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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신작시/천융희/구름의 페달 외 1편

구름의 페달 외 1편

천융희

굵은 빗방울이 차창을 두드린다

흘러내리는 바깥은 바람의 결정체
이를테면

리드미컬한 얼룩의 세계는
한 사내의 일과가 시작되는 내밀한 성소다

도록을 펼치면
범람하는 목록들 또한 바람의 징후

이상한 세계 이상한 물의 집이 쏟아진다

비 오는 거리로 면벽하는 그는
건기의 도시에서
또 다른 은신처를 발굴하려는 듯

움츠린 사람들 사이
온통 회색빛 음영이 드리워진 화폭에는
정체불명의 사물들이 붉은 물방울로 출렁인다

장착한 페달에 가속이 붙으면 붓끝으로 모여드는
공중의 집들

와이퍼가 좌우 얼룩을 지울수록
소리 없는 불안이 수위를 높이는
그곳엔

구름 부족이 산다

전갈

마악 떠날 채비를 마친 터미널은 야행성이다

태양에 맞물린 밤의 세계

떠도는 어둠의 중심에서
허둥지둥 가벼워지는 어린 연인들은
여전히 고생대의 변온동물처럼
환해졌다 캄캄해지기를 반복한다

꼬리를 감추고 사라진 맹독이
벽에 기댄 벤치 위
불립문자처럼 남아있는 곳

전갈의 출몰이 잦은 터미널은
뜨거워졌다 순간
식어버리는 고전적인 자세다
다시 이별을 시작할지도 몰라
오늘은 이별 중,

차갑게 식어버린 비문非文이
뚝뚝 끊긴 문장이
차창에 흐르고
어쩌면 너와 이별했는지도 모른다

기별 없는 지척의 당신을 해독하는 밤

지상에서 날아오른 종족들은 모두
음각의 발자국을 남긴다

*천융희 2011년 《시사사》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