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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특집Ⅱ시時, 시柹, 시詩/허문태/가을 산사에 시柿가 익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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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23회 작성일 19-07-09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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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특집Ⅱ시時, 시柹, 시詩/허문태/가을 산사에 시柿가 익는다


가을 산사에 시柿가 익는다


허문태



  가을, 서산 개심사開心寺를 찾아 산길을 오른다. 산바람이 서늘하다. 산바람에 떨어지는 낙엽들이 깊고 고운 빛깔로 바닥에 쌓인다. 저 깊고 고운 빛깔의 낙엽은 그 생의 끝이 환하다. 마지막 순간 바닥을 선택할 수 있는 겸손한 성찰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바닥이 싫어서 자꾸만 높이 오르려고 얼마나 아등바등 살았는가? 그러다 바닥으로 떨어져 시궁창에 빠지기고 하고, 길바닥에 나둥글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밟히기도 하지 않았던가? 낙엽은 스스로 바닥을 선택하여 거룩한 순환의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가을을 걷는다. 가을 골짜기를 걸어 들어가니 골짜기마다 사유의 빛깔들이 곱다. 곱게 물든 낙엽 하나를 내 마음의 갈피에 끼워 넣는다.


  개심사 경내로 들어서니 배롱나무는 매끈한 몸매로 하늘 길을 유유자적 걸어가고 있다. 스님은 출타 중인지 대웅전은 침묵 중이고, 명부전 앞 오래 된 감나무에는 그 가슴에 불을 밝힌 감들이 연등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방랑을 끝낸 열매들이 환하다.
  가을 산사에 시柿가 익는다.
  가을 개심사 명부전 앞에 감은 메타포다. 어머니일 수도 있고, 등불일 수도 있고, 실연일 수도 있고, 아픔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고, 그리움일 수도 있다. 뭐라 설명하는 것보다 그냥 그대로 보고 느끼는 것이 좋다. 방랑의 열매이기 때문이다.
  떫음에서 달콤함으로, 어둠에서 밝음으로, 부족함에서 풍요로, 빈 것에서 충일로의 변화는 우리 삶이 추구하는 명제다. 그러나 그것이 이루어지기 위한 지난한 과정은 우리가 왜 겸허하고 끝없는 성찰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감이 맺히고 자라고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란 나는, 가을 맑게 익은 감을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 지난 계절의 고된 아픔이 달콤한 행복으로 바뀐다. 그래서일까? 이번에는 가을 개심사 명부전 앞 감을 보러 왔다. 고집불통 푸르락푸르락 떫기만 하던 감들은 언제 마음을 열고 밝아졌을까? 가을 산바람일까? 주지 스님의 새벽 독경소리일까? 산사를 돌아 마을로 울려 펴지는 종소리일까?  나는 잠시 침묵에 든다.
  얼마가 지났을까? 감들이 풍경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풍경소리에 나도 마음을 열고 어린 시절 감나무 아래로 달려간다.


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이 그리 많았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 몸이 부르터
늙수구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떫다

풋생각을 남에게 건네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독하게, 꽃을, 땡감을, 떨구며
지나는 바람에 허튼 말 내지 않고
아니다 싶은 가지는 툭 분질러 버린다
단호한 결단으로 가지를 다스려
영혼이 가벼운 새들마저 둥지를 틀지 못하고
앉아 깃을 쪼며 떨치는 법을 배운다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를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함민복「감나무」전문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뒤란에는 감나무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감나무들은 내 친구가 되었다. 장대를 높이 쳐들어도 키를 맞출 수 없는 키 큰 감나무. 키는 작지만 커다란 감이 열리던 감나무. 겁 없이 올라갔다 떨어져 내 팔을 부러뜨린 감나무. 가을이면 낙엽이 유독 붉고 빛나서 장군의 투구 같은 모자를 만들어 썼던 감나무.
  감나무가 내 유년을 키웠다. 뻐꾸기 우는 유월이면 왕관 모양을 한 감꽃이 가지마다 바글바글 피었고, 환한 감나무 그늘 아래서 땅따먹기 놀이를 했다. 흰 밥풀 같은 감꽃이 뚝뚝 떨어지면, 쌉싸름한 그 감꽃이 허기를 채우고 동심을 채웠다. 혼자 있을 때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감꽃 목걸이를 만들었다. 유독 얼굴이 하얀 큰대문집 희숙이에게 주려고 남몰래 감꽃 목걸이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감꽃 목걸이는 한 번도 희숙이의 하얀 목에 걸어주지 못하고 뒤란 한쪽에서 비들비들 말라갔다. 감꽃같이 희고 곱던 희숙이는 그해 여름을 넘기지 못했다.
  감당할 수 없는 먹먹함이 어린 가슴에 떫게 자리 잡았다. 그것은 아픔이고 고통이었지만, 아픔도 고통도 알지를 못해 멍하니 꾹꾹 참고 견뎌야만 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싫었다. 친구들이 싫었고, 가족이 싫었고, 선생님도 싫었다. 외톨이가 되어 빡빡 떫어지고 있었다. 다만 땡감이 흘린 감물만이 지워도 지워지지 않은 채 감꽃 무늬가 되어가고 있었다.
  살면서 살아가면서 기쁨과 즐거움보다 외로움과 먹먹함 고뇌 같은 것에 더 익숙했다. 다만 끝을 알 수 없는 긴 터널 속을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긴 어둠 속을 걸었을까? 생의 계절 가을의 한가운데서 노모로부터 홍시 한 알을 받아 들었다. 늘 내 주위에서 볼품없이 서성이던 노모가 건네는 홍시를 받아 들었다. 무심코 한 입 쪽 빨았다.
  아! 환희란 이런 것일까? 순간 어둠이 사라지고 온 천지가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어머니는 몸을 굽히고 굽히면서라도 간직하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세상풍파에 시달려도 쏟아내지 않고 간직하려는 것이 있었다. 달콤함이었다. 사랑이었다. 굽히고 굽혀서라도 나를 다디단 생으로 세상에 남게 하려는 어머니의 아가페였다. 욱신거리며 고통스러웠던 떫음이 깊이를 알 수 없는 달콤한 세상으로 나를 데려다 놓았다. 이제 나의 가을 뒤란에는 붉은 감이 달콤하게 익어가고 있다. 


  “익는다”의 단어에는 ‘어딘가에 다다라 완성되어 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어딘가에 다다른다는 것은 ‘어딘가를 출발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여기에 다다랐다.’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익는다”는 것은 불확실한 것이 치열한 혼돈을 거쳐 내면의 정교한 질서가 채워지는 것이다.
  감이 열리고 자라고 익는 과정을 보면 그러한 과정을 아주 잘 보여주는 듯하다. 감꽃이 진 자리에 감이 자리를 잡으면 떫은 생각으로 가득 찬다. 떫다는 것은 싫다는 것이고, 불만이 많다는 것이고, 인상을 쓸 수 있다는 것이고, 건드리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이고,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 외톨이일 수 있다는 것이고, 아집 덩어리일 수 있다는 것이고, 문득 슬플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떫은 생각들이 다 자신의 작은 완성을 위한 질서 있는 과정의 한 단계임은 자명한 일이다. 감은 철저히 떫은 과정을 거치면서 달콤함으로 그 생을 마치기 때문에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의 모습이 구도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또한 감은 언제나 우리들 생활 속에서 애환을 함께한다. 성속일여聖俗一如를 실천하는 모습이 느껴지기도 해서 더욱 애착이 간다.
  익어가는 감을 보고 있으면 문득 감사하고, 다행이고, 기특하고, 고맙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만약 떫고 푸른 감이 익지 않고 푸르락푸르락 심통을 부리며 시퍼런 채 떫게 그대로 있으면 어떻게 하나. 가을이 되어도 포도처럼 사과처럼 익지도 않고 그냥 꼴통을 부리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가을날 익지 않는 감이 시퍼런 채로 떫게 감나무에 매달려 있다면 얼마나 난감한 일인가?
  떫었던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비워내고 그 자리를 서로 껴안아 조화를 이르는 마음으로 채워가고 있으니 얼마나 기특하고 고마운 일인가.
  해마다 감이 익을 때면 나도 감을 따라 익는다. 떫었던 지난 계절의 어리석움과 쓸데없는 자존심과 민망한 욕심과 낮 뜨거운 교만과 조악한 합리화와 근시안 적인 인간관계. 그 자리를 밝고 기쁘고 달콤하고 텅 비어 놓고 서로서로 조화를 이루는 자리로 만들어간다.
  릴케는 「가을 날」이란 시에서 가을의 충일함을 노래함과 동시에 고독한 내면과 실존적 불안에 대해 말한다. “자신의 내면으로 걸어 들어가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것, 바로 이런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그의 긴 편지에서 말한다.
자연이 한껏 차서 가득해지는 때가 가을이듯이 단독자인 인간의 내면 또한 풍성해지는 때가 가을이다.


  내 생에는 詩가 있다. 그 시에는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미음과 욕망 그리고 사랑이 있다. 내 詩에는 柿가 있다. 그 柿에도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미음과 욕망 그리고 사랑이 있다. 이 가을 개심사 명부전 앞에 柿가 익는다. 작은 완성과 끝없는 순환을 위해 마지막으로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달콤하게  익는다. 
시柿가 익는다.
시時가 익는다.
시詩가 익는다.





*허문태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달을 끌고가는 사내』. 《아라문학》 부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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