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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전순영/에스컬레이터·5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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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전순영/에스컬레이터·5 외 1편
에스컬레이터·5 외 1편
전순영
십이월의 발 뿌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산 1번지
발을 펴면 더
졸아드는 방
납작 엎드린 나는 어둠 속에서 어둠에다
톱질을 해대면
뼈 마디마디가 물러난다
길게 물러난 뼈들이 빛을 찾아 한 발 내디디면
깨진 굴뚝 틈새로
흘러드는 달빛
칼바람이 나를 끌어않는다
안 안아줘도 된다고
바람의 팔을 뿌리쳐도 끝내 칼바람은
나를 억세게 끌어안아
한 장의 휴지로 구겨버리는
십이월
에스컬레이터·14
도축장 골목으로 천천히 들어서는 트럭 위에 소들이
큰 눈을 껌벅이며 두리번거리고 있다
여기가 어디야
서로를 바라보며 눈으로 묻는다
어디긴 어디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데
곧 떠내려가 버릴 물을 얻기 위하여
눈만 뜨면 무논에서 무논으로
오늘을 갈아엎어야 했고 땡볕을 갈아엎어야 했고
허공을 기어오르고 올랐던 거야
눈발 들이치는 외양간에서 두 눈을 걸어놓고
어둠을 파고 또 팠었지 이제
능선에 올라 숨 한 번 크게 내 쉬고 사방을 둘러보니
살 것 같았지
하늘도 한 자락 내려와 우리를 감싸주는
보드라운 연두빛 비람
강물에 배 띄워놓고 그렇게 천년만년 이어질 것 같았지
*전순영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목이 마른 나의 샘물에게』, 『시간을 갉아먹는 누에』, 『숨』. 에세이집 『너에게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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