썩지도 상하지도 않는 안주들이
늦은 밤 마주앉은 술상 위에 뜨겁다
다윗과 골리앗이 한 판 말씨름을 뒤집는다
*홍계숙 2017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모과의 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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