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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특선/우동식/무화과 외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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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4회 작성일 19-07-0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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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특선/우동식/무화과 외 4편


무화과 외 4편


우동식



꽃 피지 않는다 말하지 말아라
열매가 꽃이라 속이지도 말아라
속으로 피는 꽃도 있다
보이지 않게 피는 꽃도 있다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
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에게
꽃이 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볼 수 없어도 피는 꽃,
보이는 것 나타나는 것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그런 꽃 말고
속 깊은 곳에서 그 몸 살며시 열어
그대 안에서 달콤하게 말문을 열면
살짝 입술 벌린 꽃술에 취하겠지
그대 안에서 옹기종기 돌기로 피어나는 꽃
네 안에 꽃 피려
오래 오래
햇살의 문장과 바람의 번역을 즐겼다
보이지 않아도 보석처럼 빛나는
안으로만 피는 꽃이 있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지구라면
그래, 그렇다면, 자전축이 되어
하루에 한 바퀴 지구를 돌리고 있겠지
일년에 한 번씩은 태양을 돌고 오는 거야
나를 중심으로 해와 달과 별이 빛나는 거야 
내 안에서 바람이 불고 구름이 일고 비가 내리겠지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있고 
솟은 산과 깊은 계곡엔 강이 흐르겠지 
숲에는 새들과 짐승들이 살겠고
공중에는 새들이 날겠고  
물에는 물고기들이 헤엄치겠고
땅에는 온갖 식물들이 뿌리를 내리겠지
만약에 말이야
내가 지구라면,
아니 지구일지라도
지금과 다른 게 뭐람
지구 속에 사는 나와 다른 게 뭐람
긍께, 지구와 난 하나랑께
아니 내가 곧 지구랑께
지구의 심장이랑께





비사리구시



영혼이 빠진 음식 먹는 날에는
재수에 옴 붙은 날 
주인까지 밥맛 없어 보인다
속이 편치 않고 뒷맛도 개운찮아
‘밥벌레 같은 놈, 폭삭 망해버려라
문 나설 때 저주와 악담까지 퍼붓는다
머지않아 그 식당은 개밥에 도토리 꼴
밥벌이는커녕 찬밥신세, 국물도 없다 
속일 수 없는 입맛이니 
그 입에서 좋은 입소문 나겠는가


송광사 비사리구시는
4천 명의 밥을 담을 수 있는 밥통이다
money 뭐니 해도
알고 보면, 다 밥 짓고 밥 퍼는 일
잘 먹고 잘 살자는 일 아닌가
세상만사 다반사가 제 밥그릇 챙기는 일
밥심으로 살고 밥이 곧 법인데  
밥상 공동체의 행복을 차 버리다니
송광사 비사리구시 앞에 서면
먹고 사는 일이 다 경구를 읽는 일이다
영혼의 밥통을 채우는 일이다


그 큰 법전이 입을 열고 공양하고 가라신다





꽃들의 설계도면



상암초등학교 운동장 귀퉁이
벚꽃나무 설계사무소
분주하게 움직이는 2월이다
반란을 일으키려나 봐
계획하고 도모하는 저 은밀한
도면을 수놓은 와이어 프레임
바람과 햇살이 모의 작당해
때와 시기를 계산 중이다
꽃은 필 때가 제 때
봉긋한 봉우리 만들어
슬며시 터뜨리는 저만의 타이밍
벚나무 자가발전소를 가동 중이다 
불을 켜고 불을 켜고 불을 켜면
꽃불잔치가 되겠지
벚꽃 공작소 되어
한 골짜기 화花아안 하겠다
꽃물 들어 꽂천이 흐르겠다
물고기도 꽃 비린내 나겠다
겨울 벚꽃나무 설계도면에는
화원 한 채와 불이 들어앉았다
불붙기 전,
햇살 감리사가 분주하다





중심 잡고 걷기



중심 잡고 걷는다는 것은
이미지를 그리며 가는 것이다
제 발로 또박또박 땅을 밟으며 가는 것이다
가슴으로 늘 사람을 향하는 것이다


형상 없는 길은 무의식 속의 여행
발이 없는 길은 허공 속의 울림
가도가도 무의미한 게 사람 밖의 길이다


中心은   
항상 가운데다
좌로 갔다 우로 갔다 하더라도
다시 제자리 돌아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수평 추처럼 
중심으로 중심을 잡는 일이다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홀려댈지라도
일단 멈춰 내 속에 귀 기울여
마음의 음성을 높이 세우는 일이다


중심은 늘 내 안이다
그 세밀한 소리에 민감할 때
거부할 수 없는 강한 느낌을 받을 때
좌우로 치우침 없이 똑바로 걷는 것이다 


밖은 곧 안의 경계이다
밖에서 발자국 소리를 들을 때
중심은 또 다른 중심을 잡고
주변을 견고한 담이 되게 한다
중심을 따라 걷는 길은 늘 행복하다





<시작메모>


대부분이 그렇다 삶이 또한 그렇다.


이미 얻었거나 이미 잃었거나 ,
이미 이루었거나 이미 지났거나,
이미 한 일이다 .


그러나,


아직은 얻어야 하고 아직은 잃어야 하고,
아직은 이루어야 하고 아직은 가야 하고,
아직은 해야 할 일이다.


이미와 아직 사이
‘환상’과 ‘실제 사이’를 걷고 있는 나는,
그래서
늘, 불안하고,
늘, 기대되고,
늘, 새롭다.
머리는 하늘에, 발은 땅에 두고,
직립하는 이유다. 


-직립의 이유 중에서





*우동식 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 바람평설』, 시 해설집 『 바다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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