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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단편소설/채종인/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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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53회 작성일 19-07-09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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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단편소설/채종인/아버지


아버지


채종인



오늘 아침 의사는 우리 세 사람 앞에서 확실하게 마침표를 찍어 주었다.
“육 개월 남았습니다. 남은 시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는 아버지 손을 잡고 병원을 걸어 나왔다.
어머니는 운전대를 잡고 잠시 눈물을 흘린 뒤 천천히 차를 몰았다. 6개월…… 6개월…… 6개월……. 거리의 간판 글씨들이 모두 그렇게 보였다. 어머니는 아주 천천히 차를 몰았다. 우리는 아주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나는 어머니에게 다시 물었다.
“병원은요?”
“……다녀왔지.”
어머니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결과는 어땠어요?”
“……변한 게 없어. 저번 의사와 똑 같이 얘기 했어.”
“믿을만 한 병원이었어요? 그 의사 실력 있는 의사였어요?”
“그럼. 대한민국에서 제일가는 소화기 내과 의사인걸.”
“뭐래요? 수술은 할 수 있대요?”
“……저번과 똑 같다니까. 수술은 의미가 없고, 항암제 치료도 기대를 할 수가 없다는 구나. 글쎄, 남은 인생이나 잘 마무리하라지 뭐냐. ……어쩌면 좋니?”
“…….”
나는 가만히 방문을 닫았다.
“윤호 왔느냐?”
어느새 아버지가 주방에서 걸어 나와 옆에 서 있었다.
“네, 아버지.”
눈물이 났다.
“네 엄마가 예약 해둔 대한민국 최고 의사한테 오늘 다녀왔다. 역시 육 개월 밖에 못 산다더구나. 육 개월……. 참으로 긴 시간이지.”
벽에 어깨를 기대고 석양을 향해 비스듬히 서 있는 아버지는 꼭 나목 같았다. 쓰러지기 직전의 나목 같았다.
“슬퍼할 것 없다. 좋은 공부 하는 셈 치면 되지. ……어렵겠지만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힘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네 인생살이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아버지의 얼굴은 얄밉도록 편안했다.
“옛날에 어떤 스님이 건강이 좋지 않아 수술을 받는데, 마취 주사도 맞지 않고 그대로 수술 받기를 원했단다. 스님은 수술대 위에 누워 온갖 소리를 다 들었지. 살가죽 가르는 소리, 갈비뼈 자르는 소리, 장기 뒤적이는 소리…….”
어머니는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다시 살가죽 붙이는 소리, 실로 꿰매는 소리……. 스님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거야. 고통의 실체를 체험한 뒤론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게 되었지. 그리고 결국 큰스님이 되었어.”
나도 무슨 말인가 해야 할 것 같아 한마디 중얼거렸다.
“부처님께서도 피골이 상접하도록 고행을 하셨잖아요.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이나 금식기도를 하셨고요.”
“그렇단다. 폭풍 견딘 하늘이 더욱 파랗듯, 인간도 역경을 이겨내고 나면 그만큼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 나는 법이지. 너나 네 엄마나 지금은 힘들겠지만, 이 고비를 넘기고 나면 더 큰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야.”
“……저희야 그렇다 치고, 아버지는 뭐예요? 아버지는 죽으면 끝이잖아요.”
“나도 아직 확신은 없다만…… 만약 윤회라는 것이 있어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지금의 내 삶이 많은 영향을 미치겠지. 누구는 그러더라. 현생은 전생의 성적표고, 내생은 현생의 성적표라고.”
“착한 말씀이네요.”
“윤호야?”
“네?”
“마음을 편히 가져라. 네 엄마한테도 잘 하고.”
“네.”
“옛말에, 운명을 아는 자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을 아는 자는 남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것이 아빠의 운명이라 생각해라. 내 운명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 또한 전생의 업이라 여기고. 내생엔 분명 좋은 운명으로 태어날 수 있을 거야.”
“그래요. 아버지는 분명 그러실 거예요.”
“정말이지 아버지는 한순간도 부끄럽게 살지 않았단다. 염라대왕께서 아마 좋은 성적표를 주실 거야.”
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나는 울고 있었다.
어머니도 울고 있었다.
저녁이 왔다.


암을 이기기 위한 노력

* 적절한 음식 섭취와 균형 잡힌 영양관리
* 걷기, 자전거타기 등과 같은 운동
* 충분한 수면
* 하루 세 번 웃기
* 순간순간을 소중히 여기기(불확실한 미래를 자꾸 걱정하면 소중한 현재를 잃음)
* 감사하는 마음 가지기
* 암으로 인해 얻은 것 떠올려 보기
* 가장 행복했던 일, 가장 평화로웠던 기억 찾아보기
* 희망 가지기


나는 신문에서 본 기사를 청색 도화지에 예쁘게 적어 안방 벽에 붙여 놓았다. 가게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에게 그것을 읽어주자, 아버지는 고맙다며 내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나는 또 그 밑에 다음과 같은 문구도 적어 놓았다.
‘죽음은 애벌레가 나비되는 것처럼 새로이 사는 것, 영원히 사는 것.’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함께 잤다.
잠들기 전 아버지는 내게 또 철학자다운 말을 했다.
“요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 그것에만 관심 있는데, 더러는 이런 사람들도 있긴 하지.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야.”
나는 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 아니냐고 묻자, 아버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결국 웰빙과 윌다잉은 별개가 아니지. 우리는 흔히 웰빙 하면 그저 잘 먹고 잘사는 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참다운 웰빙이란 그게 아니야. 진정한 웰빙이 되기 위해선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해 져야하거든. 삶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올바르게 서 있어야만 진정한 웰빙이라 할 수 있지. 진정한 웰빙이 되면 웰다잉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야.”
철학자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나는 나름대로 웰빙하며 살았기 때문에 웰다잉에도 별 신경을 안 쓴단다. 그러니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말거라.”
나는 아버지가 잠들기 전에 물어보았다.
“아버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언제가 가장 행복하셨어요?”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윤호 네가 태어나던 날이란다.”
그리고 아버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네 엄마와 결혼하던 날은…… 행복하지 못했지. 미안함, 불안감 같은 것 때문이었을 거야. 하지만 네가 태어나던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단다. 그제야 네 엄마와도 완전히 하나가 된 기분이었고. 너의 탄생으로 인해 소중한 가정이 완성된 셈이었지.”
나는 울컥 눈물이 나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윤호야?”
“네?”
“넌 아빠의 희망이고, 엄마의 희망이란다.”
“네.”


아버지의 몸무게는 나날이 줄어들어 45킬로그램이 채 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는 단단한 것은 먹을 수가 없었다. 죽이나 고구마, 수프나 호박 같은 부드러운 음식만 먹어도 소화를 못시켜 힘들어하곤 했다.
몸무게는 날로 줄어들고, 온몸이 꼬챙이처럼 야위어 가면서도 정신력은 살아났다.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명상을 했고, 20년 동안 운영해 오던 순댓국집은 현금청산을 해 은행에 넣어두었다.
그런 어느 날, 아버지는 홍시를 먹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집 앞 시장으로 달려가 대봉 홍시 몇 개를 사가지고 왔다.
아버지는 주먹만 한 홍시를 접시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단단한 것은 대접 받지 못하고, 부드러운 것은 누구한테나 대접 받는단다.”
아버지는 웃으며 홍시를 베어 물었다. 아버지의 입술이 붉어졌다.
“이놈도 땡감으로 있을 때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던 물건이었겠지. 하지만 물렁물렁 홍시가 되고 나니, 서로 가지려고 야단들 아니냐. 이처럼 부드러운 것은 단단한 것보다 인기가 있단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입속 좀 봐줄래?”
나는 아버지의 벌어진 입속을 바라보았다. 홍시가 묻어있는 아버지의 입속은 물감을 칠한 듯 붉어 있었다.
“어때? 이빨이 몇 개나 남아 있지?”
나는 깜짝 놀랐다. 아버지의 어금니는 언제 저렇게 빠져버렸을까? 송곳니 부근의 서너 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빠져버리고 없었다.
“혀와 잇몸은 어떠냐? 아직 쓸 만하지?”
홍시가 묻어 있는 아버지의 잇몸과 혀는 다홍빛으로 매끈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처럼 단단한 것은 빨리 사라지고, 부드러운 것은 오래 간단다.”
아버지는 단단한 어금니 대신, 부드러운 혀와 잇몸으로 홍시를 우물거리며 씹고 있었다.
나는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치아가 저렇게 빠지도록 무관심했던 자신이 한없이 미워졌다.
아버지는 어릴 때 시골에 살면서, 소독하지 않은 지하수를 그대로 마셔 치아가 빨리 망가졌다고 했다.
“내년에 네 아버지 어금니를 모두 임플란트로 교정해 드리려 했는데…… 복도 없는 사람…….”
어머니는 또 눈시울을 훔쳤다.
“윤호야?”
아버지의 싸늘한 목소리가 뜨끈뜨끈해진 내 눈시울을 훔치고 지나갔다.
“네?”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못 가고, 소낙비는 하루를 못 간다고 했다.”
“네.”
“돋움발로는 오래 서 있지 못하고, 뜀걸음으로는 오래 달리지 못한다고 했다.”
“네, 아버지.”
“늘 온화하고 여유 있게 처신이면 다치지 않는단다.”
“네.”
“혀나 잇몸처럼 유연한 자세로, 소나 거북이처럼 천천히 걸어라. 그러면 행복해 진단다.”
아버지는 홍시 하나를 다 먹고 난 뒤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잘 알겠습니다.”
“너도 하나 먹어 봐. 당신도 하나 먹어 보고.”
아버지가 어머니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말했다.
“난 홍시는 싫어. 당신이나 실컷 먹어.”
어머니는 눈시울을 훔치며 돌아앉았다.
“저도요. 아버지나 두고 드세요.”
나는 눈물이 났다. 아버지가 우리처럼 건강하고, 단단한 치아를 가졌다 해도 이처럼 홍시나 잇몸 타령을 하고 있을까.
아버지가 가엾었다. 자신의 처지를 자위하려는 안쓰러운 모습이 내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아버지는 죽지 않아요! 절대 죽지 않아요! 왠지 아세요? 단단한 건 빨리 사라지고, 부드러운 건 오래 가기 때문이에요! 암 덩어리는 단단하니까 곧 사라질 거예요.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은 부드럽잖아요. 아버지는 죽지 않아요. 절대 죽지 않아요!”
방을 나와 거실 소파에 우두커니 앉아 있자니,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윤호가 당신 곁에 있으니 마음이 놓여.”
아버지가 나지막이 말했다.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격해졌다.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놈 물건이야.”
어머니가 목을 놓고 울었다.
“윤호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 저승에 갈 수 없을지도 몰라. 당신이 염려돼서.”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거야. 윤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날이 올 거야. 난 믿어.”
아버지의 젖은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외쳤다.
‘나는 단단하게 살아갈 거야! 폭풍처럼 살아갈 거야! 누가 뭐라 해도 뒤에 처지지 않고 앞에만 설 거야! 부드럽고 물렁물렁한 것보다 단단하고 야무지게 살 거야! 그러면서도 무엇보다 오래 오래 살아남을 거야! 폭풍처럼 소나기처럼 그렇게 살 거야!’

“…….”
“공자께서는, 군자는 먹는데 있어 배부름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는데 있어 편안함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단다.”
“…….”
“또한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을 걱정해야 한다고 했다.”
“네.”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고 했다. 부귀라는 것도 사람들이 탐내는 것이지만, 정도로써 얻은 것이 아니라면 누리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네, 아버지.”
“나물 먹고 물마시고 팔 굽혀 베개 삼아도 그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의롭지 않으면서 부귀해 지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했지.”
어머니가 눈물을 닦으며 발코니에서 돌아와 아버지 옆에 앉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젖은 손을 끌어 잡았다. 어머니가 아버지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사랑은 멀리 있는 게 아니란다. 내가 사랑하고자 한다면 사랑은 곧 찾아오고야 말지.”
“네, 아버지. 잘 알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다.”
아버지는 소리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유령처럼 흔적도 없이 방으로 들어가 어느새 이부자리 위에 반듯하게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함박눈이 내렸다. 자고나니 하얀 눈 더미가 앙상한 나뭇가지 위에 솜이불처럼 덮여 있었다. 하늘은 여전히 눈을 뿌리고 있었다. 어두웠다.

“아버지, 눈이 와요! 함박눈이에요!”
어쩌면 이번이 아버지와 함께 맞는 마지막 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울컥했다. 눈물 속으로 바라보는 눈은 더욱 희고 깨끗했다.
“오늘이 대한大寒이지. 이번 눈이 녹고 나면 겨울도 저만치 물러날 거야.”
아버지는 요즘 죽음과 맞서 싸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몸을 악랄하게 공격하고 있는 암세포는 복막과 폐, 간, 림프절에까지 골고루 침투했다.
아버지는 호흡도 제대로 할 수 없어 깊은 숨을 몰아쉬기가 일쑤였고, 깡마른 얼굴은 황달 때문에 누렇게 변해 있었다. 암 덩어리에 짓눌린 장은 음식물을 분해시킬 수 없어 잦은 설사를 일으켰고, 복수가 찬 배는 팽팽하게 불러올라 더 이상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심한 구토와 통증 때문에 고통을 겪곤 했다. 다행이 이틀에 한 번씩 방문하는 간호사가 진통제와 영양제 주사를 놓아주고 가는 바람에 그래도 견디기가 조금은 수월했다.
밥을 먹은 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바깥나들이를 한 지도 오래 전이었다.
아버지는 겨우 죽이나 우유, 계란찜이나 과일 주스 등으로 끼니를 때웠다.
“윤호랑 오랜만에 바깥나들이를 해보고 싶구나.”
녹두죽과 연두부로 아침상을 물린 아버지가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 백옥 같은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고 싶구나.”
어머니와 나는 아버지를 부축해 밖으로 나갔다.
세상은 한 가지 색으로 변해 있었다.
우리는 가로수 밑을 걸었다. 긴 눈 터널을 말없이 걸어갔다.
“원래 세상은 이처럼 고요한 법이란다.”
아버지의 나지막한 목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 온 날의 정적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쌓인 눈이 세상의 온갖 소음을 흡수한 탓일까.
가만가만 걷는 아버지의 몸이 비틀거렸다. 내가 와락 아버지를 부축하자, 아버지의 차가운 손이 내 손을 걷어냈다.
“죽음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야.”
주먹만 한 눈덩이가 아버지 어깨 위로 툭 하고 떨어졌다. 아버지는 하얀 눈 위로 또박또박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갔다.
“옛 성인들은 말했지. 죽음이란, 들에 호미자루를 남겨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고, 묵은 누비옷을 벗어들고 봄나들이 옷으로 갈아입는 것과 같다고. 죽음이란 이처럼 쉽고 흔한 일이야.”
어머니는 콧물을 훌쩍거렸다.
“또한 옛 사람들은 저승 갈 때 입을 자신들의 수의를 미리 지어두곤 했단다.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입을 옷이기에 더욱 정성 들여 바느질을 했겠지. 한 땀 한 땀 바느질 할 때마다 지나온 삶을 정리했을 테고. 그처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테지만.”
나는 아버지를 등에 업었다. 아버지의 몸이 허깨비처럼 가벼웠다.
아버지는 내 등에 업혀 유령처럼 떠들었다.
“중국 애艾나라에 여희라는 관리의 딸이 있었단다. 처음 진晉나라에 끌려갔을 때는 눈물을 비 오듯이 흘리며 슬퍼했지만, 왕의 거처로 안내되어 좋은 가구나 침대, 각양각색의 맛있는 음식을 알게 되고부터는 자신이 왜 그렇게 울며 슬퍼했을까, 뉘우쳤다고 한다. 죽음의 세계로 간 자들도 이와 같을 지도 모르지. 저승생활이 의외로 즐겁기 때문에 왜 전엔 그처럼 죽기를 싫어했을까, 뉘우칠지도 모를 일이잖아.”
눈발이 굵어지자, 어머니가 아버지 머리 위로 우산을 펼쳤다.
“여보, 우산을 접어 줘. 난 이 눈을 맞고 싶은걸.”
어머니가 우산을 접었다.
“육체는 고목처럼 되었어도 마음만은 불 꺼진 재처럼 되고 싶지 않아.”
아버지의 발등 위로 금세 눈이 하얗게 쌓였다.
“윤호야?”
“네, 아버지.”
“뱁새는 깊은 숲에 둥지를 틀지만 나뭇가지 하나를 차지할 뿐이고, 생쥐는 황하  물을 마시지만 제 배를 채우는데 그친다고 했다. 인간도 이와 다를 바가 없단다.”
“네.”
“윤호 너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니? 들에 가는 사람은 세 끼 식사만으로도 배가 부를 테지만, 백리를 가는 사람은 전날 밤부터 방아를 찧어 식량을 준비해야 한단다. 또 천리를 가는 사람은 석 달 전부터 식량을 모아 놓아야 할 테지.”
“네, 아버지.”
“못가에 사는 꿩은 열 걸음에 한 번 쪼아 먹고, 백 걸음에 한 번 물을 마시지만 새장에 갇히기를 바라지 않는단다. 새장 속엔 먹이가 충분할 테지만 마음이야 어디 즐겁겠니?”
“네.”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범을 따른다고 했다. 용이나 범처럼 대범한 마음을 길러야 한다.”
“네, 아버지.”
“매미나 산비둘기가 어찌 대붕大鵬의 마음을 알겠니?”
“네.”
“소나무와 잣나무는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돋보인단다.”
“네, 아버지.”
“마음을 평탄하고 너그럽게 써야 한다. 그래야 큰사람이 될 수 있어.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은 대인의 마음이 아니란다.”
“네.”
“두려워하지 마.”
“…….”
“아버지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
“……네.”
“가장 아름답게 가는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도 그렇게 바람처럼 갈 거야.”
눈 위에 다시 아버지를 내려놓자, 아버지는 저만큼 앞서 걸어 나갔다. 아버지의 희미한 발자국 위로 내가 걸어가자, 아버지의 발자국이 없어졌다.
아버지의 흔적이 없어졌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피곤했던지 오후 내내 잠만 잤다.
저녁 때 잠에서 깨어난 아버지는 호박죽을 몇 숟갈 뜨자마자 토악질을 했다. 그때부터 아버지는 통증과 싸우기 시작했다.
“이젠 그놈이 뼈에까지 침입한 모양이야. 뼈마디가 부셔지는 것 같아.”
한밤중에 간호사가 와 진통제와 영양제 주사를 놓고 갔다. 그제야 아버지는 시든 넝쿨처럼 방바닥에 널브러져 곤하게 코를 골며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드디어 봄이 오는 구나.”
아버지가 누운 채 말했다.
“오늘이 입춘立春이지. 나 좀 일으켜 다오.”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입춘은 글자 그대로 봄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또한 해가 바뀌는 날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아버지는 방안에 꼿꼿이 앉아 마지막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었다. 촛불처럼 자신을 불사르고 있었다.
“물론 설이 지나면 한 해가 바뀌지만, 절기로 따지자면 입춘 날이 바로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란다. 아주 오래 전에는 동지를 새해의 시작으로 정한 때도 있었지.”
“동지는 너무 춥잖아요?”
“그래서 입춘 날로 바꾼 거야. 겨울이 가고 입춘 때가 되면 만물이 생기를 얻어 소생을 꿈꾸기 시작 하거든. 시작과 부활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봄을 인仁하다 했던 거야.”
아버지의 머리 위로 광채가 나는 듯 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몸을 태우며 서서히 연소되어 가고 있었다.
“입춘 때는 전쟁은 물론, 짐승도 함부로 죽이지 않았단다. 그만큼 생명의 부활을 소중히 여겼다고나 할까.”
아버지는 베개를 끌어당겼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누우세요.”
“그래. 그래야겠다.”
아버지는 이부자리 위에 가지런히 누웠다. 마른 덩굴 같았다.
“사흘 뒤면 설이구나.”
아버지가 말했다.
“네, 아버지. 설이에요.”
아버지가 기침을 했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너도 이제 스무 살이 되는구나.”
“네, 아버지. 한 달 뒤면 대학생이에요.”
아버지가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끌어 쥐었다.
“……장하구나, 내 아들! 난 네가 자랑스럽단다.”
눈물이 났다.
“……우니?”
“…….”
“눈물은 함부로 흘려선 안 된단다. 대학생이 되면 더욱 강건해져야겠지?”
“네.”
“공자께서는 옛것을 잘 익히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되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명절이나 제사도 마찬가지겠지?”
“네, 아버지.”
“조상을 제사지낼 때는 생존해 계신 것처럼 하고, 신을 제사지낼 때도 신이 앞에 계시는 것처럼 하라고 했다. 무슨 일이든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이지.”
“네.”
“……마지막 설이구나.”
“…….”


“목욕 좀 해야겠다. 욕조에 물 좀 받아다오.”

아버지의 벗은 몸은 살아 있는 사람의 몸이 아니었다. 미라 같았다. 천 년 전 무덤에서 나온 미라처럼 흉측했다.
나는 기가 막혀 한숨조차 지을 수가 없었다. 언제 이처럼 퇴락했을까. 한 달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흉하지는 않았었다.
“때 좀 밀어다오.”
아버지는 배만 볼록 튀어나온 육체를 욕조에서 건져 올려 내 앞에 등을 대고 앉았다. 때는 밀어 뭐하자는 건가.
“마지막 명절인데 조상님들께 예는 갖춰야 안 되겠니?”
나는 아버지의 등을 밀었다.
“아프지 않으세요?”
때밀이 타월이 아버지의 마른 등에 붉은 흔적을 남겼다.
“더 세게 밀어다오.”
등뼈와 갈비뼈가 명징하게 드러났다. 생선뼈를 바르듯, 나는 손에 타월을 감고 아버지의 등을 헤집었다.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내리감고 자신의 등에서 살점이 발려나가는 걸 음미하고 있었다. 아들의 손길이 시원한 모양이었다.
“제법이구나!”
아버지가 칭찬을 했다.
“옛날 포정이라는 백정이 소를 잡는데, 그 칼 놀림이 얼마나 신통했던지, 소는 제 목숨 끊어지는 줄도 모르고 누워 있었단다. ……오늘 애비를 다루는 너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구나.”
아버지는 아들의 손길이 마냥 즐거운 모양이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아들과의 목욕. 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정성을 다해 아버지의 등을 밀었다.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즐겨 하는 사람은 따를 자가 없다고 했다. 포정이 소 잡는 것처럼 무엇이든지 즐거이 하거라.”
“네, 아버지”
아버지는 힘든 모양이었다.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좀 쉬었다 하자.”
“네.”
나는 욕실에서 나와 주방으로 갔다. 어머니가 식탁 앞에 앉아 울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데워준 따뜻한 우유를 들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고개를 길게 빼고 자신의 황폐해진 온 몸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건네준 우유를 천천히 다 마시고는 나를 불렀다.
“윤호야?”
“네, 아버지.”
아버지는 빈 컵을 욕실 구석에 내려놓고는 나를 향해 돌아앉았다.
“과연 어느 것을 두고 아버지라 할 수 있겠니? 팔이니? 다리니?”
아버지는 차례대로 팔과 다리를 들어 올려 보였다.
“머리니? 아니면 오장육부?”
“…….”
“모두 아니지? 이것들을 떼어 놓으면 그냥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단다. 하지만 이것이 모이고 합쳐져 아버지라고 하는 하나의 소중한 생명체를 만들어 놓았지.”
“……네.”
“세상에 고정 불변하는 물건은 없단다. 이것과 저것이 인연을 맺어 새로운 물건을 탄생시키는 거지. 이것을 불교에서는 연기법이라고 한단다. 인연 따라 태어나고 사라지고 하는 거지.”
“네.”
“이 집만 해도 그렇잖아. 원래 집이라고 하는 고정 불변하는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니지. 벽돌과 나무, 콘크리트와 쇠붙이가 서로 인연을 맺어 집이라고 하는 물건을 탄생시킨 거지. 이 집이 허물어지고 나면 다시 벽돌과 나무, 콘크리트와 쇠붙이로 돌아가잖아. 벽돌과 콘크리트는 또 모래로 돌아가고, 나무는 썩어 흙으로, 쇠붙이는 고철로 돌아가고 말지.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두고 집이니 벽돌이니 한단 말이냐?”
“…….”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야. 지나고 나면 한 순간이고 마치 꿈을 꾼 것과 같지.”
“……아버지!”
“아버지로서,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잠시 머물다 가는 거야. 이쪽과 저쪽, 어느 쪽이 꿈이고 어느 쪽이 현실인지, 어느 쪽이 순간이고 어느 쪽이 영원인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구나.”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거란다. 인생은 무대고 우리는 인연 따라 배역을 맡는 배우에 불과 해. 단 한나절 배우로 살더라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연기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단다.”


“얼었던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雨水가 오늘이구나.”
밤새 통증에 시달리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아버지가 겨우 미음 몇 숟가락으로 아침을 대신한 뒤 소파에 앉아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 박재삼 선생인데 그분 시 중에 ‘우수 지나고’란 시가 있지. 바로 오늘 같은 날을 두고 쓴 시 같구나.”
아버지는 눈을 감고 시를 읊었다.


우수 지나고


개울 밑바닥 얼음 속을
숨어서 흐느끼며 가던 물소리가


이제는 얼굴을 내밀고는
햇빛에 이리 반짝 저리 반짝


우수 지난 다음의
새 경치를 보아라


죽음을 딛고 일어선
생생한 부활의 목숨이
이 이상 눈부실 수 없어라


추위에 옹송그리고 있던
뼈마디 근처가 가렵고
다시 환장할 것처럼
아, 접어두었던 활개를 치며
눈물겹게 일어나 보리라


봄을 이겨 보리라


“하도 오래 돼서 맞게 외웠는지 모르겠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웃고 있었다. 봄날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머잖아 봄이 오겠지. 입춘 지나고 우수를 맞았으니…….”
나는 나비처럼 훨훨 꽃밭 위를 나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도 아버지의 영혼은 나비처럼 훨훨 우주 공간을 날아다닐지도 모른다.
“이번 봄을…… 아버지는 맞이할 수 없을 것 같구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내 심장에 내리꽂혔다.
“미안하구나.”
말을 마친 아버지는 눈을 감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위대한 영혼이 연기처럼 사라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공처럼, 여의주처럼 똘똘 뭉쳐져 우주 어딘가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고 생각했다.
“인연이 다하면 흙으로 돌아가는 게지. 별수 있겠어?”
가슴이 답답했다. 숨이 막혔다.
“영혼은요? 영혼은 어디로 가요?”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인연 닿는 곳으로 가겠지. 아버지와 인연 맺은 사람들 가슴 속에 둥지를 틀고 얼마간은 살아가겠지. 그러다가 인연이 다 하면 재처럼 서서히 식어갈 테고.”
눈물이 났다.
“아버지와 제일 가까웠던 사람은 저예요. 아니, 어머니가 제일 가까웠을 테죠.”

“그럼 윤호 네 가슴 속에, 또 네 엄마 가슴 속에 이 애비의 영혼이 머물겠지.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아버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심한 통증이 찾아왔던 것이다.


간호사가 돌아가고 나자, 아버지는 링거 주사기를 손등에 꽂은 채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 모자를 불렀다.
“……여기, 오천만원짜리 통장이야. 윤호 학자금으로 써.”
통장을 받아든 어머니는 눈물부터 찔끔거렸다.
“다 당신 덕분이야.”
아버지가 어머니 손을 잡았다. 어머니의 무릎 위로 닭똥 같은 눈물이 우두둑 떨어졌다.
이것이 마지막이란 말인가. 아, 오늘 밤이 정녕 마지막이란 말인가.
“……우리 이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아버지가 담담하게 말했다.
어머니가 사시나무 떨듯 온 몸을 떨었다.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정신이 몽롱했다.
“……그리고 당신 몰래…… 목 좋은 곳에 가게를 얻어놨어. 보증금과 권리금은 지불했고, 가게 인테리어 비용과 운영비는 이 통장에 들어 있어.”
아버지가 또 하나의 통장을 어머니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어머니는 눈물에 흥건히 젖은 손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통장을 건네받았다.
“그동안 당신과 열심히 일한 대가야. 정말 고마웠어.”
아버지가 어머니의 손을 끌어 쥐었다.
“상호는 그대로 천사 순댓국집으로 해. 당신이 순댓국을 만들고 홀 서빙은 사람을 구하면 되잖아. 성의를 가지고 성실하게 하다 보면 손님은 오게 되어 있어.”
어머니가 고개를 가로 저으며 눈물을 닦았다.
“……당신 없이 어떻게…… 나 혼자서는 못해.”
“윤호가 있잖아. 당신 곁엔 언제나 윤호가 있다는 걸 명심해. ……윤호야?”
“네, 아버지.”
“이제부턴 네가 우리 집안의 유일한 남자란다. 이 아빠 몫까지 해야 한다.”
“네, 알겠습니다.”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길게 숨을 몰아쉬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이 가게를 하다보면 정신없이 바쁠 거야. 신경 쓸 일도 많을 테고. 심기일전해서 새 터전을 일구도록 해.”
아버지는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우리 모자의 손을 양 손에 나눠 쥐었다.
“참으로 행복했단다. 그리고 지금은 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구나.”
아버지의 따스한 체온이 마지막 불꽃을 피우며 두 모자의 심장으로 전해져 왔다.
“여보…….”
이제 울 수조차 없었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정녕 떠나려는 건가.
“여보, 믿을 수가 없어. 당신이 내 곁에 없다는 건…….”
“어머니, 아버지는 떠나시지 않아요. 영원히 우리 곁에 계실 거예요.”
“……그래, 그럴 테지. 암, 그렇고말고. 윤호 말이 맞아.”
아버지가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지막이 말했다.
“지금이 몇 시냐?”
아버지가 물었다.
“밤 열시에요. 정확히 열시 십 분이에요.”
내가 대답했다.
“……자야할 시간이구나.”
아버지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오늘은 내 방에서 자야겠다. 이불 좀 펴 다오.”
나는 아버지의 서재에 이불을 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왔다.
“내일 아침까지 혼자 있게 해줘. 오늘은 왠지 혼자 있고 싶구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느껴졌다.
“여보, 괜찮겠어?”
“걱정하지 마. 죽지 않을 테니. 그만 문 닫고 나가 봐.”
아버지의 서재에서 나온 우리는 한동안 멍하니 거실에 서 있다가, 어머니는 안방으로, 나는 내 방으로 각자 흩어졌다.


다음날 아침, 아버지의 서재로 간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듯 꼿꼿이 앉아 있었는데, 반쯤 감긴 그의 눈 아래로 나의 발등이 다가가자 그제야 고목처럼 옆으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아버지는 기어이 의사 말을 따르기라도 하듯 정확히 6개월 만에 우리들 곁을 떠나갔다. 그리고 나는 주인을 잃어버린 수천 권의 책 앞에서 한동안 멍하니 넋을 잃고 서 있다가,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서야 싸늘하게 굳은 아버지의 어깨를 끌어안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채종인 200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라쁠륨》 신인추천으로 데뷔. 김유정신인문학상 수상. 작품집 『사랑의 사막』 장편소설 『아버지 이순신』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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