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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이돈형/나팔나팔나팔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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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이돈형/나팔나팔나팔 외 1편
나팔나팔나팔 외 1편
이돈형
얼떨결에 나팔을 불었다
몇 척의 해적선이 키 작은 너를 싣고 지나갔다 얼떨결에
일관되게 나팔나팔나팔
바다는 좁혀지지 않나요, 뚫을 수 없나요, 괴성이 터졌다
뱃머리 닿는 데로 보이는 데로 어쩌다 해골 깃발을 쓸어내리며 무한하게
뱃길은 내색 없이 마지막 방어선처럼 조용히 배후를 끌었다 차라리 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율이 일었다
이 맛에 해적이 된 걸까 너는 바다를 건지려 했다
오죽했으면 해적선에 탔을까 잘못한 건 바다를 의심한 나였는지 모르는 일
일관되게 나팔나팔나팔
아슬아슬해서 건전한 바다 이야기는 없다
나는 너를 얼떨결에 너는 나를 일관되게 되돌려 주고받을 바다는 없다
해적다운 해적은 결코,
만져 커지고 커져 터지는 나는 결코,
쉬운 항로를 모르는 척
일관되게 나팔나팔나팔
나는 바다를 태우고 몇 척의 해적선을 따라가고 있었다
갱년기
청바지를 수선하러 갔는데 여주인이 갱년기란다
그녀는 찢어진 청바지를 살피며 요즘은 무얼 해도 밑 빠진 독 같단다
밑 빠진 독을 바라보며 우리 나이가 다 그렇잖아요 했더니
남자들은 좀 다르잖아요 우리 집 신랑은 몇 번 사업에 실패하고 이제는 힘 빠질 때도 됐는데 아직도 청춘 같아요 이제는 들어오면 들어오는가 보다 나가면 나가는가 보다 합니다 제가 준 카드를 쓰는데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모텔을 가거든요 지금도 막 들어갔네요, 보실래요?
20,000원(일시불) 05/15 13:33
파라다이스 모텔
그냥 살아온 정으로 사는 것 같아요
그녀의 말에 얼마냐 묻지도 못하고 만 원짜리 한 장 내밀고 나왔다
독 안에 든 남자의 갱년기는 없거나 수선되지 않는다
*이돈형 2012년 《애지》로 등단. 시집 『우리는 낄낄거리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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