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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단편소설/이덕화/잔혹한 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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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단편소설/이덕화/잔혹한 낙관
잔혹한 낙관
이덕화
아침에 설겆이를 끝내고 잠시 뉴스를 틀었다. ‘세월호 침몰’ 이란 자막이 크게 뜨면서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바다에 서서히 가라앉는 세월호 사진이 클로즈업 되었다. 그 세월호에는 경기도 안신시에 있는 단원고 2학년 수학여행 학생들이 단체로 타고 있었다. 그 학생들은 인생의 최고의 순간일 것이다. 단체로 친구들과 같이 제주도라니. 뜨거운 가슴을 안고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침몰이라니. 갑자기 정현이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니야, 진정해. 속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슴을 내렸다. 설마 구조되겠지, 그래 구조될 거야. 혼자 마음을 다듬으며 커피를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커피를 마시고 메일을 검색하기 위해 인터넷을 열었더니 바로 전원 구조라는 자막이 다시 올라왔다. 정말 다행이다 마치 정현은 자신의 아들이 살아온 것처럼 한 숨을 푹 쉬었다.
세월호 사건은 마음에서 지우고 메일 검색과 답변, 그리고 메일 보낼 원고 정리 등 2시간 이상이 흘렀다. 점심을 먹을 생각에 다시 뉴스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을 틀었다. 전원구조라는 뉴스가 허위 보도였다는 어나운서의 멘트와 함께 몇 시간이 지나 배가 서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데도 속수무책으로 학생들을 구조하지 못하고 있다는 뉴스였다. 정현은 기가 막혔다. 첫 뉴스 나온지 벌써 3시간이나 지났는데, 아직이라니 도대체 정부는 뭐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학생 한 명 한 명의 울부짖음과 그들의 공포를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부분적으로 구조된 학생과 선생 등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구조되지 못한 학부모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아니 우리 국가가 그렇게 대책없는 국가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구조를 못했다는 것은 구조할 가능성이 낮다는 생각에 안타까왔다.
그 이후 며칠 동안 아무런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뜬 밤으로 뉴스를 지켜봤지만, 부분 구조 외에는 결국 대부분이 죽음으로 돌아왔다. 지금까지 선진국 대열이니 어쩌니 떠들던 국가가 겨우 이 정도 밖에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말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학생들은 대한민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무의미하게 목숨이 희생됐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오랜 기억이 머리 속을 헤집고 튀어 나왔다.
동굴 같은 어둠침침한 방에서 웅크리고 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매일 낮 동안은 똑같은 취조가 이루어졌다. 낮에는 경찰서로 가서 어떻게 『자본론』을 손에 넣게 되었는지 과정을 소상히 쓰라는 것이었다.
누군가 모르는 사람이 『자본론』여섯 권을 가져와서 사라고 해서 그 당시 도서관에 같이 있던 대학원 학생들이 한 권씩 샀을 뿐이다.
그 가져왔던 사람이 누군가 ?
대학원에는 여러 사람들이 책을 가지고 온다. 그 중에서 출판사 영업직원도 있고, 출판사 사장도 있다. 정확하게 『자본론』을 가져 온 사람이 누군지 기억에 없다.
왜 『자본론』을 샀는가. 이 책은 정상 출판사도 아니고 해적판으로 나온 책이 아닌가
그것을 알고 샀나?
누군가가 번역해 인쇄로 묶었다는 얘기는 들었다.
왜 『자본론』를 샀는가?
논문을 쓰려고 작정한 김남천이라는 사람이 월북한 독립운동을 한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사회주의의 사상의 근간이 되는 [자본론]에 대한 내용을 알고 싶었다.
당신은 왜 월북 작가를 연구하려고 하는가? 당신도 공산주의인가?
아니다. 1920,30년대 문학사에서 카프 즉 예술 프롤레타리아 동맹은 민족주의 문학 운동의 중요한 단체였고, 그 중의 핵심 맴버인 김남천도 문학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라 연구하고 싶었을 뿐이다.
당신은 다른 학생들과 나이 차이도 있는데, 꼭 빨갱이 문학을 연구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아니다. 단순히 금서에서 풀린 월북한 작가들의 작품이 새롭게 조명되어야만 한다고 생각 했을 뿐이다.
김남천이 박헌영의 꼬봉인 것은 알았나? 김남천이 박헌영이 숙청될 때 같이 숙청된 것을 알았나.
알았다.
그런데도 연구해 보고 싶었나?
단순히 학문적인 호기심이었다. 문학사에서 중요한 카프 문학 쪽을 한번 훑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자본론』은 읽었나?
부분적으로 읽었다.
읽은 감상은?
전체를 읽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소유에 따라 계급의 특징이 달라진다는 말은 공감이 갔다.
당신도 공산주의자가 될 소질이 있네, 공산주의 이념에 동의 한다는 것 아니냐?
그렇지 않다. 이념에 동의한다고 모두 공산주의자는 아니지 않느냐.
매일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변이었다. 그리고는 경찰서 뒤쪽에 있는 창살이 있는흐름한 유치장에 집어넣었다. 경찰이 들이 닥친 시간부터 차분하자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몸이 떨려 서있을 수가 없었다. 테이블 귀퉁이를 잡아야 겨우 몸을 바로 할 수 있었다. 혼자 독방에 떨어지자 그 때야 정신이 돌아왔다. 남편도 같이 왔다 똑같은 질문과 답변이 몇 시간 반복되자 섣불리 끝날 것 같지 않은지 아이들 식사 때문에 우선 집으로 가며 다시 오겠다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아직도 잠이 덜 깬 이불 속에서 뒤척이고 있었다, 경비실에서 보내는 벨 소리에 놀라 일어 난 것은 7시도 체 안 된 시각이었다. 남편이 호출 전화를 끊으면서 ‘경찰이 우리 집에 수색 왔다는데?’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정현은 화들짝 놀라며 며칠 전 후배 박사 과정 학생 한 명이 했던 불온서적 수색이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 때 난 불온서적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귀 등으로 들었다. 정현은 서재로 달려가 불온서적이라고 여길 수 있는 책을 모두 쇼핑백에 넣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읽던 [민중사]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공산주의 운동사』 등의 책들이었다. 베란다로 달려 가 장독을 열어보았다. 장독이 워낙 적어 다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다시 안방으로 들어 와 장롱 이불 사이에 넣었다. 그리고 거실로 달려 가 거실에 있던 책을 정리하려는데 집 현관벨이 울렸다. 남편이 현관을 열자 남편과 정현을 거실 부엌 식탁 의자 있는 쪽으로 밀치며 바로 거실 책장으로 갔다. 그들이 목적으로 한 것은 『자본론』인 것처럼 바로 『자본론』, 『1930년대 민족해방운동』 등 몇 권을 들고 나왔다. 그 때 정현은 『자본론』 같은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정현이와 남편도 그것이 거실에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때 얼결에 사 놓고는 앞 몇 장을 뒤지다 언젠가 스타디를 시작할 때 읽어야지 하고 책장에 꽂아 두었었다.
첫날 담요 한 장 밖에 없는 유치장에 던져지자 하루가 짧다고 볶아치던 일상이 까마득히 멀어졌다. 휴일이라 불온서적 조사를 위해 배치된 2명은 조사가 끝나자 돌아가고 당직자만 남았다. 경찰서 안에 정현이와 당직자 한 사람 뿐이었다. 당직자마저 저녁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는지 조용했다. 그러니까 유치장에 갇혀있다는 사실이 더 견딜 수 없었다. 지금 한창 애들 밥을 먹이고 다음날 숙제를 첵크하고 목욕을 시켜서 잠을 재울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되던 일상이 멈추면서 반복적인 일들이 마치 ‘후’ 불면 날아가 버리는 먼지처럼 생각되었다. 당직으로 남은 경찰관에게 성경이라도 넣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가라 앉혀야 한다고 생각하니 성경이 읽고 싶었다. 무뉘만 기독교인일 뿐 아직 성경도 완독을 못했다. 그리고 유치장을 훑어보았다. 한쪽 구석에 놓여있는 담요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정현은 바바리 코트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어 방을 훔쳤다. 시멘트에 인조 마루바닥 벽지가 발라져 있었다. 언제 딲고 안 딲았는지 금새 휴지가 흙먼지로 새까매졌다. 다시 포켙을 뒤졌지만 더 이상 휴지는 없다. 빽은 여기 도착하자 바로 뺏겼다. 담당 경찰이 캐비넷 안으로 확 버리듯 던져 넣었다.
언제 왔는지 정복을 벗고 트레이닝으로 갈아입은 경찰은 침을 찍 바닥에 뿌리며 방 앞을 지나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걸레와 성경 좀 주시겠어요?”
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비웃는 듯한 웃음을 잔뜩 입에 머금고, ‘자본론에서 성경이라’ 입가에 비웃음을 물고 혼자 말처럼 뱉었다. 사무실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 정현은 들어 올 때 잠시 흘킷 본 책장이 생각났다. 그 당시만 해도 어느 곳에 가도 병원, 호텔 어느 곳이든지 성경은 다 비치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교회에서 선교를 위해 갔다 놓은 것인지 어디든지 볼 수 있는 게 성경이었다. 흘킷 본 책장에는 민법, 형법 적용 사례, 운전면허 문제집 등 법에 관련된 서적이 몇 권 진열되어 있었다.
사무실 쪽에서 고개만 돌려
“얼마 전까지 본 것 같은데, 성경 같은 것은 없는데… 요”
반말도 아니고 높임말도 아닌 어중간하게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사라져 버렸다. 남편이 설렁탕을 시켜 도착 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아직 8시도 안 됐는데 아무도 없네. 요즈음 공무원 세월 좋네.”
“오늘 휴일이잖아요. 아이들이 많이 놀랬죠?”
“참 깜빡했네. 우선 이것 따뜻할 때 먹어야 하는데? 당직 경찰 어디 갔어? ”
“글쎄요. 좀 전에 밥 먹으러 가는 것 같더니 아직 밥 안 먹었던 모양이지?”
“이렇게 혼자 두고?”
“밖에서 열쇠 채워두고 갔는데, 뭔 걱정이에요.”
“다른 경찰서에 근무하는 아는 친척에게 물어봤더니 이게 언제 끝날 줄 모르겠다는데? 6.29 선언 이후 금서가 풀리면서 무작위로 북한쪽에서 넘어 온 김일성 주체사상 등 불온서적이 많이 흘러들어왔대. 언제 끝날 줄 모르겠다는데. 기간을 잡아 놓고 검열을 하면 그 기간 동안 꼼짝할 수가 없대. 그래서 한 바탕 소탕작전을 시작하고 있나 봐. 거기에 걸린 것이지,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아, 단단히 각오해야 .”
“말이 안 되지? 북한에서 흘러 온 책도 아닌데 단순히 『자본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구속을 해?”
“아직 구속은 아니고, 검찰로 넘어가야 구속이지.”
“아뭏든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런 처벌은 너무 심하지 않아?”
“아직 명목상 조사 중이니까,”
“신분이 분명하면 불구속 수사를 해야잖아?”
“아직 경찰도 입장 정리가 안 된 것 같애, 며칠만 기다려 보자.”
“나, 이런 기분으로 밥도 먹고 싶지 않으니, 그냥 들고 집으로 가서 애들이나 건사해, 내일부터 누가 오기로 했어?”
“어머니가 내일 아침 기차로 올라오신다고 했어. 아침에 내가 밥 먹여 애들 학교 보내면 오후에 오실거니까. 당분간 집 문제는 걱정 하지 마. 기껏 2,3일 이겠지, 이것은 당신 말대로 불구속으로 조사만 하면 되지, 이렇게 안 보내주는 것을 보면 뭔가 꼬투리를 잡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경찰이 아무리 협박해도 거짓 진술서는 쓰지 마, 반복하더라도 있는 그대로만 써. 그래도 국물이라도 마셔, 우선 배가 불러야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어. 당당해야 해, 아무 것도 겁낼 것 없어, 『자본론』은 논문 쓰기 위해서 필요한 책이었다는 것만 주장 해”
“그냥 거기 두고 가, 나중에 경찰 와서 문 열면 먹을 께, 애들한테 가봐야지.”
“아직 애들 숙제하고 있으라고 했으니, 조금 더 있다 가도 돼.”
남편은 경찰서 사무실 쪽으로 가 의자를 하나 끌고 와 방 앞에 앉았다.
“나는 괜찮다니까. 그냥 가. 당신이 있다고 위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불안하니 쓸데없는 말만 많이 하게 돼. 아이들 건사나 해.”
“불안해 할 필요 없어.”
“아 참, 언제까지 여기 있을 줄 모르지만 책 좀 가져 와. ”
“어떤 책?”
“글쎄 갑자기 책 때문에 여기 와 있으니 우리 집에 있는 책이 모두 불온서적 같네 하하, 참 성경 좀 갖다 줘. 그동안 읽을 시간 핑계 되고 못 읽었는데, 여기 있는 사이 좀 읽으며 생각 좀 하게”
그 때 마침 당직 경찰이 그제야 식사를 했는지 이빨을 요지로 쑤시며 들어왔다.
남편은 일어서며 창살에 걸린 열쇠고리를 흔들면서 경관을 쳐다봤다.
“경찰서 기물을 함부로 옮기는 것 아니요.”
그러면서 바닥에 침을 찍 뱉으며 사무실 쪽으로 가 열쇠를 가져왔다. 의자를 옮겼다고 그러는 모양이다. 창살이 열리자 설렁탕 봉지를 바닥에 놓으며 남편은
“바닥에서 먹을 수 있겠어?”
했다.
“테이블에 가서 식사 좀 하면 안 돼요? ”
사무실을 가르키며 경찰에게 말했다.
“여기가 그 댁 안방인줄 아슈?”
“그냥 두고 가. 먹고 싶을 때 먹을 게.”
순간적으로 자신이 진짜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유치장 방바닥에서 몸을 꾸겨서 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기가 막혔다. 더 있겠다는 남편을 억지로 보냈다. 남편과 같이 있을수록 이 상황에 놓인 자신을 과장해서 수다를 떨게 된다. 이 상황이 어떻게 연결될지 알 수 없는 그 상황이 불안하고 두렵기조차 하다. 그런데 남편이 같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마음속에 스며든다. 그것은 남편이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있기 때문일까. 지금 이 상황은 과장도 축소도 하지 않고 그대로 들여다보고 싶은데 자꾸 다른 생각이 끼어든다.
남편을 보내고 우선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자리를 정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담요의 먼지를 털려고 담요를 들었다. 시멘트에 인조 장판만 깔려 온기가 없기 때문인지 지네가 담요에서 떨어져 바닥에서 오물거렸다. 깜짝 놀라며 설렁탕 포장 봉지를 뜯어 지네 위에 덮어 바닥을 쳤다. 그리고 창문 밖으로 던졌다. 담요도 집어 던졌다. 갑자기 이곳에서 밤샐 작정을 하니 암담했다. 그러면서 아직 초가을인데도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설렁탕 봉지를 뜯다 아직도 따뜻했다는 생각이 언뜻 떠올랐다. 다시 설렁탕 봉지를 들었다. 봉지 입구를 조금 찢었다. 설렁탕과 밥, 깍두기, 나무젓가락과 플라스틱 숟가락이다. 먹으려면 플라스틱에 밥을 말아 먹는 수밖에 없다. 아직 밥은 먹고 싶지 않다. 따뜻한 국물만 좀 마셨다. 처음에 전혀 없던 식욕이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자 몸속으로 스며들 듯 한없이 넘어간다. 하기야 점심 때도 경찰서에서 시켜 준 불어 터진 짜장면을 전혀 먹을 맛이 안 났다. 비참했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다시 담요를 집었다. 확 펼쳐 몇 번을 흔든다. 더 이상 지네는 없다. 반으로 접고 다시 반으로 접어 담요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앉는다. 그리고 입고 온 바바리로 무릎을 덮고 얼굴을 묻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정현은 벌떡 일어나 창살을 흔들었다. 이빨을 딱고 있던 참인지 경관이 칫솔을 입에 문 체 달려왔다.
“이빨, 마저 딱고 오셔요. 할 말이 있으니까.”
정현은 다시 담요 위에 앉았다. 서양에서는 기본교양서에 불과한『자본론』을 가졌다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를 따져 보았다. 6.29 선언과 함께 금서가 풀렸는데 왜 불온서적을 다시 조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기야 경찰서 당직이나 서는 하위직 경찰이 무엇을 알겠는가. 그들은 시키는대로만 할 뿐이지. 그럼 언제까지 입장 정리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정현은 답답해졌다.
“무슨 할 얘기…… 요?”
언제 왔는지 창살 앞에 서 있다.
“너무 답답해요? 책 1권 때문에 이렇게 사람을 감금한다는 게, 이해가 가세요? ”
또 다시 찍하고 침을 바닥에 뱉었다.
“아저씨, 침 좀 뱉지 마세요. 아저씨가 뱉은 침이 마르면서 그 속에 있는 균이 공기로 올라온다고요.”
“잘 난체는? 저는 결핵이 없거든요.”
“결핵 뿐이 아니에요. 아저씨 침이 깨끗한 줄 알아요?”
“하도 세상이 더러워서 저절로 침이…됐고. 할 말이 뭐…요?”“경찰 아저씨가 생각할 때 책 한권 때문에 이렇게 갇혀 있다는 게 이해가 돼요?”
“아줌마, 대한민국이 언제 이해받고 일한답니까. 국가가 죄인이라하면 죄인이지, 아버지가 납북된 것 때문에, 저는 태어나마마자 죄인으로 태어났어요. 그건 이해가 돼요? 스스로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린 인간들이 얼마나 되는 줄 알아요? 아줌마, 유치장에서 며칠 고생 하는 것은 코메디 수준이에요. ”
“아니, 어떻게 경찰이 그런 말을…”
“아줌마, 여기 있어 봐요. 억울한 사람 천지에요. 자신은 아무도 죄를 지었다고 생각안 해요. 아줌마 생각에 저의 아버지 납북 된 게 제 죄냐고요. 어릴 때는 아버지가 유명한 학자였다는 것도 나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그것 때문에 납북되었고, 그로 인해 엄마가 죽고 내가 평생 죄인으로 살고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저는 경찰서에 근무하면서, 근무는 아니고 여기는 내 집과 마찬가지에요. 참 아버지 덕도 봤네요. 아버지 제자가 서장으로 있을 때 제가 불쌍해 보였는지, 여기 사환으로 일하라고 들어 온 것이 벌써 20년이 되었어요. 그리고 하도 궂은 일을 다 맡아서 하다보니 정식 경찰도 만들어줬어요. 정식 경찰관이 되어도 계속 저 혼자 당직하며 여기서 살거든요. 여기 와서 저를 이해하게 되었구요. 이제 억울한 것도 아무 것도 없어요. 더도 말고 쫒겨 다니지 말고 밥이나 얻어먹고 살다 죽는 소원밖에 없어요. 이렇게 사는 것도 대한민국에 태어난 죄 때문이에요. 아줌마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죄예요. 아줌마는 이 나라에서 보지 말라는 책을 샀으니, 분명 죄를 지은 거라요. 나는 태어나기도 전에 북한으로 끌려 간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을 대한민국이 저당 잡았는데..내가 구원 받은 것은 여기 경찰서에요. 여기 와서 사람들마다 죄가 없다며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대한민국에는 나 같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구나. 그러니까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바로 죄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줌마는 기껏 한 달이나 여기 있겠어요? 그 며칠 때문에 호들갑 떨지 말고 조용히 있다 나가쇼. 여기 오는 사람 제 얘기하면 모두 저 때문에 위로받고 간다고 해요.”
다시 찍하며 침을 뱉었다. 침 뱉은 게 버릇인 사람과 같이 있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정현도 경찰관의 말을 듣고 쇼크를 먹었다. 결국 대한민국에 태어난 게 죄라, 그 말이 이 상황을 참 잘 설명해주는구나 싶었다. 그러니 누구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니 ‘호들갑’ 떨지 말라는 것이다. 모순 덩어리의 대한민국을 이해하지 않고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대한민국이 세계 최강국 기독교 국가가 된 것도 무조건 하나님만 믿고 살면 속 편하기 때문일까. 경찰은 갑자기 입을 닫고 정현이 있는 방 뒤로 갔다. 정현이 있는 방 뒤쪽에 간이 부엌이 있는지 거기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정현이 유치장 열쇠를 열고 들어왔다. 소주와 마른 안주가 든 봉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줌마,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풀린 문제가 아니니, 술이나 한 잔하고 자는 게 최선이에요. 밤새도록 나를 괴롭힐 것 같아, 술 먹이고 재울려고 그러니, 다른 생각은 마시우”
“이건 위법이잖아요. 유치장에 감금되어 술이라뇨?”
“그럼 가져가요? ”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다 바로 일어선다.
“아줌마, 따지고 살아봤자, 여기 감금되어 있잖아요. 옳고 그른 것은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나 따지시고, 여기서는 편히 쉰다 생각하고 쉬세요.”
“지금 당장 불편한 데 어떻게요?”
“그러니까, 술 한잔 먹고 자고 아침 일어나 조사받으면 돼요. 생각해서 가져왔으니까. 따지지 말고. 그렇지 않으며 추운데서 잠도 못자고 미치는 사람도 봤어요. 혼자 고함지르다 받아주는 사람 없으니까. 자살하는 사람도 봤고요. 아줌마 제가 여기서 당직 선지 20년 째 유, 자 술잔 받으셔”
종이컵에 소주를 따뤄 정현이에게 건넸다. 정현이 얼결에 소주잔을 받았다. 긴 밤 날밤을 샐 수도 없고 암담하기는 했다. 그런데 감금 상태에서 낯선 사내와 술이라니. 정현은 자신에게조차 납득시킬 수가 없었다.
“수면제 먹는다 생각하고 한 잔 쭉 들이켜요.”
그러면서 자신이 먼저 한 잔 마셨다.
“아니요, 전 못 마셔요. 술 가지고 여기서 나가세요.”
그리고 엉거주춤하게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은 경찰을 떠밀었다. 그러자 경찰이 발딱 뒤로 넘어지면서 정현이 쥐고 있던 술잔이 부딪쳐 술이 바닥에 흩어졌다. 화가 났는지 발딱 일어나며 가져온 것을 모두 손에 주섬주섬 챙기기 시작했다.
“이 아줌마가, 지금 이 시각부터 날 찾기만 해봐라.”
유들유들하다 생각했더니, 딱 자르는 맛이 찬바람이 돈다.
그리고는 사무실 쪽으로 가서 문단속을 하고 불을 끄고 뒤쪽으로 사라졌다.
정현은 바닥에 깔 수 있는 매트레스라도 갖다 달라고 부탁하려다 그만 술 때문에 망쳤다는 생각을 하며 담요가 있는 구석에 쪼그리고 앉았다. 술을 마시고 잠을 자는 게 시간을 단축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순간 생각했지만, 둘이만 있는 경찰서에서 무슨 일을 당할까.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억지로 잠을 청할 수밖에 없다. 정현도 불을 껐다. 잠이 전혀 올 것 같지 않다. 내일 수업도 있는데, 여기 오지 않았으면 내일 발표 내용들을 훑어보느라 밤을 세울텐데. 이 속에 들어와 있으니 모든 것이 정지된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조사가 끝나면서 화장실을 갔다 온 이후 5 시간 이상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세안도 해야 하고 이빨도 딲아야 하는데, 찬바람 쌩하고 나간 사람이 다시 올 것 같지 않다. 다시 불을 켰다. 그리고 담요를 들치고 일어나려는데 손에 뭔가 걸렸다. 경찰이 얼결에 가는 바람에 열쇠 뭉치를 두고 갔다. 그러고 보니 창살 열쇠도 안 잠그고 갔다. 갑자기 머리속이 환해졌다. 빨리 열쇠를 찾기 전에 화장실 볼일과 이빨을 딱고 와야겠다. 칫솔은? 정현이 문을 조용히 밀고 나가 사무실 쪽 캐비넷 쪽을 보았다. 캐비넷에도 열쇠가 그대로 달린 채 있다. 당직 경찰이 의외로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부러 캐비넷 문을 열어 놓지는 안았겠지만, 그만큼 경계심이 없다는 뜻이 아닐까. 캐비넷 옆 책장에 시집이 한 권 눈에 띄었다. 얼른 정현은 시집을 꺼내어 겨드랑이에 끼었다. 그리고 캐비넷을 열어 정현은 빽을 꺼내어 언제나 빽속에 넣고 다니는 칫솔이랑 간이 화장품을 든 파우치를 얼른 꺼냈다. 그리고 빨리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 볼일을 보고 이빨을 대충 딲고 세면대에서 세안을 하는 도중에도 몸이 부들부들 떨려 서 있을 수가 없다. 추워서인지 불법으로 하고 있는 짓들이 불안해서 그런지 계속 떨려왔다. 비누에 손을 비벼 딲는 둥 마는 둥 하고, 걸려 있는 수건에 얼굴을 닦으려니, 찌든 땀 냄새와 담배 냄새까지 고약하다. 닦지 않고 물을 뚝뚝 흘리며 돌아왔다. 빽 속에서 꺼낸 수건에 얼굴을 다시 제대로 딲고 담요 위에 앉으니 겨드랑이에 끼어있던 시집이 떨어졌다.
그 책장 속에 시집이 딱 한 권 있었다. 누가 가지고 왔다 두고 간 것을 책장에 꽂아 둔 것인가. 정현은 담요 한쪽은 깔고 한쪽은 무릎을 가렸다. 그리고 시집을 열었다. [불바다] 라, 1948년 시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벌써 6번째 시집이다. 이정기 시인? 친연감이 드는 이름이다. 시집 안 속표지 작가 소개란을 보았다. 국민대 영문과 교수? 까마득히 잊혀진 이름이었다. 어떻게 그 이름을 잊을 수 있을까. 시집은 뒷전이고 갑자기 그분과 공부했던 연구실이 펼쳐지면서 그분과의 기억이 머리 속을 꽉 채운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다. 그동안 전혀 생각지 못한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이정기 이 분은 10년 전 정현이 대학원을 다닐 당시에 만났던 분이다. 그분 때문에 정현의 대학원 논문이 나올 수 있었다. 정현이 대학원을 다닐 당시의 대학원에서는 수업은 하는 둥 마는 둥 주로 저녁 때 술집을 전전하는 것으로 대학원 생활의 명맥을 유지했었다. 그 당시 대학원생 중 문학 전공하는 학생은 얼마 전에 자살한 마○○, 소설 전공 김○○, 시전공의 박○○, 이○○, 허○○ 다섯 명이 다였고, 박사과정의 정○○, 노○○, 김○○ 등 10살 이상 연상의 박사과정에 있는 강사들과 어울려 술집을 전전하고 다녔다.
공부는 개인의 몫이었다. 정현은 그 당시 원형 비평(Archetypal critism)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원형비평의 이론가인 노드럽 프라이Nothdop Frye의 『비평의 해부』를 제대로 읽어보고 싶었다. 지금은 번역본이 나왔지만, 그 당시 번역본이 없고 원서뿐이었다. 그런데 노드럽 프라이의 해박한 지식 때문에 읽을 때마다 막혔다. 고민 끝에 그쪽으로 이름이 난 그 당시 국민대학 영어영문학과에 계시는 이정기 교수를 찾아갔다. 이정기 교수는 그 당시 우리나라 유일의 원형 비평에 관한 논문을 썼던 분이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분은 교수로서의 권위의식이나 체면 같은 것 없이 순수한 인간 그 자체로 Y 대학교 대학원생이라는 것 하나로 정현을 제자로 받아들여 준 것 같았다. 주로 책을 읽는 것은 그 분의 연구실에서 였는데, 무시로 들락거린 것 같았다. 책을 끝까지 읽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정현은 어쨌든 그것으로 그 당시 꽤 괜찮은 논문을 썼고, 아마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기 때문에 논문조차 이정기 교수에게 갖다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 분을 찾아 그분의 연구실에서 한 장 한 장을 읽어 나갈 때마다 원형 비평 이론에 빠져들고는 했다. 이 정기 교수는 ‘10년만 이쪽으로 연구하면 그쪽의 대가가 될 것이다.’라며 자신의 대학원생도 아닌데 열심히 정현을 지도해 주었다. 그 분은 너무 자신의 연구에만 치중 그 당시 저서가 10권이 넘었다. 부인이 너무 외로워해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다. 여자의 입장에서 안타까운 나머지 연구를 좀 줄이고 자녀들이나 부인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해도, 나중에 자녀들이 자신의 저서를 보고 오히려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정현의 말에 전혀 게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이론서를 바탕으로 논문 「원형비평에 의한 채만식의 『탁류』」라는 논문을 썼다. 원형 비평이라는 것은 프로이드의 제자인 융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이론인데, 융은 각 국가는 집단의식을 중심으로 민족의식이 형성된다며, 개인적 체험 외에 조상 때부터 내려 쌓여 온 의식이 그 민족의 집단 무의식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정현은 이 논문에서 심청전의 물의 이미지가 현대 소설인 채만식의 『탁류』까지 어떻게 변화 발전했는가를 분석했었다.
그 해 우수논문으로 대학원 신문에서 뽑혔고, 교수들의 칭찬을 받았다. 그리고 그 당시 시를 가르치는 박두진 교수에 의해 공부가 중단되었다. 그 분의 여자들은 박사과정에 당분간 입학시키지 않는다는 선언 아닌 선언으로 대학원 공부는 끝이었다. 결혼하고 10년이 흘렀다.
여기서 이렇게 시집을 통해 그 분을 떠올리다니? 그 순간 정현은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 같다. 갑자기 그 분을 뵙고 싶다. 호가 초곡인 이정기 교수는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영국 응용학술원에서 학위취득. 생전에 미국의 전기연구원(ABC)에서 선정하는 세계 명사 5천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연구 저서뿐 만 아니라 일찍 시인으로 활동, 10권 가까운 시집을 남겼다. 그 당시 그 분의 시집을 몇 권 받았음에도 시인이라는 생각은 정현이 머리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 당시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결혼이라는 이질적 이력이 정현이 삶에 많은 단절을 경험하게 했다. 바로 이정기 교수님의 기억이 그렇고 또 지도교수였고, 마지막 조교까지 하면서 모셨던 박영준 교수에 대한 기억이 그렇다.
어느 새 잠이 드는가 싶더니 뒤쪽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깼다. 한 때 권혜경의 히트곡이었던 산장의 여인이었다. 무슨 남자가 청승스럽게 산장의 여인이라니, 권혜경도 이 노래를 부른 이후 어려운 일이 많아서 그 노래를 부른 것을 후회했다는데, 당직 경찰도 가족 없이 언제나 혼자서 여기에서 지나려면 신세 한탄이 저절로 나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심 한 가운데 살면서도 버림받아 혼자 외로이 산장에서 사는 기분으로 살고 있는 걸까. 대한민국에 태어 난 죄로. 경찰서라는 살벌한 곳에서 혼자 20년을 살았다니, 본인 말대로 별별 일을 다 겪었을 것이다. 갑자기 당직 경찰이라는 사람이 애처로워 보인다. 밤새 산장의 여인을 반복해서 들었는 것 같았다. 방 여기저기서 찬바람이 마치 선풍기를 털어놓은 모양 솔솔 들어왔다. 바람 소리에 잠시 뒤척일 때마다 산장의 여인의 노래 소리가 들려왔다. 정현은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갈수록 추워지는 몸을 웅크릴 수 있는 한 웅크렸다. 그리고 경찰서가 떠나갈 듯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현은 노래 소리와 코고는 소리가 어떻게 번갈아 들리지 하는 생각으로 몸을 뒤척이며 밤을 보냈다.
창살을 흔드는 소리에 놀라 깼다. 전날 밤 당직 경찰의 노래 소리 때문인지 끝도 없는 모래 언덕을 혼자 걷고 있었다. 깨자 마자 경찰의 ‘대한민국에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경찰 덕분에 머릿속이 정리가 되었다. 궁금한 것도 불만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체념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루 동안의 유치장에 가둬 둔 효과였다. 아직 어둠으로 주위가 컴컴한 가운데 한 남자가 우뚝 서 있었다. 정현은 밤새 추위에 떨던 지친 눈을 겨우 떠 올려다보았다. 당직 경찰이었다.
“춥지 않았어요?”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식으로 정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 여기 따뜻한 물이라도 마셔요.”
정현이는 따뜻한 물이라는 말에 얼른 일어났다.
“남자들은 술 한잔 주면 고맙다고 마시는데, 여자들은? 하기야..”
물 컵을 건너 주며 히죽거렸다.
“아침은 시켜 줄까요? 아니면 아침에 아저씨가 올 거예요?”
“오겠죠.”
물 컵을 받으면서 그래도 용케 눈을 붙였다는 생각을 했다. 따뜻한 물이 속으로 들어가니 온몸의 세포가 확 일어나는 느낌이다. 아~ 그 상황에서도 좋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일상에 즐기던 것을 구속, 감금 등으로 즐길 수 없는 불편함 그 자체가 바로 불행이구나.
당직 경관은 정말로 술 한 잔을 먹고 푹 자라고 가지고 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술을 받아먹을 여자가 누구 있겠는가. 뒷쪽에서 커피포트에서 물 끓이는 소리가 났다. 정현은 그 물 끓는 소리를 듣자 커피 생각을 하자 커피 냄새가 났다. 그 순간 1만원을 주고라도 커피 한잔을 얻어먹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밤새도록 잠이 깼다 들었다하며 머리를 어지럽히던 생각에 결론은 자신이 여기에 왜 갇혔는지에 대한 것은 논리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결론이었다. 불온서적을 검열하기로 권력자가 정하면, 그 필요가 옳고 그른지는 따질 필요가 없다. 권력자의 의지에 관련된 것이다. 아랫사람은 열심히 검열해서 숫자를 올리면 된다. 이틀이 될지, 사흘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냥 참고 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정말 커피를 가져왔다. 믹서커피지만 황감했다. 이 당직 경찰은 의외로 순수한 사람인 것 같다.
“죄인한테 너무 잘해 주시는 것 아니에요?”
정현은 전날 밤 오해로 떠밀던 생각을 하며 일부러 부드럽게 말했다.
“죄인은 무슨? 우리나라는 아무나 죄인으로 만들면 죄인이 되는 거죠. 저요, 20년 동안 아버지 납북한 것 때문에 죄인으로 추적당하고, 어머니 홧병으로 죽고, 혼자 고아로 돌아다니면서 못볼 것 다 봤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고죄로 인생을 저당잡히고 사는 줄 몰라요. 쫒겨다니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내가 잘 되면 장돌뱅이 신세죠. 저도 또래랑 몰려다니며 나쁜짓 많이 했어요. 여기 옛날에 계셨던 서장이 제 담당 경찰이었는데, 제가 말썽부리며 동네 부랑자들과 몰려다니니까. 여기 불러 와 심부름 시키지 않았으면 저도 지금쯤 감방살이 할 거예요. 머리로 자책하지 마셔요. 아무 소용없어요.”
이 경찰관은 자신 이야기를 마치 주술처럼 외우듯 했다. 그 이야기로 누구나 다 이 경찰관처럼 전 생애를 저당잡힐 만한 사람은 없을테니, 들으면 위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정현이 그 당직자의 침을 찍 뱉는 불량스러움으로 반감을 가졌다. 그러다 그 경찰이 녹음기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반복적으로 그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보면 슬그머니 자기 자신이 지금 놓인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위안이 되었다. 거기다 밤새 들려오던 산장의 여인의 노랫소리는 그를 품어주고 싶다는 엄마 같은 마음마저 생기게 했다. 어떤 서장이었는지, 이 분을 여기 경찰에 둔 것은 여러 가지 효과를 노린 것 같다.
커피를 같이 마시며 당직 경찰이 들려준 이야기는 정현이 막연하게 생각했던 권력의 무소불위의 힘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게 해줬다.
“저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몰라요. 담당 경찰도 모를 거예요. 그냥 취조만 할 뿐이에요. 그대로 따라 답변만 하셔요.”
“언제까지요?”
“글쎄요? 볼온서적 검거 기간이 상당히 되었기 때문에 아마 결론은 빨리 날 거예요.” 얘기 도중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점검을 위한 전화인지 여기에 아무 일이 없다는 보고로 전화를 끊고 바로 사무실 쪽으로 갔다.
아침 10시에 다시 불렀다. 남편이 아침으로 샌드위치와 커피를 가져다 주고 전날 있었던 애들 이야기를 간단히 들려주고 바로 회사로 갔다. 당직 경찰말대로 경찰서 쪽에서도 정현을 어떻게 처리 할 줄 모르고 반복적으로 똑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남편 역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냥 위쪽에서 혐의가 밝혀질 때까지 계속 진술서를 쓰라는 것이었는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상 그대로 반복해서 쓸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 날, 남편이 어디서 들었는지, ‘너가 [자본론] 배포 책임자였다고 하더래.’ 그 말을 듣는 순간 ‘바로 이것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온 몸에 오싹 소름이 끼치며 그동안 버티고 있던 힘이 빠지며 몸이 무너졌다. ‘아니. 왜 그래? 어디 아파?’ 남편이 사무실로 가 컵에 물을 따뤄 왔다.
밤이나 낮이나 푹 잠을 잘 수 없었다. 밤마다 반복되는 당직 경찰의 산장의 여인 노래와 코고는 소리는 낮에도 들려오는 것 같았다. 끼니도 겨우 국물로 배를 채울 뿐 식욕이 없었다. 멍한 상태로 시간만 떼우고 있는 것이다. 차츰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과 그냥 이 경찰서에서 나가 따뜻한 방에서 잠이나 실컷 잤으면 하는 바램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조사실에 앉으면 전투력이 살아났다.
세 번째 날 담당 경찰이 그런 불온서적을 읽게 된 것이 논문 때문이라면 논문을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6.29 선언과 함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그동안 금서로 지정되어 온 월북 작가의 작품에 대한 연구가 가능하게 되었다. 정현이 김남천 작가 연구를 하게 된 것은 순전히 자료 때문이었다. 다른 박사 과정에 있는 학생들보다 10년이나 늦게 입학한 정현은 여러 가지 면에서 불리했다.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의 아이들을 건사하는 가정주부의 역할이 그 당시 정현에겐 가장 우선이었다. 박사과정에 입학했을 때는 대학원 분위기는 정현이 대학원을 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학문적 열정으로 꽉 차 있었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은 최소한 2.3개 이상의 스타디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자료를 구하기 힘든 1920,30년대 지료집을 읽는 스타디였었다. 자료를 혼자 구하기도, 읽기도 힘든 것을 스타디를 통해 분업하면서 그동안 전혀 미개척 분야였던 카프 시대의 문학을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정현은 대학원 시절과 다르게 공부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났다. 스타디는 대부분 수업이 끝난 후 저녁을 먹고 7시 이후부터 시작이 되었다. 초등학생 두 명이 딸린 정현은 거의 스타디에 참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카프가 시작된 1925년부터 1932년 카프가 해산된 지점까지의 자료는 김남천에 관한 논문을 쓰기 위한 필수 코스라 생각하고 겨우 1개 스타디에 참여했다. 그러다 보니 그 팀과 친목도 필요했다.
어느 날 스타디를 끝내고 항상 술 먹는 자리인 2차 없이 혼자 집으로 돌아갔던 정현은 그날은 어쩐지 같이 술을 하고 싶었다. 술은 스타디가 끝난 10시 이후부터 시작, 조그만 마셔도 12시가 넘었다. 그 날 역시 12시 넘게 마셨다. 그 중 남자 후배가 정현이를 가르키며 선배집에 가서 한 잔 더 하자고 다들 택시를 탔다. 남편이 술은 좋아하지만, 모범적인 삶의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라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 상황에서 어찌 할 수 없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남편이 문을 열어주자 우르르 달려드는 후배 5,6명을 보고는 남편은 ‘뭐하는 여자야?’ 하고는 자신은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현은 후배들을 거실로 안내하고 집에 있는 양주 발렌타인 17년 산 한 병과 치즈와 견과류를 가지고 한판 다시 술판을 벌렸다. 다들 술에 취했음에도 그 양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나서야 새벽 4시가 지나서야 집을 나갔다. 그 이후 정현은 기억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남편도 아이들도 학교에 다 간 이후였다.
김남천으로, 그로 인해 정현은 학문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논문을 바꾸라니? 정현은 경찰에게 다시 질문을 했다.
“바꾸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그건 여기서 나가는 것을 장담하지 못하는 거죠?”
“그건 구속도 가능하다는 거예요? 분명히 하세요. 그건 위에서 내린 지시인가요?”
“아니요, 제가 충고 드리는 거죠.”
“당신들이 여기 3일씩이나 가둬 놓고 기소도 하지 않는 것은 분명한 저의 죄과를 밝힐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불온서적을 가졌다고 여기를 데려 와 놓고 논문을 바꾸라고요? 그리고 불온서적의 정의가 뭐예요. 그리고 불온서적 목록을 보여 주세요. [자본론]이 들어있다는 분명한 결정적 증거를 보여주세요. 그리고 저를 구속하든지 조치를 하세요. 이렇게 어중간한 상태로 있고 싶지 않아요.”
정현이 강하게 나가니까 조사하던 경찰이 움찔했다. 그러더니 밖으로 나갔다 들어오더니 좀 더 부드러운 어조로
“불온서적은 우리의 체제,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 체제를 흔들만한 이념서적을 말하는 것이겠죠. [자본론]은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틀을 제공한 이념 서적이니까 ‘불온서적’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불온서적’ 목록도 비밀문서에 속해 관계자 외에는 볼 수 없어요. 저희는 가정도 있으신 분이 이렇게 여기에 며칠씩 있는 것이 딱해서 충고하는 거죠.”
커피를 시키고 왔는지 사환 아이가 커피 잔을 들고 와 정현이 앞에 내려두고 나갔다.
“[자본론]을 어떻게 구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갑자기 정중하게 말했다. 정현은 [자본론] 배포 책임자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남편의 말이 생각났다.
“저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에 대해서 학문적 관심 외에는 전혀 흥미가 없어요. 그냥 얘기한대로 논문을 쓰려면 그것을 읽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금서가 해제되었다고 해서 그동안에 읽을 수 없었던 책을 다 읽을 수 있는 줄 알았죠. 제가 숨겨둔 비밀문서를 읽었는 것도 아니고, 이건 너무 하지 않아요? 아무리 조사를 해도 저는 똑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이틀 동안 똑같은 질문을 하더니, 사흘 째는 부르지도 않고 그대로 유치장에 두었다. 그러니까 또 무슨 꿍꿍이 속일까 싶어 더 미칠 것 같았다. 그 때 정현은 수십 번도 수백 번도 더 ‘대한민국에 태어 난 죄’라는 말을 백번 천 번 외우고 외우면서 참고 다시 참고 그들의 처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5일째 되는 날 느닷없이 유치장을 열어주며 집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결국 그동안 지켜본 결론이 [자본론] 배포책이 아니라는 것이 드러난 모양이다. 정현이는 어이가 없었다.
택시를 타고 집에 오면서도 ‘대한민국에 태어 난 죄’를 다시 외우기 시작했다.
「김남천 연구」로 박사학위를 땄다. 교수도 되었다. 더 이상 카프 쪽을 공부하는 게 힘이 들었다. 스타디를 계속하지 않으면 자료 읽기가 힘든 공부였다. 주부로서 밤까지 스타디를 쫒아다닐 수 없었다. 그 이후 방향 전환을 했다. 여성문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자는 생각이 들어 옆의 여자대학 박사과정이 있는 강사들과 후배 강사 5,6명 모두 10명 정도 모아서 스타디 팀을 짰다. 그리고 1920년대 신여성 1세대 나혜석, 김명순, 김일엽부터 한 사람씩 논문을 맡아 쓰기로 하며 스타디를 시작했다. 거의 10년 동안 3권의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한길사에서 출판했다. 연구서로 3판까지 찍는 쾌거를 올렸다.
정현이 근무하던 대학의 강사로 출강 온 막 학위를 받은 젊은 학자들이 가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 선생님이 [김남천 연구] 쓰신 분 맞으신가요?”
정현은 그 젊은 강사를 흘킷 쳐다보고는
“네 맞는데요.”
“아, 선생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학계에서는 교수님이 [김남천 연구]를 끝으로 연구를 그만 두셨다는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그래요. 그쪽 연구는 안 해도 여성문학 쪽으로 계속 논문을 쓰고 있는데. 하하 하기야 그쪽 연구자들은 페미니즘 쪽 논문을 읽지 않으니 죽은 사람이겠네요. ”
“저희는 선생님 박사논문 「김남천 연구」를 한 장 한 장 잘라서 스타디했어요.”
“와우, 저까지 감동적이네요. 몰랐어요. ”
“그 당시 자료 구하기도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김남천 연구」로 박사 논문을 쓸 생각을 하셨는지 대단하세요. 김남천에 관한 첫 번째 박사논문이었잖아요?”
“그러게요. 힘든 기억 밖에 없네요.”
세월호 뉴스를 보며 어지러웠던 기억들이 다시 떠올랐다 다시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세월호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가라앉고 304명의 목숨들이 영원히 바다 속에 수장되었다. 세월호 뉴스가 나오는 몇 달 간 뜬 눈으로 밤을 지새며 다시 대한민국에 태어나 희생된 학생들을 위해 명복을 빌었다. 얘들아, 다시 태어날 때는 인간의 생명을 최고로 아는 더 좋은 나라에 태어나거라.
*이덕화 1992년 《문학과 의식》 등단. 장편소설 『집짓는 여자』, 『은밀한테러』, 『흔들리며 피는 꽃』. 작품집 『달의 딸들』, 『블렉레인』, 다수의 논문집, 평론집. 자랑스런 이화인상, 문화체육부 장관상, 혼불학술상, 노근리 평화문학상.연세대학교 박사. 현 평택대학교 명예교수 작가교수회 회장, 서울지방법원 조정위원. 한국여성문학학회, 한국문학연구학회 회장 역임, 다년간 세종우수도서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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