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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황옥경/알람 AM 5:28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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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황옥경/알람 AM 5:28 외 1편
알람 AM 5:28 외 1편
황옥경
태양의 붉은 정수리가
먹빛 수평선에 모습을 드러내자
햇살 자명종이 따르르 울기 시작한다
어둑한 밤의 포장布帳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올라가고
검푸른 바다 위로 치잣빛 물길이 생겨난다
어깨동무로 달려가는 파도의 등줄기를
출렁출렁 흔들리는 괭이갈매기의 하얀 이마를
경쾌하게 두드리는 햇살 자명종 소리
언덕 위 동백나무숲 우듬지가
부스스 기지개를 켜는
마량포구의 맨얼굴은
갓 피어난 동백꽃이다.
전전불매輾轉不寐
그때,
이 땅이
하늘이
산과 바다가
한낱 티끌에 불과하다고 말해주는
창백한 푸른 점*의 초상화가
광막한 우주 저 너머에서 날아왔을 때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아침 햇살 스며드는 골목길에서
아이 손을 붙잡고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해거름 골목시장 난전에서
저녁 찬거리를 고르고 있었을까
아니,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첫 문을 연
그가 미처 알 수도 없었던 이름,
베델게우스와 리겔과 알데바란과 시리우스를 눈으로 불러가며
어둑한 밤길을 걷고 있었을까
금시 일었다 사라지는
물거품 같은 생生을 세습하며
내 하루치의 삶을 수행하고 있었을
말할 수 없이
헛헛하고 쓸쓸하고 서늘한
그때 그 순간.
*‘창백한 푸른 점’은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가 지구와의 거리 61억 킬로미터에서 찍은 사진에 나타난 지구를 말하는 명칭이다. 칼세이건이 ‘The Pale Blue Dot"라고 불렀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 약 4만~5만 년 전에 지구상에 나타난,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인류를 가리키는 학명學名이다.
*황옥경 2012년 《문학과 창작》으로 등단. 시집 『탄자나이트, 푸른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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