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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특선/김보일/용승湧昇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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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72회 작성일 19-07-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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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호/신작특선/김보일/용승湧昇 외 1편


용승湧昇 외 1편


김보일



  바다 밑바닥의 차고 검은 물들이 대양의 표면으로 치고 올라오는 날들이 있다 심해의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비린 것들의 오장육부가 쾌속열차를 타고 집단으로 상경하고 바다의 눈알이 뒤집히고, 물고기들은 지느러미로 격렬한 구호를 외치며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몰려 시간을 거슬러 올라오는 아가리가 억센 조상들의 뼈와 살을 먹어치운다 물고기들의 턱뼈 깊숙이 감춰진 욕망에 바다가 갱신된다 바다의 배꼽이 머리 위로 솟고 바다의 입이 귀에 걸린다 하극상이라고, 아니, 이것은 아주 오래된 바다의 전통 중의 하나일 뿐이다





서강西江에서



  서강 밤섬은 거문고 악사, 어은漁隱 김성기의 고기잡이배가 퉁소와 비파와 달빛을 싣고 오던 섬, 밤의 산보길에 밤섬을 내려다보며, 동지 무렵이면 알을 낳으러 먼 바다에서 양화도楊花島와 서강西江으로 몰려왔다던 붕퉁뱅어를 생각한다 이 하얗고 가냘프고 아름다운 물고기는 이제 서강에 오지 않아, 붕퉁뱅어의 귀향선에 부드러운 달빛을 실어줄 금사琴師는 없다 갈대와 갈매기들의 인기척을 정간보에 옮겨적던 악사樂師들도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불러왔을 파도의 떨림도, 여뀌꽃 강변의 갈대를 수런거리게 하던 퉁소의 소리도 없다 강변도로를 질주하는 밤의 자동차들을 바라보며 달빛이 악사를 낳고 악사가 붕퉁뱅어를 낳던 서강의 고요한 강물소리에 잦아드는 밤이다





<신작시>


구름주유소 외 2편



  해거름 여우재 넘어가는 길에 기름이 바닥나 죽을똥살똥으로 차를 밀고 가다보니 떡하니 푯말 하나가 나타나더라고. 구름주유소? 기름주유소를 잘못 읽은 것이겠지 했더니 눈을 씻고 봐도 구름주유소라. 누구 없소 불렀더니 발정 난 고양이 울음소리만 연해 들리더라고. 셀프주유소라 가격도 헐하니 우선 넣고 보자 싶어 주유구에 노즐을 집어넣고 기름을 넣는데 차가 으스스 몸서리를 되우 치는 거라. 요상하다 싶었지만 만땅으로 주유하고 엑셀을 밟았더니 차가 공중으로 붕붕 뜨는 거라. 이놈의 차가 실성을 했나, 백여시에 홀렸나, 못 먹을 걸 먹었나 싶어 어리벙벙해져 창밖을 보니, 어라 이것 봐라, 빨강차, 노랑차, 파랑차, 온갖 색색을 뒤집어 쓴 차들이 번호판도 없이 어둠 속을 달리고 있는 거라. 마침 서있는 차가 있어, 여기가 어디냐고 운전사에게 물으니 당신 주위를 잘 둘러보라는데, 왼통 시커먼 먼지 구름 속인 게야. 이쪽저쪽을 살피다 백밀러를 들여다보니 얼레, 거울 속 계곡에 내가 새우처럼 구부러져 차갑게 식어 있더라고. 구름주유소라 씌어있을 때 애시당초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거기가 유턴이 불가하다는 불귀의 허공이었던 게야. 후진기어도 먹지 않으니 어디 한갓진 데 주차해놓고 두 발 가지런히 뻗고 깜박깜박 밀린 잠이나 잘 수밖에. 꿈 없는 잠이나 주무실밖에.





나의 자리



퇴근을 해서 집에 돌아오니
나의 자리 침대 왼쪽에서
고양이 구름이가 내 잠옷을 입고 내 안경을 쓰고
내가 읽다 둔 책을 읽고 있었다.
구름이는 눈짓으로 내게 오른쪽 자리를 권했다
아내의 자리였다
아내의 자리에 앉으니
장롱도, 화장대도, 화장대 위의 화장품도 크게 보였다
고양이에게 안경을 달라고 하여 방을 다시 둘러보니
옷장 안과 수납장 안에 가지런히 옷들이 개켜져 있었다
책장에도 책들 대신 수건과 속옷들이 잘 접혀 꽂혀 있었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에
나는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가
구름이가 입고 입던 잠옷을 입고
구름이가 읽고 있던 책을 읽었다.
책 속에서 구름이가 웃고 있었다





제왕나비의 출사표



생수도 한 병 없이
주먹밥도 없이
두 개의 국경을 넘으려면
박주가리의 독이 온몸에 퍼지도록
빈속을 쓴 잎으로 든든히 채워둬야 해
오직 분별이 없는 새들만이
독으로 온몸을 칠갑한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막겠지만
박주가리의 쓴맛이 그들의 혈관에 이르게 될 즈음에는
그 새들의 주소는 영원히 지상이 되고 말 거야
공중에 문패를 달고 싶어하는
어떤 날것들도 박주가리의 방패를 뚫지는 못해


눈물은 피로를 부르는 질량일 뿐이니
액체 따위는 출발 전에 미리 비워둬
우리 앞에는 변변한 휴게소나 주유소도 없지만
성질이 사나운 새들의 내장을 뒤트는 박주가리의 독과
우리의 뒤를 밀어주는 바람의 백만 기병이 있어
별들이 허공에 그려준 지도는 어떤 지우개로도 지워지지 않아


정처없는 정처의 끝
내 아버지의 아버지와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날개를
끌어 당겼던 우리가 알지 못하는 부름을 좇아
침낭 속에 잠들어 있는 별들을 깨울 시간이야
날개 위에 부스러진 이슬을 털어낼 시간이야





<시작메모>


  버스 뒷좌석에 앉아 아내의 친정에 가고 있을 때, 버스가 심하게 요동쳤다. 뒷좌석이 받는 충격이 컸는지 뒷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공중으로 뜰 지경이었다. 그때 내 입에서 나온 말이 “애 떨어지겠네.”였다. 그때 아내는 임신 중이었다. 무심결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닳고 닳은 말이 아니었다. 진부한 클리쉐도 아니었다. 은유와 상징이 되기 이전의 언어. 장식이 되기 이전의, 벌거숭이의 언어. 과연 나의 시에는 그런 절실한 언어가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보니 다른 이들의 언어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 사람들, 식당 아주머니,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반드시 시詩일 필요는 없었다. 신음처럼, 탄성처럼, 한숨처럼 사람의 머리를 우회하지 않고 사람의 입을 빌어 나오는 절실한 가슴의 언어, 그것이 산문을 닮으면 좀 어떠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시가 산문을 끌어당긴 이유가 거기에 있다. 산문으로 풀어지다가도 시로써 조여주는 말의 장단, 니이체의 산문이 다리 보였던 것도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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