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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도복희/화실의 주인은 돌아오지 않고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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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도복희/화실의 주인은 돌아오지 않고 외 1편
화살의 주인은 돌아오지 않고 외 1편
도복희
화가의 실패한 그림으로 나는 구석을 차지한다
내려앉은 먼지에서 환절기 냄새가 나
검은 커튼이 창을 밀폐했으므로 단절은 종려나무를 말린다
작업실을 떠난 발은 수개월째 돌아오는 걸 보류하고
나는 당신의 불분명한 거처가 궁금해
귀를 열어 바람의 색을 가늠하기도 한다
물감이 딱딱하게 굳어가면서 완성에서 멀어진 나는,
손길 닿지 않는 불안을 눌러놓는다
침묵한 한 때가 몸통을 지나갈까
심박수를 높이는 저녁
계단을 오르는 발자국 소리 들려오지 않는다
기다림을 만지고 있는 얼굴이
거울 안을 서성거린다
슬프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어
기대가 사라진다는 건 말이지
봄이 되어도 꽃이 피지 않는다는 거
한 겨울의 폭설이 녹지 않는다는 거
더 이상 하고 싶은 대화가 일어나지 않아
서로에 대한 관심에서 아웃 된다는 거
바라보는 눈빛에서 그 무엇도 읽어내지 못하는 거
기대가 없다는 건 말이지
그가 사는 현관문을 지나쳐
사막으로 가는 계단을 밤새 오르는 거
발이 붓고 외로움이 붓고
새벽에 당도하지 못하는 계단을
수도 없이 세어야 하는
마른 입술이 되는 거
무미의 맛처럼 더는 아무런 맛도 느낄 수가 없는 거
그건 말이지
별이 뜨지 않는 캄캄한 길에 혼자 서 있는 거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에게 모든 기대를 내려놓게 되었나
*도복희 2011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전국계간지우수문학상. 시집 『그녀의 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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