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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시노래마을/정무현/나는 징이다―정미소 시/장태산 작곡/장태산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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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시노래마을/정무현/나는 징이다―정미소 시/장태산 작곡/장태산 노래
나는 징이다
―정미소 시/장태산 작곡/장태산 노래
정무현
예전에는 녹청꽃이 피는 놋그릇을 참 자주 봐 왔다. 제삿날이 되면 어김없이 놋그릇은 그날의 주인공이 된다. 이런 주인공을 위해 우리 어머님들은 어김없이 녹청꽃이 핀 놋그릇을 곱게 빻은 기와가루를 묻혀 볏짚으로 부지런히 닦았다. 닦으면 닦을수록 놋그릇은 제 몸을 황동보다 하얀 피부로 빛을 내며 눈부셨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그날의 주인공 자리로 오를 수 있다.
방짜는 이렇게 손이 갈수록, 함께 할수록 더욱 자신의 위용을 드러냈다. 원래 방짜라는 게 태생부터 가만가만히 자신의 모습이 되는 게 아니다. 엄청난 불구덩이와 차가운 물, 두드리는 망치질에 의해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참아내다가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세상살이라는 게 이보다 덜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잔인하고도 혹독한 고통이 있다는 건 그만큼의 강렬한 영광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기의 역사는 청동기시대부터라고 한다. 신라시대에는 ‘철유전’이라는 전문기관이 있을 정도로 활발하게 제작하였는데 ‘신라동’이라 하였고 고려시대에는 더욱 품질이 우수하여 ‘고려동’으로 불리며 수출을 하였다 한다. 신라동은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페르시아 동은 거울을 만드는 데에 좋고 신라동은 종을 만드는 데에 좋다.’고 쓰여 있으며 고려동은 명나라 동월이 1490년에 쓴 『조선부』에 ‘품질이 우수하여 당과 송에서 수입하였다’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그 합금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화폐, 금속활자, 각종 악기, 생활용기로 제작되는 등 세계적으로 독특한 비철합금 기술인 유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유기는 제작기법에 따라 방짜, 주물, 반방짜로 나뉘는데 가장 질이 좋은 건 방짜유기로 일명 ‘양반쇠’라고도 하며 양반가의 큰 인기를 얻었는데 평안북도의 납청유기가 가장 유명하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와서 연탄가스에 변색이 잘 되고 스테인리스와 플라스틱 제품에 밀려 점차 사라지게 되었는데 최근에 와서는 악기나 고급제품으로 다시 명성을 찾아가고 있다. 현재 방짜그릇을 만드는 기술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또한 방짜는 살균기능이 있으며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만나면 변색되는 신비한 효능이 있고 그릇의 경우 보온·보냉 효과가 좋아 음식물의 맛을 살려준다. 가장 질 좋은 합금을 방짜라 하고 잡금속이 섞여 질이 떨어지는 합금을 퉁짜라 했으니 진짜와 가짜가 통하는 용어인데 요즘 가짜를 짝퉁이라 하니 퉁짜가 어원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태생부터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논란을 가져오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어차피 세상은 공평하게 출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람만이 머무는 섬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눈보라와 마주치는 산사람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사시사철 꽃이 피고 새가 우지지는 곳에서 태어날 수도 있고 종일 뙤약볕에서 쟁기질을 해야 하는 곳에서 태어날 수도 있다. 어차피 많이 가진 자로 태어나거나 한 끼 밥을 걱정해야 하는 자로 태어나거나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거나 성질이 급하거나 느긋하거나 한세상 살다가 죽는 것에는 순서도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에게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가. 평생을 조연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고 역사에 남을 업적을 남길 사람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이게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운명이란 말인가.
나는 구리일 뿐이고 알루미늄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고 사람은 사람일 뿐이고 개나 고양이가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태어나면서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정해진 불공평이 분명하다. 그러나 각자의 존재 이유는 있다. 그래서 자연은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이다. 모두가 다 부자이면 가난함은 의미가 없고 모두가 다 사람이면 동물은 의미가 없고 모두가 다 구리이면 돌은 의미가 없다. 결국 차이는 있어야 하고 차별은 스스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인생의 담금질은 그래서 차이를 더욱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
정미소 시인은 이런 인생의 차이를 만들기 위해 징을 눈여겨 보았다. 한 울음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몸이 불구덩이에 박혀야만 하고 쇠뭉치로 얻어맞아야만 하는 것이 결국은 한 울음을 갖기 위해 저리도 고행을 하는 것이다. 항상 천사 같은 미소로 아이들과 어울리며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어린이 같은 마음이 되었을 정 시인이 이렇게 강인한 징을 노려보고 있을 줄이야. 정미소 시인은 문학과 창작으로 2011년에 등단하였다. 그리고는 계간 리토피아로 와 꽈리를 틀었다. 막비시동인의 회장도 겸할 만큼 리더의 자질과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첫 시집 『구상나무 광배』는 참으로 정 시인과 잘 어울리는 제목을 가졌었다. 구상나무 자체가 우리나라에만 있고 태양을 향해가는 기상이 성탄트리로도 아름다우며 독특하여 산 정상에 위치한 구상나무 배경이 빛으로 채워져 있다면 바로 시인과 많이도 닮아 있다. 두 번째 시집 『벼락의 꼬리』가 다시 시인의 상상력만큼이나 기발하게 세상에 나왔다. 그 다양성과 상상력이 ‘라 만차 정원의 이별’과도 같다는 장종권 시인의 평가가 있었고 서정시의 본질에 충실하면서도 참신한 존재론의 기획을 엿보이는 시세계를 보여준다고 백인덕 시인은 평가하였다. 발칙한 상상력과 화해의 미학이 숨어있고(박제천 시인) 오케스트라와 같은 조화를 이루고 있다(강우식 시인)는 평가로도 다양함과 화해가 온 누리에 퍼지는 포근함이다.
강원도 동해에서 출생하여 숭의여전 응용미술과, 추계예대 영상문예대학원을 졸업한 것으로 보아도 미술과 음악이 늘 함께하며 파도를 타고 오는 시원한 바람과도 같다.
「나는 징이다」라는 시는 한 울음을 만드는 화해의 소리다. 그리고 그곳에는 깊은 울림이 있다. 함께 공명하는 기다란 울림통이 들어있다.
이를 노래로 만든 장태산 작곡가는 싱어송라이터다. 먼젓번 글(어머니의 물감상자)에서도 밝혔듯이 소리새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다. 그의 목소리는 굵직하면서도 다이내믹하다. 이를 잘 반영하여 만든 곡이 바로 이 곡이다. 강렬한 전자키타의 리듬과 어깨를 들먹이게 하는 락스타일의 시노래는 흔히 들어볼 수 없는 패턴이다. 또한 중독성이 높은 멜로디로 노래의 대중성도 충분히 확보하였다.
처음에 도입부는 강렬한 비트로 노래의 담금질을 예견하게 하고 이 시에서는 끝에 가서야 ‘나는 징이다’라고 외치지만 작곡가는 당차게 시작부터 바로 ‘나는 징이다’라고 외친다. 징이기에 ‘바람이 와서 툭툭 칠 때마다 펄펄 끓는 불가마다.’라고 뜨겁게 녹여줄 포용의 터를 소리가 닿는 곳까지 펼친다. 그곳에서 펑, 펑, 펑, 매질을 당하고 온몸을 벌겋게 달아오르게 녹인다. 그건 바로 내안의 울음을 깨기 위해서다. 그 울음에는 수많은 굴곡이 있고 가슴을 쥐어박아야 하는 너무나도 슬픈 이별도 있다. 그 울음이 바데기로 뭉쳐지면 수많은 우김질과 닥침질로 깨어 부수고 진정 나를 만드는 새로운 울음이 탄생하는 것이다. 그래, 산다는 건 바로 한 뜸 한 뜸 쇠망치 담금질을 견디고 견디는 것. 그래야 징이 되는 것이다. 이 노래는 마지막 다시 ‘나는 징이다.’라고 외친다. 외치기 위해 잠시 한 박자를 멈춘다. 그리고 크게 외친다. 나는 징이다. 라고.
이 노래는 원래의 시를 노래로 만들기 좋게 가사를 일부 바꾸었다. 그리고 시인이 그려낸 시의 맛을 노래로 물씬 풍겨내었다. 원래의 시와 노래가사를 비교해 음미해 보면 더욱 좋을 것이다. 정 시인의 온화한 미소에는 이렇게 담금질한 울림통이 자리 잡고 있다.
바람이 와서 툭툭 칠 때마다 펄펄 끓던 불가마가 생각난다.
도가니속 온몸이 쇳물로 녹여지고 옹고집이 바데기, 바데기로 뭉쳐지면 쇠망치로 펑펑 매질을 당했다. 한 뜸 한 뜸 불담금질을 견디며 내 안의 울음을 깨야 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옹이로 박힌 울음주머니가 부어 올라 더는 견딜 수 없는 날, 징 징 징 쇠울음 소리로 울었다.
가슴이 돋음질치는 소리와 소리의 메아리가 한데 어울리도록 온몸을 내던지며 울다본즉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큰 울림통이 되었다.
산다는 건 불가마 속이어도 견디고 볼 일이다.
가파른 벼랑에도 꽃이 피고 절망의 그늘에도 온기로 다가오는 햇살
오늘, 녹청꽃 피어도 좋은 내몸에게 고마워, 고맙다고 말한다.
나는 징이다.
―「나는 징이다」
노래는 리토피아 홈페이지(Http://www.litopia21.com)를 방문하셔서 「커뮤니티>시를 노래하는 사람들>창작시 노래(전체)」를 클릭하시어 검색창에 ‘나는 징이다’를 치면 노래를 들을 수 있다.
※ 알립니다.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에서는 매년 ‘시노래 콘서트’를 개최합니다. 국내의 저명한 작곡가가 시를 가사로 하여 작곡한 노래를 라이브무대로 발표를 합니다. 여기에 관람을 희망하시는 분은 홈페이지에 댓글을 남겨주시면 발표회 때 초청장을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무현 2014년 《리토피아》로 등단. 시집 『풀은 제멋대로야』,『사이에 새가들다』. 시를 노래하는 사람들 상임대표. 아라문학 편집위원. 막비시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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