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토피아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사이트 내 전체검색

수록작품(전체)

19호/서평/안성덕/‘추억’의 두 가지 방식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부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29회 작성일 19-07-08 09:26

본문

19호/서평/안성덕/‘추억’의 두 가지 방식


‘추억’의 두 가지 방식
-정재호 시집『외기러기의 고해』, 김동호 시집『단맛 뜸들이는 찬바람』


안성덕



  세상이 온통 새하얗다. 꽁꽁 얼어붙었다. 삼한사온三寒四溫의 겨울은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지구온난화로 약해진 제트기류 때문에 북극의 찬 공기가 한반도까지 내려온 탓이란다. 엄동에 어디 몸 둘 곳, 마음 둘 곳 없으니 방구들과 친해지는 밖에. 옛일이나 꺼내 보는 수밖에.
  자고나면 싸리울이며 장독대에 하얗게 눈이 쌓여있었다. 젊은 아버지는 싸리비로 쓱쓱 마당을 쓸어나갔다. 대문간을 지나 고샅으로 길을 이었다. 마루 밑에 웅크리고 있던 복실이도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갔다. 어머니는 찬 새벽 우물물을 길어다 데웠다. 간밤 호롱불에 그을린 우리들 얼굴을 말갛게 씻겼다. 그렇게 자라 사타구니에 거웃이 늘어갈 무렵 코끝에 맴도는 분내가 좋았다. 복사꽃마냥 말갛게 핀 숙이와 읍내 빵집에서 막차 시간도 잊은 채 붙어있었다. 우여곡절 한집에 살게 되어서는, 오늘처럼 세상이 온통 하얗게 얼어붙은 날 퇴근길엔 군고구마 한 봉지를 사들고 오곤 했다. 꿈에 떡 얻어먹듯 입가에 검댕을 묻히던 아이들, 부부의 저녁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곤 했었다.
  ‘과거의 사물이나 지식 따위를 머릿속에 새겨두어 보존하거나 되살려 생각해 냄’, 기억의 사전적 의미는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함’ 이라는 추억의 의미와 별반 다르지 않다. 허나 머릿속에 새겨 둔 것들이라고 다 돌이켜 생각해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사록 ‘그리운 것’들만이 다시금 불러내고 싶은 기억이지 싶다. 하여 ‘기억’과 ‘추억’의 차이는 그리움이리라. 기억이 그리움의 옷을 입고 있으면 아련한 추억이 되는 것이리라.
  대체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혼자가 되어 외로울수록 지난날을 추억한다. 추억을 꺼내 오늘을 견디기도, 돋을새김하기도 한다. 아련한 지난날들을, 안타까운 지난 일들을 불러내는 방법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나, 범박하게 보면 자신의 지난날 지난 일들을 누군가에게 고하는 ‘고백’의 방법과, 그날 그 일의 자리를 꿰찬 변해버린 오늘을 ‘연민’ 하는 방법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정재호 시인의『외기러기의 고해』이며, 후자가 김동호 시인의 시집『단맛 뜸들이는 찬바람』이 아닐까?


  1. 고백: 정재호『외기러기의 고해』
  천주교 신자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받기 위하여 하느님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고백하여 용서를 받는 일을 ‘고해’라 한다. 현세의 괴로움이 깊고 끝없음을 바다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뜻하기도 하나, 정재호의 고해는 이젠 가버린 날을 추억하기 위한 ‘고백’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가을에 남쪽으로 왔다 봄이면 다시 저 시베리아로 돌아가는 기러기. 고행의 그 먼 길을 오가는 기러기가 짝이 없다. 외기러기다.


오십여 년 서로 의지하며 보낸 세월

아름다운 꿈결이었습니다.


되돌아가고 싶은 그 길을 오늘도 더듬어 가봅니다.


사별이란 돌이킬 수 없는 이승에서 영원한 이별이지만 당신의 옛 모습 앞에 커피 한 잔 향 한 촉 피워놓고 기도드리며 영적 교감 이뤄보고 싶어 마음 가다듬어 염원의 촛불을 켭니다.


이 순간이 지나면 혼란이 일고 가눌 길 없어지면 무념에 빠져 헤매는 외기러기가 됩니다.


영원한 꿈결 속 한 번이라도 조우할 수 있다면 깨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외기러기의 고해」부분


  “오십여 년 서로 의지하며 보낸 세월”이면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었을까?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함께하겠노라 다짐한 부부, 어떤 연유로 한 쪽이 먼저 갔다. 고백은 인간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고백을 통해 우리는 자신이 행한 죄(?)를 얼마간 ‘사함’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화자는 “사별이란 돌이킬 수 없는 이승에서 영원한 이별이지만 당신의 옛 모습 앞에 커피 한 잔 향 한 촉 피워놓고 기도드리며 영적 교감 이뤄보고 싶어 마음 가다듬어 염원의 촛불을 켭니다.” 담담한 고백으로 가버린 반쪽에게 고한다. 담담한 어조로 애써 속을 감추고 있지만, 가슴을 에는 슬픔이라는 걸 우리는 쉽게 눈치 챌 수 있다. “영원한 꿈결 속 한 번이라도 조우할 수 있다면 깨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세월 속으로 꿈결에서나마 가고 싶어 소리 없이 통곡한다.  


나막칼로
기러기 한 마리 깎아봅니다.


허망이 잠든 세월
그 껍질을 벗겨내고 속살로 굳은 상처
옹이와 결을 깎아
기러기 몸매를 다듬어 가면
거친 세상살이 맞고 넘겼던
기쁨과 아픔
다시 맞는 순간도 있습니다.


                                                          ―「나무기러기ㆍ1」부분


  “나막칼로/기러기 한 마리 깎아봅니다.” 하루해가 노루꼬리만치 짧아진 어느 가을날쯤일까? 외로움을 가눌 수 없어 허망하게 가버린 반쪽을 그리며 가을 하늘을 나는 기러기를 본다. “나막칼로” 아프게 마음속에 기러기 한 마리를 깎으며 “거친 세상살이 맞고 넘겼던/기쁨과 아픔”의 시절을 추억한다.


요즈음
돌을 가려내고
밭고랑을 일구느라
흙에 묻혀 지냅니다.


돌은
흙과 스스럼없이 섞여
버틸 힘이 약한 흙의 받침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돌은
언제 어디서나 중심을 낮추려 하면서
은둔하려는 의지를 감추려 하지 않지만
그 뜻을 밝히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힘에 밀려 이곳 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부셔져 모양이 변하고 무게는 삭감 되지만
돌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습니다.


자연에 순응하며
본성을 지켜가는 정신이 빛납니다.


흙과 돌이 어우러진 밭에서
일하며 익힌 정신
가꾸고 닦아가며 살아 보렵니다.


                                                               ―「자경일기」전문


  남녘으로 기러기 떼 줄지어 내려가는 가을, 툇마루에 나앉아있을까? 화자는 누군가에게  “요즈음/돌을 가려내고/밭고랑을 일구느라/흙에 묻혀 지냅니다.”고 근황을 고한다. “돌은/언제 어디서나 중심을 낮추려 하면서/은둔하려는 의지를 감추려 하지 않지만/그 뜻을 밝히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전문 농사꾼이 아닌듯한 그가, 밭 흙 속 돌을 골라내면서 깨우친(?) 삶의 철학을 자분자분 이야기한다. “자연에 순응하며/본성을 지켜가는 정신”으로 “흙과 돌이 어우러진 밭에서/일하며 익힌 정신/가꾸고 닦아가며 살아 보”겠다는 각오가 지금은 가고 없는 추억 속 반쪽에게 건네는 다짐인 것을 우리는 쉽게 읽어낼 수가 있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건네는 듯 다소곳한 어조의 외기러기, 서랍 속 흑백사진을 꺼내 보여주는 외기러기를 따라가는 외롭고 쓸쓸한 추억이다. “환상과 욕망의 불길/온 세상 다 태울 듯/광풍처럼 몰아가 쓸어 봐도/허망한 재만 쌓이던/젊은 가슴.”(「봄비」)으로 건너온 날들이기에 추억은 언제나 그립고 안타까운 것이리라. 기러기는 사람 人자 대형으로 난다. 그 기러기가 한 쪽을 잃었으니… 우리 모두의 환상통이다.


  2. 연민: 김동호『단맛 뜸 들이는 찬바람』
  겨울이면 고구마 삶아 살얼음 동치미를 곁들여 먹던 시절이 있었다. 잘 익은 김치 가닥 척척 걸쳐먹던 시절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김장 배추는 대관령 같은 고랭지 것을 선호한다. 사과는 ‘무진장’이라는 이름으로 오지의 대명사였던 전라도 무주, 장수지방의 것을 으뜸으로 친다. 낮에는 햇볕이 따갑고 아침저녁으로는 서늘하여 채소나 과일에 더 단물이 들기 때문이다. 옛적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지을 때, 어머니는 밥이 한물 끓으면 불을 다독여 뜸을 들이셨다. 뜸이 잘 든 밥은 찬이 없어도 꿀맛이었다.


‘마지막엔 찬바람이 단맛 뜸들인다

무수도 양파도 배추밑동도
가을 찬바람 맞아야 달콤한 매운맛 난다’


어머니가 평생 부르시던 노래이다


말년에 丹陽 丹楓을 닮아가시던
충주 누님이 열심히 부르시던 노래이다


腸癌수술을 받고
미움과 진통제로 연명하시면서도
자식들이 주고 간 용돈 꼬박꼬박 챙겨
어렵게 사는 친척들 이웃들 병문안 오면
그것 은밀히 나눠주는 재미로
남은 생을 사시던 95세 할머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래이다

‘치매에 걸린 며느리를
지극정성 돌봤다’는 그 꼬부랑 할머니도
이 노래 즐겨 불렀을 것 같다


                                        ―「단맛 뜸들이는 찬바람」전문


  “무수도 양파도 배추밑동도/가을 찬바람 맞아야 달콤한 매운맛 난다”. 아궁이 불 다독여 가마솥의 밥 뜸들이듯 “마지막엔 찬바람” “뜸들”여야 단맛”이 든다. “腸癌수술을 받고/미움과 진통제로 연명하시면서도/자식들이 주고 간 용돈 꼬박꼬박 챙겨/어렵게 사는 친척들 이웃들 병문안 오면/그것 은밀히 나눠주는 재미로/남은 생을 사시던 95세 할머니가/즐겨 부르시던 노래”를 이제 그가 부른다. 후끈 달아오를 줄만 아는 사람을 향해 시류 따라 변해만 가는 세상을 향해 “어머니가 평생 부르시던 노래” “충주 누님이 열심히 부르시던 노래”를 부른다. “공해 날로 심해가는” “만물의 영장 날로 왜소해 가는”(「지카바이러스 내시경」) 세상이 가엽기 그지없다. 할머니, 어머니, 누님 옛 추억들을 불러낸다.


어린것들이
한 뼘 남짓한 독방에 갇혀
방부제 든 먹이 배가 터지도록
먹고 있는 것 보면 가슴이 아프다


성장 홀몬 든 高額간식
볼이 찢어지도록 먹고 있는 것
보고 있으면 가슴이 아리다


                                            ―「速成양계장 병아리들 」부분


  축산도 공장화(?)된 지 오래다. 컴퓨터가 알아서 먹이를 주고 물을 주고 온도 습도를 맞춰 준다. 주는 대로 먹고 움직이지도 말라 좁은 칸에 가둬 “速成”으로 살을 만들고, 잠도 자지 말고 알 낳아라 24시간 불 밝혀 계란을 만든다. “어린것들이/한 뼘 남짓한 독방에 갇혀/방부제 든 먹이 배가 터지도록/먹고 있는 것”을 보는 화자, “가슴이 아프다”. 식구들 밥찌꺼기와 구정물을 먹이던 돼지가, 둥우리에 알을 낳고 꼬꼬 거리던 그 시절의 암탉이 생각나 “가슴이 아리다”. “성장 홀몬 든 高額간식/볼이 찢어지도록 먹고 있는 것”, 우리 인간인 것만 같다.  

 

   火傷, 견딜 수 없게 아프지만 무간지옥은 아니다
안 아픈 시간이 그래도 조금은 더 길다. 삼한사온처럼.
그 틈새를 비집고 들려오는 이웃들의 따뜻한 위로가
고마우면서도 따끔하다. 금침 은침 동침처럼 


“아파야 하오. 아파야 빨리 나요”
“아파야 어서 빨리 아픔에서 벗어나야겠다는 心智가
세포들 사이에서 생겨나요”
“새 살 돋게 하는 데는 아픈 세포들의 궐기가 최고에요”


이들이 진짜 히포크라테스가 아닐까
어마어마하게 비싼 영상진단으로 주눅이 든 촌닭들을
알아들을 수 없는 꼬부랑-말로 또 겁주며
인공뇌로 무장한 듯한 무표정의 21세기 히포크라테스들


                                                               ―「‘仁術’기업」부분


  “아파야 어서 빨리 아픔에서 벗어나야겠다는 心智가/세포들 사이에서 생겨나요” “火傷, 견딜 수 없게 아”픈 화자에게 의사는 그저 참으라 한다. 무통주사로 통증을 견디는 요즘, 무작정 “아파야 하오. 아파야 빨리 나요” 오래 붙잡아 두려고 참으라 하는 것만 같은 의사가 가여울 수밖에. “삼한사온처럼./그 틈새를 비집고 들려오는 이웃들의 따뜻한 위로가” “금침 은침 동침처럼” 따뜻한 화자, “仁術기업” 의사를 연민한다. “진짜 히포크라테스”는 “인공뇌로 무장한” 당신들이 아니라 “꼬부랑 말 모르는” “촌닭들이”라고. “무표정의 21세기 히포크라테스들”의 자리에 우리들의 정 많은 옛 이웃들을 불러낸다.
  누군들 가슴 한켠에 아리고 안타까운 것들 없을까? 눈 감으면 그립고 눈뜨면 아련한 것들 없을까? 세월은, 세상은 많은 것들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묻어버렸다. 허나 세월이 암만 흘러도 세상이 암만 변해도 우리에게는 ‘추억’이라는 보물 창고가 있으니 걱정 없다. 그리움이 더께더께 묻어 있는 그 기억들을 불러내 우리는 또 묵묵히 오늘을 견디는 것이다.
  ‘단순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바로 가는 길을 빤히 알면서 어렵게 돌아갈 일 없다는 뜻일 게다. 먼저 가버린 아내를 그리며 함께 했던 지난날들을 불러내는 정재호 시인의『외기러기의 고해』와 멀미가 나게 휙휙 변해가는 세상이 안타까워 연민하는 김동호 시인의『단맛 뜸들이는 찬바람』은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기억이다.
  두 시인이 이끄는 대로 기억의 끈을 잡고 추억 속으로 들어간다. 사적인 가벼운 것에서부터 세상과 시절에 대한 무거운 것까지 망라된 이 두 방식의 추억은 오늘을 통찰하기 위해 필요한 기억이다. 그리움이 묻어있는 기억 너머를 추억하는 일은 오늘을 견디는 일이다. 오늘에 그리움을 듬뿍 묻혀두자는 ‘오늘 사용설명서’의 다른 이름이다. 춥다, 논어에 “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 知松栢之後凋也”라 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는 이 말을 ‘외롭고 힘들 때 비로소 소중했던 기억들이 더 귀하게 생각난다.’로 고쳐 읽으면 어떨까. 한 점 추억이 한 생이다.





*안성덕 2009년<전북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 『몸붓』. 원광대 출강 중. 《아라문학》 편집위원.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사)대한노래지도자협회
정종권의마이한반도
시낭송영상
리토피아창작시노래영상
기타영상
영코코
학술연구정보서비스
정기구독
리토피아후원회안내
신인상안내