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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김종호/두 개의 서늘한 풍경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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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670회 작성일 19-07-0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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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김종호/두 개의 서늘한 풍경 외 1편


두 개의 서늘한 풍경 외 1편


김종호



  1.
  저 개는 이제 노인만큼 늙었네, 풀기 없는 무릎으로 어기적어기적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으로 가네, 달거리를 해본 적이 언제였나, 여자인 적이 있기는 있었나, 문명의 거리엔 오늘도 애완견 센터가 휘황하게 불을 밝히고 수술대를 걸레로 닦고 있네, 깜박 잠이 들면 캉, 캉, 캉, 캉, 누군가 잃어버린 목소리에 못을 치고 있네,


  2.
  목줄에 매인 개가 헉헉거리며 뚱뚱한 여자를 끌고 온다, 질척하게 눈 녹는 방죽 길에 코를 박고 연신 킁킁대며, 저 길 끝나는 어디쯤에 모지라진 밥그릇에 쌓인 눈발만큼이나 슬픈 몸뚱이를 부리러 끌려가는 여자, 끌고 가는 여자, 허무의 굴레를 자랑처럼 끌고 가는 여자, 끌려가는 여자,





고립, 혹은 덫



1.
그는 지하 생활자


지상의 이목은 종종 바람처럼 떠돌다 거품으로 주저앉았고
어느 누구도 그의 죽음을 눈치 채지 못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절망으로 감싼 뒤에야
그는 비로소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는 혼자 밥 먹고 홀로 잠들었으며
지상의 적막으로부터
고립되어 자유로웠으나


고독에 익숙해지진 못했으리



2.
어두컴컴한 마루 밑에서 썩는 냄새가 난다


손전등을 비춰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죽어 있다
이곳이 마지막 안식처라든 듯
잡동사니들 틈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여름 한 철 대여섯 마리 새끼들을 거느리고 다니던
한쪽 얼굴만 하얗던 검은고양이


오페라의 유령처럼
그늘진 곳을 골라 밟으며 마을을 떠돌더니
홀로 쓸쓸히 죽었다
새끼들을 모두 떠나보내고
비쩍 마른 몸이 풀어 놓은 털실뭉치 같다


텅 빈 영혼의 껍질을 상자에 담으며
흡족하게 밥 한 번 준 적 없는 내가 무서워진다
가끔 던져 놓은 빵조각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내가 따뜻하게 밥 먹는 동안
그는 고독을 밥 삼아
마루 밑에 고단한 몸뚱이를 뉘었으리


산기슭 물푸레나무 밑에 예견된 비애를 깊숙이 묻는다
조문이라도 하는 듯이
낙엽이 눈발처럼 날리는
가을날





*김종호 1982년 〈강원일보〉(시), 1992년 〈조선일보〉(동시), 2017년 〈부산일보〉(시조) 신춘문예 당선. 시집 『둥근 섬』, 『적빈의 방학』, 『한 뼘쯤 덮고 있었다』. 저서 『물 바람 빛의 시학』 외. 원주문학상, 강원문학상, 강원도문화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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