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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임승환/쥐들의 내력 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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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15회 작성일 19-07-0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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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호/신작시/임승환/쥐들의 내력 외 1편


쥐들의 내력 외 1편


임승환



능소화 꽃그늘 밑에 앉아있는 고양이의 눈을 피하려고
담장 위를 포복으로 통과해
노을의 끝을 물고 돌아가는 저녁
늙은 어미의 다리가 퉁퉁 부어있다


오염을 가늠할 수 없는 시궁창을 왕래하고
때로는 고양이에게 덤비기도 했었다 종종
허탕만 치고 돌아가는 길에
깨진 그릇을 밟을 때마다 비명이 터지고
쥐들이 삼키는 신음소리 새어나온다
쥐구멍이 좁아지는 이유다 온전한
구멍을 찾을 수 있을까


어떠한 문도 열 수 없으므로
물고 갈 게 없는 저녁, 그러므로
쥐들 목에 걸어줄 죄목이 있을까
보이지 않는 하수에 쓸려간 비린내
한 조각을 물고 어딘가로 이동 중이다


그 사이로 저들은 무수한 족적을 남기지만
지상과 지하를 오르내리는 동안
지나온 길은 단숨에 지워진다
허겁지겁 시궁창을 지나는 것들은
가슴에 검은 상처를 탁본하여 품고 간다







능수버들 머리칼을 타고 반짝이는
시간이 미끄러질 때
매미소리에서 시뻘건 냄새가 난다
저기 어디쯤 정상 아닐까
저 뾰족한 꼭대기를 향해
밀어 올리는 시간은 길지만
미끄러지는 건 순간이다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오는 비탈길,
가지마다 무수한 발자국들이 흔들리고
밟고 온 돌들이 무너진다
내려갈 때 관절이 상하는 것
바닥에 처박히면 끝장인데
여기쯤 뿌리를 내리고 싶다
힘을 준 발은 헛디딘 발,
움켜쥔 풀이 시들고 허공이 미끄럽다
숨을 고르며 뒤돌아본다
아이들이 까마득해서 보이지 않는다
되돌아갈 수 없는
이른 가을, 오후 두 시
팽팽하던 승부가 기울어진다
바짝 마른 목구멍을 타고
비탈진 각도만큼의 가속도로
매미소리가 붉은 하늘을 끌고
비탈을 내려간다





*임승환 2017년 《시와산문》으로 등단. 천강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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