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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강시현/비 내리는 밤에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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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27회 작성일 19-07-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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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강시현/비 내리는 밤에 외 1편


비 내리는 밤에 외 1편


강시현



살아갈수록 뒤엉킴이 커지는데요
누구나 꺼리는 숫자를
족보에 황급히 그려 넣고
죽은 조상에게 절을 합니다


비가 내리면 지하도가 젖고
生은 ‘살아 있음의 위대한 번역’이라 쓰고
죽은 조상에게 또 절을 합니다


세상과 싸움을 잘하는 방법은 지치지 않는 것
빗물이 닳은 구두의 어딘가로 들어와서
봉인된 발가락 여럿을 키웁니다
빗물은 우산을 때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며
바쁜 발들이 사라진 빈 공간을 채웁니다


내 이목구비와 흔들리는 사지는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불량재산인데요
운수조차 가난한 사람에게 과연
치렁치렁한 사랑이란 것이 필요나 했겠습니까
여름을 등지고 긴 비가 내리고
강물되어 넘치는 사랑이 오든
슬픔이 오든
모든 살아 있음에게
무슨 큰일이나 되겠습니까





행여나 스마일



웃을 수 없어요 이젠
내장을 긁어내던 음악이 끝나고
젊은 죽음에 열정의 수의를 입히고 나면
더운 골짜기에서 흔들리던 나무들은
바람을 내려놓고 졸음에 지쳐요
잠에서 깨어난 하늘이 주홍으로 물들면
실패한 수술 뒤 입술에서 굳어버린 핏물을 닦고
사라진 웃음을 찾고 싶어요


무더운 시절의 나뭇잎 속엔
직선의 싸움에서 다친 길들이
뜨겁게 꼬여 꿈틀거리는데
파란 멍으로 울먹이던 모든 맹세의 입술도
착하게 나부껴 허공으로 올라가야 하는 걸까요
행여나 스마일이 매복하고 있는 병든 하늘로
배부른 풍선을 하고
천등天燈처럼 끝내는 희망을 소진시키는 그 곳으로


불안이 자라는 대지에선 웃음조차 불길한데

너무 큰 웃음은
공포의 도시를 키우는 하늘에 헹궈 세탁해도 되는 걸까요
감정을 읽을 수 없게 웃음은 난해하고
이미 말라붙은 피를 형벌처럼 입가에 달고 살아도 되는 걸까요





*강시현 2015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태양의 외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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