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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특집Ⅱ시時, 시柹, 시詩/김영진/가을구두를 신은 시.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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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50회 작성일 19-07-09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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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특집Ⅱ시時, 시柹, 시詩/김영진/가을구두를 신은 시.시.시


가을구두를 신은 시.시.시


김영진



  가을구두 장만하려고 상시할인매장을 찾았다. 갈색 구두를 골라 신어본다. 객장 직원이 묻는다. 마음에 드시는지, 발은 편하신지. 카드를 꺼내 삼개월 지불로 긁는다. 경험에 비춰보면 보통 지나치는 게 있는데 구두의 무게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리털처럼 가벼워야 되는데 말이다. 신었는지 안신었는지도 모르도록 가벼워야 좋다. 발이 부르트도록 땅바닥을 끌고 다녀야 하는데 온몸의 힘을 발에다 내리꽂고 다니면 비명소리 들릴 것이다. 고달픈 땀내로 천대 받아온 발들이 꿈꾸는 혁명처럼, 짓밟으면 드러눕는 잡초처럼, 가벼운 구두를 신겨 달라 한다.
  짓눌리어 닳아가는 뒷꿈치 모양은 성격마다 걸음걸이 스타일마다 좌든 우든 절반 정도 갈린다. 수선집에 가 뒷굽을 고칠 때면 수선공이 좌측으로 힘을 많이 쓰셨나 봐요 한다. 갑자기 소름이 돋는다. 누가 들으면 좌파라 할까 봐서이다. 그런데 손님 이 쪽 구두는 우측으로 달았네요. 그래서 또 깜짝 놀라 안경 너머 손톱 새까만 그 사내를 쳐다본다. 그러면 왼쪽다리는 좌파요, 우측다리는 우파란 말이지. 그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도란 말이겠네. 누가 들을까 겁이 난다. 요즘 세상 동유럽은 좌파가 득세하고, 서유럽은 우파가 득세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공연히 나는 좌파인가 우파인가 묻는다. 구두 뒷굽을 고쳐 신고 돌아오는 길에 좌우가 평평하다. 상호 견제와 배려가 있다.


  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쓰라고 릴케는 말했다. 시를 쓴다는 것은 오욕칠정의 맛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어디 가서 어떤 맛을 볼까. 술맛, 밥맛, 국맛, 친구, 그대, 부모, 형제자매, 온통 맛 천지다. 어디든 가봐야 직성이 풀리는 궁금증, 천 개의 맛에 천 개의 시를 쓰겠다고 무기 다룰 줄도 모르는 신병이 설치는 꼴이다. 두려웠다. 칠백 편 넘어 썼다. 내년쯤이면 천 편에 도달할 것이다. 이 중 좋은 시 한 편이라도 탄생해 줄까. 좋은 시가 탄생되지 못한다면 왜? 어떻게?를 또 물어야 할 게 아닌가.
  시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남대천 연어의 뇌 속에 박힌 자이로스코프 따라 다시 받아내야 하는 모천 귀향길이 아니겠는가. 시를  찾아 떠돌다가 달그림자 비추는 가을구두 뒷굽 미미한 그림자에서 시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그야말로 무릎을 치며 헛기침을 해댄다.
  시를 배우면서 진화의 뿔을 산양처럼 달고 다닌다. 산양뿔에 누워 있는 삶의 여유가 철철 넘치는 저 달을 보라. 하품을 해대며 졸고 있지 않은가. 가을구두를 신은 시, 시, 시들이 가을 솔숲 사이에서 술래잡기를 하고 있다. 詩想이란 보였다가도 금방 사라지는 것이다. 어딘가 흔적을 남겨야 하는데 송충이 같은 글씨로 메모한다든지 핸드폰 열어 틱틱 단어를 냉장고 칸 채우듯 하고 돌아다닌다.
  지난밤 산양뿔에서 졸던 달의 삶처럼 여유있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증이 피어오른다. 가을햇살이 창가에서 빙그레 미소를 짓다가 오후에는 책상까지 놀러왔다. 햇살과 대화를 시작한다. 햇살이 묻는다. 너를 위해 작은 투자를 해본 적이 있는가. 새 잠옷, 새 양말, 새 구두들을 언제 사 봤는가. 아니, 한참 전 일이었지. 참 무심했었네.


  요즘 만화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만화책을 본 지도 오래 됐군. 이 말이 나오기 무섭게 햇살이 말한다. 자네는 창조성과 유머, 젊음을 포기하며 살고 있네. 화살코가 그림자로 자라고 있었다.


  자네, 샤워 할 때 노래를 불러본 적 있는가. 외국영화 주인공 커크다그라스처럼 말일세. 글쎄 거울에 비춰진 모습이 초라해서 얼른 물만 묻히고 나오곤 했네, 그러니까 그게 말일쎄, 욕실에서 낭만을 찾아보란 말야. 팝송은 못해도 트로트는 알지 않는가. 뽕짝 ‘샤방샤방 몸매는 에스 라인 아주 죽여줘요’ 이 정도는 부르란 말일세.
  햇살이 다시 묻는다. 자네 말야, 요즘 얼굴이 안 좋아 보이는데 꽃 한 떨기에도 맑게 개인 날씨에도, 아침햇살에도, 이런 아주 작은 일에도 감동을 받아보라고. 그러면 체내 항생제가 많이 생긴다네. 그러면 저절로 건강해진다네.
  잠시 햇살과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따끈한 물에 커피 한 스픈 타 햇살을 섞어 마신다. 햇살이 그런다. 꽃을 심어 봤어? 묵묵부답 고개를 저었다. 자네는 여유 없이 살고 있지 않은가. 화살코가 아까보다 더 자랐다. 그럼 자네 연주할 수 있는 악기 하나라도 있나. 없다면 배우게. 여유로운 향기가 만 리까지 퍼질 걸세.


  유년시절에 하모니카를 배우다 그만 둔 적이 있었다. 불기만 하면 머리가 아파 동네 형이 준 하모니카를 내던졌던 생각이 났다. 이보게 그게 그렇게 쉽게 배울 수 있다면 세상은 얼마나 시끄러웠겠나. 그건 호흡 문제였네. 마시고 드리밀고 밀당을 잘해야 되지. 자네 연애박사라고 소문이 났더구먼. 다시 한 번 시작하게나.
  이내 고개를 끄떡이고 있다. 아무튼 몇 번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한 게 없었다. 은근히 햇살이 겁났다. 또 뭘 물어 보려나. 물어보라고, 햇살이 팔을 걷고 묻는다. 지금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뒤로 미룬 적 있나. 글쎄, 이게 기쁨이구나 하고 중심을 잡기도 전에 사라지곤 했네. 이 사람 눈치도 없구먼. 한참동안 멍하니 햇살 아래서 허허허 웃었다.
  자네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피하는 게 좋을 거야. 그 사람과 친해지면 자네도 부정적인 사람이 돼서 삶의 여유가 없어진다는 말일세. 아하 그렇구나, 하고 싶은 일은 절대로 포기하지 말게. 햇살, 그거 좋은 말 했네. 난 말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등산도 하고, 춤도 추고 싶어.
  햇살이 머리를 톡 친다. 바보야 술배 따로 밥배 따로 있다는 말 못들어 봤어? 시 쓰고, 그리고, 등산하고, 춤 출 시간이라면 어머니 햇살 아래 누이 쉐타 짜듯, 초가지붕 이엉 얹기 하듯 하면 될 것 아닌가. 
  자네 돈 좀 있다고 소문이 났던데, 남 돕는데 써본 적이 있는가? 가뭄에 콩나듯 했네.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랬다. 육보시는 못해도 錢보시는 해야겠다고 가슴이 옹알옹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그건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베푼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다음에는 뭔가. 남과 견주어서 부러워 하지 말게. 자기에게 주어진 그릇이 있는데 욕심 내면 넘치고, 욕심 안내면 모자라고, 그저 그릇에 반 이상 찼다면 더 이상 힐끗거리지 말게. 좋은 얘기로구만. 그런데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나. 이제 끝내지 그래.


  햇살이 마지막으로 말한다. 자네 전화 받을 때는 항상 활기찬 목소리로 받아야 되네. 그건 왜 또 그런가. 몰라서 묻나. 상대방이 자네 축 쳐진 목소리 듣고는 다음부터는 전화 걸기 꺼릴 테니까 말야. 아하, 기분도 전염 된다는 말씀이구나.
  대화를 끝내자, 가을햇살이 책상 한켠에 있는 뒷굽 바꾼 가을구두를 쓰다듬어 주고 있다. 이 와중에 나는 시 한 편을 쓰고 있었다.


  명태는 대구볼테기에서 자라난 혈통이다 가문의 발자취는 함경도부터 경상도까지 한류의 동해안을 거역한 적이 없다 추위 모르는 유전자는 북극으로부터 始原의 물 흘려보내면 수억년 전 삼엽충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일제 강점기 북간도로 징용된 사람들이 향수에 젖어 명태를 오작오작 씹으며 로스케* 말을 익혔으리라 냉대수가 한반도 등허리로 흘러들어 태백산 등짝에는 땀을 흘려 본적이 없다고 우긴다 높새바람 부채질로 달구어 보지만 이내 식어버릴 때 쯤이면 명태가 바다의 조도를 검게 장막쳐댄다 모니터 화면의 밝기를 높여야 하는 시간과 거리의 길목 난파도에서 선장의 호령소리가 그물을 내린다 뜰채가 무겁다고 잉잉거리면 갈매기 날개에서 탄생한 바닷바람이 토닥거린다 만선 깃발 달고 하현달 새벽에 정박하면 소백산은 소란스럽다 덕장에 새끼줄 물고 매달려 북풍 맞으며 딱딱하고 노랗게 육보시 하는 명태다 어머니 시집갈 때 꽃가마에서 북어 한 마리 꼬약꼬약 뜯어 다 먹으니 신랑집에 도착했다는 옛날얘기를 섞어서 매콤한 명태조림을 땀 뻘뻘흘리며 먹는다 끈질긴 정을 씹고 있었다 주문진 바다속 무덤을 빠져나온 어머니가 동해안 등대 밝혀놓은 제상에서 마디마다 해삼 멍게 말미잘 달라붙은 손가락으로 명태조림에다 젓가락질 하고 있다. 따닥따닥.
 
육탈 되지않은, 맑은 영혼의 언어를 織造하듯, 가을이 큐빅 퍼즐게임을 하고 있다.





*김영진 2017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달보드레 나르샤』. 《아라문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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