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20호/신작특선/김미희/가슴 구멍 외 4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09회 작성일 19-07-08 10:19

본문

20호/신작특선/김미희/가슴 구멍 외 4편


가슴 구멍 외 4편


김미희



시접을 풀어
좀먹은 캐시미어 스웨터를 깁는다


구멍 난 자리가 허술하거나 헐렁해서가 아니라
가슴에
당신 마음 부린 그 살 냄새 아직 아파
탁탁 털어낼 수 없어 차라리
물렁해진 마음을 다독이듯 구멍을 깁는다


가슴에 난 구멍은 상처가 아니라
혼들 왕래하는 숨구멍
나쁘든 좋든
추억이란 건 내게 걸맞기 위해 찾아온 것이니


가슴 바닥에 아직
유실되지 않은 단내 남기기 위해
그대의 환영에 바늘을 꽂는다







곁은
살 냄새 물씬 나는
마음끼리 만나는 곳이지

 

항상 열려 있는 문
누구나 밀고 들어와
편안히 쉬어도 되는 그런 곳 말이야


그래도 곁은
언제나 겉이라서
서로 쳐다만 보고 사는 것이라서


터 잘 잡은 집에
군불 잘 드는 온돌방 하나 들이고
뜨끈뜨끈해지게
마음 마음 불 질러 봐


결국 곁은
겉이 아닌 걸 알게 되지





싸락눈 내리는 밤의 기억



바람은 창문을 흔들고
기억의 입자는
싸락눈 내리는 소리로
달라붙은 담쟁이넝쿨을 토닥이고
마른 꽃잎 같던 입술이
행여 바스러져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조바심에
얼었던 얼굴을 창문에 밀착시킨다


너는 아직 그곳에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이고
나는 얼어있던 시간에 입김을 불어
우린 안팎에서 입술을 포개어
소실점을 향한 낮은 보폭을 한다


그래
쉼표도 입을 여는 때가 있어
우리는 아직 싸락눈 내리는 소리를 기억하는 것이다





어린왕자 놀음



그는
하늘은 탈고하지 않은 채 저무는 법이 없음을 안다
그래서 한 권의 소설도 좋고
한 편의 수필도 좋고
한 줄의 시라도 남기고 저무는
그 하늘의 의미를 찾아 나서는 일과로 바쁘다
 
처음부터 지금껏
천생 아이라고 봐주는
아내도 아이들도 가정도 집도절도 다
미안인지 고마움인지 모를 빈 웃음으로 벗어놓고
집을 나선다


한 층도 안 되는 언덕이라도
하늘 가까이 오르게 한다는 꿈 속 아이는
그 언덕에 올라 역으로 돌아 서서
숨 죽여 비운 몸무게를 셔터 위에 올린다
 
액정 화면을 흐르는 노을 진 하늘에
시어 하나 보탠 줄도 모르고
타는 가슴 견주는 노을을 향해
내일도
한층 더 오를 언덕을 찾아나설 궁리를 한다





다시 청춘



아니
낮고 편편한 일상에
우표 없이 날아든 떨리는 밀서이지


아니
늘어진 그림자를 태우는
정오의 태양이지


아니
세월의 추신들을 뒤적이다 보면
맨발로 달려와 등줄기 곧추세워주는
덧난 곳에 피딱지 앉히는 긴장이지
 
아니
굵고 단단한 붉은 영혼을 펄럭이는
깃발이지


아니
직선으로 그려진 부적이지





<시작메모>


어떤 배역


바람이 붑니다.
오늘은 행여
어제와 다른 결 바람인가 했습니다만,
아니었어요.
언제나 그랬듯 곁에서 겉돌다가
봄내만 풍기고 그만 돌아서 가는 건,
환한 피튜니아petunia겉으로 무대화장을 마친 탓이라 했어요.


속울음 줄 풀어 가슴 기울 때는
언제나 그러는 것이라고,
많은 날을 그렇게 외우고 앉아 있으라고,
그랬습니다.


아직은 겉뿐이라서
살 냄새만 맡는 곁이지만,
쉼표도 입을 여는 때가 있으려니
쳐다만 보고 있는 마른 꽃잎 같은 입술에
붉은 시어 하나 보탤 때가 올 거라 믿고 있습니다.


당신을 향해
내 타는 가슴 견주는 배역을 위해,
오늘도 계단을 바라만 보고 앉아있습니다.





*김미희 《미주문학》으로 등단.  시집 『눈물을 수선하다』. 달라스한인문학회 회장 역임.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  KTN 칼럼니스트.  윤동주 서시 해외 작가상 수상. 성호문학상 수상.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