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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시집속의 시/정치산/불통의 벽을 허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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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시집속의 시/정치산/불통의 벽을 허물고
불통의 벽을 허물고
―고종만 시집 『화려한 오독』 중에서
정치산
바람이 차별 없이 불어오는 날에도
거리는 거리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벽을 쌓느라 허무느라
뭐 보고 뭐 볼 겨를 없이 바쁘다
쌓을 건 쌓고 허물 건 허물어야 되겠지만
쌓는 것만이 벽을 더 새롭게 할 수 있다는 듯
허무는 것만이 벽을 더 새롭게 할 수 있다는 듯
햇살이 차별 없이 내리는 날에도
거리는 거리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어제를 빌미로 오늘을 허무느라
내일을 빌미로 오늘을 쌓느라
뭐 보고 뭐 볼 겨를 없이 바쁘다
이 별빛 좋은 밤에도
너는 너의 벽에서
나는 나의 벽에서
―「벽」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우리는 많은 벽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벽’,
‘벽’이란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집이나 방 등의 둘레를 막은 수직 건조물을 뜻하기도 하고, 공간을 나누고 에워싸는데 사용되는 구조적 요소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지만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나 장애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 보이는 벽은 눈에 보이므로 내 앞에 벽이 있으니 돌아가든지 허물든지 문을 만들든지 할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심리적인 벽은 어떻게 허물어야 할지 막막하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열심히 도움 주는 사람보다 어쩌다 한 번 크게 도움 주는 사람에게 더 많은 무게가 실리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씁쓸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가까이 있는 이의 소중함을 잊고 잠깐의 도움에 소중한 사람을 소홀히 대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벽을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쌓여 어느새 더 놓은 벽이 되어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
고종만 시인의 「벽」이라는 시에서 바람과 햇빛은 차별 없이 불어오고 비추어 주는데, 사람들 스스로 벽을 세우고 허물면서 새로운 벽을 만들어 가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이야기한다. ‘쌓는 것만이 벽을 더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듯, 허무는 것만이 벽을 더 새롭게 할 수 있다는 듯’ 서로가 소통하지 않는다. 바람과 햇살은 차별 없이 불어오고 비춰주는데, 서로가 편협한 한가지 생각으로, 또는 어제를 빌미로, 오늘을 빌미로 허물거나 쌓고 있다. 별빛 좋은 밤에도 너는 너의 벽에서 나는 나의 벽에서 각자의 벽을 쌓으며 불통의 세상을 만들고 있다. 시인은 불통의 벽 앞에서 안타까워하며 그런 안타까움을 담담한 언어로 전한다. 고종만 시인의 「벽」이라는 시를 읽으며 나의 벽은 얼마나 높이 쌓아지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정치산 2011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바람난 치악산』 강원문학 작가상, 전국계간문예지 작품상, 원주문학상 수상. 《리토피아》편집차장. 《아라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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