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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김용균/산새소리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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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김용균/산새소리 외 1편
산새소리 외 1편
김용균
밤새 내리던 장대비가
새벽녘에야 겨우 긋고 나자
산새들이 하나둘씩 내려와
뒤란 미루나무에 떼 지어 앉았습니다.
천둥번개 얼마나 무서웠냐고,
보금자리 비 샐까 서로 걱정했다고,
더위 잡순 딱따구린 어찌 안 보이냐고,
수런대는 소리가 점점 요란해집니다.
저렇게들 함께 깃들여 살고 있으니
달동네의 외로운 새들이며
노숙하는 새들은 물론이고,
제 썩은 몸을 치워주어 고맙다는
인사나 남기고 싶은 죽음 따윈
필시 없을 듯 싶습니다.
AI를 생각하며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천하고수가
그의 바둑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기고만장한 그는 이제부터
세상을 지배하는 혁명의 꿈을 꾸리라.
땀 흘려 일한 값으로 먹고살며
떳떳하게 행복했던 우리가
그를 만들고 나서 일터에서 쫓겨나고
그가 일할 수 있게 거저라도 먹어야 하는
어이없는 불행을 자초하였다.
만물의 영장이란 이름도 무색하게시리,
이쯤에서 우리 함께 스스로 묻자.
경이로운 초능력을 가지고
심지어 지혜의 판결문과 신묘한 처방전까지
그가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그는 과연 시를 쓸 수 있는가.
그의 현란한 알고리즘 속에
우리가 쓴 오만가지 시들이 다 들어있겠지만
그는 단 한 줄의 시조차 쓸 수 있는가.
하물며 눈물의 시임에랴.
그는 눈물을 흘린 적도, 참은 적도 없다.
그는 눈물을 흘리기보다 참는 게 더 아픈 줄 모른다.
그는 펑펑 쏟아낼 만큼 눈물이 많다는 건 물론이고
때로는 눈물샘도 말라버린다는 걸 알 턱이 없다.
그는 남에게 눈물을 보이지도 않고
남의 눈물은커녕 눈이슬조차 닦아주지 않았다.
그가 죽었다 깨어나도
눈물의 시를 쓸 수 없는 이유이리라.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영혼들에겐
눈물이 있고, 그 눈물 때문에
아름다운 시를 노래하는
우리가 그보다 절대 약하지 않겠다.
행여 주눅 들지 말 것이로되,
만물의 영장이라는
그딴 교만일랑 아예 걷어치우고
만물 중의 명예로운 하나로 돌아가자.
명예야 하늘이 내리는 것이겠다만,
*김용균 2014년 시집 『낙타의 눈』. 저서 『숲길에서 부친 편지』, 『소중한 인연』,<법무법인 바른> 소속 변호사.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 봉사단체 <연탄은행> 홍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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