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작품(전체)
22호/특집 오늘의시인/허문태/벚꽃 외 1편
페이지 정보

본문
22호/특집 오늘의시인/허문태/벚꽃 외 1편
벚꽃 외 1편
허문태
아이들이 웃고 있어 철부지들이 하얀 이를 드러내고 목젖이 보이도록 웃고 있어 눈이 부셔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면 앞 다투어 매점으로 뛰어가는 소리 같은, 수학선생님이 미적분을 풀어내듯 잠시 첫사랑을 풀어 놓을 때 초롱초롱 눈빛 같은, 반 대항 농구 시합에서 역전 골을 넣었을 때 환호성 같은
걱정 하나 웃음 하나 걱정 둘 웃음 둘 걱정 셋 웃음 셋… 세어 보라 하는 거 같아 끝까지 셀 수 있어 물어 보는 거 같아
사랑하다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사랑을 하고 깔깔깔 웃다 죽은 사람은 죽어도 깔깔깔 웃고 수학여행 가다 죽은 아이들은 죽어도 수학여행을 가는 중이지
철부지는 철부지들이지 해마다 깔깔깔 수학여행을 가고 있지
저수지가 보이는 식당에서 잠시
잠시라는 것도 보인다는 것도 들판의 문제다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어디로 흘러가는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헤어졌는지
문득 들판의 문제다
어느 봄날 민들레를 한없이 보고 있었던 것이
노란나비가 앉아 있는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냇물의 소리는 부딪치는 소리라서
나보다 맑다고 생각했다
다 들판의 문제다 지금은
겨울 들판에서 저수지가 보였을 때 기러기는 저공비행을 한다
저수지가 보이는 식당에서
세네 명씩 네다섯 명씩 식탁에 둘러앉았다
일인용 식탁은 없고 사인용 식탁에 혼자 식사하는 경우는 있다
잠시 뭔가가 보일 때 얼른 봐두자
꽃이 피는 곳은 어디고 나무는 어디로 걸어가는지
나는 아직 늙어서
손에 굳은살이 두툼한 사람들과 식사를 한다
괘종시계 초침소리가 잠시 멈춘다
<신작시>
거미밥이 되다 외 2편
거미의 숨소리가 황망하다.
바람과 햇살 날벌레들의 습성을 정밀하게 계산하고도 아침이면 내가 지나가는 것은 계산하지 못했다.
머리에 걸린 거미줄이 또 찢겨졌다.
미물의 안목이라니
나를 제 먹잇감으로 생각하다니
거미집을 피해 거미줄을 보존한 날이었다.
황망한 거미의 숨소리 대신 허공에 마침표 하나 선명하다.
여름날 북극성 같다.
수많은 별들의 둥근 궤적을 거느린
허공 속에 마침표가 있듯이
먹이 속에도 물음표와 쉼표와 느낌표와 마침표가 있다.
밥은 둥근 식탁에 둥글게 둘러앉아 먹어야 한다.
거미는 내가 지나가는 것을 정확히 계산하고 거미줄을 쳤구나
떠돌이 날벌레 한 마리 거미줄에 걸렸다.
체액을 모두 빨리고 빈껍데기로 바람에 나부낀 날
거미줄에 햇살이 반짝인다.
나비
있는 듯 없는 듯 푸성귀 속을 꼬물꼬물 맴돈다. 얼갈이배추철이면 얼갈이배추 속에서, 열무철이면 열무 속에서, 김장철이면 산더미 김장배추 속에서 꼬물꼬물 맴돈다. 철따라 아웃도어 옷 색깔 바꾸며 꼬물꼬물 맴돈다. 어쩌다 늦은 점심 먹고 깜빡 졸다, 아줌마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머리를 뱅뱅 돌린다. 덕평야채집 박씨 마누라.
손톱 밑으로 까만 물이 들고, 꼿꼿하던 허리는 구부정하게 휘고, 소복했던 머리숱엔 바람이 숭숭 든다. 봄꽃놀이 가자고 하면 봄꽃은 텔레비전으로 봐야 전국 방방곡곡 다 본다던 덕평야채집 박씨 마누라. 시장바닥 맴돌며 도랑물소리만 돌돌돌 내더니 흰죽을 먹고도 극극 거린다. 믹스커피도 못 마시고 어질어질거린다. 평생 입던 아웃도어가 헐렁헐렁 허우적거린다.
허물 벗듯 아웃도어 벗어 놓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으며 금방 퇴원 할 거라고 하더니 위암이란다. 수술이 잘 되어 다행이라고, 좋은 항암제 많으니 걱정 말라고, 시장사람들 문병 와도 한마디 말도 없이 침대에 웅크리고 꼼짝 않는다. 저러다 영영 일어나지 못하면 어쩌나
겨울 지나고 춘삼월. 야채가게 그만둔 박씨 마누라 연분홍 정장 곱게 차려 입고 시장에 나왔다. 전국 방방곡곡 마음 놓고 꽃구경 다닐 거란다. 나풀나풀 시장을 두어 바퀴 돌고 훨훨 날아간다.
오후 여섯 시 무렵
비탈에 선 상수리나무가 곧은 자세로 슬쩍 등을 보인다.
저녁 강의 물결처럼 이파리가 반짝인다.
똑같아 보이지만 다 다른 이파리들
걸음을 멈추고 반짝이는 이파리를 보고 있다.
햇살이 산 너머 능선을 기웃거릴 때
멧새 한 마리 상수리나무 부드러운 가지에 포르르 날아들어 몇 번 깃털을 가다듬더니 이파리가 된다.
누룩뱀 한 마리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기웃기웃 기어오르더니 그 옆에서 이파리가 된다.
들바람은 들에서 불고, 산바람은 산에서 불고
바람은 불어온 곳이 있어 바람은 불어갈 곳도 있다.
마주치면 거수경례하는 아파트 후문 경비 아저씨
납품한 물건 값 한 푼 주지 않고 부도낸 성남물산 정 사장
노점상 강씨. 친목회 박 총무. 전동 휠체어 타는 동민 아버지. 슈퍼 하는 최씨. 생선집 오 사장. 희망 수선집 과수댁.
오후 여섯 시 무렵 상수리나무 이파리가 바람결에 반짝인다.
<시론>
선천성과 후천성
‘선천성’과 ‘후천성’을 생각해 본다. ‘선천성’은 먼 과거에 익숙했던 습성이 무의식 속에 남아 현재 나타나는 것이고 ‘후천성’은 미래의 선천성을 위해 새롭게 만들어지는 습성이라고 생각해 본다. 즉 그 언젠가 저자거리에서 평생 물건을 사고팔던 사람은 다시 또 생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남다른 재능을 발휘할 것이고, 평생 남을 위해 희생했던 사람은 다시 태어나도 어려운 이웃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행위를 보면 그의 과거에 생도 짐작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후천적으로 얻어진 습성은 미래의 선천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일이다. 미래의 선천성을 위해 후천적인 수고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온전히 본인의 몫이다.
내가 평생 장사를 하면서 시를 쓰고 있는 행위는 이런 측면에서 다소 설득력 있는 위안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언젠가는 시를 평생 썼을 것이고 -잘 쓰지는 못했지만- 참 가난하게 살다 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 선천성이 남아 지금 장사를 하면서도 장사에 하나 득이 되지 않는 시를 쓰고 있는 것이고,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은 미래의 선천성으로나마 돈에 구애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 다음 생에는 가난하지 않은 시인으로 살고 싶다는 갈망이 현재의 나의 모습이란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래는 희망이 있다. 다음 생에 시가 있을까? 시라는 형태의 어떤 예술 장르는 있을까? 우리의 습성이 남아 그대로 이루어질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또 다른 생은 분명히 있다”는 것만큼은 굳게 믿고 살아가고 있다.
참 불교적인 생각이다. 성당 다니는 사람이. 이 또한 선천성과 후천성의 문제다. 누구는 나의 이 모든 것을 단 한마디로 말 했다. ‘팔자군.’
그래! 장사도 열심히 하고 시도 부지런히 써 보자!
보잘 것 없는 것들은 진정 보잘 것 없는 것일까?
흙먼지 날리는 척박한 들판을 행진하는 들풀은 멀리서 보는 것보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더 좋다. 작은 가슴이 품고 있는 세상에도 영롱한 빛이 서려 있다. 그리고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꽃을 피워 세상을 밝힌다. 그래서 그 꽃을 보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가까이 가야 한다.
시는 그곳에 있다. 시는 아픔과 절망이 있는 곳에서 아픔과 절망을 기쁨과 희망으로 치환한다. 아픔 없이는 기쁨도 없고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는 논리보다는 아픔이 기쁨이고 절망이 희망임을 문득 알게 된다.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을 보면 순간 내 어두운 마음에 달이 뜨고, 마지막까지 하늘을 향한 몸짓으로 서 있는 고사목을 보면 순간 경건해지고, 깊은 어둠에 잠겼을 때 새들의 날갯짓 소리에 빛의 환희를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시는 쓰는 것만 시가 아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도 시이고, 새끼 잃은 고양이의 울음도 시이고, 장애인을 보살피는 손길도 시이고,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노을도 시이다.
시장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힘 있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이 아니다. 들풀처럼 살아가는 소박한 사람들이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쉽게 잊어지고, 또 어떤 사람은 마음속에 남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자꾸 생각나게 되고 더 자세히 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나를 밝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 나의 가슴은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놓친 붕장어 다시 잡아 도마 위에 놓고 배 가르는 부르튼 손 봤지. 갈치 흥정하다 그냥 가는 손님을 한동안 쳐다보던 뒷모습 봤지. 동태 몸뚱이를 무쇠칼로 내려치다 힐끗 뒤 돌아보던 눈빛 봤지. 자욱한 비린내 밀어내고 늦은 점심 훌쩍이고 먹을 때 흘러내린 머릿결 말없이 쓸어 올리던 모습 봤지. 쓸데없이 덤 준다고 두 번째 서방한테 구박 먹는 거 봤지.
그딴 건 늘 있는 일이잖아?
교통사고로 힘겹게 버티던 딸 화장해서 뿌리고
끌려 나오듯 가게 나온 목포댁 얼굴 봤어?
그 시린 물빛 봤어?
―「목포댁, 물빛」
중앙시장 끝자락 어둠 한 점 앉아있다.
그 앞을 지나가면 왠지 환해지는 어둠이다.
새벽이 오기 전 어둠 같은
안기면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것 같은
한 망태기 비린 바지락들은
오늘도 제 어둠만 앙 물고 달그락거린다.
많은 것보다 더 많게, 쌘 것보다 더 쌔게
휘황찬란한 대형마트
잘 벼려진 창칼 같은 것으로 무엇인가를 후벼 파야만 한 점 빛을 얻는다고, 무한의 공격성만이 오직 정점에서 빛난다고 하면, 휘어진 손마디에 퉁퉁 불은 느려터진 손놀림으로, 바지락을 까는 할머니는 얼마나 후미에서 엉거주춤 따라오는 것인가?
어둠이 어둠을 껴안고 있다.
지극함이다.
바다가 그리운 바지락들은 어둠 속에서 눈을 뜬다.
중앙시장 끝자락에 어둠 한 점
밤늦은, 겨울바람 속에 앉아 있다.
―「어둠으로 까는 바지락」
야간에 김밥집에서 일하는 여자라고 하면
그런 사람 한두 명이냐고 할 것 같아서
막내딸까지 대학 입학 시킨 엄마라고 하면
빚의 오라에서 풀려나기는 틀렸다고 할 것 같아서
남편 병간호 하며 반지하에서 월세 산다하면
보도블럭 갈라진 틈의 민들레 같다 할 것 같아서
좋은 시절을 꿈꾸는 것은 죄가 될 수 없는데
긴 밤을 잇는 통점들이 모래알처럼 뿌려져 있어서
수술도 못하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고 하면
다짜고짜 하늘 향해 삿대질 할 것 같아서
그냥,
달이라고 한다.
―「달」
얼마 전 가슴에 들풀을 품었다. 생선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이다. 밝고 명랑한 청년이다. 손님이 아니어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아침이면 얼음을 좌판에 깔고 생선을 진열하고 바닥을 청소 하는 모습이 힘차고 진중하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행복해진다. 사람들이 많아지고 가게가 바빠지면 청년은 더 힘차게 손님들 비위를 맞추며 환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손님도 신나고 주인도 신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덩달아 신이 난다. 얼마 전부터는 사귀는 여자 친구도 함께 생선가게에서 일을 한다. 헐렁한 몸빼바지 밑단을 장화 속에 넣고 부지런히 장사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의 미래가 태양의 일출처럼 환하게 떠오른다. 젊은 사람의 자신감 있는 건강한 삶의 모습이 아름답다. 나도 자반고등어 한 손을 샀다. 그리고 그의 손목에 문신을 보았다. ‘아빠 사랑해요.’
나는 암탉이 알을 품듯 청년을 품는다. 청년이 부화하여 들꽃이 될 때까지.
- 이전글22호/특집Ⅱ 설한 속의시/천세진/겨울, 동면冬眠의 언어 19.07.09
- 다음글22호/권두칼럼/백인덕/불가피한 모든 ‘결별’을 위하여 19.07.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